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140화
제25장 유레카(5)
뇌종양 수술은 예술이었다.
가로 15센티미터.
너비 15센티미터.
깊이가 20센티미터 되는 머리 안에서 펼쳐지는.
멈춤과 전진의 예술이었다.
멈춰 서면 종양을 다 제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환자의 신경 손상은 피할 수 있었다.
나아가면 종양을 다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경 손상은 피할 수 없었다.
나아가야 할 때와 멈춰 서야 할 때를 아는 것.
이것이 훌륭한 뇌종양 서전이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또한 뇌종양 수술은 정적이었다.
폐, 심장, 위, 간, 대장 등등.
다른 장기의 종양 수술에서는 극심한 출혈이 발생하고 화려한 문합술도 펼쳐지지만 뇌종양 수술은 그렇지 않았다.
담백하게 종양만 절제하면 끝이었다.
정신 바짝 차려.
네 손에 환자의 목숨이 달렸다.
호영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집도 시간이 3시간을 지나면서 집중력과 체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손목은 쑤시고.
미세 현미경을 바라보는 눈은 건조하게 뻑뻑해졌다.
오래 서 있다 보니 허리도 욱신거렸다.
하지만 이만한 수고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영광이라고 호영은 생각했다.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아직까지는.
호영은 근치적, 그러니까 종양을 광범위하게 제거하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존재했다.
하나는 환자가 뇌종양 4기인 교모세포종을 앓고 있어서였고.
종양이 위치한 자리에 지나가는 핵심 신경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 호영의 수술은 나아가는 수술이었다.
대단한 친구야.
1년 차에 이만큼 하는 친구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미세 현미경에서 잠시 눈을 떼고.
호영은 힐끔 준후를 쳐다보았다.
내비게이션 사용.
미세 혈관에 출혈 발생 시에 적절한 썩션.
또는 거즈를 사용한 지혈.
틈틈이 시야 확보.
식염수 스프레이를 뿌려 뇌를 건조하지 않게 만드는 작업 등등.
준후의 어시스트는 제2보조와 제1보조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었다.
제대로 못 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하는 것이 수술 어시스트거늘.
준후의 어시스트는 빈틈이 없고 꼼꼼하고 간결했다.
어쩜 저렇게 양손을 맛깔나게 사용할까.
준후를 보고 있자니.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지 못하는 스스로가 애석한 호영이었다.
“잠깐 휴식. 다들 한숨 돌립시다.”
호영의 휴식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준후가 한마디 했다.
“권 선생님. 교수님 이마에 땀 좀 닦아주시겠어요?”
“어머. 그러게요. 언제 땀을 이렇게 흘리셨지? 교수님. 잠시만요.”
소독 간호사가 멸균 거즈로 호영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거즈가 지나간 자리가 서늘했다.
집중한 탓에 땀범벅이 된 것도 잊었던 모양이었다.
“준후야, 내 얼굴도 보고 있었니?”
호영이 감탄하며 물었다.
“인턴 때 수술 도중 어떤 교수님의 눈에 땀이 들어갈 뻔해서 위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쭉 교수님 얼굴도 살피고 있습니다.”
“대단하구나. 너처럼 하려면 눈이 3개는 필요할 것 같은데.”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교수님.”
“또 왜?”
“아까부터 뇌압과 뇌파 검사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준후의 조심스러운 노티가 이어졌다.
환자의 뇌압이 방금 20mmHg로 상승했다.
뇌파 검사의 경우.
비정상적이고 국소적인 서파(느린 파동)가 발생했다.
뇌피의 진폭은 감소했으며.
좌측 뇌의 알파파가 감소했다고 전했다.
준후의 말을 듣고 호영이 직접 환자 뇌 상태를 모니터링하니 말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준후는.
수술 어시스트를 하면서.
호영의 얼굴도 살피고.
환자의 뇌 상태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멀티태스킹 능력이 압도적이었다.
“수술하면서 환자의 뇌가 살짝 붓기 시작하는 것 같구나. 이뇨제하고 근육 이완제 IV로 투여하고 환자 머리를 살짝 올려주렴.”
“네. 교수님.”
준후가 약제함으로 이동했고.
호영은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준후가 원래 저 정도였니?”
“네. 워낙 일을 잘해서 다른 교수님도 많이 예뻐합니다. 제가 개두술을 맡긴 것도 그 때문이고요.”
호영의 질문에 희준이 대답했다.
“계속 저렇게 커 주면 바랄 게 없겠는데. 누구처럼 빗나가지 말고.”
* * *
종양 절제술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종양은 이제 제거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뇌와 맞닿아 있던 종양의 테두리 부분이 헐렁해졌다.
호영은 세심한 손놀림으로 보비(전기 소작기, 전기 메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치이이익!
하얀 연기가 춤을 추듯 피어올랐다.
살타는 냄새가 달큰하게 수술대 근처로 퍼져 나갔다.
종양을 제거할 때는 주로 보비를 사용했다.
조직을 지지기 때문에 출혈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반 메스가 보비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용도가 다를 뿐이었다.
일반 메스는 보비보다 절단면이 더 깔끔했다.
그래서 절제 후 봉합이 필요할 경우 일반 메스를 사용하곤 했다.
호영의 절제술을 지켜보며 준후는 생각했다.
보비를 사용하면서도 각종 검법의 이치를 녹여낼 수 있는지를.
만약 자신이 집도의가 되면.
뇌종양을 제거할 때 보비 말고 일반 메스를 써보면 어떨지 등등을.
먼 미래의 이야기였지만.
그날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리라.
환자의 뇌압과 뇌파가 정상을 되찾았고.
수술도 종반이라 준후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준후는 호영의 절제술을 초식으로 정형화하는 데 힘썼다.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오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호영의 수술은 공격적인 편이었다.
종양을 다 제거하려고 애썼다.
그 풍모는 마치 무림 9파에 속한 공동파의 무공처럼 강맹해 보였다.
텅!
이윽고 엄지손가락 절반만 한 뇌종양이 곡반으로 떨어져 내렸다.
제거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출혈은 미세 출혈 정도만 있었고.
신경 손상은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없어 보였다.
“준후야, 바이옵시(biopsy, 생체 조직검사) 보내라.”
“네. 교수님.”
준후는 교모세포종 일부를 메스로 잘라낸 후 멸균 비닐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이 연결된 MRI 영상을 갱신했다.
수술 전과 수술 후의 영상 차이는 극명했다.
수술 후 MRI 영상에는 환자 측두부에 자리 잡았던 하얀 음영이 완벽하게 사라져 있었다.
“휴. 다행히 별 탈 없이 끝났구나.”
MRI 영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호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의 인사가 쏟아졌고.
호영은 다 같이 고생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모두가 후련함과 성취감을 맛보고 있을 때.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준후였다.
준후는 알고 있었다.
아니, 준후만 알고 있었다.
MRI 영상으로도 포착하지 못할 만큼 미분화한 종양이 환자 머리에 남았다는 사실을.
준후의 시선은 MRI 영상에 붙박이로 붙어 있었다.
수술 부위로부터 3센티미터가량 떨어진 곳.
그곳에 미세 암이 존재했다.
내공을 통해 준후는 미세 암을 분명하게 느꼈다.
종양 특유의 파괴적인 흡입력을.
이제 문제는 MRI도 보여주지 못하는 종양을 준후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준후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혼자만의 싸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만약 패배한다면.
환자의 1년 생존율은 절반으로 뚝 떨어질 것이다.
12개월이 아닌 6개월로.
손자 또는 손녀를 보고 싶다는 환자의 소박한 소원은 물거품이 될 테고.
“그래. 해보려무나.”
“수술은 잘 끝났지만 해마 인근 부분도 한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준후의 제안에 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잘하다가 갑자기 맹랑한 소리를 하는구나.”
“…….”
“MRI를 다시 잘 보렴. 환자의 머리에 음영이 보이는지. 네가 방금 말한 부위에 음영이 보이니?”
“안 보입니다.”
“그럼 나보고 안 보이는 종양을 제거하라는 소리인데. 그게 가능하겠어?”
“준후야. 너 선 넘는다. 적당히 해라.”
잠자코 있던 희준마저 준후를 꾸짖었다.
준후를 향한 소독 간호사와 마취의의 눈빛 또한 곱지 않았다.
준후는 단번에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준후는 스태프들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는 누가 봐도 준후가 이상한 놈이었다.
수술이 멀쩡하게 잘 끝났는데.
다른 부위를 살펴보자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준후는 물러설 수 없다.
등 뒤는 낭떠러지였다.
그런데 만약 해마 인근에 미세 종양이 없다면?
자신이 착각한 거라면?
문득 두려운 생각이 밀려들었다.
만약 준후의 내공 종양술이 착오에서 비롯됐다면.
스태프들을 잘 설득해서 해당 부위를 살핀다고 해도 준후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준후를 향한 스태프들의 신뢰도는 바닥을 칠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내공 종양 조영술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믿는다면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흔들리지 마.
넌 잘하고 있어.
레지던트 1년 차의 말은 못 믿겠지만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신경외과의 의사의 말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한번 질러보는 거야.
준비한 필살기를 보여주자고.
준후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라붙은 입술을 뗐다.
“다들 제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호영이 준후를 향해 탐탁지 않다는 눈빛을 쏘아냈다.
“근거가 있습니다. 제가 수술에 들어오기 전 읽은 논문이 있습니다. 측두엽에 발생한 교모세포종의 해마 근접 전이라는 논문입니다.”
“으음…… 들어 본 적 없는 논문인데? 논문 저자가 누구지?”
“제원대 박재현 교수님입니다.”
* * *
“정말 해당 논문이 있습니다. 작년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박재현 교수가 치료한 총 30명의 환자. 그러니까 측두엽 교모세포종 환자 중 5명에게 해마의 근접 전이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MRI에 드러나지 않는 미세 암이었다고 합니다.”
“으음…… 대략 20퍼센트 정도인 건가?”
희준의 보고에 호영은 침음성을 흘렸다.
준후가 허튼소리를 한다고 무시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다.
나름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수술 전에 논문까지 살폈니?”
호영이 준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제가 환자의 주치의이기 때문입니다. 환자분이 손녀나 손주 분을 볼 때까지 살아계시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허…… 넌 사람을 여러 번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호영은 한 치의 음영도 보이지 않는 MRI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준후의 제안이 박재현의 논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박재현.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천재 신경외과 의사.
뇌종양.
뇌혈관.
척추와 경추.
정위신경 파트까지.
신경외과에 관련된 분야란 분야는 전부 통달한 마스터.
어쩌면 마에스트로.
하지만 호영은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MRI 영상에도 드러나지 않는 미세 암을 박재현은 어떻게 직접 찾아볼 생각을 했을까.
보통은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기 힘들었다.
수술 부위가 넓어질수록 뇌에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박재현 교수의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해도 저희가 꼭 그걸 따라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희준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해마 인근까지 살펴보는 건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준후가 곧장 반박에 나섰다.
“20퍼센트면 무시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또한 교모세포종의 경우 재발 시 환자 생존율이 급격하게 떨어질뿐더러 환자의 나이를 고려하면 재수술도 벅찹니다.”
“…….”
“한 번 머리를 열었을 때 모든 걸 다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준후야, 과유불급 모르니?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종양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어.”
“해마 인근을 살폈을 때 종양이 있으면 제거해서 좋고. 없으면 안심할 수 있어서 좋은 것 아닐까요?”
“둘 다 그만.”
호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두 사람의 말다툼을 제지했다.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절개창을 넓혀서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구나.”
“교수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여지를 남겨두는 건 나도 찝찝해서 못 견디겠어. 다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힘냅시다.”
호영은 스태프들을 다독이며 절개창을 넓혔다.
다시 개두술을 펼치고 뇌막을 제거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
호영은 준후의 말에 좀 더 끌렸다.
20퍼센트면 확실히 못 본 척 넘길 수 없는 수치였다.
논문의 저자가 박재현이라면 더더욱 그랬고.
해마 인근까지 수술 범위를 넓힌 후.
호영은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했다.
우려와 달리 종양은 보이지 않았다.
박재현이 틀리고.
준후도 틀린 건가.
그래도 혹시 몰라서 현미경의 배율을 최대치인 25배로 높였다.
MRI가 잡아내지 못한 미세 암이라면 좀 더 꼼꼼히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
“…….”
팽팽한 침묵과 긴장감이 수술실을 사로잡은 가운데.
호영은 미간을 찌푸려가며 해마 인근을 샅샅이 살폈다.
“아…….”
이윽고 흘러나오는 탄식.
결국 박재현의 말이 옳았고.
준후의 말도 옳았다.
해마에서 2센티미터 좌측으로 떨어진 장소에.
빨간 점으로 빛나는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