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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53화 (153/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53화

제28장 새 바람(3)

“혹시 저와 박 교수님과의 관계를 알고 계십니까?”

“흠흠…… 이제 숨길 수가 없겠구나. 그래, 알고 있단다. 한 달 전쯤 박 교수에게 들었지.”

동훈은 한숨 섞인 말투로 진실을 고백했다.

원래 입 밖으로 내선 안 되는 이야기였다.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재현과 그렇게 약속했다.

하지만 준후의 솜씨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말이 안 나오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교수님께 준후를 부탁했다는 사실을 알면 준후가 부담스러워 할 겁니다.

-…….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요.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 전 세미나에서 만난 재현이 전한 말이었다.

동훈이 부산 분원에서 서울로 본원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 재현이 준후를 동훈에게 부탁한 것이다.

끝까지 모른 척할 생각이었건만 그게 잘되지 않았다.

못 본 척하기에 준후는 너무 돋보이는 아이였다.

세컨드 어시스트임에도 존재감이 독보적이었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썩션, 세척, 거즈 사용, 내비게이션 영상 갱신, 뇌파 검사와 뇌압 감시 등등.

각종 처치가 빠르고 정확했다.

심지어 처치가 눈에 거슬리는 것 없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결정적으로…….

조금 전 시야를 확보하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뇌신경과 혈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장 넓은 수술 시야를 확보했던 것이다.

그게 뭐가 어려워?

견인기를 뇌에 걸고 적당히 좌우로 당기면 되는 거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뭘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동훈은 준후의 비범함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동안 동훈 수술에 들어온 레지던트만 수십 명.

그중에서 준후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탑 티어였다.

오죽하면 동훈이 무심결에 재현과의 약속을 발설했을까.

“방금 이야기는 너희 둘 다 못 들은 걸로 하거라. 명백한 내 실언이니까.”

“네. 교수님.”

“네. 교수님.”

“그나저나 준후야.”

동훈이 준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뇌를 지금의 너비로 견인한 근거가 있니?”

“좌로 4센티미터. 우로 4센티미터로 견인했을 때의 시야가 최적이라고 들었습니다.”

“…….”

“4센티미터를 넘어가면 시각피질에 손상이 있을 수 있고. 4센티미터 이하라면 시야가 충분치 않다고 배웠습니다.”

준후의 똑 부러진 대답에 동훈은 백기를 들었다.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는 완벽한 설명이었다.

뇌종양 수술을 오래 경험한 외과의만이 어렴풋이 감으로 아는 정보를 준후는 알고 있었다.

이것 역시 재현의 작품이리라.

하늘이 두 쪽 나도 제자는 거두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자네도 사람은 사람인가 보군.

하긴 이만하면 나조차 탐이 나.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데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하겠지.

머리에 떠오른 상념을 밀어내며 동훈은 희준에게 시선을 옮겼다.

“자네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

“이제 대충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알고만 있어.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준후에게 듣고.”

“네. 교수님.”

“수술 계속하지.”

평정심을 되찾은 동훈은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했다.

후두엽(뒤통수엽), 뇌 주름 사이에 3cm x 3cm 크기의 뇌종양이 위치했다.

수술 전 환자가 복용한 형광 유도제로 뇌종양은 피처럼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얼핏 보면 꼭 전쟁터 같기도 했다.

“CUSA(Cavitron Ultrasonic Surgical Aspirator, 초음파 분쇄 흡인기).”

동훈은 소독 간호사가 건넨 초음파 분쇄기를 손에 쥐었다.

딸칵!

스위치를 켜자 분쇄기가 요란한 굉음을 토해냈다.

무기를 든 군인같이 비장한 마음으로 동훈은 뇌종양을 향해 진군했다.

* * *

재현과 동훈의 관계.

둘 사이에 있었던 내막을 전해 듣고 준후는 꽤 놀랐다.

인연이 이런 식으로 엮이고 또 닿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놀란 마음을 최대한 빨리 추슬렀다.

중요한 건 눈앞의 수술이었다.

사마외도와 같은 뇌종양을 제거하고 환자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신 교수님은 초음파 분쇄기를 쓰시는구나.

박 교수님은 보비를 쓰시던데.

동훈의 집도를 지켜보며 준후는 속으로 생각했다.

같은 수술이라도 사용하는 수술 도구와 수술법은 서전마다 차이가 있었다.

무림의 검객들이 사용하는 검이 다 다르고 검법의 개성이 다 다른 것처럼 말이다.

당장은 어시스트할 것이 없었으므로 준후는 동훈의 종양 제거술을 꼼꼼히 지켜보았다.

시신경과 연결된 시각피질의 손상을 피하는 손놀림.

소뇌동맥의 출혈을 피하는 손놀림.

뇌의 피막을 뚫지 않는 손놀림.

동훈의 손놀림은 빈틈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종양의 테두리를 초음파 분쇄기로 쫓는 것 같았지만.

그 단순한 동작에는 수술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를 방지하는 정교한 기술이 담겨 있었다.

재현의 비급을 암기했기에.

준후는 더 깊이 있는 시선으로 수술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훈 역시 뛰어나고 훌륭한 서전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희준아.”

“네. 교수님.”

“바이옵시(biopsy, 생체 조직 검사)샘플 좀 떠봐라. 준후는 뇌 세척하고 내비게이션 갱신하고.”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동훈이 잠시 한숨을 돌리는 동안.

희준과 준후가 오더를 따랐다.

두 사람의 호흡은 척척 맞았다.

좁은 머리 안에서 동시에 처치를 하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손과 수술 도구는 엉키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도왔다.

스태프들 간에도 케미가 존재하는데.

두 사람의 케미는 찰떡같아서 흠잡을 곳이 없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시선을 교환하지 않아도 서로가 통했다.

오더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마무리되었다.

“내가 쉬는 게 그리 꼴 보기 싫었나 보지? 이렇게 빨리 끝내면 곤란한데.”

“더 쉬십시오. 교수님.”

“그냥 해본 말이다.”

동훈이 수술대에 바짝 붙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했다.

방금 한 말이 동훈 나름의 농담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준후는 속으로 피식했다.

동훈도 마냥 무뚝뚝한 서전은 아닌 듯했다.

위이이잉.

초음파 분쇄기의 소음과 함께 종양 절제술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뇌 표면에 붙어 있는 종양에 분쇄기가 닿자.

종양이 갈가리 찢겨나가며 분쇄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켜보는 준후가 다 통쾌해지는 장면이었다.

동훈은 종양 제거술을 펼치면서 스태프들에게 세세한 오더를 전했고.

스태프들은 물심양면으로 오더를 따랐다.

동훈, 소독 간호사, 희준, 준후.

그리고 수술대에서 조금 떨어진 커튼 뒤에 위치한 마취의까지.

모두 어느새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전부 쏟아부었다.

농구나 축구, 야구 등등.

팀 스포츠에서나 느낄 법한 팀플레이 정신은 수술방에서도 고스란히 통용되는 것이었다.

모두의 노력에 보답하듯.

별 탈 없이 종양이 제거되는 가운데 준후는 불길한 징조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후두엽이 끝나는 부분에서 실개천 같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뒷목이 서늘해졌다.

“교수님, 출혈이 있습니다.”

* * *

준후가 출혈을 노티하면서 수술은 잠시 중단되었다.

사실 수술 중에 출혈은 밥 먹듯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수술 중 발생하는 압력으로.

미세 혈관이 터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훈은 출혈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출혈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출혈 부위가 심상치 않았다.

보통 후두엽 종양 제거술을 하면 소뇌동맥에 출혈이 발생하거늘.

이번 출혈은 후두엽과 소뇌가 맞닿은 부위에 발생했다.

뇌종양 수술의 베테랑인 동훈조차 처음 경험해 보는 부위였다.

“뇌압은?”

“25mmHg입니다. EEG(Electroencephalography, 뇌파검사)도 불안정합니다. 진폭이 떨어지고 진동수가 7Hz로 느려졌습니다.”

준후는 즉시 뇌 모니터링 결과를 노티했다.

“출혈이 생각보다 심한 모양인데. 잘못하면 혈종으로 굳어버리겠어. 마취의 선생님, 바이탈은요?”

체온과 호흡수.

산소 포화도는 이상이 없지만.

혈압이 140mmHg/100mmHg로 미세하게 높았다.

맥박은 분당 130회로 맥박 역시 미세하게 빈맥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마취의가 전했다.

출혈과 함께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불길한 소식들.

훈훈했던 수술방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스태프들의 눈빛에 숨길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가 드러났다.

무거운 공기가 스태프들을 짓누르기도 했다.

일이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려서야…….

서울에서 하는 첫 수술부터 꼬일 줄이야.

동훈은 흔들리는 멘탈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희준이는 환자에게 이뇨제 투입하고 환자 머리를 20도 정도 더 올려 봐. 뇌척수액도 배액하고.”

“네. 교수님.”

“준후는 다른 수술방에서 포터블 CT 가져오고.”

“네. 교수님.”

동훈의 오더에 따라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뇌압과 바이탈은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으며 준후가 가져온 이동식 CT로 환자의 머리도 촬영했다.

막 촬영한 CT 영상을 확인하고.

동훈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슬픈 예감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틀린 적이 없었다.

하필이면 측두엽과 소뇌 사이에 있는 기저 동맥에 출혈이 발생하고 말았다.

해당 부위에는 실처럼 가느다란 음영이 퍼져 있었다.

“교수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희준이 동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스태프들의 시선도 동훈에게 집중되었다.

다들 선장인 동훈의 오더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훈조차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저 부위는 나라도 어떻게 손댈 수가 없어. 수술 시야가 닿지 않는단 말이지.”

동훈은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CT 영상에서야 뇌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지만 CT 영상과 수술 시야는 엄연히 달랐다.

수술 시야라고 해봐야.

고작 환자의 뒤통수에 난 3센티미터의 절개창뿐이었다.

이 시야로는 출혈이 발생한 부위를 볼 수 없었다.

“그럼 절개창을 더 넓히면 안 될까요?”

희준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소용없어. 뇌의 깊숙한 안쪽 혈관이 터졌단 말이지. 절개창을 넓힌다고 해서 뇌 안쪽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초조한 마음에 동훈은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딱 부딪쳤다.

이대로 출혈이 잘 멎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가.

그게 가능할까.

그건 너무 위험한데.

동훈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뇌 모니터링 결과와 바이탈을 다시 보고 받았다.

불행하게도 환자의 상태가 다시 악화되고 있었다.

출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처치도 임시변통이 될 것 같았다.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것 같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돌발 상황이, 위기 상황이 동훈은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될 수술이 아니었거늘.

하필이면 왜 다른 혈관도 아니고 기저 동맥에 출혈이 발생했단 말인가.

이 정도면 뒤로 넘어져서 코가 깨지는 수준이었다.

수술방 분위기가 끝도 없이 추락하던 그때.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던 바로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준후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제게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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