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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39화 (138/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39화

제25장 유레카(4)

이 녀석은 중간이 없어. 적당히를 모른단 말이지.

준후의 피부 절개에 희준은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절단면이 어쩜 저렇게 예술적으로 수평이란 말인가.

길이는 또 어떻고.

깊이는 또 어떻고.

준후가 범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준후가 활약할 때마다 희준은 깜짝 놀랐다.

준후는 항상 희준의 기대치를 뛰어넘었다.

“선배, 지혈 부탁드립니다.”

“잠깐 넋이 나갔었네, 미안.”

희준은 포셉으로 거즈를 쥔 후 절개창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피를 닦아내자 절개창이 한층 선명하게 보였다.

절개창은 역시 환상적이었다.

이걸 누가 레지던트 1년 차의 솜씨라고 생각하겠냐고.

희준이 보기에 준후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검사 캐릭터 같았다.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검객 같은 분위기도 풍겼다.

아버지가 무협 마니아였던 덕분에 희준은 무협 소설에 대한 지식이 꽤 있었다.

“두개골 절개하기 전에 뭐 하나 시험해 보자.”

“무슨 시험이요?”

“수학 시험.”

희준은 드레싱 카트 위에 있던 의료용 자를 꺼냈다.

절개창을 자로 측정했다.

놀랍게도 절개창은 정확히 4센티미터였다.

0.1밀리미터의 오차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자로 잰 것 같은 절개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자로 잰 것 같은 길이가 나왔던 것이다.

“넌 손에 자라도 달렸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손 감각이 유달리 예민하고 섬세한 편이라서요.”

“혹시 손으로 센티미터를 잴 수도 있어?”

“네. 원하는 길이와 수직·수평도 맞출 수 있어요. 궁금해하시는 것 같으니까 보여드릴게요.”

“…….”

“장난치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준후가 담담하게 말하고 허공에 거즈를 던졌다.

서걱.

메스가 허공에 섬뜩한 궤적을 그렸다.

준후의 손동작이 너무 빨라서 희준은 그 과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준후의 손에 거즈가 들린 상태였다.

“5센티미터로 잘랐습니다.”

“그…… 그래 보이네.”

경악한 나머지 희준은 말을 더듬었다.

10센티미터 길이의 거즈가 세로로 잘려 있었다.

중간지점부터 끝까지.

이쯤 되면 자로 길이를 측정할 필요도 없었다.

“와, 이게 말이 되나요? 거즈 조직은 질겨서 메스로 자르기 힘든데.”

“…….”

“그것도 고정해 놓고 자른 게 아니라 허공에서 떨어지는 걸 자른 거잖아요.”

잠자코 있던 소독 간호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희준도 소독 간호사와 정확히 같은 생각이었다.

“제가 성격이 유별나거든요. 어렸을 때 검 쓰는 영화 같은 걸 많이 보고 따라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준후의 대답이 궁색했지만 희준은 따질 수가 없었다.

허공의 거즈를 잘라내면서.

준후가 본인의 솜씨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신경외과의가 될 줄 알았으면 무협 영화 같은 걸 미리 보고 따라 해야 했나?

얼핏 그런 황당무계한 생각마저 드는 희준이었다.

“이런. 호기심 해결하는데 시간을 너무 썼네. 개두술 계속하자.”

“네. 선배.”

희준은 고정형 리트랙터(견인기)를 사용해서 절개창을 벌렸다.

단단한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릴 주세요. 구멍 내겠습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준후의 손에서 드릴이 요란한 소리를 토해냈다.

소리만 들으면.

이곳을 수술방이 아니라 목공소로 착각할 정도였다.

준후가 드릴을 사용하면서 뼛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하얀 뼛조각이 꼭 싸라기눈 같았다.

준후는 2분 만에 두개골 네 곳에 구멍을 뚫었다.

구멍이 완벽한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보통 뇌막까지 뚫을까 봐.

드릴을 조심히 사용하는 편인데 준후의 손속은 거침이 없었다.

드릴이 들어가야 하는 위치를 선정하는 일.

드릴의 깊이를 판단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

모든 처치가 단 한 번에 끝났다.

그 때문일까.

희준은 자신의 임무가 준후의 어시스트인지 준후의 처치에 감탄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두개골, 절개 하겠습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이대로만 해.”

개두기를 사용해서.

준후는 두개골까지 야무지게 절개했다. 희준이 절개한 골편을 드러내자 뇌막이 나타났다.

과정은 정석이었고.

결과물은 충격적이었다.

준후 개두술의 속도와 퀄리티는 희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너 개두술하는 거 보고 있으니까 어쩐지 교수님이 겹쳐지네.”

“역시 선배세요.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응? 그게 무슨 뜻이야?”

“이번 개두술, 한용석 교수님 스타일이거든요.”

준후의 눈이 빙긋 웃고 있었다.

듣고 보니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절개창은 4센티미터를 넘기지 않는 것.

드릴로 두개골 네 방향에 구멍을 뚫는 것 등등.

개두술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

준후의 말대로.

이는 한용석 교수 개두술의 시그니쳐였다.

보는 거야 쉽지만 그걸 따라 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거늘…….

준후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레지던트 1년 차에 이 정도라면.

과연 몇 년 뒤의 준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희준은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선배, 뇌막 절개할 테니까 내비게이션 부탁드립니다.”

“그래.”

준후가 양극 응고기로 경막, 지주막, 연막을 차례대로 파고들었다.

그동안 희준은 내시경 카메라를 닮은 포인터를 들고 준후의 동선을 쫓았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모니터에 떠오른 MRI 영상에 실시간으로 반영되었다.

이것이 바로 신경외과의 내비게이션 시스템.

뇌 항법 장치.

촬영 영상이 MRI에 바로바로 반영되었기에.

수술 도중 MRI 촬영을 위해.

환자를 검사실로 이동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신경외과의 의학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분쯤 지났을까.

준후 주도하에 실시된 개두술 및 수술 부위 접근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희준이 꼬투리를 잡을 게 없었던.

희준이 따로 가르칠 게 없었던.

희준이 오히려 배울 게 많았던 준후의 개두술이었다.

* * *

소(小)수술이 끝난 후 준후와 희준의 자리가 바뀌었다.

희준은 준후가 섰던 자리를 차지했고 준후는 희준 옆으로 이동했다.

각각 제1어시스트와 제2어시스트 자리로 복귀했다.

이제 교수만 도착하면 본격적인 종양 제거 수술이 시작될 것이다.

역시 난 외과 체질이네.

준후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개두술을 마친 후 손이 희미하게 떨려왔다.

손이 떨렸던 건.

수전증이 있어서가 아니었고.

코앞으로 다가온 수술에 긴장해서도 아니었다.

개두술을 빈틈없이 소화했다는 뿌듯함과 흥분감 때문이었다.

확실히 활인검과 살인검은 차원이 달랐다.

무림에서 악인들을 베고 나면.

준후는 항상 찝찝함과 불쾌함, 혐오감에 시달려야 했다.

죽여 마땅한 놈을 죽였다고 위로한들.

끈끈하고 어두운 감정은 좀처럼 떨쳐낼 수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검.

활인검 메스를 사용할 때는 달랐다.

메스와 수술 도구를 사용할 때마다 긍정적인 기운이 고양되었다.

같은 검이라도.

목적에 따라서 얻는 결과물은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저기 교수님, 들어오신다. 정신 바짝 차려라.”

“네. 선배.”

준후의 시선이 장호영 교수를 향했다.

호영은 키가 170센티미터 정도 되었으며.

살집이 꽤 붙은 편이었다.

착용하고 있는 잠자리 안경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호영은 뇌종양 수술의 대가였는데 공교롭게도 준후는 호영의 수술 어시스트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먼저 한 수술이 꼬이는 바람에 조금 늦었구나. 미안하다. 다들 기다리느라 고생 많았지?”

호영은 집도의 자리에 서서 스태프들에게 사과부터 했다.

다른 신경외과의들과 달리 호영의 성격은 온화해 보였다.

“아닙니다. 고생이야 교수님이 하셨죠.”

“녀석도. 어디 진행 사항을 체크해 볼까?”

호영이 환자의 측두부를 살폈다.

뇌 항법 장치가 연결된 MRI 영상도 살폈다.

“희준아.”

“네. 교수님.”

“개두술이 많이 늘었구나.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데? 수술 끝나고 원상 복구하는 데도 편하겠어.”

“그게 교수님…….”

“왜?”

“오늘 개두술은 제가 아니라 준후가 했습니다.”

“준후가?”

호영이 부엉이처럼 동그래진 눈으로 준후를 응시했다.

“1년 차가 개두술을 했다고? 이만한 솜씨로?”

“네. 평소에도 워낙 처치나 일을 잘해서 맡겨봤는데 이번에도 잘하더라고요.”

“으음…… 확실히 소질이 있어. 희준이 너도 분발해야겠다. 그리고 준후, 너는 긴장도 안 하고 아주 멋진 솜씨를 보여줬구나.”

“과찬이십니다.”

준후가 머쓱하게 웃었다.

호영이 자신을 알아봐 주었다는 사실에 보람도 느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수술을 해봅시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만 해요.”

호영의 꼼꼼한 오더에 따라 대망의 교모세포종 절제술의 막이 올랐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스태프들은 일제히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했다.

신경외과 수술에서.

또 뇌수술에서.

미세 현미경은 빼놓을 수 없는 감초였다.

미세 현미경이 제공하는 배율 높은 시야가 있어야만.

뇌에 위치한 미세 신경과 미세 혈관, 뇌 조직이 손상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영과 희준이 교모세포종이 위치한 측두엽 깊숙한 곳으로 접근하는 동안.

준후는 양손을 사용했다.

오른손으로는 내비게이션 포인터를 쥐고 두 사람의 궤적을 쫓았다.

왼손으로는.

뇌가 건조하지 않도록 뇌에 식염수 이리게이션(세척)을 실시했다.

정형외과 수련할 때부터 익혔던 양수 호박 기술은 무르익어 있었다.

준후는 양손 사용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양손 모두 떨림이 없었고.

손에 쥔 도구들이 어색하게 움직이는 일도 없었다.

“준후 너, 양손잡이니?”

“네.”

“이거 든든한걸? 어시스트가 한 명 더 있는 것 같은데?”

호영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들떠 보였다.

하지만 놀란 것은 준후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하면서도 호영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종양에 접근하는 손놀림은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과연 호영은 뇌종양 수술의 고수였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친 순 없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내 걸로 만들겠어.

어시스트를 하는 도중.

준후는 호영의 집도 과정을 초식으로 정형화시켜 암기하기 시작했다.

현 상황을 무림으로 비유하면.

고수가 상승 무공을 눈앞에서 공짜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눈 뜨고 보고 있는데 놓쳐 버리기엔 아까웠다.

“희준아, 측두엽의 뇌엽을 살짝만 리트랙트 해볼래? 종양이 뇌고랑(움푹 팬 곳) 사이에 있거든?”

“네. 교수님.”

희준이 호영의 오더를 따랐다.

리트랙터를 이용해.

뇌가 손상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뇌엽을 좌우로 벌렸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교모세포종.

수술 전 MRI에서 살핀 그대로 교모세포종은 몸집이 컸다.

3cm x 3cm 크기였다.

수술 전 환자가 형광유도제를 섭취했으므로 교모세포종은 빨간빛을 띠고 있었다.

다른 정상 부위는 파랗게 보였다.

저런 괴물이 뇌 신경과 뇌혈관을 압박하고 있으니 환자의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굼뜬 것도 당연할 수밖에…….

무림을 경험한 탓인지 몰라도.

준후는 교모세포종이 악독한 마두(魔頭)처럼 보였다.

물리쳐야 할 마귀로 보였다.

실제로도 준후의 통찰은 틀리지 않았다.

악인을 제거해야만 악행이 끝나듯 종양을 제거해야만 환자의 고통도 끝날 테니까.

“희준이는 리트랙터 고정하고 내가 종양 절제하는 걸 도와다오. 준후는 지금처럼만 하면 돼.”

“…….”

“내비게이션 사용하면서 이리게이션하고 썩션에 집중하면 된다. 여유 날 때마다 출혈 거즈를 사용해 주면 좋고.”

“네. 교수님.”

“네. 교수님.”

희준과 준후가 자못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 수술의 하이라이트.

이번 수술의 클라이맥스.

이번 수술의 백미이자 정수인 종양 절제술의 첫 단추가 꿰지고 있었다.

이번 수술에 후회 한 점 남지 않도록.

준후는 모든 역량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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