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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32화 (131/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32화

제24장 훈련(2)

“민경 선배.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방금 기관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는데요?”

준후의 절개가 다 끝난 후에야 경수는 문제를 제기했다.

경수의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사고가 터진 것 같았다.

“가끔 이럴 때도 있어.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모스키토(혈관겸자)로 혈관을 잠그고 있었는데요? 명백히 출혈 아니에요?”

“혈관을 잠그기 전에 고였던 피가 압력 때문에 분출된 거야. 절개로 인한 출혈이라고는 볼 수 없어.”

이번엔 준후가 대답했다.

준후의 목소리는 준후의 눈빛만큼이나 차분했다.

수술 도중 피가 솟구치면 당황할 법도 하건만…….

준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듯.

천부적인 외과의 체질인 건가.

아니면 단순히 겁대가리를 상실한 걸까.

둘 중 어느 것이 진실이든.

준후의 태도는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경수는 지금까지 준후가 어쩔 줄 몰라 하거나 긴장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었다.

“경수야, 거즈로 피 좀 닦아줄래?”

“어? 어.”

경수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준후의 오더를 따랐다.

과연 출혈은 아니었는지.

분수처럼 솟구쳤던 피는 순식간에 멎었다.

수술 부위가 다시 청명하게 드러났다.

경수는 괜히 자신만 바보가 된 것 같아서 민망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래서야 자신이 준후의 집도가 실패하길 바란 것처럼 보일 텐데 말이다.

“T캐뉼라(도관) 주세요.”

“네. 선생님.”

준후가 소독 간호사에게 받은 캐뉼라를 손에 쥐었다.

“선배, 절개창 벌려주세요. 캐뉼라 삽입합니다.”

“오케이. 확인.”

민경이 준후의 오더를 따르면서 절개창이 상하로 벌어졌다.

준후의 손속은 이번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거침이 없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준후는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스으으윽.

T 캐뉼라의 3분의 2가 기관 안쪽으로 삽입되었다.

이어진 기관 삽관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준후는 기관이 탈락되지 않도록 절개 부위를 느슨하게 봉합했다.

거즈로 드레싱도 했다.

이야기에는 무릇 발단, 전개, 절정, 위기, 결말이 있어야 하거늘.

준후의 기관 절개술에는 위기가 없었다.

모든 과정에 위태로움이 거세되어 있었다.

레지던트 1년 차가 이래도 되나 싶었다.

“솔직히 말해봐. 너 기관 절개술, 해봤지?”

경수는 준후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니. 오늘이 처음인데?”

“처음인데 이렇게 잘할 수가 있다고?”

“잘 되니까 잘하지.”

준후의 대답은 다소 뻔뻔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사실 인턴 때부터 해보고 싶다는 말은 했었는데 맡겨 주질 않더라. 이래서 레지던트가 좋단 말이지.”

“…….”

“배우고 싶다고 하면 선배들이 너그럽게 가르쳐주시는 편이니까.”

“…….”

“왜? 넌 내가 실패할 줄 알았어?”

속을 꿰뚫어 보는 준후의 질문에 경수는 가슴이 뜨끔했다.

말 그대로였다.

경수는 준후가 괜히 나댔다가 실수하고 또 혼쭐나는 그림을 상상하고 있었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준후가 내심 꼴 보기 싫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경수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속내를 훤히 내비치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기관 절개술은 한 번에 성공하기 힘든 처치니까.”

“정말 그것뿐이야?”

“날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들지 마. 정말 그것뿐이니까.”

“그럼 다행이고.”

기관 절개술이 끝난 후.

경수는 준후, 민경과 수술방을 나왔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 * *

수술실이 있는 4층 휴게실.

준후는 기관 절개술을 함께했던 경수와 민경과 휴식 중이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기관 절개술까지 한 번에 끝내 버렸네. 난 제대로 하는데 한 달 넘게 걸린 것 같은데.”

“…….”

“자괴심 느껴진다.”

민경이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손재주 하나는 좋은 것 같더라고요. 타고난 복이죠.”

“그러게. 손 한 번을 안 떨더라. 로봇이 수술하는 줄 알았네. 무슨 비법이라도 있어?”

“호흡을 조절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손의 움직임을 머리로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돼요.”

이 방법은 무림에서 살았던 당시.

준후가 서씨세가의 가주였던 아버지에게 배웠던 기술이었다.

준후가 외과의로 활약할 수 있는 토대는 전부 무림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흡을 조절한다는 건 알겠는데 머리로 상상한다는 건 무슨 뜻이야?”

“가상의 팔이 움직이는 걸 상상하고 그 팔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거죠.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그런 건 너 같은 괴물만 가능한 게 아니고?”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전교 1등은 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고 하지. 어휴, 얄미워.”

민경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 후의 잡담들은 준후의 한쪽 귀에 들렀다가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갔다.

준후는 기관 절개술이 아닌 뇌수술을 집도하는 자신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되면서.

수술에 대한 갈증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이젠 기관 절개술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뇌사 상태.

또는 식물인간 환자까지 회복시키려면.

앞으로 갈 길은 멀고 험했다.

준후는 수술을 위해 잠시 빼놓았던 게르마늄 팔찌를 다시 손목에 착용했다.

팔찌가 휴게실 조명을 반사하며 눈부신 은빛을 뿜어냈다.

꼭 성호가 말하는 것 같았다.

기관 절개술을 멋지게 잘 끝냈다고.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한다고.

준후는 팔찌를 쓰다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민태웅 환자, 어떻게 된 거냐?”

민경이 먼저 자리를 비웠을 때.

준후가 경수에게 물었다.

민태웅 환자는 중환자실에 있는 식물인간 환자로 경수가 주치의였다.

“왜? 무슨 일인데?”

“그 환자 폐렴이더라. 오전에 라운딩했다면서 그것도 체크 못 했어?”

“폐렴? 내가 봤을 땐 그런 소견 없었는데?”

“간호 기록지 보면 체온이 계속 38도 언저리였어. 탁한 가래도 나왔고. 환자한테 너무 무심한 거 아니야?”

준후의 지적에 경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이유가 폐렴을 놓쳐서 낭패인 건지.

본인의 환자에게 준후가 간섭해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고작 그 정도로 폐렴을 알아차렸다고?”

“알아차린 게 아니라 의심했지. 확진은 청진기로 들은 수포음으로 했고.”

“청진이라면 나도 했어.”

“확실해?”

“야, 나도 기본적인 건 지키는 사람이거든? 함부로 의심하지 마. 기분 나쁘니까.”

경수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너 지금 내가 지방 의대 나왔다고 무시하냐? 나도 장학금 포기했으면 인 서울 했거든?”

“그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난 지금 환자 관리에 대해서 묻고 있었어.”

“속마음이야 모를 일이지.”

치열한 말다툼이 한 차례 끝나고 찾아온 싸늘한 침묵.

준후는 경수가 단단한 껍질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수는 왜 의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을까.

왜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을까.

앞으로 가족보다 더 자주 한솥밥을 먹게 될 텐데.

언제까지 이런 냉랭한 관계가 이어질까.

경수를 향해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마땅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준후에게 경수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다.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너 신경외과는 왜 지원했냐?”

준후가 경수에게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을…… 근데 이거 전에도 물어봤던 거 기억하지?”

“기억해. 대답을 못 들어서 또 묻는 거야. 똑같은 소리 듣기 싫으면 이 기회에 대답하든가.”

준후의 말에 경수가 콧방귀를 꼈다.

“신경외과 개원해서 잘 먹고 잘살려고 그런다. 왜 떫어?”

“돈 벌고 싶으면 다른 과로 가지 그랬어?”

“별거 있나. 성적 때문이지.”

대답을 마친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 출입구로 향했다.

준후와 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눈치였다.

“서경수.”

“또 왜?”

문 앞에서 경수가 준후를 돌아보았다.

“난 널 싫어하지는 않는다. 넌 천성이 못된 애는 아니야.”

“갑자기 뭔 지X인데?”

“그냥 그렇다고.”

준후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미운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갱생이 불가능한 악인.

나머지 하나는 과거에 상처를 받아 마음 일부가 모난 사람.

자세한 사연은 몰랐지만 준후가 봤을 때 경수는 후자였다.

은하에게 폭언을 했지만 마음에 걸려서 먼저 사과를 한 걸 보면 말이다.

첫 번째 부류라면 단칼에 손절을 하는 준후지만 두 번째 부류라면 끝까지 챙기는 준후였다.

왜냐하면…….

무림에서의 준후도 두 번째 부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적일도를 증오하며 삐뚤어졌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 상처를 치유했기 때문이다.

“난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포기 안 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혓바닥에 버터를 칠했냐? 느끼하게스리.”

“그럼 가는 길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준후는 농담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 * *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신경외과 병동으로 복귀하는 내내.

경수는 준후만 생각하고 있었다.

준후가 했던 말이 이상하게 가슴 속에 남았다.

-난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포기 안 해. 너도 마찬가지야.

준후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말이었다.

경수는 줄곧 준후가 자신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경수가 준후를 싫어하는 티를 꾸준히 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후는 그런 자신까지 품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잠깐 말다툼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 환자 관리에 대한 부분에서였고.

열등감을 폭발시킨 것도 정작 본인이었고 말이다.

사실 경수도 준후가 마냥 밉지는 않았다.

준후가 워낙 일을 잘해서.

질투와 시샘을 느끼긴 했지만 그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준후만 보면.

경수는 자꾸 ‘그 사람’이 떠올랐던 것이다.

깨물면 가장 아픈 손가락인 ‘그 사람’이.

에이 씨.

괜히 사람 심란하게 만들고 난리야.

날 좀 내버려 두라고.

난 혼자가 편하다고.

경수는 답답한 마음에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 * *

그 날 오후.

환상적인 속도의 영문 타자로 차트 입력 업무를 마친 준후는 뉴튜브를 확인하고 있었다.

[다이어트 잼 1위 업체의 가면, 막 먹는 잼인가 막 나가는 잼인가.]

어제 올린 영상.

그러니까 준후가 막잼을 먹기 전과 먹고 난 후의 혈당을 촬영해서 업로드한 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조회수는 무려 80만.

준후의 채널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으로 등극했다.

그 이유를 따져보니.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손, 알고리즘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요즘 폭로 영상이 유행이었는데 막잼 영상도 폭로 영상으로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은 것이다.

알고리즘 덕분에.

해당 영상은 오늘의 인기 영상에 포함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와. 이거 명백한 사기네요. 한 통을 다 먹어도 15칼로리라고 했는데 혈당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치솟을 수가 있나??

-소문도 좋고 리뷰도 좋아서 구입했는데 좀 더 의심해 볼 걸 그랬어요. ㅜㅜ

-당뇨 환자분들 저거 먹고 큰일 나면 어쩌려고 저런 미친 짓을 저질렀지? 진짜 막 나가는 잼이네.

5만 개가 넘는 댓글들이 업체인 스위트 헬시를 성토했다.

준후가 바라던 반응이었다.

여론이 더 퍼지고.

여론이 더 거세지면 이 소식을 뉴스도 다룰 것이다.

그러면 소비자들의 대규모 소송까지 기대해 볼 만했다.

스위트 헬시가 언스위트 해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쓰레기 같은 놈들, 죗값은 달게 받아야지.

장난을 칠 게 따로 있지.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장난을 쳐?

지이이잉.

준후가 업체를 향해 적개심을 불태우던 그때.

휴대폰이 몸을 떨었다.

번호를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준후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를 받자마자 한마디 했다.

“전화 한 번 빠르시네요. 이제 좀 똥줄이 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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