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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51화 (151/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51화

제28장 새 바람(1)

신경외과 오전 컨퍼런스 룸.

의국 스태프들이 빽빽하게 앉아 컨퍼런스를 치르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얼굴은 피곤에 절여져 있었다.

생기와 활기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 시각 오전 6시 30분.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기상하거나 출근을 준비할 시간에 의국 스태프들은 이미 출근을 마쳤다.

수술 환자와 응급 환자는 어제만큼 오늘도 넘쳐날 것이며 환자가 죽거나 중상에 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의국 스태프 중 팔팔해 보이는 사람은 준후뿐이었다.

“준후 너 어제 당직이었잖아. 근데 어째 눈이 초롱초롱하다?”

옆에 앉은 민경이 감탄하며 준후에게 속삭였다.

“비법이라도 있으면 알려줘.”

“글쎄요. 선천적으로 체력을 타고났다고 해야 할까요?”

“맥 빠지는 대답이네. 그냥 요령껏 잘 자는 거니?”

“그럴지도 모르죠.”

“하긴 네가 초인도 아니고.”

민경은 준후에게 흥미를 잃었다는 듯 정면을 바라보았다.

피로를 달고 사는 스태프들과 달리 운기조식과 영양제 조합으로 준후는 피로를 몰랐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동료들에게 이를 언급할 수도, 알려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정신 상태를 의심받기 딱 좋았으니까.

입원 환자 브리핑.

수술 스케줄 정리.

레지던트의 케이스 발표 등등.

평소와 같은 회의의 순서가 끝났는데 과장이 특별하게 준후를 언급했다.

“다들 어제 뉴스를 접해서 알겠지만 준후가 용감한 행동으로 타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다들 박수 한 번 쳐줍시다.”

과장이 박수를 치자 스태프들이 그 뒤를 따랐다.

짝- 짝- 짝-!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시선에 준후는 부끄러웠다.

애초에 칭찬받으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의사라면 마땅히 살신성인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법. 여러분도 준후를 본받으세요. 준후, 너는 따로 할 말 없니?”

“사건 당시에……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분들은 저를 따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라 하지 말라고?”

“네. 너무 위험하니까요.”

준후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준후가 정글도를 든 범죄자에게 당돌하게 달려들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무림 출신이라서였다.

완력으로 그를 제압할 자신이 있어서였다.

보통 사람은 절대 준후를 따라 해서는 안 됐다.

설령 복싱이나 격투기 등을 배웠다고 해도 흉기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썼기에 네 행동이 더 이슈가 됐던 거란다. 아, 물론 또 같은 행동을 하라는 건 아니고.”

“그 점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준후는 슬쩍 과장을 응시했다.

신경외과 과장 표성덕.

출세와 평판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소인배.

만약 준후가 성덕이었다면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한 스태프를 꾸짖었을 것이다.

너무 무모했다고.

의사는 환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도 지켜야 할 줄 안다고.

오죽하면 경수도 준후에게 한소리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성덕은 달랐다.

준후를 치켜세우기 바빴는데 이유야 뻔했다.

신경외과 스태프가 화제의 중심에 선다면 덩달아 본인까지 주목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만약 준후가 지하철에서 대치 도중 부상을 입었다면?

성덕은 그것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었을 것이다.

성덕은 그런 부류였다.

아랫사람을 장기 말로 부리는.

“흠흠, 준후 이야기는 이만하고. 김 교수.”

성덕이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렸다.

“네. 과장님.”

“아까는 말 못 했는데 요새 외래 진료 볼 때 검사량이 좀 적은 것 같습니다? CT랑 MRI 좀 팍팍 찍어요.”

“환자가 타 병원에서 영상 자료를 가져오는 바람에…….”

“참나. 아마추어 같은 소리 할 겁니까? 그래도 또 찍어야죠. 그때랑 지금은 상태가 다를 수 있다고 하면서.”

“일주일 전 영상이었습니다만…….”

“어허! 일주일이면 충분하죠. 사람의 건강이 얼마나 급속도로 나빠질 수 있는지 몰라서 그래요?”

“…….”

“환자의 공포를 알아서 잘 자극하란 말입니다.”

성덕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준후는 속으로 혀를 찼다.

검사 실적을 올리려고 별의별 헛소리를 다 하는구나.

휴우, 이런 인간이 신경외과의 선장이라니…….

준후는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김 교수가 힘없이 대답했고 성덕은 만족한다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자, 기상. 이제 다 같이 회진 돌러 갑시다.”

* * *

회진이 끝난 후 준후는 당직실로 돌아왔다.

타다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현란했다. 회진 때 추가된 오더를 번개처럼 입력했던 것이다.

그런 준후를 보며 경수는 질렸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루틴 업무를 마친 후.

준후는 개인 메일을 확인했다.

스승 박재현이 보내 준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메일을 클릭하자 100메가 용량의 압축 파일 하나가 덜렁 첨부되어 있었다.

파일명은 이랬다.

[뇌종양 총정리]

-준후, 네가 관심 있는 분야를 말해보려무나. 그럼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마.

어제, 재현이 관심 분야를 물었을 때.

준후는 자신 있게 뇌종양이라고 대답했다.

뇌 파트 환자 중 뇌종양 환자의 숫자가 가장 많았고, 뇌종양 수술의 케이스가 가장 복잡하고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무림에서부터 준후는 고된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현대에서도 똑같은 경향을 가지게 됐다.

딸칵!

준후는 압축이 끝난 파일을 클릭했다.

다양한 문서들이 암의 종류에 따라 보기 좋게 정렬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교모세포종 파일 안에는 교모세포종 관련 문서만 있고 성상세포종 파일 안에 성상세포종 관련 문서만 있는 식이었다.

집념이 엄청나신데?

분류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엄청 걸리셨겠어.

준후는 문서들을 확인하고 혀를 내둘렀다.

문서의 숫자는 항목당 100개를 넘었고 분류는 지독할 정도로 세밀했다.

[2014년 2월, 교모세포종, 전전두엽, 2x2, 고혈압, 당뇨, 수술 후 3개월 사망]

준후는 해당 문서를 클릭해서 확인해 보았다.

문서에는 수술 전·후 MRI 영상(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

수술 과정.

수술 후 재현이 느낀 소감 등이 적혀 있었다.

[고혈압과 당뇨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 수술 도중 예상치 못한 출혈 발생. 내분비 내과 및 심장 내과 컨설턴트(협진) 했어야.]

[Air embolism(공기 색전증) 발생. 수술 필드 세척하고 해당 혈관 응고함. 색전증 예방을 위해 미리미리 수술 필드를 세척해 두면 좋을 것.]

문서를 정독하면서 준후는 감탄하기 바빴다.

뭐랄까.

문서 하나만 봤을 뿐인데 직접 수술 하나를 집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문서의 백미라면 당연히 수술 후 재현이 남긴 메모였다.

이 메모를 기억한다면.

준후는 재현이 했던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재현이 준후에게 준 문서는 단순한 자료가 아니었다.

무림으로 치면 절대 고수의 비급이었다.

각종 뇌종양 수술의 정수가 담긴.

절대 고수의 고뇌와 성찰이 담긴.

준후는 재현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재현의 가르침과 비급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준후라도 성장이 더뎠을 것이다.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쳐가며 배워야 했을 것이고 이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다.

준후는 그 즉시 재현에게 감사 메일을 보냈다.

팟! 팟! 팟!

뇌신경 점혈법으로 뇌를 활성화한 후.

귀신에게 홀린 듯 재현의 비급을 읽어나갔다.

이걸 다 암기할 수 있으면 나도 뇌종양 마스터야. 스승님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어.

집념으로 불타오르는 준후의 두 눈.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 * *

한 달 동안 준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일과의 시작은 천산환을 복용하고 운기조식을 하는 것이었다.

천산환은 효과가 좋았다.

신경외과 전공을 선택하고 내공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끼던 준후에게 천산환은 그야말로 선물이었다.

천산환을 복용하고 나면 단전이 두둑해졌다.

덕분에 내공 종양 조영술과 기 치료를 통한 중환자의 기력 회복에 적극적으로 내공을 사용할 수 있었다.

수련 중이던 내공 종양 제거술.

그러니까 심검(心劍)으로 종양을 제거하는 수련도 더 자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천산환을 복용한 후부터 준후는 내공 부족에 덜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준후는 재현의 문서를 미친 듯이 읽어댔다.

휴대폰에도 문서를 저장해.

응급실에 오갈 때.

수술방을 오갈 때도 탐닉했다.

점혈을 통한 뇌신경 자극술이 있었기에 준후의 습득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고작 일주일 만에.

준후는 뇌종양 4기인 교모세포종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완치율이 100퍼센트라고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적인 케이스는 수월하게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교수님. 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당직 근무를 서던 어느 날.

준후는 재현에게 휴대폰 메신저를 보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재현도 깨어 있어 준후에게 바로 답장을 보냈다.

[무슨 일이니?]

[보내 주신 문서,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만…… 이걸 저만 보기는 너무 아까운 것 같습니다.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준후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무공 비급이야 배타성이 있다지만 재현의 문서는 공개되어야 더 빛을 발할 것 같았다.

더 많은 신경외과의가 재현의 문서를 읽는다면.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테니까.

[시험 삼아 우리 의국 내부 자료실에 업로드해 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단다.]

[이렇게 좋은 자료가 어째서……?]

[레지던트들한테는 이런 방대한 자료를 공부할 시간이 없고. 교수들은 각자 자기 수술 방식이 굳어버렸으니까.]

[이 자료에 가치를 못 알아본다니. 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모든 사람이 다 준후, 너 같은 건 아니란다.]

비록 문자로 연락 중이었지만.

준후는 재현이 씁쓸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애초에 나를 버리고 타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건 어려운 일이지. 게다가 말이다.]

[…….]

[몇 번은 나와 앙숙인 교수가 자료를 왜곡해서 다른 곳에 자료를 퍼뜨리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지.]

[교수님 얼굴에 의도적으로 먹칠을 하겠다는 의도였겠군요.]

[정확히 봤구나. 왜곡된 자료를 보고 따라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화살은 나한테 돌아올 테니까.]

[…….]

[그 사건 이후로는 자료를 꽁꽁 숨겨 두고 있었단다. 내 제자가 된 준후 네게만 모처럼 공개를 했던 거고.]

[그런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저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저만 보겠습니다.]

재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쩐지 맥이 빠지는 준후였다.

재현이 정도(正道)를 추구해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

재현이 정도를 추구해도 몇몇 사람들은 그 뜻을 끝내 왜곡했다.

올바른 길을 걷는다는 일은 그만큼 외롭고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준후는 기꺼이 재현의 뒤를 따르고자 마음먹었다.

어둠을 밝히는 데는 촛불 하나면 충분했다.

준후는 자신이 그 촛불이 되고자 했다.

스승이 의료 권력에 정점을 찍고 자신이 환자 치료에 정점을 찍는다면 세상은 좀 더 살 만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편이 좋겠구나.]

[그래도…… 만약에…….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는 자료를 보여줘도 될까요? 물론 교수님의 허락을 받고 말입니다.]

[허락은 필요 없고 네 재량에 맡기마. 네가 인정한 사람이라면 나도 인정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교수님.]

[공부하는 데 어려움은 없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렴.]

[교수님 자료가 워낙 꼼꼼해서 아직까지 막히는 부분은 없습니다.]

[네가 내 제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고맙구나. 앞으로도 잘 부탁하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찾아오지는 마렴. 이래 봬도 난 무진장 바쁜 사람이니까.]

농담 같은 메시지로 재현과의 소통은 끝이 났다.

여운이 남았기에 준후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착각인지 몰라도.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에서 재현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현대에서 재현 같은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다.

재현 덕분에 준후는 외롭지 않았다.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을 얻었다.

교수님.

언젠가 제가 당신의 앞에 서겠습니다.

당신의 앞에서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적막이 흐르는 당직실.

준후는 다시금 재현의 비급을 집중해서 탐독하기 시작했다.

* * *

시간은 흘러 또 한 달.

병동 내 비타민이었던 은하는 다른 병동으로 가고 새로운 인턴이 신경외과를 찾아왔다.

그쯤에서 준후는 재현이 보내 준 뇌종양 비급을 모조리 흡수했다.

집도만 할 수 없었을 뿐 뇌종양 수술의 달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두 달 전과 두 달 후.

준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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