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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49화 (149/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49화

제27장 스승(4)

“흥미로운 과제네요. 이런 참신한 수련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교수님이 직접 개발하신 건가요?”

준후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달걀을 꿰매지 못하면 재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초조하고 긴장되고 신경이 곤두서고 손이 떨린다 등등.

그런 부담감 따위는 티끌만큼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그 태연자약한 모습에 재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그게 궁금하니? 혹시 내가 장난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건 엄연한 시험이란다.”

“착각한 적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준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부담감이라는 감정도 잘 쓰면 독이 아니라 약이 되거든요.”

“어떤 점에서?”

“어떤 일을 잘하고 싶을수록 그 일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물론이지.”

재현은 동의한다는 의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재현조차 어떤 때는 집도가 부담스러웠고 심지어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부담감을 적당히 느끼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게 제 좌우명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자면?”

“예를 들자면…… 긴장이나 부담을 적당히 느낄 때 말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위험요소들 같은 걸 깐깐하게 따져보게 되잖아요?”

“…….”

“그럼 미래에 벌어질 악재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셈이죠.”

“허…….”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서 흘러나온 탄식.

이번에는 재현이 준후에게 한 방 먹었다.

부담감을 부스터로 사용한다라…….

이런 사고방식의 전환은 재현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잠시나마.

준후가 20대 후반의 청년.

또 레지던트 1년 차가 아닌 경험 많은 능구렁이 외과의처럼 보였다.

“하긴 날 직접 찾아온 별종이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재현이 마음을 추스르며 말을 계속했다.

“방금 질문에 대답하자면…….”

“…….”

“이 수련법은 내가 직접 개발한 건 아니란다. 간담췌 외과 선생님에게 배운 것이지.”

“…….”

“휘플 수술에 대해서 알고 있니?”

“네. 알고 있습니다.”

휘플 수술.

이것은 췌장암 환자에게 실행하는 수술로.

췌장, 담도, 십이지장, 소장 등등.

소화기 계통의 다양한 장기를 절제하고 또 봉합하는 소화기 외과 수술의 꽃이었다.

종합선물세트였다.

“휘플 수술에 권위자인 선생님이 이 방법으로 꾸준히 수련 중이라고 하더구나.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꾸준히 해오고 있지.”

“그렇군요. 이제 슬슬 시험을 쳐도 될까요?”

“얼마든지.”

준후가 수술대 앞에 섰다.

달걀 봉합에 필요한 수술 도구를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봉합사는 흡수성 봉합사 vicryl 4-0.

포셉은 스티븐 안과 포셉.

니들 홀더는 메이요 니들홀더.

가위는 드레싱 시져.

재현이 보기에 준후의 수술 도구 선택은 탁월했다.

재현도 평소 저 세팅으로 달걀을 봉합하기 때문이다.

외과의에게는 손기술만큼이나.

수술 도구를 선택하는 선구안이 중요한데 준후는 이미 선구안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참 묘한 기분이군.

이런 적은 처음인데…….

준후 녀석에겐 특별한 마력이라도 있는 모양이야.

준후를 제자로 삼지 않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재현은 어느 순간부터 준후가 테스트에 합격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준후의 실력이 궁금했고.

준후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나갈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이제 준비됐니?”

“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준후의 대답은 이번에도 거침이 없었다.

* * *

준후는 수술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달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걀은 달걀 트레이 안에 담겨 있어 똑바로 고정되어 있었다.

고작 이 달걀 하나에.

재현의 제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렸다는 사실에 준후는 피식 웃었다.

이 정도면 황금 달걀 아닌가.

준후는 거즈 위에 따로 보관해둔 달걀의 흰자 막을 상단부가 깨진 달걀 위에 덮었다.

이어서 봉합사의 포장을 벗기고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쥐었다.

딸칵.

이로써 집도 준비 끝.

필요한 수술 도구들만 쏙쏙 챙긴 만큼 뒷일은 오로지 준후의 손에 달려 있었다.

“달걀막, 봉합 시작하겠습니다.”

본격적인 달걀막 봉합의 서막이 올랐다.

준후는 머릿속에 그려둔 그림을 그대로 따랐다.

봉합 부위는 총 10곳으로.

원 모양으로 깨진 달걀의 테두리 부분을 원 모양으로 꿰매는 것이었다.

봉합법은 외과의 기본이 되는 단순단속봉합.

한 땀을 꿰매고 나서 바로 매듭을 짓는 방식이었다.

봉합을 하는 내내.

준후의 손은 떨림을 몰랐다.

마치 로봇 수술의 로봇 팔 같았다.

당연한 이치였다.

검법을 소화할 때 손이 흔들리면 도중에 검의 궤적이 미세하게 변하지 않는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준후는 무림에서부터 손을 검을 사용할 때 평(平)자 결을 운용했다.

손을 사용하는 수법.

손바닥을 사용하는 장법.

손가락을 사용하는 지법 등등.

준후는 검법 말고도 손을 사용하는 다양한 무공들에 능숙했는데.

이는 준후의 손이 더 정교하고, 더 빠르며, 더 현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왔다.

끼기기긱. 찰칵.

끼기기긱. 찰칵.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는 소리.

가위로 매듭 윗부분의 남은 봉합사를 자르는 소리.

두 소리가 번갈아가며 간이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준후는 거침없이 달갈막을 봉합해나갔다.

핵심 포인트는 두 가지.

첫째, 달걀을 뒤집어도 노른자가 쏟아져 내리지 않도록 달걀막을 단단하게 봉합할 것.

둘째, 봉합침을 달걀막에 삽입할 때 봉합침이 달걀막을 찢지 않도록 힘 조절을 하는 것.

핵심 포인트를 명심하고.

나머지 처치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

이것이 달걀막 봉합에 임하는 준후의 자세였다.

봉합을 하면서 준후는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졌다.

손이 자신의 손이 아닌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대신 준후의 손을 움직여 주는 것만 같았다.

수술 도구를 사용하는 손에서는 먼지만큼의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곁에 박재현이 있다는 사실조차 준후는 잊어버렸다.

-달걀막을 봉합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준후는 오로지 하나의 일념,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모처럼 느껴본 물아일체의 경지였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봉합은 이미 끝나 있었다.

상단부가 원 형태로 깨졌던 달걀을 준후가 봉합한 흰 달걀막이 감싸고 있었다.

준후는 달걀을 손에 쥐고 좌우로 흔들어 보았다.

달걀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달걀 내부의 압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교수님.”

“…….”

“교수님?”

준후가 몇 차례 부르고 나서야.

몽롱했던 표정의 재현이 정신을 차렸다.

“어. 그래. 봉합을 잘 끝냈구나.”

“제대로 봐주신 것 맞죠? 다른 생각하신 거 아니죠?”

“솔직히 중반부터는 집중을 못 했단다.”

재현이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안 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실패할 것 같지가 않아서. 봉합 연습을 따로 하고 있었나 보구나. 설마 이 정도 실력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재현이 감탄조로 말했다.

재현은 준후에게 달걀막 봉합법의 요령을 알려주지도, 힌트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비유하자면 준후를 야생에 날 것 그대로 던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후는 달걀막 봉합에 필요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지금 준후가 완성한 봉합의 형태.

그것은 재현이 직접 봉합한 형태와 똑같았다.

야무진 손놀림 역시 재현과 필적할 정도였다.

심지어 봉합을 완성한 시간조차 재현과 엇비슷했다.

대략 3분 정도 걸린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적이랄까.

레지던트 1년 차이거늘…….

준후는 벌써 완성된 외과의 같은 모습을 선보였다.

“칭찬해 주시니 쑥스럽네요.”

“극찬하고 싶은 걸 참고 있단다. 네가 자만할까 봐.”

“일단 테스트는 끝내야 하니까 달걀을 뒤집어보겠습니다.”

준후가 봉합을 끝낸 달걀을 손에 쥐고 거꾸로 뒤집었다.

달걀 흰 막이 출렁거렸지만 노른자가 바깥으로 쏟아지지는 않았다.

봉합이 완벽했던 것이다.

어느새 팽팽하게 당겨진 흰 막은 놀라운 힘으로 달걀 내용물의 중력을 버티고 있었다.

“조금 더 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준후는 아예 달걀을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몇 번의 충격은 버텼다만 끝내 흰 막이 찢어지며 노른자가 추락하고 만 것이다.

수술대에 떨어진 노른자는 동그란 형태를 잃어버리면서 넓적하게 퍼져 나갔다.

“…….”

“…….”

순간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간이 수술실.

준후의 두 뺨은 어느새 홍시처럼 빨갛게 익어 있었다.

“교수님. 그래도 성공한 건 맞죠?”

* * *

두 번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준후는 재현과 함께 재현의 연구실로 돌아왔다.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젠 너를 내칠 명분이 없구나. 이런 말을 하긴 부끄럽다만 준후 널 내 제자로 받아주마.”

“감사합니다. 교수님.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준후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마음 같아서야 무림에서처럼 세 번의 절을 올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무림의 예법은 현대에 어울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최고의 신경외과의를 스승으로 두었다는 사실에 준후는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이 경험해나갈 길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교수님.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

“교수님은 어떻게 신경외과 전공을 택하게 되셨습니까?”

“지방 근무를 나간 아버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지. 뇌출혈로 병원을 전전하다가 목숨을 잃으셨단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네 잘못도 아닌데.”

재현의 대답에 준후는 속이 아려왔다.

성호 역시 재현의 아버지와 비슷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세상은 언제나 같은 비극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준후는 불현듯 무림맹 군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는.

첫째로 비극이 반복되는 환경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해당 비극을 겪지 않은 사람은 해당 비극을 겪은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호와 재현의 아버지.

준후와 재현은 동전의 같은 면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2, 제3의 성호와 재현의 아버지.

제2, 제3의 준후와 재현은 계속 나타나리라.

이 비극의 연쇄를 송두리째 뽑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또 궁금한 게 있니?”

“네. 있습니다.”

“교수님의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흠…… 이번 이야기는 네가 받아들이기 힘들겠구나.”

“어째서입니까?”

“난 최대한 빨리 외과의를 관둘 생각이란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준후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신경외과의가 의사 생활을 최대한 빨리 그만둘 생각이라니…….

심지어 재현은 아직 전성기거늘.

“퍽 놀란 눈치구나.”

“농담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농담이 아니란다. 외과의는 잘 해봐야 하루에 사람 한두 명을 살리지. 물론 그게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네. 교수님.”

“하지만 말이다. 의료 시스템을 바꾸면 한 번에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그래서 나는 의료 권력의 정점에 오를 거란다.”

“…….”

“일차적인 목표는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그다음은 대통령이야.”

재현의 포부에 준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준후와 재현의 출발선은 같았지만 그 목적지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널 제자로 삼게 되어 참 다행이구나. 내 빈자리를 네가 메워줄 테니.”

“그래도 선생님의 실력이 너무 아까운 것 같습니다.”

“아까워도 어쩔 수 없어. 살다 보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재현의 대답은 주저가 없었다.

이미 뜻을 굳힌 것처럼 보였다.

“뭐, 아직 먼 이야기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단다.”

“알겠습니다.”

“이제 슬슬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재현이 화제를 돌렸다.

“준후, 네가 관심 있는 분야를 말해보려무나. 그럼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마.”

“…….”

“아무래도 주입식보다는 그게 더 효과적이겠지.”

스스로 관심이 있는 분야라…….

준후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그렇다면 제가 가장 먼저 정복하고 싶은 분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분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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