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161화 (161/424)

161화

제30장 용기(1)

응급실 스테이션.

준후는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자의 MRI 촬영이 끝나고 판독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현자 타임 왔냐? 너도 진상 환자 앞에서는 별수 없지?”

털썩!

장난 섞인 목소리의 주인공이 준후 곁에 앉았다.

안호원.

준후의 대학 동기이자 응급의학과 1년 차 레지던트였다.

“네가 진료 본 허리 외상 환자, 내가 먼저 봤었거든. 어르신 성미가 여간 깐깐하게 아니더라.”

“…….”

“검사도 싫다, 수술도 싫다. 다 싫다는데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호원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환자가 잘못 되도 네 책임은 아니야. 치료와 검사를 거부하는데 우리가 무슨 재주가 있겠어.”

“실망시켜서 미안한데 환자 지금 MRI 검사 중이다.”

“응? 진짜?”

“응. 진짜.”

준후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내공 MRI(?) 검사를 통해 준후는 환자가 마미총 증후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미총 증후군.

흔히 알고 있는 허리 디스크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질환인데.

마미총 증후군은 2번 요추 아래에 존재하는 신경 다발이 극심한 압박을 받으면서 발생한다.

해당 환자의 경우.

본래 디스크가 있었고.

작업 중 넘어져 허리를 다치면서 신경 손상이 악화되었을 것이다.

마미총 증후군의 특징 중 하나.

그것은 바로 대·소변 장애가 생기는 것인데.

마미총 신경 다발이 대·소변 신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후는 과감하게 환자와 내기를 했다. 소변을 볼 수 있으면 자의 퇴원시켜주겠다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준후는 팔짱을 낀 채 화장실에 있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선생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죠?”

놀란 부엉이 눈으로 준후를 쳐다보는 환자.

“환자분이 다친 신경은 대·소변을 관장하는 신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소변을 보기가 힘들 수밖에요.”

“그…… 그럴 수가.”

“자세한 검사를 받으면 환자분 상태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준후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까 한 약속은 당연히 지키시겠죠?”

“별수 있나요. 지켜야지.”

“참고로 검사 끝나면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가셔야 할 겁니다.”

“허리 디스크 수술은 원래 그렇게 게 눈 감추듯이 합니까?”

“단순 디스크가 아닐 확률이 높으니까요.”

준후는 미리 환자에게 마미총 증후군에 대해 설명했다.

마미총 증후군은 응급 질환이다.

48시간 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영구적으로 대·소변 기능 장애가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선생님.”

“네. 말씀하세요.”

“만약에 제가 선생님 지시를 무시하고 그냥 집에 갔다면…… 평생 대소변을 볼 때마다 불편했겠네요?”

“맞습니다. 제가 이 난리를 피운 것도 그 때문이고요.”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환자가 고개를 숙였다.

환자를 향한 준후의 진심이 이제야 전달됐던 것이다.

환자의 솔직한 고백.

눈처럼 녹아버린 쌀쌀함에 준후도 뿌듯함을 느꼈다.

환자가 스스로를 포기하더라도.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오는 법이었다.

봄날은 오는 법이었다.

“제가 병원 놈들, 아니 병원 사람들은 다 돈에 환장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충분히 오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병원 스태프들 대다수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답니다.”

환자와의 다툼은 그렇게 평화로운 엔딩을 맞았다.

준후는 환자를 업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고.

환자는 침상에 누운 채.

병동 보호사와 MRI 검사실로 이동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너도 진짜 어지간하다. 환자가 아니라 너한테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

설명을 다 듣고 나서 호원이 혀를 찼다.

“뭐, 운도 좋았지.”

준후는 피식 웃었다.

준후가 활약했던 근거는 내공 MRI 검사였다.

환자가 디스크가 아닌 마미총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과감하게 소변으로 내기를 할 수 있었다.

내공과 무공은 준후의 자랑스러운 원투 펀치였다.

“고생하고 난 환자 보러 간다.”

“그래. 너도 고생해.”

호원이 자리를 떠나자 응급 MRI 판독 영상이 떴다.

당연하게도.

또 운명처럼 환자는 마미총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2-3번 요추에서 발생한 골절편이 신경 다발을 짓누르고 있었다.

준후는 곧바로 신경외과 당직실에 전화를 걸었다.

경수가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 번호로 걸었네. 또 수술 환자냐?

“맞아. 마미총 증후군 환자다. 수술 스케줄 좀 잡아줘.”

-어휴. 누가 의학계의 김전일 아니랄까 봐. 환자 좀 그만 만들어라.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잠깐만…….

경수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 정규 수술 스케줄은 꽉 차 있거든. 민경 선배도 응급 수술에 하나 들어가 있고.

“그럼 집도의 할 사람이 없어?”

준후의 언성이 살짝 올라갔다.

마미총 증후군은 수술 시간이 빠를수록 경과가 좋았다.

그래서 환자가 당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집도 가능한 사람이 있는지 좀 더 알아봐야겠다. 일단 환자랑 수술실로 올라와.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 볼 테니까.

“그래. 부탁한다.”

통화를 끊고 준후는 수술 동의서를 출력해 환자가 복귀한 침상으로 이동했다.

환자에게 수술 과정과 부작용을 설명하고 서명을 받았다.

환자가 순한 양이 되었기에.

서명을 받는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그럼 수술실로 가시죠.”

준후는 직접 침상을 끌고 응급실을 벗어났다.

* * *

쏴아아아.

수술실 개수대에서 준후는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하고 있었다.

검사와 수술을 거부하던 환자를 설득하면서 한고비를 넘겼지만 남은 고비가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누가 수술을 집도하느냐는 문제였다.

준후의 기억에도.

오늘 수술 스케줄은 무척 빡빡했다.

도무지 마땅한 집도의를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준후가 경수의 입장이었다면 정형외과에 SOS를 보냈을 것이다.

정형외과는 상대적으로 응급 환자가 적고.

마미총 증후군 수술도 너끈하게 가능하니까.

저벅. 저벅.

이쪽으로 향하는 발소리를 듣고 준후는 고개를 돌렸다.

먼발치에서 익숙하면서도.

예상 밖의 인물이 접근하고 있었다.

“여기서 또 보네?”

“선배가 왜 여기에…….”

“왜긴 왜야 수술하러 왔지?”

“선배가 집도의세요?”

“안 될 이유가 있나?”

오늘 막 신경외과에 복귀한 시호가 준후 곁에 섰다.

소독액이 묻은 솔로 본인의 손과 팔뚝을 소독하기 시작했다.

경수의 선택은 시호였던 것이다.

“괜찮으시겠어요? 첫날부터 무리하시는 것 같은데.”

준후는 시호의 집도를 우려했다.

무엇보다 시호의 멘탈이 걱정이었다.

아까 부산 분원 신경외과에서 비보를 전하지 않았던가.

어제 새벽에 시호가 수술했던 환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시호의 멘탈은 불안정할 확률이 높았다.

“신경외과는 원래 무리하는 과야. 대수로울 것도 없어.”

“그래도 정형외과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준후야. 선 넘지 마라.”

사람 좋은 미소만 보여주던 시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쌀쌀맞아졌다.

시호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준후는 적잖이 놀랐다.

마냥 순둥순둥한 성격은 아니라는 건가.

“내가 결정했으면 넌 따라. 그거면 돼.”

“알겠습니다.”

스크럽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소독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모, 수술 가운, 마스크, 수술 장갑 등을 착용했다.

지이이잉.

1번 수술방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환자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고 인턴은 바쁘게 수술 도구를 세팅 중이었다.

준후는 수술대로 다가갔다.

무영등 불빛 아래에서 환자의 얼굴을 유독 하얗게 보였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와 연결된 환자 감시 장치는 규칙적으로 기계음을 흘렸다.

살갗에 닿는 공기는 서늘했으며 숨을 쉴 때마다 독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자분, 긴장되시죠?”

“네. 몇십 년 만에 병원에서 와서 곧바로 수술을 받다니. 내 팔자도 참 기구합니다.”

“최선을 다할 테니 저희를 믿고 따라주세요.”

“암요. 선생님을 믿습니다.”

환자를 안심시키고 준후는 인턴을 도와 수술 준비를 마쳤다.

그쯤에는 마취의도 도착해 전신마취까지 진행되었다.

이제 수술대에는 네 사람이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집도의 시호.

그 맞은편에 퍼스트 어시스트인 준후.

시호 옆에는 소독 간호사가, 준후 옆에는 인턴이 자리를 잡았다.

인력이 부족했던 터라 스태프 구성이 다소 단출했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

이 구성이면 나댄다는 소리 들은 걱정은 없을 테니까.

모처럼 실력 발휘해 볼까.

준후는 가볍게 목을 꺾고서 시호를 바라보았다.

준후의 걱정이 기우라는 듯.

시호의 눈빛은 고요하고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부터 마미총 증후군에 대한 신경 감압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시호의 목소리가 수술방에 퍼졌다.

* * *

마미총 증후군 응급 수술의 막이 올랐다.

스으으윽.

인턴이 엎드려 누운 환자의 허리를 소독하고 그 위에 새하얀 수술포를 덮었다.

“10번.”

시호가 소독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메스를 손에 쥐었다.

골절이 발생한 요추 2-3번 부위의 피부를 수직으로 갈랐다.

떨림 없는 손.

비뚤어짐 없이 수직의 형태를 띤 절개창.

시호는 메스를 능숙하고 간단하게 다루었다.

보통내기가 아닌데?

웬만한 펠로우 선생님 뺨치겠어.

준후는 시호의 솜씨에 감탄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준후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몰랐다.

고작 피부 절개 한 번 한 것 가지고 왜 그렇게 유난을 떠냐고.

하지만 준후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알았다.

시호의 솜씨와 자질이 범상치 않음을 한 번에 꿰뚫었다.

민경의 말에 따르면.

준후가 들어오기 전까지 본원의 신경외과 에이스는 시호였다고 했는데…….

과연 시호의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질 수 없지.

준후는 내공을 끌어올려 천신공(天神功)을 펼쳤다.

오감을 극대화하고 육감까지 개안하는 비공 중 하나를.

천신공을 펼치자 모든 감각이 몇 배로 증폭되었다.

시야는 한결 또렷해지고.

스태프들의 숨소리마저 손에 잡힐 듯 들리고.

절개창에서 흐르는 피 냄새는 진해지고.

손에 쥐고 있는 포셉의 감촉은 예민해졌다.

비공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준후의 눈빛은 매처럼 날카로워졌다. 지금의 준후가 시호를 서포트 한다면 수술은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가 없으리라.

스으으윽.

준후는 포셉으로 거즈를 쥔 후 거즈로 절개창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닦아냈다.

거즈가 빨갛게 물들었다.

준후는 양손에 리트랙터(견인기)를 쥐고 피부 절개창을 좌우로 벌렸다.

수술 시야가 순간 탁 트였다.

“행동 하나는 빠릿빠릿해서 좋네. 퍼스트인데도 긴장이 안 되나 봐?”

“전 퍼스트가 더 좋습니다. 제가 할 처치들이 많아지니까요.”

“아주 욕심쟁이구만.”

“수술에 관한 것이라면요.”

“부디 그 의욕만큼 어시스트도 잘해주길 바란다. 난 큰소리만 치는 사람을 싫어하거든.”

“두고 보시면 알겠죠.”

두 사람이 뼈가 있는 말을 주고받았다.

구 에이스와 현 에이스 간에 펼치는 일종의 신경전이었다.

준후와 처치를 주고받으면서 시호의 절개가 계속되었다.

서걱.

시호의 두 번째 메스질에 환자 피부의 피하층과 근막층이 단번에 갈라졌다.

수술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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