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제29장 미션(5)
응급실에 도착한 준후는 지체 없이 스테이션을 찾았다.
간호사에게 신경외과 환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환자가 머물고 있는 침상은 어디 있는지 물었다.
간략한 정보를 파악한 후, 준후는 키보드를 두들겼다.
응급실 초진 기록지에 따르면.
환자의 이름은 장병수.
나이는 55세로 집에서 전구를 갈다가 의자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허리 X-ray 촬영 결과.
요추 3-4번에 골절 소견이 있었다.
노년층에게 흔히 발생하는 외상 패턴에 준후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가 젊었다면.
아마 이 지경까지 올 확률은 낮았을 것이다.
“허리 환자 아니에요? 선생님이 왜 내려오셨어요?”
최근 안면을 튼 간호사 혜인이 준후에게 말을 걸었다.
혜인은 응급실 근무를 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오늘은 저희가 진료 볼 차례라서요.”
“엥? 진료에도 차례가 있어요?”
“허리·목 환자는 정형외과랑 신경외과가 번갈아 보거든요.”
“정말요? 전혀 몰랐는데. 허리 환자면 무조건 정형외과가 진료 보는 줄 알았어요.”
혜인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양쪽 과목은 허리와 목에 관해서 진료 보는 부위가 겹쳤다.
허리와 목은 뼈로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신경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허리·목 질환을 두고 두 과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서로 디스크 수술 등을 하겠다고 다툼을 벌인 것이다.
다만 요즘은 그런 삭막한 분위기가 사라지는 추세였다.
서로를 인정하고.
하루씩 번갈아 허리·목 환자를 진료했다.
오늘 허리·목 환자는 신경외과의 몫이었다.
“모를 수도 있죠.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선생님도요.”
준후는 혜인과 대화를 마치고 환자가 있는 침상으로 이동했다.
응급실은 예나 지금이나 분주하고 부산스러웠다.
침상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으며.
환자들이 앓는 소리.
환자들이 스태프들과 다투는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다급하게 CPR을 실시하는 스태프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아수라장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오면 그 뜻을 알게 되리라.
준후가 목표한 침상에 도착하자.
환자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 있었다.
으으으, 신음을 흘리며 한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있었다. 환자의 얼굴에 이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보호자는 그런 환자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진료를 맡은 신경외과의 서준후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보호자만 인사했고 환자는 준후를 보더니 고개만 끄덕거렸다.
“의자에서 미끄러져 등으로 넘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허리 통증은 어떠세요?”
“힘들긴 하지만 참을 만합니다.”
환자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허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프시죠?”
“칼로 쑤시는 느낌이에요. 다리도 좀 저리는 것 같고.”
“혹시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으신 적 있으십니까?”
“허리가 안 좋은 편이긴 한데. 진단을 받아본 적은 없어요.”
“이 사람이 워낙 자기 몸에 둔감해서요. 병원도 거의 안 가고 심지어 감기에 걸려도 감기약 한 번 안 챙겨 먹는다니까요.”
보호자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혹시 내가 디스크입니까?”
“허리 통증이 다리까지 내려가는 걸 방사통이라고 하는데요. 방사통 증상이 있는 걸 보면 디스크가 의심되긴 합니다.”
“주변에서 허리 수술은 받는 거 아니라고 하던데…….”
환자가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향한 대중의 인식은 좋지 못했다.
수술을 하고 오히려 허리가 더 안 좋아졌다, 한 번 수술 받으면 다음에 또 받아야 한다 등등.
이런 오해가 깔려 있었는데 이는 일부 척추 병원의 무분별한 수술이 큰 몫을 차지했다.
그들은 물욕에 눈이 멀었다.
수술할 필요가 없는 환자에게 수술을 강권하곤 했다.
그러니 환자의 경과가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받아야죠. 수술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됐습니다. 수술할 거면 그냥 진통제나 주고 보내주쇼. 찜질하고 푹 쉬면 나아지겠지.”
“의사와 병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저희를 믿어주세요.”
“괜히 있는 게 아니긴 다 돈 벌려고 있는 거지. 일 없수다.”
환자는 한결같이 치료와 진단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병원에 대한 불신.
자신의 건강에 대한 확신으로 환자는 똘똘 뭉쳐 있었다.
의사인 준후 입장에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준후는 환자를 포기할 수 없었다.
환자가 스스로를 포기할 때조차.
환자를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이 의사였다.
적어도 준후가 생각하는 의사는 그랬다.
“환자분, 잠깐 엎드려 보시겠어요?”
“그래요.”
준후의 지시에 환자는 선뜻 엎드렸다. 이번에도 으으으 앓는 소리를 내면서.
환자의 상의를 걷어 올리고.
준후는 환자의 허리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큰일 날 뻔했네!
환자의 허리를 찌르려던 손가락을 준후는 가까스로 멈췄다.
본래 진통 점혈을 하려 했지만.
이 환자에게는 진통 점혈을 안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싶었다.
-거봐. 조금 쉬다 보니까 허리가 또 좋아졌잖아. 하여간 의사라는 것들은…….
환자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게 눈에 선했던 것이다.
준후는 진통 점혈을 생략하고 환자의 허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단전에 있던 내공을 손바닥까지 끌어올린 후 내공을 환자의 허리를 향해 쏘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준후만 들을 수 있는 공명음이 퍼져 나갔다.
준후는 내공으로 골절이 발생한 환자의 요추를 샅샅이 살폈다.
환자가 CT나 MRI를 거부할 것 같아서 그랬고.
설령 촬영에 응한다고 해도.
그 전에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이윽고 피부를 통과해 요추 3-4번으로 흘러드는 내공.
내공이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나가며 디스크, 수핵, 섬유륜, 신경근, 척수들을 품기 시작했다.
내공을 사용한 검사는 거의 만능이었다.
어떤 때는 CT가 되고.
어떤 때는 MRI가 되고.
어떤 때는 초음파 검사가 되었다.
내공으로 커버할 수 없는 검사는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 심전도 검사와 뇌파 검사 정도뿐이었다.
무림에서보다 더 내공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 준후는 금방 환자의 허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됐어요?”
“네. 됐습니다. 똑바로 누우세요.”
환자의 재촉에 준후는 환자의 허리에서 손바닥을 뗐다.
준후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 * *
“아구구구.”
병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웠다.
솔직히 허리가 많이 아프긴 했다.
오늘처럼 아파본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하지만 병수는 허리 수술 따위는 받고 싶지 않았다.
20대 이후로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온 자신이 아니던가.
젊은 의사가 디스크다, 뭐다 겁을 주고 있긴 하지만 푹 쉬면 금방 좋아질 거라 확신했다.
인간에게는 본디 스스로를 치유할 능력이 있었으니까.
병수는 가만히 응급실 풍경을 훑었다.
새하얀 천장과 벽.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의사와 간호사들.
병수는 병원이 없는 병을 만들고.
또 있는 병은 더 크게 키우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환자분, 일단 MRI 검사부터 받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젊은 의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라면 아까 했잖아요. 근데 뭘 또 해요?”
“그건 엑스레이 검사였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검사고요. 더 정확한 검사가 필요합니다.”
“MRI면 비싼 검사 아니에요?”
“엑스레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죠. 하지만 환자분의 허리 건강을 생각하면 저렴하다고 볼 수도 있죠.”
“검사해서 이상이 없으면?”
“맹세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의사의 대답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단호했다.
이미 검사 결과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젊은 친구가 벌써부터 돈맛을 알아 가지고 말이야.
“그런데 환자분은 검사받을 생각 없으시죠?”
“잘 아는구먼.”
“그럼, 잠깐 일어나서 걸어보시겠어요?”
“왜요?”
“집에 갈 때 걸어가셔야 할 것 아니에요.”
“오호? 순순히 보내 주겠다고? 의외로 말이 통하는데?”
병수는 씨익 웃었다.
최대한 허리를 자극하지 않으며 몸을 일으킨 후.
두 발을 바닥에 대었다.
그런데 두 발에 체중을 싣는 순간 허리가 찌르르 울렸다.
과도가 허리를 쑤시는 것 같기도 했다.
“으으으윽.”
비틀거리는 병수를 의사가 곁에서 부축해 주었다.
마음 같아서야 의사의 부축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병수는 그럴 수가 없었다.
허리를 물론이요.
다리까지 심하게 저렸던 것이다.
의사가 부축하지 않았다면 병수는 그 자리에 털푸덕 주저앉았으리라.
“어머! 여보 괜찮아요?”
“벼…… 별것 아니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병수는 일부러 센 척했다.
“별거 맞고요. 신경도 쓰셔야 합니다. 고집을 부리시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의사 양반, 지금 날 놀리는 거요?”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걷지도 못하시는 분이 왜 진통제만 받아서 병원을 떠나겠다는 거죠?”
“그야 병원이 영 못 미더우니까. 푹 쉬면 나을 것 같으니까.”
“어르신.”
의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고 병수와 눈을 마주쳤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다정다감했던 의사의 눈빛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의사의 눈빛은 어느새 야생의 맹수와 같았다.
병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사람 분위기가 이렇게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병수는 처음 알았다.
“제가 환자분 겁이나 주려고 의사 가운을 걸치고 여기서 이러는 것 같습니까?”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어쨌거나 난 수술은 싫어.”
겁을 먹은 와중에도 병수는 제 할 말은 다했다.
“좋습니다. 그럼 저랑 내기 하나 하시죠. 환자분이 내기에서 이기시면 깔끔하게 진통제만 처방해서 퇴원처리 해드리겠습니다.”
“약속할 수 있어요?”
“네. 대신 환자분이 내기에서 지면 군말 없이 수술받으세요. 어떻습니까?”
“무슨 내기인지 들어나 봅시다.”
“아주 간단해요. 저랑 같이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세요. 소변을 보시면 환자분이 이긴 겁니다.”
의사가 말한 내기를 듣고 병수는 혀를 찼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내기가 있단 말인가.
소변만 보면 이기는 거라고?
병수는 의사의 정신 상태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죠?”
“환자분 건강으로는 농담 안 합니다.”
“좋아요. 받아들이죠. 대신 나중에 딴말하지 말아요.”
“환자분이야말로.”
의사의 부축을 받아 병수는 응급실을 벗어나 화장실을 찾았다.
그리고 양변기 앞에 섰다.
병수가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으므로.
의사가 병수의 등 뒤에서 두 손으로 병수의 허리를 받쳐주었다.
이런 개떡 같은 내기는 살다 살다 처음이지만 아무렴 어때.
실랑이할 필요 없이 퇴원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지.
끄으으응!
병수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시원하게 소변을 보려고 했다.
안 그래도 소변을 본 지 오래돼서 둔부가 묵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소변은 도통 나오질 않았다.
꽉 잠긴 수도꼭지 같았다.
순간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병수의 두 뺨.
“서…… 선생님이 뒤에 있으니까 긴장해서 잘 안 나오잖아요.”
“그럼 좌변기에서 보시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다시 의사의 부축을 받아 병수를 화장실 칸으로 들어갔다.
화장실 칸 문을 닫으니 개인 공간이 보장되었다.
이제 소변에 실패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고 싶어도 벌어질 수가 없었다.
끄으으응!
병수는 다시 힘을 주었다.
힘을 주고 또 주었다.
하지만 망할 소변은 도무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문밖에 있는 의사한테 시원한 소변 물줄기 소리를 들려줘야 하는데!
병수는 무려 10분 동안 방광과 씨름했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소변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덜컹!
병수는 착잡한 마음 절반, 놀란 마음 절반으로 화장실 문을 스스로 열었다.
“선생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