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제30장 용기(5)
피아니스트 환자의 각성 수술 전.
신경의 분포와 절제 범위를 논의했던 브레인 매핑은 1시간 만에 끝났다.
그림으로 따지면 스케치를 따는 단계였기에.
긴 의논은 필요치 않았다.
“다들 고생했고 변경 사항이 있으면 또 알려주마.”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동훈이 먼저 떠나면서 컨퍼런스 룸에는 준후와 찬영만이 남았다.
팽팽했던 공기가 그제야 느슨해졌다. 레지던트에게 교수란 언제나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교수님. 의외로 소극적이시네? 절제 범위가 그리 넓지 않은데?”
찬영이 준후를 보며 말을 이었다.
“환자가 유명인이고 과장님이 부담을 줘서 그런가? 난 절제 범위가 더 넓을 줄 알았어.”
“…….”
“4cm x 4cm 종양을 1.4cm x 1.4cm로 줄이는데 만족하실 줄이야.”
“감마 나이프를 믿고 계신 거 아닐까요?”
“뭐, 크기가 작은 종양에 감마 나이프가 효과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감마 나이프가 만능은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죠.”
준후도 동의했다.
감마 나이프는 3cm x 3cm 크기의 이하의 뇌종양에 효과가 좋았다.
그렇다고 해당 종양을 항상 완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근데 제 생각에 교수님은 평소대로 수술하시는 것 같아요.”
“응? 평소대로?”
“외모랑 말투가 강해 보여서 그렇지 수술 스타일은 섬세한 분이잖아요?”
“수술 스타일이라…… 뭐, 그런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네.”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가 집도의라면 어떻게 할 건데? 절제 범위 어떻게 잡을 거야?”
호기심이 가득 찬 찬영의 질문에 준후는 잠깐 머뭇거렸다.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었고.
몇 년 뒤에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서전으로서 자신의 수술 스타일을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찬영의 질문에는 꽤 많은 요소가 함축되어 있었다.
“저라면…….”
“저라면?”
“최대한 많이 절제했을 것 같아요. 종양을 0.5cm x 0.5cm 정도 남기지 않을까요?”
“그럴 줄 알았다. 처치도 그렇고 어시스트도 그렇고. 넌 원래 공격적이니까.”
“그러는 치프는요?”
“난 뇌종양 전공 안 할 건데?”
“와. 치사하게 이렇게 빠져나가기 있기입니까?”
“몰랐어? 진짜 내 전공은 치사하게 구는 건데?”
찬영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 일어났다. 준후에게 다가와 준후의 어깨에 살포시 손바닥을 얹었다.
“어쨌든 잘 부탁한다. 과장님한테 안 찍히게 잘해보자고. 과장님 눈 밖에 나면 진짜 괴로워질 거야.”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오냐. 고생하고.”
찬영이 떠난 후.
준후는 컨퍼런스 룸에 맴도는 침묵을 음미했다.
무림에서 극악무도한 사파인에게 자비가 없었던 준후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후는 뇌종양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싶지 않았다.
신경 손상이 없는 범위 안에서 뇌종양을 최대한 많이 제거하고 싶었다.
환자는 괜찮을 거야.
외과 수술도 있고 감마 나이프가 있고.
또 여차하면 내가 심검(心劍)으로 내공 종양 절제술을 펼치면 되니까.
변수만 통제할 수 있으면.
이번 수술은 문제없지 않을까.
준후는 내심 각성 수술의 경과를 낙관했다.
참고로 뇌종양은 다른 수술과 달리 항암 치료의 비중이 낮았다.
뇌혈관과 뇌 사이에 장벽이 있는데.
항암제가 이를 잘 통과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단점을 극복한 차세대 항암제가 개발되고 사용되고 있었지만 그 비중은 아직 높지 않았다.
각성 수술까지 앞으로 4일이라…….
준후의 시선은 한참 동안 벽에 걸린 달력에 머물러 있었다.
* * *
그날 저녁.
신경외과 당직실은 모처럼 떠들썩했다.
레지던트는 물론이요, 펠로우까지 한데 모여 시호의 복귀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당직실 중앙에 탁자를 놓고.
탁자 위에 케이크며, 피자며, 치킨 등등의 다양한 배달 음식들이 깔렸다.
음식 냄새가 당직실에 진동했다.
한데 모인 인원들은.
시호와 친분이 있는 인원들인지 너나 할 것 없이 시호에게 덕담이나 농담을 건넸다.
“파견 갔다 오면 키가 좀 커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쩜 그대로네.”
“T.O도 없는 부산에서 고생 많았다. 1년 차도 2명이나 들어왔으니까 이제부터 꽃길만 걸어라.”
“선배. 진심으로 환영해요.”
“원조 에이스가 복귀했으니 앞으로 수술 스케줄도 널널하겠어.”
시호에 대한 평가는 후했다.
다들 시호를 좋아했고, 다들 시호에게 신뢰를 보여주었다.
“다들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 챙겨주시는지.”
환영식의 주인공인 시호가 멋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홀로 동떨어진 이가 있었으니 바로 준후였다.
준후는 이 자리에 쉽게 녹아들 수가 없었다.
사회성이 없는 건 당연히 아니었고 준후는 그저 시호가 미심쩍을 뿐이었다.
부산 분원에서 시호가 집도한 환자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을 때.
시호가 언뜻 보인 섬뜩한 미소.
오늘 함께 수술한 마미총 증후군 환자의 허리 구조물을 싸그리 제거하려고 했던 행동. (물론 본인은 준후를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지만)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떠올라서.
준후는 시호를 신뢰할 수 없었다.
시호가 위선자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표정 좀 풀어라. 누가 보면 초상집 온 줄 알겠다.”
곁에 있던 경수가 준후에게 한마디 했다.
“왜? 내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아?”
“뭣하면 거울 한 번 보던가.”
“거울까지 볼 일은 아니고.”
“구 에이스가 복귀하니까 현 에이스도 긴장되나 보지?”
“해석 참 이상하게 하시네. 일없다.”
준후는 싱겁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의국 식구끼리 굳이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 났고를 가릴 필요가 있을까.
준후가 시호를 경계하는 까닭은 그저 시호에게서 사파인 특유의 위험한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아 참. 경수야 뭐 하나만 묻자.”
“뭔데?”
“응급실에 온 마미총 증후군 환자 있잖아.”
“네가 오늘 진료보고 어시스트 들어간 환자 말하는 거지?”
“어. 그 환자 왜 정형외과 콜 안 했어? 정형외과 콜 하는 게 낫지 않았어? 우리 과에 수술할 사람도 없었다며.”
“시호 선배가 내가 통화하는 걸 들었나 봐. 통화를 끊으니까 본인이 직접 집도하겠다고 하더라.”
복귀 첫날에 자발적으로 응급 수술에 들어간다라…….
그것도 본인이 집도한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시점에서…….
대체 이유가 뭐지?
시호를 향한 준후의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시호의 환영식은 30분 만에 끝났다.
2년 차 이상 레지던트와 펠로우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뒷정리는 준후와 경수의 몫이었다.
오더 입력과 차트 작성을 미리 끝내두었기에 준후는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우선 스승의 각성 수술 비급부터 살폈다.
비급을 훑는 준후의 눈이 진지했다.
재현은 지금까지 총 100여 건의 각성 수술을 진행했는데 수술 성공률이 무려 90퍼센트였다.
신경 손상률도 지극히 낮았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재현 또한 준후처럼 종양 제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수술 후 감마 나이프 수술을 시행하는 횟수는 10건도 되지 않았다.
마치 감마 나이프에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듯.
[뇌종양 수술의 근본은 외과적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다.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그러므로 환자의 머리를 열었을 때 과감하게 승부를 봐야 한다.]
스승의 비급에는 무공 심결 같은 이런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준후도 크게 공감하는 바였다.
위기를 무릅쓰더라도 거침없이 전진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준후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수술 성공 케이스 열 개가량을 분석한 뒤.
준후는 실패 케이스를 살피기 시작했다.
사실 흥미로운 건 이쪽이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신경외과의조차 실패한 수술이 있다?
도대체 무엇이 스승을 좌절케 했을까.
궁금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준후는 찬찬히 논문을 훑었다.
의외네.
급성 뇌출혈이나 C.A(Cardiac arrest, 심장마비)가 원인일 줄 알았는데.
스승의 각성 수술 실패 케이스는 준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준후의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케이스는 단 두 건뿐.
정작 수술이 실패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환자의 멘탈이었다.
각성 수술은 일정 시점에서 환자를 깨운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하는데.
그 압박감을 환자가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뇌가 통증을 못 느낀다고 해서.
환자가 수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수술방 특유의 긴장되고 엄숙한 분위기.
환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긴박한 수술 등등.
이로 인해 엄청난 압박감을 느낀 환자들이 수술 중단을 요청했던 것이다.
준후의 입장에서도 환자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열고 뇌수술을 한다고 하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면 정신과 약물로 환자를 안정시키면 되지 않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준후.
준후의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스승도 안정제를 투여하면서 환자를 달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환자가 너무 나른해지면서.
의사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집도의가 환자의 뇌 영역 일부를 신경 자극술로 자극하고 ‘지금 어느 부분에 자극이 오세요?’ 라고 묻는다.
이때 안정제를 투여받은 환자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때로는 전혀 엉뚱한 부위에 자극이 온다고 대답했다.
이런 경우 각성 수술은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각성 수술 실패 케이스 맨 마지막 부분에 스승은 이런 글귀를 담겼다.
[각성 수술 환자는 되도록 골라서 받아야 한다. 각성 수술의 핵심은 첫째도 환자의 멘탈이고, 둘째도 환자의 멘탈이고, 셋째도 환자의 멘탈이다.]
스승의 뜻밖의 통찰에 따르면.
각성 수술의 키 포인트는 절제 범위가 아닌 환자의 멘탈이었던 것이다.
야단났네.
스승님이었으면 아예 명한 씨를 안 받았을 거야.
준후는 쓰게 웃었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명한이 과연 각성 수술을 버틸 수 있을까.
준후는 아닐 것 같았다.
자유로운 영혼인 피아니스트에게 수술방은 지옥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준후가 만류한들 다 잡힌 수술 스케줄이 취소될 리도 없으니 갑갑할 따름이었다.
환자를 안정시키는 게 핵심이라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겠어.
깨달음을 얻은 준후는 황급하게 스승의 비급 문서를 닫았다.
스피커에 이어폰을 꽂고 명한이 연주한 클래식 음악을 찾아서 들었다.
음악을 공부해서.
환자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통해 환자와 라포(신뢰 및 유대관계)를 쌓는다.
준후는 각성 수술 지식보다 환자와 거리를 좁히는 것이 최우선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이번 수술의 승패는 환자의 멘탈을 관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리라.
“무슨 음악 들어?”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시호가 빙긋 웃고 있었다.
“입원 환자 중에 피아니스트가 있어서요. 친해지려고 그분 음악 듣고 있습니다.”
“유명한 씨 말하는 거지?”
“네. 근데 선배 담배 피우세요?”
준후는 시호의 가운에서 담배 냄새를 맡고 물었다.
“아니, 난 안 피워. 치프 따라 옥상 갔다 와서 그래.”
“그렇군요.”
“명한 씨가 모차르트의 레퀴엠 연주한 거 있는데 들어 봐. 내가 좋아하는 곡이야.”
“레퀴엠은 무슨 곡이죠?”
“장송곡.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는 음악이지.”
음악을 추천하는 시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준후가 오전에 봤던 그 섬뜩한 미소였다.
“나도 오늘 자기 전에 들을 예정이야. 휴우, 왜인지는 너도 알지?”
“아. 네.”
“그나저나 환자랑 친해지려고 음악도 다 듣고. 준후, 너 꽤 멋있다?”
“그런 이야기 자주 듣습니다.”
“짜식, 넉살은. 오늘 당직이지? 고생해.”
“네. 선배도 들어가서 푹 쉬세요.”
시호가 당직실을 떠난 후.
준후는 시호의 추천을 받은 모차르트의 레퀘엠(명한이 피아노로 연주한 버전)을 들었다.
끈적끈적하면서도 우울한 멜로디.
빛이 사라진 깊은 어둠 속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암울한 선율.
특유의 절망적인 분위기 때문에.
준후는 연주곡을 딱 1분만 듣고 재생을 취소했다.
계속 음악을 들었다간.
명한이 연주한 레퀴엠이 명한을 위한 레퀴엠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