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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52화 (152/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52화

제28장 새 바람(2)

신경외과 당직실.

응급실 콜도 스테이션 콜도 없어 모처럼 여유로운 새벽에 준후가 깨어 있었다.

준후는 당직 근무도 아닌데 말이다.

민경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준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후의 눈빛은 날카로웠으며 눈빛은 진지했다. 졸린 기색은 눈곱만치도 없어 보였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민경은 피식 웃고 말았다.

준후의 기행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당직이 아닌데도 당직실에서 밤새 공부를 한다든가.

다른 사람이 1시간 넘게 걸릴 오더 입력을 10분 만에 끝낸다거나.

말도 안 되는 손놀림으로 각종 처치를 한 번에 성공한다거나 등등.

그래도 같이 근무한 지 두 달쯤 돼서 그럴까.

민경은 준후의 그런 기행과 활약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이제는 준후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그러려니 했다.

아니, 어쩌면 말이다.

자신이 준후에게 적응한 게 아니라 준후에게 길들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민경은 생각했다.

민경은 손등에 턱을 괸 채 준후를 계속 응시했다.

배우 뺨치는 외모.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눈빛과 표정.

다른 여성 스태프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민경을 몸서리치게 부러워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콘서트장, 맨 앞 열에서 최애 아이돌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민경은 준후를 응시하며 그런 달콤한 감정에 빠지지 않았다.

민경은 오히려 준후가 안타까웠다.

준후는 매일매일 치열했다.

준후는 매일매일 필사적이었다.

업무는 척척 해내고 있다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늘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 같았다.

신들의 저주를 받아 쉬지도 못하고 평생 거대한 바위를 언덕 위로 굴리는.

필시 두려운 거겠지?

또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게?

민경의 시선이 준후가 착용한 팔찌로 이동했다.

팔찌에 담긴 가슴 아픈 사연을 민경은 알고 있었다.

“선배, 제 얼굴에 무슨 구경거리라도 났어요?”

민경의 시선을 느꼈을까.

준후가 미소를 띤 채 농담조로 물었다.

“너 자체가 아주 좋은 구경거리잖아. 간호사들이 널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아니까 하지 마세요.”

“싫은데? 할 건데?”

“으…… 제발. 부탁드릴게요.”

“힐링 캠프 씨. 저 힐링 좀 하게 내버려 두세요.”

민경의 말에 준후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진저리쳤다.

힐링 캠프.

간호사들 사이에서 도는 준후의 별명이었다.

준후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된다. 준후가 진상 환자와 보호자를 처리해 줘서 힐링된다.

이 두 가지 의미가 섞여 최근 준후의 별명은 힐링 캠프로 굳어졌다.

“제 명줄대로 살다 죽게 해주세요. 수치사(死)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나한테 까불지 말란 말이야.”

“까분 적 없는데요.”

“지금 까불고 있잖아. 근데 준후야.”

“네. 선배.”

“……아니야. 됐다.”

민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아꼈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민경이 조언한들 준후는 듣지 않을 것이다.

시지프스는 거대한 바위를 가파른 고개로 밀어 올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게 준후의 본질이었다.

“말을 하다가 끊는 것만큼 잔인한 게 없다는데.”

“봐봐. 또 까불잖아. 힐링캠…….”

“죄송합니다.”

농담 섞인 짧은 대화가 끝났다.

준후는 다시 모니터를 보며 공부에 열중했고 민경도 업무를 위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난 널 응원하는 것밖에 못 할 것 같네.

무릎 꿇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네가 갈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가보렴.

민경은 속으로 준후의 앞길을 축복해주었다.

* * *

다음 날.

의국 스태프들이 회의실에 모여 오전 컨퍼런스를 진행 중이었다.

치프의 진행에 따라.

입원 환자 브리핑이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한편 준후는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교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동훈.

이마가 넓고 각진 얼굴형에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매를 가진 사내.

신동훈은 나흘 전 신경외과 의국에 새롭게 합류한 조 교수였다.

전공 분야는 뇌종양.

부산 브랜치에서 근무하다가 과장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준후가 동훈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오늘 오전, 동훈의 데뷔 무대.

그러니까 동훈이 서울에 와서 처음 펼치는 수술의 어시스트로 준후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준후는 베일에 싸인 동훈의 실력이 궁금했다.

“신 교수.”

수술 스케줄을 정리가 끝날 때쯤, 과장이 동훈의 이름을 불렀다.

“네. 과장님.”

“오늘 첫 수술 있는데 준비는 잘했어요?”

“딱히 준비가 필요하다기보다는 하던 대로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신 교수는 자신감이 넘쳐서 좋다니까. 내가 그래서 신 교수를 특별히 스카우트해서 데리고 왔지.”

과장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부디 내가 신 교수한테 실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물론입니다.”

뒤에서 여담이 진행되는 동안 회의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준후는 수술 스케줄 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중에서 뇌종양 수술에 관한 것만 골라서 살피고 있었다.

두 달여에 걸쳐.

스승 재현의 뇌종양 비급을 모조리 암기한 덕분일까.

수술 이름만 봐도 수술 과정이 한눈에 보였다.

수술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지점은 어디인지.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회복에 도움이 되는 처치는 무엇인지 등등.

다만 안타까운 건 아직 레지던트라 직접 집도를 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우르르르.

오전 컨퍼런스가 끝난 후.

의국 스태프들이 복도에 줄을 맞춰 서기 시작했다.

준후 곁에는 민경이 서 있었다.

“선배, 오늘 뇌수막종 어시스트 있죠?”

“응. 근데 왜?”

“종양 절제할 때 alexia(읽기능력상실) 관련된 신경이 다칠 수 있거든요. 어시스트 할 때 주의하세요.”

“…….”

“ACA(전대 뇌동맥)하고 미세 혈관 출혈도 자주 벌어지니까 당황하지 마시고요.”

“…….”

“그때는 소작하기보다 출혈 거즈를 쓰는 편이 더 효과적일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민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준후의 조언은 매우 구체적이었던데다가 교재에 없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어…… 그게…… 뇌수막종 수술에 어시스트로 들어간 적이 있었거든요. 제 조언을 따르면 교수님한테 사랑받을 수 있을 겁니다.”

“오케이, 고마워. 기억해둘게.”

민경이 눈을 찡긋거렸다.

준후는 재현이 가르쳐 준 비급을 민경과 나눴다.

이런 식이라면 재현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 다른 수술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테니까.

“회진 시작합시다.”

맨 앞줄에 선 과장의 외침에 따라 스태프들이 병동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비록 맨 뒤에 있었지만.

이 광경은 준후에게도 나름 장관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보면 나도 오늘이 첫 수술 어시스트구나.

스승님의 비급을 완전히 다 터득한 후에 뇌종양 어시스트를 하는 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야겠어.

코앞으로 다가온 수술 생각만으로도 준후는 의욕이 흘러넘쳤다.

준후는 천생 외과의였다.

* * *

벅. 벅. 벅.

수술실 세면대에서 준후는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하고 있었다.

소독액이 묻은 솔로 손가락과 손톱, 손목을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쏴아아아.

흐르는 물에 소독액을 씻어냈다.

그러자 손등에 하얗게 갈라진 피부와 붉은 반점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습진이었다.

스크럽으로 생긴 외과의의 직업병이자 자랑스러운 훈장이었다.

“오늘은 너나 나나 긴장 좀 해야겠다. 처음 보는 교수님하고 수술하는 데다가 수술 자체도 만만치 않으니, 원…….”

곁에서 스크럽을 하던 희준이 한마디 했다.

희준은 오늘 수술의 퍼스트였다.

준후는 세컨드였고.

“그러게요. 교수님이 성격이 만만치 않은 것 같던데.”

“그치?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뭔가 호랑이 스타일일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어쨌거나 오늘도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희준과 잡담을 나누며 준후는 2번 수술방 앞으로 이동했다.

소독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 가운, 수술모, 장갑, 마스크 등을 착용했다.

지이이잉.

천장에서 쏟아지는 연기 형태의 하얀 소독액.

에어 샤워를 마치고 들어선 수술방은 이미 수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먼저 왔던 인턴이 기본 세팅을 해놓은 것이다.

터벅. 터벅.

두 사람은 수술대 앞에 섰다.

수술대에 전신마취를 끝내고 누워 있는 환자는 60대 남성으로 역상성 성상세포종을 앓고 있었다.

뇌종양 등급으로 치면 3기.

종양은 후두엽(뒤통수엽)에 위치했으며 크기는 3cm x 3cm로 꽤 큰 편이었다.

“쯧쯧쯧. 성태가 정신이 없었나 본데?”

“그러게요. 체위도 엉망이고 수술 도구도 많이 모자라고. 제가 수술 끝나고 일러둘게요.”

준후는 우선 환자의 체위를 앙와위(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 복와위(엎드려 누운 자세)로 조심스럽게 바꿨다.

후두부를 절개해야 했기에.

환자는 엎드려 누운 자세를 취해야 했다.

인턴 성태가 그 점을 깜빡했던 것이다.

체위 변경 후.

두 사람은 바쁘게 나머지 수술 준비를 했다.

모자란 수술 도구와 소모품을 챙기고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세팅하고 뇌전도도 연결했다.

천장에 달린 미세 현미경의 배율도 조절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수술방 문이 열리면서 집도의 동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교수님.”

“오셨습니까? 교수님.”

준후와 희준의 인사에 동훈은 과묵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집도의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이 준비한 수술 세팅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희준은 뭐 하나라도 책 잡힐까 봐 잔뜩 긴장했던 반면.

준후는 여유가 넘쳤다.

“너희 둘.”

동훈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천천히 운을 뗐다.

“다행히 기본은 되어 있구나.”

* * *

성상세포종 제거 수술의 막이 올랐다.

동훈은 집도의 자리를 지켰고 그 옆에 소독 간호사가 섰다.

희준은 동훈의 맞은편에 있었고, 준후는 희준의 곁에 있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준후는 포피돈 용액이 묻은 솜을 포셉으로 잡아 환자의 뒤통수 부분을 소독했다.

그 위를 수술포로 덮었다.

준후의 처치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희준이 나섰다.

매직과 자를 이용해 환자의 뒤통수에 사각형을 그렸다.

절개창의 크기와 범위를 조절한 것이다.

자주 수술을 함께했던 만큼 두 사람은 죽이 착착 맞았다.

그런데 두피 절개가 막 시작되려던 찰나.

“이 선생님. 지금 장난합니까?!”

동훈의 호통이 수술방에 쩌렁쩌렁하게 퍼져 나갔다.

동훈은 소독 간호사가 건넨 메스를 받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냉랭해진 수술방.

하지만 소독 간호사는 영문을 몰라 고개만 갸웃거렸다.

희준도 동훈의 갑작스러운 꾸중에 당황한 눈치였다.

이 자리에서 호통의 이유를 아는 이는 동훈과 준후뿐이었다.

“선생님. 방금 손으로 수술대 짚었어요. 무의식적으로 하신 것 같기는 한데…….”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장갑 교체하고 올게요.”

준후의 지적에 소독 간호사가 얼굴을 붉혔다.

황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감염 및 오염의 위험이 있었기에 수술대에 손을 올리는 행동은 금기 사항이었다.

“준후라고 했지?”

동훈의 시선이 준후에게 머물렀다.

“네. 교수님.”

“넌 제법 눈썰미가 있구나. 다른 스태프의 사소한 행동도 눈여겨볼 줄 알고.”

“습관이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준후는 머쓱하게 웃었다.

무림에서 무려 20년 동안 칼 밥을 먹은 준후였다.

상대의 행동과 버릇을 관찰하고 포착하는 데는 이골이 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마외도와의 전투 도중 목숨을 잃게 되니까 말이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장갑을 교체한 소독 간호사가 복귀하면서 수술이 재개되었다.

두피 절개.

견인기로 1차 수술 시야 확보.

드릴을 이용해서 두개골에 구멍 내기.

개두기로 두개골 절개하기 등등.

수술 과정은 매끄럽게 이어졌다.

소독 간호사가 수술대에 손을 올렸던 순간을 포착했을 때부터 느낌이 오긴 했지만.

동훈은 과연 뛰어난 외과의였다.

과장이 스카우트를 해서 데려올 만했다.

손놀림이 깔끔하고 정교했다.

메스와 드릴을 젓가락처럼 쉽게 사용했다.

준후만큼이나 손 떨림이 없었으며 대부분의 처치를 한 번에 끝냈다.

그리고 한 번 끝낸 처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기 실력을 그만큼 믿는다는 의미였다.

다만 단점이라면 스태프와의 소통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동훈은 희준이나 준후에게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어시스트들이 알아서 잘하기를 바라는 듯했다.

소통을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희준은 그런 동훈을 보고 어려워하며 또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준후는 정반대였다.

준후는 오히려 동훈 같은 스타일을 좋아했다.

일 처리만 잘하면 동훈이 절대 터치하지 않는 거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수술 시작 후 30분쯤 지났을까.

경막, 지주막, 연막이 차례대로 절개되면서 주름진 뇌.

거대한 호두 같은 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준후는 뇌 견인기를 손에 쥐었다.

“준후야, 가만히 있어. 교수님들 뇌 견인할 때 제일 예민한 거 몰라? 잘못하면 신경 손상 온다고 한소리 하신다고.”

“…….”

“교수님마다 뇌 견인하는 폭도 다르잖아.”

희준이 귓속말로 준후를 만류했다.

“괜찮아요. 전 최적의 견인 폭을 알아요.”

준후도 귓속말을 하고 씽긋 웃었다.

준후에게는 스승 재현의 비급이 있었다.

후두엽에 발생한 성상세포종의 뇌를 견인하는 최적의 폭을 이미 알았다.

그리고 그걸 소화할 능력 또한 있었다.

준후는 양손에 견인기를 쥐고 뇌를 좌우로 조심스럽게 벌렸다.

충분한 시야를 확보하면서.

뇌손상을 일으키지 않는 견인 폭은 4센티미터였다.

견인을 마친 준후는 뇌 견인기를 환자의 머리에 고정시켰다.

견인 폭을 자로 잴 필요는 없었다.

준후의 손은 자, 그 자체였으니까.

목숨이 오고 가는 실전에서 수없이 검을 휘두르고, 찌르고, 베어 온 준후의 거리 감각은 일반인의 거리 감각을 초월해 있었다.

과연 견인기를 고정하자 뇌 주름 안에 숨어 있던 종양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허…… 박 교수가 널 제자로 거뒀다더니 명불허전이구나.”

동훈이 모처럼 감탄조로 말했다.

하지만 준후는 무뚝뚝한 동훈이 자신을 칭찬한 것보다 다른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내가 재현 교수님의 제자라는 걸 동훈 교수님이 어떻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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