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제29장 미션(2)
우우우웅.
우우우웅.
준후의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내공은 거침없이 환자의 두피를 통과했다.
단단한 두개골을 지나.
경막, 지주막, 연막을 차례대로 헤쳐 나갔다.
내공으로 사물을 투과하는 내가기공은 상승무공이었다.
무림에서의 준후조차 고도로 집중하고 정신을 날카롭게 만들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준후는 이를 능숙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일념.
그리고 그 일념에서 비롯된 꾸준한 노력이 준후를 단련시켰던 것이다.
준후의 무공은 오히려 현대에서 진일보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야.
환자의 생과 사가 내 손에 달렸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준후는 뇌에 도달한 내공을 종양이 자리 잡은 뇌간으로 이동시켰다.
뇌간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내공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준후는 작은 바늘을 떠올렸고.
실제로 내공으로 빚어낸 작은 바늘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심검(心劍).
현경이나 생사경에 도달한 고수들의 심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지만 그래도 심검은 심검이었다.
뚝. 뚝. 뚝.
준후의 얼굴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환자 머리에 얹은 손은 파르르 떨렸다.
주제넘은 무공을 펼치자 육신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속이 메스꺼워지고 개미가 혈관을 뜯어 먹는 것 같았다.
준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밀어닥치는 고통을 꿋꿋하게 참아냈다.
환자가 그동안 감내했던 고통과 절망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새 발의 피였다.
이 정도는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준비는 끝났어, 가자.
뇌종양을 제거하러.
준후는 작은 바늘 모양을 띤 내공을 뇌간으로 이동시켰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심검은 뇌척수액을 따라 종양을 향해 나아갔다.
종양과 가까워지면서 종양 특유의 파괴적인 흡입력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종양은 역시 극악무도한 사파인과 꼭 닮아 있었다.
자신의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주변을 파괴하고 결국에는 본인마저 파멸하고 마는…….
만만치 않네.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다는 건가.
준후는 반자 결을 운용하며 종양의 흡입력과 맞섰다.
확실히 모형으로 연습할 때와 실전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종양의 흡입력 때문에 심검을 통제하는 일이 더 버거웠다.
까딱하면 심검이 종양에게 빨려 들어가 뇌간을 관통할 것 같았다.
의사가 아니라 살인자가 될 것 같았다.
불현듯 밀려오는 두려움을.
준후는 안간힘을 써서 물리쳤다.
환자를 반드시 치료하겠다는 각오로 승화시켰다.
불안, 긴장, 초조.
이런 감정들에 집중력을 갉아 먹힌다면 내공 종양 제거술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을까.
준후는 심검이 자신과 하나가 된 것 같은 합일감을 맛보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심검이 종양을 향해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시작했다.
만월참(滿月斬).
심검이 원을 그리며 종양의 테두리를 동그랗게 베어냈다.
심검은 정확히 종양이 잠식한 뇌간 부위만 절개해냈다.
뇌간의 피질과 정상 세포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검이 아니라 심검을 사용 중임에도.
두개골 안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음에도.
준후의 절제술은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혹독했던 수련의 결과였다.
돌풍격(突風擊).
서걱- 서걱-
심검이 무자비하게 종양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종양이 케이크처럼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종양을 충분히 다진 후.
준후는 내공을 바늘에서 실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봉침선(鳳針線).
종양 절제술을 마무리하는 최후의 무공으로, 준후는 조각난 종양들을 포승줄에 죄인을 묶듯이 한데 묶어버렸다.
4cm x 4cm 크기였던 종양을.
2.5cm x 2.5cm 크기로 줄여나갔다.
감마 나이프 수술은 종양이 3cm 이하일 때 가장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주저앉고 싶은 것을 인내하며.
준후는 마지막 치료에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뜻밖의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드르르륵.
“준후야. 뭐해? 아직까지 정위틀 세팅 안 했어? 왜 환자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있는 건데?”
생각보다 일찍 수술실을 찾은 민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위처럼 단단했던 준후의 집중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 *
“준후, 오늘은 너답지 않다?”
민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준후에게 다가갔다.
평소의 부지런한 준후라면 이미 수술 준비가 끝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수술실에 들어오니.
준후가 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준후는 그저 환자의 머리에 손만 올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민경의 거듭된 말에도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민경아, 왜 무슨 일 있어?”
“준후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민경은 뒤따라 들어 온 은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은정.
정위신경외과 교수로 오늘 감마 나이프 수술의 집도의였다.
“쟤,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니?”
“저도 모르겠어요. 서준후, 선배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올래?”
민경은 입을 뾰족하게 내밀며 준후에게 다가갔다.
목석처럼 서 있는 준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 죄송해요. 선배, 선 채로 잠깐 졸았나 봐요.”
그제야 준후가 환자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민경을 돌아보았다.
입가에는 억지 미소를 띤 채.
“그럼 환자 머리에는 왜 손을 얹고 있었어?”
“긴장하신 것 같아서 머리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어요. 저 원래 마사지 잘하잖아요.”
“뭐, 그렇기야 한데…….”
준후의 설명이 어색하고 이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민경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환자분,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
“저도 잠깐…… 잠들었던 것 같아요.”
환자가 어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준후도 졸고 환자도 졸았다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준후야 네가 이러면 내 체면이 뭐가 되니? 교수님하고 오는 길에 네 칭찬 엄청나게 했단 말이야.”
민경이 슬쩍 뒤를 돌아보니 은정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도끼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어쩌다 보니…….”
준후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어…… 준후 너 코피 나는데?”
민경은 코피를 흘리는 준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수도꼭지를 열어놓은 것처럼 준후의 양 콧구멍에서 쉴 새 없이 코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요새 좀 피곤하긴 했나 봐요. 죄송해요, 선배. 수술 세팅 부탁드릴게요.”
“그래. 빨리 화장실 가 봐.”
“교수님, 죄송합니다.”
준후가 양손으로 코를 부여잡은 채 수술실을 떠났고.
민경은 그런 준후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 * *
별관 2층 화장실.
화장실 내부 칸으로 들어간 준후는 변기를 부여잡고 있었다.
“우웨웨웩! 우웨웨웩!”
고통스러운 신음이 퍼져 나갔다.
벌어진 입에서는 새까맣게 죽은 피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참 내상과 씨름하던 준후는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 칸을 나와 세면대 앞에 섰다.
짧은 순간, 몰골이 말도 안 되게 수척해졌다. 다크서클이 짙어지고 눈빛은 퀭했다.
잔뜩 흘린 코피의 흔적이 입술과 인중과 턱에 남은 탓에.
거울에 비친 자신은 분장을 한 것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쏴아아아.
준후는 흐르는 물로 세수를 했다.
코피의 잔재를 말끔하게 씻어내고 수돗물로 입도 헹구었다.
아찔했어.
하마터면 그대로 저세상에 갈 뻔했네.
준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좀 전의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민경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준후는 크게 당황했다.
민경이 생각보다 일찍 수술실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에 집중력이 와르르 무너졌다.
기혈이 망나니처럼 역류하고 꼬이면서 준후의 속을 진탕으로 만들어 놓았다.
주화입마에 들뻔했던 아찔한 순간.
준후는 가까스로 종양 치료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뒤늦게나마 평정심을 되찾으면서.
앞으로 내공 종양 제거술을 할 때는 주변 사람들도 신경 써야겠어.
제거술 중반에 민경 선배가 나타났다면 이렇게 운 좋게 넘어가지는 못했을 테니까.
준후는 세면대 앞에 가만히 서서 몸 상태를 점검했다.
기혈이 뒤틀린 탓에.
하루 이틀 정도는 내공을 못 쓸 것 같았다.
하지만 첫 내공 종양 제거술의 수업료로는 나쁘지 않은 지출이었다.
무엇보다 환자가 무사했으니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까.
준후는 그 길로 감마 나이프 치료실로 돌아갔다.
“준후야, 몸은 좀 괜찮아?”
“네. 지금은 괜찮아요. 가뿐합니다.”
“맨날 밤새우면서 공부하고 치료하더니 이런 사달이 났잖아. 앞으로는 쉬엄쉬엄해.”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민경의 잔소리 섞인 관심이 준후는 고마웠다.
“평소에 몸 관리 잘해야 해. 의사가 환자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잠자코 있던 은정이 준후에게 한마디 했다.
“네. 교수님. 명심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에도 이러면 따끔하게 혼낼 테니까 각오해.”
은정이 한 번 더 주의를 주면서 대화가 끝났다.
준후는 치료실에 있는 모니터를 살폈다.
총 4개의 모니터에는 수술 전 촬영한 환자의 뇌 MRI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환자의 촬영 계획이 차트에 적혀 있었다.
방사선을 쬘 범위, 방향, 강도 등등.
감마 나이프 수술은 외과 수술처럼 정교함이 필요한 수술이었다.
한 번에 강력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만큼 수술이 잘못되면 정상 세포도 손상을 받기 때문이다.
“민경아, 수술 직전에 찍은 CT 영상 띄워놨어?”
“지금 띄우겠습니다.”
“너도 준후 따라 정신이 없니?”
“죄송합니다.”
민경이 CT 영상을 띄운 순간, 은정의 눈이 부엉이처럼 동그래졌다.
“응? 뭐지?”
“왜 그러세요, 교수님?”
“종양이 작아진 것 같은데? 그것도 정확하게 1.5센티미터씩.”
은정은 마우스 포인터로 종양의 크기를 확인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종양이 작아질 수도 있나요?”
“그럴 리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근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왜…….”
은정은 눈을 비벼가며 CT 영상을 다시 살폈다.
하지만 은정의 시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종양은 확실히 작아져 있었다.
그것도 잘게 잘게 쪼개진 채로.
동시에 그것들이 똘똘 뭉쳐 있는 형태로.
이는 분명 비상식적이고 기적적인 일이었다.
“교수님도 혹시 피곤하셔서…….”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이런 실수는 안 해.”
은정은 민경의 말을 딱 잘라서 받아쳤다.
동시에 환자가 외래에서 찍은 MRI 사진과 오늘 촬영한 CT 사진을 대조했다.
“정말이네요? 종양이 작아졌어요.”
“하…… 이건 대박 논문감인데? 종양이 알아서 작아지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은정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국내와 해외 논문을 다 뒤져도 이런 케이스는 절대 찾을 수 없으리라.
“어쨌든 잘된 일이겠죠?”
준후가 대화에 껴들었다.
“물론이지. 치료 계획을 수정하는 건 피곤하겠지만 치료 효과는 확실할 거야. 감마 나이프는 3센티미터 이하의 종양을 제거할 때 가장 효과적이니까.”
“…….”
“환자와 보호자분께는 희소식이 되겠고, 일단 치료 계획부터 바꿔보자.”
은정은 바쁘게 치료 계획을 수정했다.
방사선의 양, 범위, 강도 등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윽고 감마 나이프 수술기가 웅장한 기계음을 내뿜기 시작했고.
준후는 투명한 창 너머의 수술실을 바라보았다.
준후의 활약을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됐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환자만 건강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더 많은 환자를 품을 수 있을 만큼 강해졌으면 준후는 그걸로 족했다.
내공 뇌종양 조영술에.
내공 뇌종양 제거술에.
스승님께 선사 받은 뇌종양 수술의 다양한 비급까지…….
이제 슬슬 뇌종양을 파트를 졸업할 때도 된 건가.
준후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32세 뇌종양 환자가 다시 병원 외래를 방문했고.
이때 촬영한 MRI에서는 뇌종양이 깔끔하게 제거된 것으로 판독되었다.
그리고 또 4개월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