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142화 (142/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42화

제26장 정면돌파(2)

그 날 저녁.

응급 수술 어시스트를 마친 2년 차 민경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당직실을 찾았다.

드르르륵.

당직실에 들어서자.

보기만 해도 배부른 레지던트 1년 차 두 명이 보였다.

서준후.

윤경수.

준후의 관해서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씨.

선배들을 위협하는 압도적인 성장세와 처치 실력 등등.

신경외과에서 근무한 지.

1달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준후의 평판은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병동에서 준후를 모르는 이는 신규 입원 환자뿐이었다.

경수 역시 일 처리가 야무졌다.

사교성이 부족하고.

성격이 좀 뾰족하긴 했지만.

업무에 관해서는 흠이 없었다.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할 필요가 없었고 시키지 않은 일도 잘했다.

신경외과는 레지던트가 가뭄인 과목 중 하나라서 본인이 계속 막내 생활을 할 줄 알았건만…….

민경은 어느새 듬직한 후배 두 명을 얻게 되었다.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뭐, 그건 그거고.

할 말은 해야겠지?

민경의 발길이 준후를 향했다.

“준후야.”

“네. 선배.”

“응급실 전화는 적당히 받으면 안 되겠니? 경수한테도 좀 넘겨.”

“무슨 뜻이에요?”

“이상하게 네가 응급실 전화를 받으면 수술 환자일 확률이 높단 말이야.”

민경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방금 어시스트를 마친 SDH(경막하 혈종) 환자.

그 환자의 최초 콜을 준후가 받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번 벌어졌으면 별말 없었겠지만 비슷한 일이 일주일 넘게 반복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준후에게는 환타(환자 타는 의사, 환자를 몰고 다니는 의사) 기질이 역력했다.

“내가 대충 세 봤는데 확률이 거의 50퍼센트던데?”

“에이. 그럴 리가요. 과장이 심하시다. 착각하신 거겠죠.”

“착각할 게 따로 있지. 그리고 이건 통계고 과학이거든? 근데 뭐 먹고 있어?”

“초콜릿이요.”

“안 먹던 초콜릿을 다 먹네. 너도 슬슬 일하느라 스트레스받니?”

“아뇨. 초콜릿을 먹으면 집중이 잘 돼서요. 뇌는 포도당을 연료로 쓰잖아요. 선배도 하나 드세요.”

준후가 민경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민경은 포장을 벗겨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 퍼지는 고급스러운 단맛.

확실히 초콜릿을 먹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으음…… 맛있어. 역시 살찌는 맛이 최고야.”

“맛은 원래 칼로리에 비례하는 법이죠. 제 앞에 앉아 보실래요?”

“왜? 마사지해 주려고?”

“정답입니다.”

민경은 의자를 챙겨 준후 앞에 앉았다.

준후의 야무진 손길이 이어졌다.

손가락으로 머리와 어깨, 허리를 꾹꾹 지압하는데 어찌나 시원하던지.

뭉친 근육이 사르르 녹았다.

지압한 부위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마치 그 부위에 세포가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면 오버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진짜였다.

준후에게 마사지를 안 받아본 사람은 받아본 사람의 개운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 나중에 안마원 차리면 대박 날 것 같아. 그럼 내가 단골 해줄게.”

“아주 나중에 생각해 볼게요. 계속 가만히 계세요.”

준후의 마사지는 지압으로 끝나지 않았다.

뿌드드득.

민경의 머리를 좌우 90도로 꺾고.

앞으로 굽은 어깨와 목을 펴고.

허리를 새우처럼 45도로 접고 등등.

동적인 스트레칭도 이어졌다.

마사지 풀 세트를 받자 몸이 한결 개운하고 가뿐했다.

관절의 운동범위도 눈에 띄게 늘었다.

“땡큐. 이제 살 것 같다. 경수, 너도 준후 표 마사지 받아볼래?”

“전 됐습니다.”

“왜? 준후 마사지 엄청 잘해. 눈 딱 감고 한 번 받아 봐.”

“전 남의 손이 제 몸에 닿는 게 싫어서요.”

재차 권해도 경수는 요지부동이었다. 까칠한 태도와 목소리는 여전했다.

도형으로 치면 경수는 삼각형이었다.

삼면이 뾰족했다.

이 녀석은 언제쯤 둥글게 될까.

“난 컨퍼런스 룸에서 저녁 먹고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콜 하고.”

“네. 선배.”

“네.”

민경이 떠나고 당직실에 찾아온 고요.

경수가 키보드 치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슬슬 실험을 시작해 볼까.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야지.

준후는 책상에 놓인 두개골 모형을 손에 들었다.

두개골 모형의 상단 부분을 해체하자 플라스틱 모형 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준후는 모형 뇌도 분해했다.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

소뇌와 뇌간.

총 6조각으로 분해된 뇌 조각 중.

뇌간에 2센티미터 크기 정도 되는 초콜릿 부스러기를 삽입하고 다시 모형을 조립했다.

두개골도 복원했다.

이걸로 실험 준비 끝!

준후는 두개골 모형에 손을 얹고 내공을 흘려보냈다.

두개골을 통과하고.

뇌 전체로 퍼져 나가는 내공.

그 형태는 흡사 잔잔한 호수에 일어나는 파문 같았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뇌간에 위치한 초콜릿 부스러기를 감지한 후,

준후는 정신을 한층 날카롭게 벼렸다.

메스의 칼날을 상상하며.

그 칼날을 내공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생사경의 고수들만 펼친다는 심검(心劍)에 도전한 것이다.

내공 종양 조영술의 쓸모는 오늘 교모세포종 환자를 통해 증명했다.

내공 종양 조영술은 MRI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미세 종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로 경이로운 정밀함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할 준후가 아니었다.

준후는 내공으로 뇌종양 수술까지 하고 싶었다.

어떻게?

내공으로 검을 만들어 뇌종양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물론 수술로 뇌종양을 제거하고.

감마 나이프 또는 방사선 치료로도 뇌종양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방식 다 한계가 명확했다.

수술적 제거의 경우.

지금 준후가 작업 중인 뇌간 부위의 종양을 제거하지 못했다.

뇌간이 호흡, 심박 등등.

생명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

잘못 건드렸다간 환자가 그대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뇌 심층부의 종양도 제거할 수 없었다.

감마 나이프(방사선 치료의 일종으로 고에너지의 방사선을 한 번 만 쬠)의 경우.

치료 범위에 한계는 없으나.

3-4센티미터 정도 되는 거대 종양에 관해서는 치료 효과가 떨어졌다.

반면 내공 종양 절제술은 한계가 없었다.

내공은 뇌 어느 곳이든 침투할 수 있었다.

거기에 메스처럼 날카롭게 형상화할 수 있다면 잘라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수술과 감마 나이프를 바탕으로 깔 되.

내공 종양 절제술로 특이 케이스를 해결한다.

이것이 준후의 야심 찬 뇌종양 정복 계획이었다.

준후는 모형 뇌간에 퍼진 내공을 형상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공을 가다듬어서 날카로운 칼을 만든다. 그 칼날로 초콜릿 부스러기를 베어낸다.

계획은 훌륭했지만 실행은 형편없었다.

내공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내공은 잠깐 뭉쳤다가 흩어졌기를 반복했다.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었다.

실전은 이보다 더 어려울 텐데…….

뇌척수액의 급류와 뇌종양의 흡입력도 감당해야 할 텐데…….

고작 모형에 이렇게 고전하면 안 되는데…….

작업 5분째.

준후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정신이 산만해지면서 기혈이 역류할 조짐을 보였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아직은 무리구나. 갈 길이 멀어.

야심 찬 시도를 중단하고 준후는 모형을 분해했다.

문제의 뇌간을 살피니…….

뇌간에 붙어 있던 초콜릿 부스러기는 멀쩡했다.

훼손된 건 오히려 뇌간이었다.

뇌간 좌측 가장자리에 0.5밀리미터 길이의 상처가 남았다.

모형이 아니라 환자였다면.

환자는 뇌간 손상으로 뇌사에 빠지거나 사망했으리라.

준후는 가운 소매로 이마에 땀을 훔쳤다.

아쉬움을 떨쳐냈다.

심검에 도전하는 건 무리였나.

전생의 나는 조화경의 고수였거늘.

두 단계나 높은 생사경의 무공에 도전했으니 결과가 형편없을 수밖에…….

하지만 준후는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심검이 벅찬 무공인 건 사실이었지만 뇌종양을 제거하는 수준의 심검이라면 도전해 볼 만했다.

무엇보다 준후는 환자를 생각했다.

심검을 포기한다는 사실이.

환자를 포기한다는 사실과 다름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어쩌면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무공의 경지를 높여야 할지도 모르겠어.

준후의 마음은 더 먼 곳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띠리리링~

당직실에 놓인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내가 받을까?”

경수가 준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내가 더 가까운데?”

“네가 받으면 꼭 무슨 일이 터지잖아. 아까 민경 선배가 했던 말처럼.”

“그거 낙인 효과야. 멀쩡한 사람 환타로 만들지 마.”

준후는 피식 웃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네. 신경외과입니다.”

-…….

“네. 알겠습니다. 지금 갈게요.”

준후는 금방 전화를 끊었다.

“응급실 콜? 뭐래?”

“응급실은 아니고 중환자실. 환자 바이탈이 불안정하다고 와서 한 번 봐 달래.”

“민경 선배 말 맞네. 너 환타잖아.”

차마 반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준후는 어색하게 웃었다.

“집 잘 지키고 있어라.”

당직실을 떠나 도착한 중환자실.

저녁이라 한가해진 병동과 달리 중환자실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분주했다.

욕창 관리를 위해 환자의 체위를 바꿔주고.

도뇨관이나 비위관(콧줄), 기관 등을 소독하고.

환자 바이탈을 체크하는 등등.

중환자실의 간호사는 쉴 틈 없이 바빴다.

소독약 냄새와 살 썩는 냄새가 합쳐진 중환자실 특유의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준후는 한 환자 앞에 섰다.

환자의 이름은 김철순.

오늘 교모세포종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손주와 손녀를 보고 싶다며.

여생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선생님. 오셨어요?”

양민지 간호사가 준후를 발견하고 아는 척을 했다.

“아. 네.”

“간호 기록지 봤는데 체온이 많이 올라갔더라고요. 지금은 38도던데. 관찰하면서 특이사항은 없었나요?”

“체온 말고는 없어요. 환자 연세도 있고 혹시나 폐렴 같은 게 아닐까 해서 노티 했죠.”

민지가 준후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해열제 처방 내리고 지켜보실 줄 알았는데. 직접 오셨네요?”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요. 바쁘실 텐데 선생님 일 보세요.”

“네. 그럼 저는 이만.”

민지가 떠난 후 준후는 환자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했다.

청진기로 폐음과 심장음을 듣고.

뇌압과 뇌파를 살피고.

바이탈 사인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등등.

체온만 높은 뿐.

아직까지 환자에게 이상은 없어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준후는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내공 종양 조영술을 펼쳤다.

환자의 머릿속으로 잔잔하게 퍼져 나가는 내공.

오전에 느꼈던 흡입력은 먼지 한 톨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뇌종양은 완벽히 제거되었다.

남은 문제는 회복인가.

준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수술이 끝났다고 방심할 수는 없는 법.

회복 도중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환자도 종종 있었다.

준후는 스테이션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선 당직실에 전화부터 했다.

경수에게 환자를 1시간 동안 킵(의사가 1대1로 붙어 환자를 간호하는 것)하겠다고 전했다.

환자의 체온이 38도 이상일 경우.

해열제 주사를 IV로 놓으라는 상시 오더도 추가했다.

환자에게 돌아가는 준후의 한 손에는 의자.

다른 한 손에는 주사가 들려 있었다.

환자의 수액줄에 해열제를 믹스하고 준후는 환자 곁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환자의 손을 잡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준후의 손을 타고 환자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일종의 내공 보양술이었다.

내공은 환자의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내공 소모가 극심해서 자주 펼치지는 못했는데.

김철순 환자는 준후의 보양술 1호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어르신도 같이 힘내주셔야 해요.

1시간 동안.

준후는 환자에게 내공을 불어넣었다.

아주 소량을 천천히.

하지만 내력이 고갈되면서 단전이 휑해졌다.

몸도, 머리도 무거워졌다.

오늘만큼은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할 듯싶었다.

“선생님도 정말 독종이시네요. 환자 킵까지 다 하시고.”

준후가 의자에서 일어날 때쯤 민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환자분만 무사할 수 있다면 독종이 아니라 더 심한 것도 될 수 있어요.”

“하여간 선생님도. 바이탈 체크해 볼게요.”

민지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눈을 깜빡거렸다.

“체온이 정상으로 내려갔네요? 혈압하고 맥박도 조금 높았는데 그것도 다 내려갔고요.”

“30분 전에 ABGA한 건 어떻게 됐나요?”

“아. 그 말씀을 안 드렸구나. ABGA도 잘 나왔어요. 대사성 산증을 의심했는데 정상수치더라고요.”

“…….”

“이상하게 선생님이 킵하면서 환자분이 좋아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 아닐까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준후는 흐뭇하게 웃었다.

사실 민지의 말은 옳았다.

준후의 내공 보양술 덕분에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었으니까.

내공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어쩌면 선생님의 정성을 환자분이 알아주셨나 봐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수고하세요. 선생님.”

“선생님도 환자분 킵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중환자실을 떠난 준후는 곧바로 가까운 휴게실을 찾았다.

그런데 휴게실에 먼저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영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영은 준후를 발견하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의사 가운 소매로 재빨리 눈가를 훔쳤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준후.

“아영아, 너 무슨 일 있어?”

준후는 성큼 아영에게 다가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