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제30장 용기(3)
마미총 증후군에 대한 신경 감압술과 기기 고정술은 2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말총머리처럼 퍼져 있던 신경 다발, 이것을 압박하던 척추뼈는 모두 제거했다.
환자의 골절되고 연약한 허리뼈를 단단하게 고정해 줄 금속판도 삽입했다.
수술은 흠잡을 곳이 없었는데.
그래서 시호는 속이 뒤틀렸다.
수술실을 나와 보호자에게 수술 경과를 알려 줄 때에도 시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사실 시호는 환자의 허리를 망쳐놓고 싶었으니까.
환자가 허리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즐기고 싶었으니까.
시호는 가학의 쾌락을 사랑했다.
의사가 된 이유도 절반은 그 때문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의사만큼 가까이서, 또 자주 볼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도 존경받는 직업이 있을까.
시호가 알기로는 없었다.
“다들 고생했는데 커피라도 한잔할까?”
“저야 좋죠.”
“저는 병동 콜 와서 바로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준후가 흔쾌히 대답했고.
인턴 진태는 고개를 숙여 죄송함을 표시한 후 쌩하니 병동으로 올라갔다.
시호는 준후와 함께 복도를 가로질러 휴게실에 도착했다.
딱딱하고 넓은 4인용 소파 네 개.
음료수 자판기와 쓰레기통이 놓인 휴게실은 단출했다.
먼저 와 있던 타과 레지던트들이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준후 넌 앉아 있어.”
“네. 선배.”
준후를 소파에 앉히고 시호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 두 개를 뽑았다.
준후 맞은 편에 앉아 커피를 내밀었다.
“민경이한테 일 잘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걸?”
“날고 기는 교수님들하고 선배들도 많은데 저야 아직 멀었죠.”
“의외로 안 멀었을지도 모르지.”
“선배도 장난 아니던데요? 저 말고 양손 쓰는 레지던트는 선배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양손잡이가 드물긴 해.”
“선배도 원래 오른손잡이시죠?”
“맞아. 왼손은 부단하게 노력해서 숙련도를 높였지.”
대답을 하고 시호는 캔 커피를 홀짝였다.
시호는 초등학생 무렵부터 왼손을 꾸준히 사용해 왔다.
부모님이 강제한 것은 아니었다.
오른손으로만 길고양이들을 괴롭히다가 왼손으로 괴롭혀봤는데 그때 느낌이 색달랐던 것이다.
그렇게 야생동물과 곤충 등을 왼손으로 고문하면서 시호의 왼손은 오른손만큼 능숙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시호는 준후 손에 걸린 게르마늄 팔찌를 응시했다.
휴게실 전등에 팔찌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준후의 말에 따르면.
저 팔찌는 뇌사로 세상을 떠난 동기가 준 유품이었다.
세상 만만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단 말이지.
너무 방심하면 안 되겠는데?
캔 커피를 쥐고 있는 시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캔이 흉물스럽게 우그러졌다.
환자의 허리를 망치겠다는 시호의 계획을 준후가 망쳐 버렸다.
신경 감압술의 범위가 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보통의 레지던트 1년 차라면 선배가 하는 수술에 토를 달지 않기 마련이었다.
지식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1년 차가 윗 년 차보다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후는 달랐다.
신경 감압술의 원칙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규칙을 사수했다.
그래서 시호는 준후에 대한 평가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와 의술밖에 모르는 바보에서.
환자와 의술밖에 모르지만.
일을 잘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바보로.
“선배는 원래 아까처럼 후배들을 시험하시나요?”
“무슨 소리야?”
“아까 신경 감압술 할 때 저를 시험하셨잖아요.”
“아. 그거?”
시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씩 해. 후배들 정신 번쩍 차리게 해주려고.”
“그럼 제대로 성공하셨네요. 진짜 깜짝 놀랐으니까.”
“나도 놀랐어. 네가 너무 진지하게 나를 들이받아서. 투우인 줄 알았잖아.”
시호는 위트있게 농담을 섞었지만 속내는 영 딴판이었다.
그 당시만 떠올리면 시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형외과가 됐든, 신경외과가 됐든 허리 구조물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뭣하면 치프나 교수님께 연락해 볼까요?
준후의 반박에 시호는 큰 위기감을 느꼈다.
원칙을 어긴 건 분명 시호였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시호는 용케 시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자신의 은밀한 범죄를 선·후배 간의 실력 테스트라는 미명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실로 재치 있고 번뜩이는 대처가 아닐 수 없었다.
“선배는 더 쉬실래요? 저는 병동 일 때문에 슬슬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 먼저 올라가. 오늘은 이상하게 몸이 피곤하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푹 쉬세요.”
휴게실을 벗어나는 준후의 뒷모습을 시호는 빤히 지켜보았다.
순간 금속판에 나사를 손가락으로 박던 준후의 말도 안 되는 모습이 겹쳐졌다.
수술 내내 빈틈없는 어시스트를 선보였던 준후의 모습이 겹쳐졌다.
분하지만 나보다 몇 수는 위였어.
실력으로 찍어 누르는 건 어렵겠어…….
간만에 호적수를 만난 건가?
시호는 뱀처럼 긴 혀로 입술을 낼름 핥았다.
서준후.
모처럼 흥미로운 먹잇감을 발견했어.
시호는 수첩을 꺼내 준후의 이름을 빨간펜으로 적었다.
* * *
아무래도 꺼림칙하단 말이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한데 말이야.
병동으로 복귀하는 동안.
준후는 시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시호와 함께 있다 보면.
드문드문 섬뜩한 느낌이 치밀어 올랐다. 마치 무림의 마두를 상대하는 것처럼.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시호는 신경 감압술의 범위를 일부러 넓게 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인지도 의문이었다.
환자의 몸을 볼모로 잡아 후배를 교육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교육이라면 문답 형식을 띠었을 텐데.
일단 준후는 시호를 경계하면서 천천히 지켜보기로 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언젠가 본색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벌써부터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준후는 운동 삼아 비상구 계단을 올랐다.
금방 6층 신경외과 병동에 도착했다.
복도를 걸으며 창가를 바라보니 병원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드러났다.
신경외과 전공을 선택한 것이 엊그제 같거늘 계절은 벌써 가을이었다.
조경을 위해 심어둔 나무들이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오프였다.
할 일은 정해놓았고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도 잡아놓았다.
터벅. 터벅.
창가에 멈춰 서 있던 준후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 유명한 환자는 좀 어때요?”
준후는 스테이션에 서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피아니스트 환자 말씀하시는 거죠?”
“네.”
“1인실에서 얌전하게 쉬고 계세요. 근데 그 환자분 성격이 엄청 예민하신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요?”
“1시간 전쯤에 바이탈 체크하러 갔거든요. 근데 갑자기 30분 뒤에 와달라고 하더라고요.”
“왜요?”
“환자분이 악보 보면서 곡 작업 같은 걸 하시던데. 방해받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바이탈 체크는 금방 끝나잖아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간호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그 환자 노티 드릴 것도 있어요. 채혈을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는데. 선생님이 해결해 주시면 안 될까요?”
“산 넘어 산이네요. 그렇게 안 봤는데…… 선생님이 곤란하면 제가 해결해야죠, 뭐.”
“감사해요. 서 쌤 최고.”
준후는 스테이션 물품실에서 물품을 챙겨 드레싱 카트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드레싱 카트를 끌고 명한이 있는 1인실을 찾았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명한이 문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도 좋다는 신호였다.
준후가 침상으로 다가가자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던 명한이 들고 있던 악보 노트를 허벅지에 내려놓았다.
“병실 생활은 좀 어떠세요?”
“여러모로 불편하네요. 식사도 최악이고,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고, 간호사들도 수시로 드나들어서 사생활이 없는 것 같고.”
명한이 불만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간호사의 말대로.
명한은 예민하고 유약한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만약 명한이 6인실을 썼다면?
방금 했던 불만들이 호화로운 사치라는 걸 깨닫게 되리라.
6인실은 개인 공간이 지극히 협소했다.
그 악명 높은 고시원이 울고 갈 만큼.
소음 공해 또한 만만치 않았다.
코 고는 환자나 보호자가 같은 병실을 쓰고 있다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예민한 면모 때문에 명한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건지도 몰랐지만.
“보호자분은 잠깐 외출하셨나 보죠?”
“네. 잠깐 간식 사러 나가셨습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두통하고 메스꺼움이 있었는데 약 먹고 좀 괜찮아졌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이 기회에 다 말씀하세요.”
“그럼 선생님이 듣다가 밤새우셔야 할걸요?”
명한이 쓰게 웃으며 드레싱 카트로 시선을 돌렸다.
“하다 하다 이젠 선생님이 직접 피를 뽑으러 오셨습니까?”
“네. 채혈하셔야 해요. 아주 기본적인 검사입니다.”
“안 하면 안 됩니까? 어차피 받는 건 뇌수술인데. 제가 바늘을 워낙 무서워하기도 하고…….”
“환자분이 싫어하는 일은 저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채혈만큼은 어쩔 수 없네요.”
“하아…… 정 그렇다면야…….”
명한이 억지로 팔을 내밀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성인이 돼서도 명한처럼 주사를 무서워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보통은 어릴 때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안 아프게. 한 번에 놔드릴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준후는 본격적인 채혈에 앞서 진통 점혈부터 시도했다.
팟! 팟! 팟!
준후의 검지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내공이 담긴 손가락은 명한의 내측 상완 신경의 일부를 마비시켰다.
해당 신경을 둔화시켜 통증 신호가 뇌까지 도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었다.
준후는 토니켓(고무줄)으로 명한의 팔을 묶고.
혈관이 튀어나온 피부를 소독한 후 과감하게 바늘을 찔렀다.
각종 고난이도 수술에.
내공 종양 조영술에.
내공 종양 절제술까지 펼치는 준후였다.
채혈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푸우우욱.
피부층과 혈관을 꿰뚫는 주사침.
주사기 밀대를 당기자 붉은 피가 주사기 몸통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 왔다.
“다 끝났습니다. 눈 뜨시고 솜으로 주사 부위 꾹 눌러주세요.”
“네? 벌써요? 아무 느낌도 안 들었는데요?”
명한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 준후는 명한의 팔뚝을 묶고 있던 토니켓을 제거했다.
“의의로 안 아프고 금방이죠?”
“……네. 선생님 같은 분이 저를 채혈해 주셨으면 주사도 별로 안 무서워했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머리 마사지라도 해드릴까요?”
“그런 것도 할 줄 아세요?”
“그럼요. 못하는 것 빼고는 다 합니다.”
준후의 농담에 명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명한의 허락을 받은 후 준후는 명한의 머리를 지압해 주었다.
양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주고.
백회혈, 아문혈, 천추혈 등을 차례대로 눌러주었다.
하지만 이는 전부 미끼였다.
준후의 진짜 목표는 내공 종양 조영술이었다.
혹시라도 MRI에서 발견되지 않은 극미세 종양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공 종양 조영술은 뇌종양 검사의 끝판왕이었다.
뇌종양이 아무리 작더라도.
뇌종양 특유의 흡입력을 감지하고 그 위치까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선생님. 엄청 시원한데요? 머리가 확 트이는 느낌이에요.”
“제가 원래 손이 야무지거든요. 지금처럼 가만히 계세요.”
충분히 지압을 한 후 준후는 명한의 머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당연히 명한의 저항은 없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각성 수술인데 미세 암까지 있으면 곤란해.
이번만큼은 쉽게 가자, 제발.
명훈의 머리에 내공을 흘려보내며 준후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