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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37화 (136/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37화

제25장 유레카(2)

“뇌종양 어시스트요? 어떤 환자요?”

“교모세포종 환자. 너 힘들고 어려운 수술 좋아하잖아. 참고로 이거 7시간짜리 수술이다.”

순간 준후의 눈이 번뜩였다.

희준의 말이 옳았다.

수술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욕심을 내는 게 준후의 변태 같은(?) 특징이었다.

그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았으니까.

“저야 대환영이지만 경수가 어시스트로 잡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경수한테는 미리 말해놨어. 너만 오케이 하면 돼.”

“제 대답이라면…… 당연히 오케이죠.”

준후는 씽긋 웃었다.

교모세포종은 1-4단계까지 있는 뇌종양 중에서도 끝판왕이었다.

쉽게 말해서 말기인 4기였다.

교모세포종 어시스트를 하고 나면 다른 뇌종양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럴 줄 알았지. 준후 네가 어시스트라니 벌써부터 든든하네.”

“수술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체력 좋은 제가 어시스트 하는 게 낫겠죠. 선배도 다 계산하고 말하시는 거죠?”

“아무렴, 그렇고말고.”

“선배님도, 교수님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오냐. 컨디션 관리 잘하고.”

희준이 준후의 어깨를 두드린 뒤 당직실을 벗어났다.

* * *

다음 날 오전.

컨퍼런스가 20분 남은 시점.

준후는 영양제와 홍삼 2포를 챙겨 먹었다.

스태프 전용 화장실로 이동해서.

변기 뚜껑이 닫힌 변기 위에 앉아서 운기조식을 펼쳤다.

가부좌를 튼 채.

단전에 곱게 두 손을 모으고 호흡에 집중했다.

깊게 들이마시는 숨.

깊게 내쉬는 숨.

호흡을 할 때마다 자연진기가 기경팔맥을 돌았다.

그 과정에서 섭취한 영양 성분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영양제와 홍삼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무뎌지던 집중력이 날카로워지고.

무거웠던 육신이 가벼워졌다.

새로운 내공은 단전에 켜켜이 쌓였으며.

이미 단전에 쌓인 내공은.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했는데 그 덕분에 생긴 치유력이 준후의 피로를 덜어주었다.

운기조식을 마친 준후는 화장실을 나왔다.

발걸음이 가볍디가벼웠다.

고작 15분의 운기조식으로 준후는 모든 컨디션을 회복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최소한 5-6시간은 자야 얻을 수 있는 컨디션을 얻었다.

보통 의료 스태프의 실수는 부주의해서 발생하기 마련이고.

부주의는 과도한 업무 부담에 따른 집중력과 체력의 저하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준후는 그럴 일이 없었다.

운기조식과 영양제.

이 두 조합은 준후를 철인으로 만들어주었다.

뚜두둑.

뚜두둑.

가볍게 목을 풀며 준후는 컨퍼런스 룸으로 이동했다.

교모세포종 환자 수술이라…….

수술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교모세포종 수술만의 특징이 따로 있을까.

수술 도중 뇌가 붓거나.

심각한 출혈이 발생하면 집도의는 어떻게 극복할까.

마지막으로 오늘은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뻗어 나가는 다양한 질문들.

준후는 벌써 오후가 기대되었다.

* * *

신경외과의 오전 컨퍼런스가 끝났다.

스태프들은 군대 병사들이 줄을 맞춰 서듯, 각 잡힌 형태로 복도에 늘어서 있었다.

오전 회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선배한테 이야기 들었어?”

준후가 곁에 선 경수에게 말을 걸었다.

“교모세포종 수술 어시스트 나로 바뀐 거?”

“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 까먹어서 수술방 잘못 들어가지 말라고.”

“그럴 일 없어.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근데 이번에도 사서 고생을 하네.”

경수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굳이 7시간 가까이 걸리는 뇌종양 수술에 들어가려는 준후를, 경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이라면 무릇.

힘들고 어려운 일보다는 쉽고 단순한 일을 선호하기 마련이기에.

그런데 준후는 달랐다.

오히려 힘든 일을 찾아다니는 경향이 있었다.

남의 일도 자기 일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한 마디로 인생을 피곤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경수의 성향과는 정반대였다.

경수는 피할 수 있는 난관은 다 피하고 싶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지X하지 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 게 없어서 고생을 사?

제정신이면 그러겠어?

……라고 경수는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준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의미 없는 고생이라면 얻어가는 게 없겠지만 의미 있는 고생이라면 얻어가는 게 있지.”

“그럼 수술 어시스트를 교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얻어가는 건 뭐가 있고?”

“일일이 설명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중요한 건 난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거야.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고.”

“제멋대로 살겠다는데 누가 말려.”

경수는 싱겁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과장이 컨퍼런스 룸을 나오면서.

본격적인 회진이 시작되었다.

과장이 병실을 돌며 환자·보호자와 일일이 대화하는 동안.

경수는 손에 들고 있는 수첩으로 오더들을 메모했다.

회진이 끝나는 대로 입력해야 할 오더들이었다.

경수와 달리 준후는 오더를 메모하지 않았다. 기억력에 자신 있는 모양이었다.

괴물 같은 놈.

손으로 하는 일도 잘하고.

머리로 하는 일도 잘하고.

체력은 또 괴물 같아서 당직을 서고도 멀쩡하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준후는 경수의 상식 범위 바깥에 있었다.

“환자분, 몸은 좀 어떠세요?”

“아…… 아직 괘…… 괜찮습니다.”

과장의 질문에 김철순 환자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환자 얼굴에 핀 검 버선이 오늘따라 유독 새까맣게 보였다.

김철순 환자는 60대로.

오늘 오후에 교모세포종 제거 수술이 잡혀 있었다.

즉, 경수와 준후가 어시스트 교대를 한 환자였다.

“선생님 저…… 더 살고…… 싶습니다. 손주랑 손녀를 볼 때까지는…….”

환자는 삶에 대한 집착을 숨기지 않았다.

교모세포종의 평균 생존율이 1년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텐데도 그랬다.

만약 손주나 손녀가 태어날 때까지 살아 있다고 해도.

환자는 손주·손녀를 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때쯤이면 병세가 더 악화되어 있을 테니까.

의식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사실 경수가 준후와 수술 어시스트를 교대한 데는 단순히 수술이 어려워서만은 아니었다.

죽음이 명백해 보이는 환자의 수술을 하는 게 싫다는 이유도 있었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수술에서.

대체 무엇을 배우겠는가.

“저희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믿고 맡겨 주세요.”

“……네.”

대화는 길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곧바로 다음 병실로 이동했다.

문득 경수가 준후를 바라보니.

준후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바보야.

이 미련한 놈아.

네가 고민한다고 죽을 환자가 살아나겠니?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준후가 경수는 우스워 보였다.

회진이 끝난 뒤.

경수는 2년 차 민경을 따라 수술방으로 향했다. 민경이 기관 절개술 하는 것을 도왔다.

준후처럼 나대면서 처치를 배울 생각은 없었다.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딱 중간만 가자.

그게 경수의 좌우명이었다.

* * *

그 날 오전.

준후는 드레싱 카트를 끌며 한 병실로 들어갔다.

창가 쪽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준후 맞은편에는 김철순 환자와 보호자가 있었다.

다른 건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임신한 며느리가 손주나 손녀를 낳으면.

그 아이들을 볼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다.

가능하면 돌잔치 때까지도.

환자의 딱한 사연을 알았기에 환자를 바라보는 준후의 마음은 무거웠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것 같았다.

장수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환자는 단지 1-2년의 여생을 원하고 있었다.

부디 그 소박한 꿈을 이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비통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준후는 입술을 뗐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머리카락 자르러 왔습니다. 머리카락이 있으면 수술 후 감염 우려가 있거든요.”

“네. 선생님.”

보호자는 대답하고 환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뇌종양이 자라면서.

환자는 부쩍 기면 상태에 빠지곤 했다.

거기다 수술 때문에 금식까지 했으니 더더욱 기력이 없으리라.

“환자분 약은 드셨나요?”

“네. 1시간 정도 전에 먹었습니다. 근데 그게 무슨 약이죠? 수술 전은 금식이라고 들었는데.”

“형광유도제라고 하는 약인데 쉽게 말하면 종양이 잘 보이게 하는 약입니다.”

보호자가 물어본 약물은 5-ALA라 불리는 것이었다.

해당 약을 먹으면 뇌종양은 빨갛게 보이고 정상 세포는 파란색으로 보였다.

이를 통해 집도의는 정상 세포와 뇌종양의 경계를 뚜렷하게 파악하고 뇌종양만 절제할 수 있었다.

서걱.

서걱.

준후는 가위로 환자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숱이 적은 흰 머리카락.

모발에 힘이 없는 흰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환자분한테만 못했구나.

준후는 가위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발명한 내공 종양 조영술을 이 환자에게만 펼쳐보지 못했다.

환자가 어제저녁 늦게 MRI 촬영을 한 데다가.

준후도 지난 검사로 내공 소모가 많아서 피로했던 탓이었다.

“선생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때마침 자리를 비워주는 보호자.

준후는 망설임 없이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두피에 스며들었다.

단단한 두개골을 통과해서.

교모세포종이 위치한 측두엽 인근으로 퍼져 나갔다.

최악의 뇌종양이라서 그럴까.

어제 경험했던 뇌종양들과는 흡입력이 남달랐다.

흡입력이 거칠고 난폭했다.

고속 진공청소기에 버금가는 정도였다.

덕분에 준후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내공을 뇌종양의 먹잇감으로 바쳐서는 곤란했다.

뇌종양의 흡기를 반 자결로 밀어내며.

준후는 가까스로 탐색을 마쳤다.

내공으로 확인한 결과.

환자의 뇌종양은 측두엽 부근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다.

그곳에서 흡입력이 가장 강력했다.

해마 인근 부위에도 미약하게나마 흡입력이 느껴졌다.

딸칵.

딸칵.

당직실로 복귀한 준후는 어제저녁에 촬영한 환자의 MRI 영상을 살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등줄기가 오싹했다.

머리카락은 삐죽하게 솟아오르고.

팔뚝에서는 닭살이 돋아났다.

하…… 이러면 안 되는데…….

준후는 눈을 비비며 MRI 영상을 보고 또 봤지만 없었다.

MRI 영상에는 없었다.

해마 인근에 위치한 종양이!

내공 조영술로 준후는 분명하게 느꼈던 종양이!

젠장…… 하필이면…….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CT, MRI, MRA, PET 등등.

뇌종양을 진단하는 검사는 많았지만 해당 검사들은 완벽하지 않았다.

5mm 이하의 표재성 암.

3mm 이하의 침윤성 암.

1mm 이하의 미발화 암 등등은 검사 종류에 따라 발견이 불가능했다.

검사에도 아직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준후의 내공 종양 조영술은 달랐다.

종양 특유의 흡입력을.

내공으로 감지할 수 있었기에 좀 더 정확하게 종양을 진단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해마 인근의 종양은 제거 못 해.

검사에서 안 보인 종양을 제거할 리 없잖아.

해마에 위치한 종양을 방치하면.

해당 종양이 재발할 거고.

그럼 환자의 평균 생존율은 12개월이 아니라 6개월 밑으로 떨어져.

문제는 해마 인근에 위치한 종양을 그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오직 준후만 안다는 점이었다.

더 크고 치명적인 문제.

그것은 준후가 해마에 종양이 있다고 해도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집도의가 MRI 검사 결과를 믿을까.

갓 레지던트가 된 준후의 말을 믿을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만약 준후가 내공을 운운한다고 해도 미친놈 취급당하기 딱 좋았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상황.

심지어 수술 시간은 이제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밀려오는 위기감.

덮쳐오는 초조함.

톡. 톡. 톡.

준후는 오른손 검지로 책상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긴장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잖아?

필사적으로 생각해 봐, 준후야.

답은 분명 있어.

준후를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했다. 지금 기댈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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