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제28장 새 바람(4)
“좋은 방법?”
“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준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달 전의 준후가 현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분명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집도의조차 갈피를 잃은 상황.
레지던트 1년 차인 준후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의 준후는 달랐다.
두 달 전 준후는 재현을 스승으로 삼았고 박재현의 피와 땀, 눈물이 서린 비급(뇌종양 논문과 자료)을 달달 외웠다.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그래서 뇌종양에 관해서라면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지식을 펼칠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었다.
“준후야. 쉿.”
준후 곁에 있던 희준이 검지를 치켜들어 본인의 마스크 앞으로 갖다 대었다.
입조심 하라는 의미였다.
동훈 앞에서 함부로 나서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였다.
“준후에게 주의 줄 필요 없어.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지. 좋은 생각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감사합니다. 교수님.”
준후는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수술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암, 그렇지.”
“이런 상황이라면 내시경을 써보는 게 어떨까요?”
“내시경?”
“네. 기저 동맥을 눈으로는 볼 수는 없지만 내시경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카메라를 출혈 부위로 접근시킨 후 소작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준후는 똑 부러지게 의견을 제시했다.
스승의 비급에 비슷한 상황이 묘사된 적이 있었다.
뇌 심부의 시야를 확보할 때.
내시경을 사용했다고 말이다.
“이야, 그거 좋은 생각인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준후, 너 제법이다?”
준후가 나서는 걸 못마땅했던 희준의 눈이 웃었다.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다른 스태프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구기고 있던 표정을 풀었다.
내시경을 사용한다면.
가장 골칫거리인 시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작 집도의인 동훈의 낯은 그리 밝지 않았다.
준후의 제안에 좋다, 나쁘다는 반응 없이 침묵만 지켰다.
“발상 자체는 아주 좋았지만 실천에 문제가 있을 듯하구나.”
동훈의 미간이 좁아졌다.
“내시경이 뇌 심부로 들어가는 과정 말이다. 그 과정에서 신경과 혈관 손상이 있을 수 있어.”
“…….”
“특히 소뇌를 잘못 건드렸다간 대참사가 벌어질 거야.”
“…….”
“약물 치료에 효과를 좀 더 기다려 보는 편이 차라리 더 안전할 것 같구나.”
동훈은 준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시경을 사용해서 얻는 이득보다 내시경을 사용해서 잃은 손해를 더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교수님. 이뇨제 투입하고 뇌척수액을 배액하고도 환자 상태는 현상 유지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
“기다린다고 환자가 호전될 것 같지 않아 걱정스럽습니다. 잘못하면 뇌 탈출증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준후는 최악의 사태를 염려했다.
이는 괜한 걱정이 아니었는데.
스승 재현도 뇌출혈을 간과하다가 뇌 탈출증까지 이르러 큰 곤혹을 치른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현이 이미 경험한 비극을.
준후는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비급이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내가 지나간 가시밭길을 너만은 피해가라는 재현의 전언이리라.
“정말 최악의 경우,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동훈이 말끝을 흐리며 환자의 후두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환자 감시 장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25mmHg였던 뇌압이 30mmHg까지 상승했다.
악화되는 환자의 뇌 상태가.
스태프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고 있었다.
약물을 추가하거나.
아니면 준후의 말대로 내시경 소작술을 사용하거나.
둘 중 하나의 처치가 빠르게 이루어져야 했다.
“내시경을 사용하자는 발상은…… 준후 네가 떠올린 거니?”
“아닙니다. 박 교수님께 배웠습니다.”
“그럼 내시경 소작술의 성공률은?”
“5할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내시경으로 수술 시야를 확보 못 하면?”
“실패한 케이스에서는 뇌출혈을 잡지 못해 환자가 사망했습니다.”
준후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아무리 명의라고 해도.
국내 최고의 신경외과 명의라도 해도.
환자를 100퍼센트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수술 부위가 뇌라면 더더욱.
하지만 두렵다고 주저앉을 순 없다고 준후는 생각했다.
죽음을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해서 저항하지 않았다면 의학은 지금처럼 눈부시게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준후는 인간이 저항의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저항의 동물이라면.
마땅히 죽음과의 싸움에서도 쉽게 물러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준후는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느끼는 무기력감을 가장 싫어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그저 두 손을 놓고 누군가의 고통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지긋지긋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규칙적인 기계음이 수술방의 적막을 깨뜨렸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느냐.
안전을 위해 제 자리를 지키느냐.
최종 선택은 집도의인 동훈에게 달려 있었다.
이제 스태프들의 촉각은 전부 동훈에게 쏠렸다.
“박 교수에게 들은 바가 있다니 이번만큼은 네게 의지해야 할 것 같구나. 나도 뇌종양 수술에 내시경을 써 본 적은 없으니…….”
“교수님. 그 말씀은…….”
“준후, 네가 내시경을 잡아라. 네가 시야를 트면 내가 소작을 맡으마.”
* * *
우여곡절 끝에 내시경 소작술이 결정되었다.
맡은 역할 때문에 준후가 희준의 자리로, 희준이 준후의 자리로 변경되었다.
이제 준후 맞은편에는 동훈이 서 있었다.
레지던트 1년 차에 집도의를 마주할 수 있는 퍼스트 어시스트가 됐다라…….
충분히 감격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준후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환자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괜찮겠어? 부담스러우면 내가 할까?”
희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준후에게 물었다.
“그래도 배경 지식이 있는 제가 선배보다는 조금 나을 것 같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하…… 상황이 어쩌다가 이렇게 꼬여 버렸는지 모르겠다.”
희준이 한탄조로 말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고.”
“고마워요. 선배.”
“스코프(내시경) 받아.”
준후는 희준이 건넨 내시경을 받아들었다.
자신의 손에 환자의 목숨이 달렸다는 사실에 부담감, 책임감, 긴장감이 몰려왔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를 준후는 전부 떨쳐냈다.
심호흡 한 번으로 날려 버렸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때로는 동료의 목숨을 걸고.
사파인들과 셀 수 없을 만큼 전투를 치른 준후였다.
감정을 조절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무결검의 신화를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써 보이겠어.
실패도 없고.
포기도 없고.
좌절도 없어.
마음을 다잡은 준후의 눈빛이 매서운 빛을 뿜어냈다.
과거 사마외도들을 벌벌 떨게 했던 그 눈빛이었다.
“준후야, 준비됐니?”
“네. 교수님.”
“노파심에 하는 소리지만 내시경이 최대한 소뇌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거라. 그것만 주의하면 최악은 면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딸칵!
준후는 내시경의 렌즈와 라이트를 켰다. 라이트에서 환한 불빛이 터져 나왔다.
환자 후두엽에 난 절개창을 향해 준후는 내시경 카메라를 전진시켰다.
그동안 준후의 두 눈은 내시경 모니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지금부터는 내시경의 눈이 곧 준후의 눈이었다.
스으으윽.
절개창 내부로 진입한 내시경.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였다.
준후는 금나수의 수법으로 내시경을 손아귀에 꽉 붙들어두었다.
손가락의 잔 떨림을 막기 위해 손가락에 정(靜, 고요할 정)자 결을 운용하고.
손목에는 유(柔, 부드러울 유)자 결을 운용했다.
내시경을 완벽하게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후는 손 전체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손의 촉각을 극대화시켰다.
내시경이 뇌에 닿는 미세한 순간을 알아채서.
내시경이 뇌에 스크래치를 내거나 뇌를 손상시키는 참사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내공과 무공으로 단단히 무장했기 때문일까.
준후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내시경은 순식간에 후두엽의 하단 부까지 접근했다.
휘리리릭.
그 자리에서 준후는 손목을 180도로 유려하게 꺾었다.
내시경이 ‘ㄱ’자로 되어 있었기에 안쪽을 제대로 살피려면 내시경을 ‘ㄴ’자로 만들어줘야 했다.
그래야만 후두엽과 소뇌 주변의 모든 시야를 섭렵할 수 있었다.
허…….
벌써 저런 센스를 갖췄단 말이야.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각도를 틀 줄이야. 저런 건 박 교수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텐데?
준후를 지켜보던 동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외과의의 필수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저런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교제에는 나오지 않는.
오로지 실전에서 몸을 부딪쳐야만 깨닫게 되는 고유의 감각 말이다.
그런데 준후는 1년 차임에도 벌써 그 감각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교수님. 계속 전진하겠습니다.”
“그래. 지금처럼만 조심하렴.”
동훈은 내시경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준후의 손이 스태프의 눈이 되는 상황.
카메라의 시야는 흔들림 없이 편안했다.
준후의 손은 아예 떨림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 같았다. 후두엽과 소뇌의 틈새를 항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멀미가 생기지 않았다.
내시경이 길을 트면서 절개창으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모니터에 펼쳐졌다.
후두엽의 주름진 하단부.
주름 없이 매끄러운 소뇌의 표면부 등등.
이대로라면 기저 동맥의 출혈을 잡는 것도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스태프들은 점점 모니터 속 뇌 풍경에 빠져들었다.
저 깊숙한 어둠 너머에.
출혈을 일으킨 기저 동맥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길 기대하면서.
“옳지 잘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내시경이 뇌에 닿지도 않았고.”
동훈은 준후를 격려하며 말을 계속했다.
“부담스럽겠지만 좀 더 전진해 보거라. 소뇌와 후두엽의 왼쪽 측면을 빙 둘러서.”
“네. 교수님.”
“그래. 거의 다 왔어. 소뇌 피질 건드리지 말고. 조금만 더.”
동훈의 지시를 받은 준후의 손놀림은 더욱 세심해졌다.
내시경과 소뇌 피질과의 간격은 고작 1밀리미터.
아슬아슬한 간격이었지만.
이는 전부 준후가 의도한 간격이었다.
준후가 통제하는 간격이었다.
소뇌와 내시경의 거리가 너무 멀면.
내시경이 두개골에 부딪혀 제대로 전진을 못 하기 때문이다.
준후는 내시경으로 소뇌에 진입할 때부터 모든 것을 계산해두고 있었다.
무림에서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것은 디테일이었다.
검을 맞대는 상대의 팔 길이와 검의 길이까지 계산하는 치밀함이었다.
외과의가 되었다고 해서 그런 디테일을 잊을 리 없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실패는 있을 수 없어.
환자는 반드시 살린다.
박 교수님의 경험과 무림에서 키워 온 내 솜씨가 합쳐진다면 두려울 것이 없어.
“기저 동맥 출혈, 확인했습니다.”
준후의 듬직한 목소리가 수술방에 퍼졌다.
과연 소뇌와 후두엽을 가로지르는 기저 동맥.
그 기저 동맥에서 뻗어 나가는 미세 혈관에서 발생한 출혈이 내시경 모니터에 포착되었다.
터진 혈관에서 흐르는 핏줄기가 실개천처럼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와! 잘했다. 준후야.”
“서 선생님. 고생했어요.”
“이렇게 깔끔하게 접근할 줄은 몰랐구나. 아주 잘했다.”
스태프들의 극찬이 물밀 듯이 쏟아졌지만 준후는 방심하지 않았다.
시리도록 차가운 냉정함을 유지했다.
축배란 수술방을 나설 때야 비로소 들 수 있는 것이었다.
“교수님. 죄송한데 한 가지 부탁을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니?”
“혈관 소작도 제가 하고 싶습니다.”
“그럼 나머지 왼손을 쓰겠다는 소리니?”
“네. 믿고 맡겨주세요. 기저 동맥에 접근하는 경로를 제가 먼저 파악했습니다.”
“…….”
“이대로 제가 마무리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으음…… 좋다.”
잠시 고민하던 동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에게 순순히 보비를 넘겨주었다.
1년 차에게 혈관 소작을 맡긴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준후의 활약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준후는 주저 없이 보비를 절개창 내부로 밀어 넣었다.
인턴 기간에 터득한 양수 호박 기술로 준후 왼손의 정교함은 오른손에 뒤지지 않았다.
오른손이 이동한 경로를 암기해두었으므로 왼손이 길을 헤맬 필요도 없었다.
준후는 현대에 와서야.
외과의가 되고 나서야.
진정한 무결검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윽고 보비가 번개처럼 기저 동맥에 도달했다.
한 번 갔던 경로를 다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치이이익.
소뇌 피질에 자극 없이 정확하게 미세혈관만 지져졌다.
우는 아이가 그치듯.
혈관의 출혈 역시 뚝 그쳤다.
기저 동맥의 출혈을 잡고 재개된 뇌종양 절제술.
나머지 수술은 싱겁게 1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환자는 무사했고 수술은 대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