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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35화 (134/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35화

제24장 훈련(5)

“일단 전후 사정으로 의심했죠.”

“전후 사정이라면…….”

“선생님. 아까 병실에 오간 사람이 친구뿐이라고 하셨죠?”

“네. 그랬죠.”

“환자가 병실 바깥으로 나온 적은 없다고도 하셨고요.”

“맞아요.”

“여기서 첫 번째 가정을 해볼게요. 환자가 10분 만에 플라스틱병 소주를 다 마시고 친구가 대신 치워줬다고.”

“…….”

“근데 이런 가정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왜요?”

“한 병을 다 비우면 술을 마신 게 너무 티 나잖아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주기적으로 라운딩 온다는 사실을 환자도 알고 있는데.”

준후의 설명이 이어졌다.

게다가 환자 입장에서는 병실에 있는 게 지루하고 심심할 테니.

소주를 두고두고 마시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으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희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준후가 자신을 감싸주기 위해서.

또는 무례한 보호자를 상대하는 것이 답답해서 감정적으로 소지품 검사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준후의 행동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계산된 것이었다.

단순히 잘생기고 친절한 줄만 알았지만 준후는 의외로 치밀한 사람이었다.

어쩐지 자신감이 흘러넘치더라.

“그럼 소주의 위치는 어떻게 한 번에 찾았어요?”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고 말한 뒤 환자의 반응을 보고 있었죠.”

준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환자가 베개를 쳐다보더군요. 손으로 베개를 만지작거리고요. 무의식적으로 소주가 든 베개를 지키려고 했던 거죠. 거기서 게임이 끝났다고 확신했어요.”

“와. 저는 병실에 들어와서 계속 가슴만 졸이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다 내려다보고 있었네요.”

“그랬다고 볼 수 있죠.”

“사람 심리도 들여다보고. 관찰력도 좋고. 쌤, 셜록홈즈였어요?”

“셜록홈즈 말고 서록홈즈 정도로 불러주시죠.”

준후의 농담에 윤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보호자에게 당했던 분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발걸음도.

마음도 깃털처럼 가벼웠다.

준후가 곁에 있어서 든든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선생님, 진짜 감사해요. 오늘 저를 살리셨어요.”

“천만에요. 저도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걸 조금씩 다른 분들께 갚는 거예요.”

“선생님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당연하죠. 저도 사람인데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있죠. 곤경에 처한 적도 많고요.”

준후는 손목에 찬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가장 최근에 겪은 고난을 떠올렸다.

성호의 뇌사 소식을 듣던 날.

그 충격으로 준후의 몸과 마음은 심하게 망가졌다.

성호의 뇌사를 치료하겠다고 내공을 무리하게 운용하다가 혼절했다.

심한 자괴감과 죄책감, 슬픔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만약 아영이 곁에 없었다면.

준후는 아직도 그때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늪 같은 무기력감에 빠져.

극단적으로는 의사를 관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즉, 준후가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아영의 도움이 컸다.

“근데 앞으로 환자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윤희가 화제를 돌렸다.

“처벌받을 일만 남았죠. 병실에서 음주한 것도 있고, 그 전에 마약 한 것도 있으니까요.”

“왠지 술 마신 건 처벌이 안 될 것 같아요. 보통은 적발해도 넘어갔잖아요. 병원 이미지 때문에.”

“걱정 마세요. 제가 교수님들께 강하게 이야기할 거니까. 이 기회에 시범 케이스로 혼쭐을 내줘야죠.”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스테이션.

이번 사건의 결말을 궁금해하는 다른 간호사들이 귀를 쫑긋 세운 채.

윤희의 말을 경청했다.

이윽고 준후를 향해 줄줄이 쏟아내는 찬사.

“역시 서 쌤이라면 해낼 줄 알았어요.”

“멋있어요. 뇌섹남.”

“대박이야, 진짜. 거기서 과감하게 소지품 검사를 하시다니.”

간호사들의 칭찬에 준후는 머쓱하게 웃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데.

준후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간호사들과 잡담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준후의 눈에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어린 마약 환자.

그리고 방금까지 개 진상을 떨었던 보호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 * *

“술은 그렇다 치고, 너 진짜 마약까지 했어?”

“…….”

“입만 다물고 있다고 끝날 일이 아니야. 엄마 얼굴 보고 똑바로 말해. 했어? 안 했어?”

가연은 침상에 걸터앉아 아들을 추궁했다.

아들이 행실이 바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약 복용은 이해의 범주를 넘어가는 행동이었다.

“……했어요.”

“얼마나?”

“8개월 정도요. 대마 좀 했어요.”

기어들어 가는 아들의 대답에 가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의사한테 한 방 먹은 것도 억울한데 아들의 비행 소식까지 접하니 분통이 터졌다.

마음 같아선 손에 잡히는 걸 전부 내던지고 싶을 정도였다.

“엄마 아빠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너 진짜…….”

“죄송해요.”

“용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마약은 왜 했어?”

“시…… 심심해서요.”

“등신 같은 놈. 그걸 대답이라고.”

가연은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지만.

아들에게 분풀이하는 것은 뒤로 미뤄야 했다.

사태를 수습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칼자루를 쥔 건 서준후라는 젊은 의사인데…….

어떻게 해서든 그 의사를 구워삶아야 했다.

아들이 감방에 가는 것만큼은.

하늘이 무너져도 막아야 했다.

“너 따라와. 그리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알았지?”

“……네.”

가연은 아들을 데리고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다행히도 준후는 스테이션에 있었다. 간호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선생님. 아까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가연은 준후와 마주 선 후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늘 뻣뻣했던 고개를 숙이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저도 철이 없었고 제 아들도 철이 없었네요.”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준후가 칼바람처럼 쌀쌀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마음이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너도 빨리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 선생님.”

가연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아들도 고개를 숙였다.

“잠깐 선생님하고 조용한 곳에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왜요? 뒷돈 좀 찔러주고 아들이 한 마약 복용을 눈감아달라고 할 생각입니까?”

텔레파시 능력이라도 있는지.

준후는 가연의 생각을 귀신처럼 읽어냈다.

어린놈이 눈치 한번 빠르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여기서 할 수 없는 말이라면 듣지 않겠습니다.”

“그게…… 사실은…… 저희 아들 일, 선생님이 너그럽게 넘어가 주실 수 있을까 부탁을 드리려고요.”

가연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제 아들…… 아직 20대 초반의 어린아이예요. 사리분별도 제대로 못 할 때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보호자분, 참, 재밌는 말씀을 하시네요.”

준후가 팔짱을 낀 채 말을 계속했다.

“본인 아들이 마약 복용한 건 괜찮고. 간호사가 정당한 의심을 했을 때는 생난리를 피우고. 많이 치사하지 않습니까?”

“그 일은 두고두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대답과 달리 가연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아들이 사고만 안 쳤다면.

이따위 애송이 의사한테 굽실거릴 일도 없었는데…….

오늘 일은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치욕이 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뉘우치고 계십니까?”

“네. 물론이죠.”

“그럼 두 분을 용서하겠습니다.”

준후의 뜻밖의 태도 변화에 가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썩은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준후에게 매달렸건만 의외의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보기보다 마음씨가 여린 건가.

아니면 일을 크게 키워봐야 본인이 얻는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던 걸까.

준후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가연은 원하던 목표를 성취해냈다. 무거웠던 어깨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럼 이제 가보시죠.”

“선생님. 그럼 오늘 일은 잘 넘어간 걸로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준후가 정색하며 되물었다.

이에 가연은 무언가 일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네? 방금 용서하신다고…….”

“아, 용서요. 저야 물론 두 분을 용서했죠. 근데 법이 두 분을 용서할지는 모르겠네요.”

“…….”

“법적인 용서는 판사분께 구해보세요.”

준후의 쌀쌀맞은 대답에 가연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가연은 드디어 깨달았다.

지금까지 준후가 자신을 조롱했다는 사실을.

무슨 말이라도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가연은 너무 화가 나서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빠드드득 이를 갈며 병실로 돌아갔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간호사들의 웃음소리.

가연의 얼굴은 모욕감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 * *

그 날 저녁, 당직실.

“병동이 아주 네 이야기로 떠들썩하던데? 진상 환자랑 보호자를 엿 먹였다면서?”

곁에서 차트 업무를 보던 경수가 준후에게 한마디 했다.

준후도 한참 밀린 오더를 입력 중이었다.

“그래. 네가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했던 그 건이다.”

“결과가 좋으니 뭐라고 반박을 못 하겠네.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왜?”

“계속 주변 일에 개입하다가는 너도, 그리고 주변 사람도 크게 다치는 일이 올 거야. 언젠가.”

준후가 경수를 바라보는데.

경수 역시 진지한 눈빛으로 준후를 응시하고 있었다.

“낮에도 그렇고. 너, 나 걱정하는 거 맞지?”

“걱정이 아니라 경고야. 난 알아. 너 같은 타입이 내 주변에 있었으니까.”

“그게 누군데?”

“말하지 싶지 않아. 옛날이야기는.”

얼핏 애틋한 표정을 내비치며 경수가 시선을 피했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듯 타이핑에 몰두했다.

타다다닥.

준후가 다른 사람을 도우려 할 때마다 경수는 병적인 거부 반응을 일으키곤 했다.

마치 타인을 돕는 일에 트라우마라도 가진 것처럼.

그 속사정이 궁금했지만 준후는 캐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대답할 경수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으로 보였다.

“내 환자 입력은 다 했는데 도와줄까?”

“됐어. 내 일은 내가 할 거야.”

경수는 이번에도 선을 그었다.

도움을 받지도,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시든가.”

준후는 어깨를 으쓱하곤 신경외과 교재를 손에 쥐었다.

팟. 팟. 팟.

언어를 담당하는 브로카와 브로케 영역을 점혈법으로 자극한 후 공부에 나섰다.

최근 학습 중인 파트는 뇌종양 파트였다.

뇌종양은 다른 종양에 비해 발생률이 그렇게 높은 건 아니었다.

인구 10만 명당 10-13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었다.

갑상선 암을 제외하고.

암 발생률 1-2위를 다투는 위암이 50-60명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발병률이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뇌종양 수술은 다른 장기 수술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두개골 안은 공간이 한정적이고.

뇌라는 기관이 워낙 복잡하고 연약했기 때문이다.

펄럭.

펄럭.

만화책을 보듯 꿀떡꿀떡 넘어가는 페이지.

점혈법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공부하던 준후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뇌종양에 내공을 불어넣으면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뇌종양이 더 약화될까.

아니면 뇌종양이 더 악화될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호기심이 커졌다.

전자가 됐던, 후자가 됐던.

치료나 진단에 내공은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준후는 뇌종양 환자 리스트를 인쇄해서 손에 쥐었다.

빨리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서 몸이 간질간질했다.

“집 잘 지키고 있어라. 형님, 라운딩 돌고 온다.”

준후는 황급히 당직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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