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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41화 (140/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41화

제26장 정면돌파(1)

휴. 살았다.

해마 인근의 미세 암을 확인하고 준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반쪽짜리 수술이 될 뻔했다.

측두엽 좌상단에 위치했던 거대 뇌종양을 제거했더라도.

눈앞의 녀석을 제거하지 못했다면 종양은 재발했을 테니까.

환자의 생존율은 절반 이상 떨어졌을 테니까.

환자의 생존율이 올라가서.

환자가 손주나 손녀를 볼 가능성이 높아져서.

거기에 자신이 기여할 수 있어서.

준후는 뿌듯했다.

현대에서 의사의 삶을 선택했던 것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재능을 발휘하며 다른 사람까지 도울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허허. 정말 종양이 있었구나. 준후, 네 조언이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호영이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준후를 응시했다.

호영의 눈빛에도 안심이라는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아닙니다. 그냥 운 좋게 봤던 논문 케이스가 나와서…….”

“수술 전에 논문 볼 생각을 한 게 기특한 거지. 1년 차면 병동 관리만 해도 벅찰 텐데…….”

“과찬이십니다.”

“와, 이게 진짜 있었네. 아까는 내가 너무 성급했다. 환자 회복을 생각하면 좀 더 적극적이었어야 하는데.”

희준이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희준이 희준 나름대로 최선의 판단을 했다는 사실을 준후는 알았다.

준후야 내공 종양 조영술 덕분에.

종양의 존재를 미리 알았고.

그래서 자신감 있게 절개 부위를 넓히자고 주장할 수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하기 힘들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저를 구했어요.

선생님이 없었다면 내공 종양 조영술도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

준후는 속으로 박재현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

수술 전 눈앞이 깜깜했을 때.

미세 종양의 존재를 스태프들에게 어찌 알려야 할지 몰랐을 때.

박재현의 논문은 등대가 되었다.

[측두엽에 발생한 교모세포종의 해마 근접 전이]

딱 이번 케이스에 걸맞은 논문을 박재현이 발표했던 것이다.

박재현의 논문 덕분에.

준후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

희준과 맞서고 호영을 설득할 수 있었다.

“교수님. 종양 제거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준후가 호영에게 물었다.

“이 정도 크기라면 감마 나이프(방사선 치료의 일종)를 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

“수술 시야를 확보했으니 직접 제거하는 편이 좋겠구나.”

“신경 손상은 걱정은 안 해도 될까요? 종양의 현재 위치면 청각 신경에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어렵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야. 나를 믿거라.”

“네. 교수님.”

“자, 마지막의 마지막이에요. 다들 끝까지 집중합시다.”

호영의 오더에 따라 두 번째 종양 제거술이 펼쳐졌다.

첫 번째 종양과 두 번째 종양.

둘 사이의 차이는 거의 30배에 육박했다.

첫 번째 종양은 3cm x 3cm.

두 번째 종양은 1mm가 안 되었으니까.

하지만 수술 난이도로 따지면 후자가 더 어려웠다.

섬세한 손놀림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었다. 신경 손상의 리스크까지 짊어져야 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는 수술방.

스태프들은 물심양면으로 호영을 도왔다.

무영등의 환한 빛 때문일까.

어시스트 하는 스태프들의 피부가 밀랍처럼 하얗게 보였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는 규칙적으로 기계음을 흘려댔고.

아직 환기되지 않은 피 냄새와 조직 타는 냄새,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술방은 작은 전쟁터였다.

휘리리릭.

종양의 가장자리를 따라.

원을 그리는 호영의 보비(전기 소작기).

흔들림 없는 호영의 손가락.

그 모습은 흡사 무당파의 태극검법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그동안 준후의 관찰에 따르면.

외과 수술에 필요한 동작들은 무공의 이치를 어느 정도 담고 있었다.

멋 훗날 집도의가 된다면.

준후는 무림의 다양한 이치가 담긴 무공들을 수술에 녹여낼 수 있으리라.

진짜 외과의 생활은 분명 그때부터겠지.

……라고 준후는 생각하고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하아…….”

호영이 가쁜 숨을 내쉬며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유착한 부위는 간신히 다 떼어냈구나. 준후야, 종양을 좀 빼내 거라.”

“네. 교수님.”

준후는 포셉으로 작디작은 종양을 움켜쥐었다.

포셉이 종양을 쥐지 못해 허공을 훔치거나.

포셉이 뇌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주거나.

종양을 곡반으로 옮기는 도중.

움켜쥔 종양을 놓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무림에서부터 단련한 준후의 손놀림은 명불허전이었다.

두려움이 없고.

망설임이 없고.

불안함이 없었다.

준후는 단번에 미세 종양을 곡반으로 운송하는 데 성공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이제 수술 부위 닫고 마무리합시다.”

“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스태프들 간의 훈훈한 격려가 오갔다.

뇌막 복구 및 두개골 성형.

두피 봉합 등등.

수술 부위를 원복하면서 장장 7시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지이이잉.

준후는 후련한 마음으로 수술방을 나왔다.

벌레가 허물을 벗듯.

수술 가운과 수술모, 장갑, 마스크 등을 벗어던졌다.

턱.

어깨에 감촉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호영이 서 있었다.

호영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늘 활약, 아주 인상 깊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면 돼.”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야 내가 네게 해야지. 어쨌거나 수술할 때 자주 봤으면 좋겠구나.”

“저도 교수님을 자주 뵙고 싶습니다. 왜 그동안 교수님과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보니 듣기 좋은 말하는 데도 재주가 있네?”

호영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수술실을 빠져나오자 보호자 대기실이 눈에 들어왔다.

초조하게 대기 중인.

애타게 대기 중인 보호자들 속에서 준후는 김철순 환자의 보호자를 단번에 찾아냈다.

그는 대기석 가장 후미에 앉아 있었다.

곁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선생님. 수술은 어떻게…….”

보호자는 준후를 발견하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보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호자가 울컥하며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후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끝이 찡해졌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뭉클하고도 숭고한 무언가가 있었다.

* * *

개운하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아.

스태프 전용 화장실을 나오며.

준후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영양제와 홍삼을 섭취한 후 운기조식까지 펼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체력과 정신력은 거의 100퍼센트 충전되었다.

7시간 동안 수술 어시스트를 하며 쌓인 피로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타고난 체력과 회복력에.

영양제·심법의 도움을 받으니 준후는 도무지 지칠 줄 몰랐다.

그 길로 복귀한 당직실.

타다다닥.

타다다닥.

기관총 같은 소리를 뽐내며.

준후는 그동안 밀린 차트들을 작성했다.

입·퇴원 기록지.

경과 기록지.

퇴원 요약지.

그 밖에 병동 환자의 오더 처방 등등.

산더미처럼 쌓였던 일들이 준후의 손가락 끝에서 박살 나고 있었다.

준후는 고작 30분 만에 가득 밀린 일을 해치웠다.

레지던트 1년 차를 가장 괴롭히는 전산 업무는 적어도 준후의 장해물이 아니었다.

“참 나, 너 사람 맞냐?”

곁에서 업무 중이던 동기 경수가 준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하고서.

“왜? 내 피는 초록색이라도 될 것 같아?”

“가끔은 진지하게 그런 생각도 든다. 7시간짜리 수술을 하고 나서도 쌩쌩하네?”

“원래 체력은 자신 있으니까. 기관 절개술은 잘했고?”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민경이 경수에게 기관 절개술을 가르칠 거라고 오전에 들었는데 그 결과가 궁금했다.

“안 했어.”

“왜?”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건 아니잖아. 난 선배들이 하는 걸 더 지켜보다가 자신 있을 때 할 거야.”

“선배가 살짝만 도와주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몸 사리는 거 아닌가?”

“그건 네 생각이지.”

경수가 어깨를 으쓱하고서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대화는 이쯤 하자는 의미였기에 준후도 더 말을 걸지는 않았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준후는 두 눈을 감고 당직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도화지를 바탕으로.

초식처럼 저장해둔 둔 호영의 처치들을 꼼꼼하게 복습했다.

자신의 피와 살로 받아들였다.

무공이 됐든.

외과수술이 됐든.

복습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중요했다.

남겨두지 않은 것은 무릇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형,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갔어.

4기 뇌종양 수술 어시스트를 해봤고. 내공으로 미세 암을 발견하기도 했어.

이렇게 꾸준히 성장하다 보면.

형처럼 뇌사로 세상을 떠난 환자들을.

그리고 그 가족들을 구원하는 수술법도 발견하겠지?

준후는 눈을 뜨고서 오른쪽 손목에 찬 팔지를 내려다보았다.

착각인지 몰라도.

성호가 자신에게 그렇다고 대답을 해준 것만 같았다.

“선배, 고생하셨어요. 엄청 길고 어려운 수술에 들어가셨다고 들었는데.”

당직실에 들어온 인턴 은하가 준후에게 다가와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고생이야 다 같이했지. 은하, 넌 별일 없었고?”

“네. 병동 일도 익숙해진 것 같아요. ABGA 채혈도 곧 잘하고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드릴까요? 지금 잠깐 손이 비는데.”

“그럴 필요 없어. 방금 다 끝냈거든.”

“네? 수술 끝나고 방금 복귀하신 거 아니에요?”

“맞아. 밀린 오더를 다 처리한 것도 방금이고.”

“와. 대박. 근데 선배, 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혹시 선배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그게 궁금했어? 난 ISTP로 나왔던데.”

준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ISTP면 만능 재주꾼이네요. 선배랑 딱 어울려요. 전 ESFJ거든요.”

“ESFJ는 무슨 유형인데?”

“사교적인 외교관이요.”

“은하, 너랑 딱이네.”

“네. 그런 것 같아요. ISTP랑 ESFJ는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던데.”

은하가 어쩐지 수줍은 기색을 드러냈다.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 의사가 돼서 MBTI 같은 걸 믿어?”

잠자코 있던 경수가 대화에 껴들었다.

목소리가 냉소적이었다.

“믿는다기보다는 재미로 보는 거죠.”

“하나도 재미없는데?”

“저처럼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은하는 경수에게 대꾸하고 준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경수는 빼박 논리주의자인 ISTJ일 거라고.

덕분에 준후는 배를 잡으며 깔깔 웃었다.

“아 참, 은하야. 나도 부탁할 게 있는데.”

“네. 분부만 내려주세요.”

“미안한데 편의점 갈 일 있으면 오전에 나한테 줬던 초콜릿 좀 사다 줄래?”

준후는 은하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뇌가 포도당을 연료로 써서 그런지 몰라도.

단 음식을 먹고 일하면 능률이 좋았다.

그래서 틈틈이 초콜릿도 챙겨 먹을 계획이었다.

“한 세 박스 정도만 사다 줘. 은하 네 것도 같이 사고.”

“정말 그래도 될까요? 준후 선배 최고!”

“알면 됐어.”

은하가 떠난 후 준후의 시선이 벽에 걸린 달력에 머물렀다.

내일은 모처럼 오프가 있는 날이었는데 해야 할 일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금 전화해 봐야 받지 않을 것은 당연지사.

준후는 정성스레 상대에게 문자를 남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저희 어머니가 선생님께 수술을 받았고 그때 선생님이 제게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되어 수련 중인데요.

내일 직접 찾아뵙고.

그간 못했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장문의 문자를 마쳤을 때마침.

띠리리링~

당직실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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