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176화 (176/424)

176화

제33장 포물선(1)

피아니스트 명한의 1인실.

준후는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명한을 응시하고 있었다.

명한은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곁은 어머니인 보호자가 지켰는데 보호자의 안색이 백지처럼 창백했다.

고난이도 수술을 하루 앞둔 아들내미가 돌연 흉통과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분명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보호자 가슴도 덩달아 내려앉았으리라.

“선생님. 저 왜 이러는 거죠?”

명한이 힘겹게 눈을 뜨며 물었다.

“지금 생각 중입니다. 검사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거든요.”

대답하는 준후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황급히 병실을 찾은 준후는 각종 검사를 주문했다.

심전도 검사, 혈액 검사, 흉부 엑스레이 검사 등등.

30분 뒤에 받아본 검사 결과는 정상.

하지만 정상이라고 해서 편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환자가 정상이라면 흉통과 호흡 곤란이 발생하지 않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흉통과 호흡 곤란은 일반적으로 뇌종양에 따라오는 증상이 아니었다.

보통 폐나 심장 같은 순환기 계통의 문제였다.

이거 심장 검사를 정밀하게 해봐야 하나?

심질환까지 있으면 골치 아픈데.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괜찮습니다. 별거 아닌가 보죠, 뭐.”

명한이 의외로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 개복치처럼 성격이 예민한 명한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상황에 불안해하는 것이 맞을 텐데.

명한의 자연스러운 태도에 준후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어쩌면 명한은 흉통과 호흡 곤란의 원인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그 가설에서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간 순간, 준후는 퍼뜩 깨달음을 얻었다.

“저한테 숨기시는 거 있으시죠?”

“제…… 제가요? 왜요?”

준후의 추궁에 명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아노 연주 솜씨는 세계적인지 몰라도 연기 솜씨는 개판이었다.

엑스트라로도 못 쓸 정도였다.

“제 입으로 말할까요? 본인 입으로 말씀하실래요?”

“이상한 말씀하시네. 정말 숨기는 거 없다니까요?”

“그러면 피아노를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피아노를 걸고 맹세하시면 저도 인정하죠.”

“시시껄렁한 내기에 왜 피아노를 겁니까?”

“당연히 못 하시겠죠. 환자분은 적어도 피아노 앞에서 거짓말을 할 분은 아니니까.”

“거짓말한 적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것도 거짓말의 일종이에요.”

“거 참. 선생님은 의사지 심리학자가 아닙니다.”

“끝까지 잡아떼실 문제가 아니에요. 환자분은 저희 의료진한테 큰 실수를 하셨어요.”

준후는 명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환자분, 공황장애 있으시죠?”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나오자 명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보호자도 허를 찔린 기색이었다.

“환자분은 극심한 흉통과 호흡 곤란을 호소했고. 흉통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고 난 뒤에는 의외로 올 것이 왔다는 것처럼 편안한 태도를 보이시더군요.”

“…….”

“공교롭게도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시점부터였죠.”

“…….”

“아마 그때쯤 환자분은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뇌종양 때문에 흉통과 호흡 곤란이 온 게 아니구나. 공황장애 때문이었구나 하고.”

“…….”

“그래서 그렇게 초연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명한의 신체에 이상이 없다면 마음에 이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이상이 있다면.

더군다나 그 증상이 흉통과 호흡 곤란이라면.

명한이 앓고 있을 병명은 공황장애일 것이다.

준후는 셜록홈즈처럼 소거법과 추론으로 병명을 추리했다.

준후의 지적으로 병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명한은 침음성을 흘렸고.

보호자는 준후의 눈빛을 피했다.

“휴. 맞습니다. 저 공황장애 있어요. 한 3년 전부터 있었죠.”

명한이 준후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왜 지금까지 말씀을 안 하셨죠?”

“공황장애가 있다고 하면 각성 수술을 안 해줄 것 같아서요.”

“…….”

“그리고 최근에는 좀 괜찮아졌어요. 1년 전부터는 약을 안 먹어도 버틸 만하더군요.”

세계를 순회하며 매번 최상의 연주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명한에게 있었을 것이다.

명한에게 공황장애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말씀은 하셨어야죠. 저희도 알아야 대처를 할 것 아닙니까?”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봐요.”

“뭐를요?”

“각성 수술하다가 제가 공황에 빠지면 저를 다시 재우실 거 아니에요?”

“아마 그랬겠죠.”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약간 그런 생각이 있었나 봅니다.”

“각성 수술을 너무 만만하게 보셨네요. 잘못하면 환자분께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습니다.”

준후는 한숨 쉬며 말을 계속했다.

각성 수술 중반쯤.

환자는 맨정신인 상태에서 머리가 열려 있고 신경 자극기에서 전달되는 전류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이때의 극심한 공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평생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이로 인해 공황장애가 발전해서.

피아노를 칠 때마다 수술할 당시가 악몽처럼 쫓아다닐 수 있다고 준후는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선생님. 우리 명한이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다 피아노를 오래 잘 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잠자코 있던 보호자가 명한의 편을 들었다.

피아노를 오래 잘 치고 싶었으면.

의료진의 말을 따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진실을 말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준후는 쏘아붙이려다가 참았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환자에게 화를 내고.

환자를 원망해 봐야 신뢰관계만 더 무너질 것이다.

“일단 어머님은 아드님이 가시던 정신과 의원에서 진단서랑 드시던 약물이 뭔지 알아와 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네. 알겠습니다.”

“환자분은…… 일단 푹 쉬고 계시죠.”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왔다.

이 끔찍한 소식을 집도의 동훈에게 알리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공황장애를 가진 섬세한 피아니스트 명한에게 각성 수술이라…….

이거 정말 이대로 진행하는 게 맞을까.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의심.

준후도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 * *

-뭐? 공황장애? 그게 사실이야?

휴대폰으로 준후의 노티를 다 듣고서 동훈이 펄쩍 뛰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교수님. 환자 입으로 직접 들었습니다.”

-날벼락도 유분수지……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건데?

“공황장애를 밝히면 각성 수술을 안 해줄까 봐 걱정했답니다. 최근에는 약 없이 잘 견디기도 했고요.”

준후는 쓰게 웃었다.

준후는 병동 끝 창가 쪽에서 통화 중이었는데 창가로 흘러드는 가을 햇살이 눈부셨다.

준후의 심정과는 정반대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는 개뿔. 세계적인 거짓말쟁이잖아.

“저도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수술 전날이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뭐 그거야 그렇다만…….

동훈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준후 네 눈썰미가 좋았구나. 공황장애는 생각도 못 하던 부분인데.

동훈이 준후를 치켜세웠다.

환자가 흉통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면 폐나 심장 질환을 의심하기 마련인데…….

준후는 환자의 마음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교수님보다는 제가 환자를 더 자주, 그리고 오래 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그래. 말해 봐.

“유명한 환자, 각성 수술하는 게 맞을까요? 공황장애가 있으면 각성 상태를 못 버틸 것 같습니다.”

준후가 우려를 표시했다.

-일단 해보고. 안 되면 정신과 약물로 sedation(진정) 시켜야지.

“정신과 약물이 들어가면 각성 수술의 효과가 반감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신경 자극을 해도 반응이 둔해지고. 최악의 경우 의료진에게 해당 신경을 잘못 말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동훈이 착잡한 목소리로 설명에 나섰다.

과장이 명한의 각성 수술 자료를 언론에 뿌리면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이제 와서 각성 수술을 무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과장의 눈 밖에 나 불이익을 당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꼭 최악의 경우만 생각할 필요는 없단다. 의외로 수술이 잘 풀릴 수도 있어.

“…….”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만 미리 걱정을 사서 하지는 말자꾸나.

“네. 교수님.”

준후는 최대한 담담한 척 대답했다.

어쩌면 교수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무림을 경험한 탓에.

준후는 항상 최악의 최악인 상황부터 걱정하곤 했다.

그래야만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안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란다.

“좋은 소식도 있습니까?”

-그래. 네 스승 박재현 교수가 내일 있을 우리 각성 수술에 참관 오기로 했단다. 혹 문제가 터진다면 조언을 받을 수도 있을 거야.

“저는 참관하러 오신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다만…….”

-네가 부담스러워 할까 봐 말을 안 했겠지.

동훈이 말을 이었다.

-수술 일정은 차질 없이 그대로 진행하고 환자 감시만 좀 더 신경 쓰렴.

“네. 교수님.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노티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준후는 당직실로 돌아갔다.

경수가 곧 수술 스크럽에 들어가면서 준후는 금방 혼자가 되었다.

오더 및 차트 입력은 끝낸 상황.

응급실 콜도 없는 상황.

모처럼의 여유 시간에 준후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눈앞에 그려지는 암흑을 검은 도화지 삼아.

내일 있을 각성 수술을 그 위에 그렸다.

스승 박재현의 비급서에 나온 다양한 응급 상황들을 최대한 세밀하게, 최대한 다양하게 재현해냈다.

무림에서 심상 수련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마음으로 미리 여러 상황을 경험해두면.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마음을 다스리기도 편하고 대처도 쉬웠다.

명한에게 공황장애가 있다는.

돌발 변수가 터지긴 했지만 준후는 더 이상 그 사실이 당혹스럽지도, 초조하지도 않았다.

위기야말로 성장의 발판 아니던가.

이번 수술에 성공하고 나면.

준후는 자신이 한층 더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대망의 각성 수술 당일 아침이 밝았다.

컨퍼런스와 회진이 끝나고.

일과를 처리하는 동안.

준후는 뭐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온통 각성 수술로 가득했던 것이다.

준후의 넋은 이미 수술방에 있었다.

오전 11시가 되었을 때.

준후는 명한이 있는 1인실 병실을 찾았다.

본래는 인턴이 환자를 수술방에 옮기지만 오늘은 준후가 직접 환자를 옮기기로 했다.

“많이 떨리고 긴장되시죠?”

“네.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쿵쾅거리는데요?”

침상 등받이에 기대앉은 명한의 표정이 초조해 보였다.

곁에 있는 보호자도 마찬가지였다. 보호자의 손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옷깃을 매만지기 바빴다.

“그래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몸에 힘 풀고 가만히 계세요.”

준후는 명한이 손바닥을 내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명한의 중지 아래에 있는 혈 자리를 엄지로 둥글게 문질렀다.

내공을 적당히 실어서.

해당 위치에는 심중혈이 존재했다.

긴장, 불안, 초조할 때 심중혈을 자극해 주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다.

준후는 허락을 받아 명한의 귓불도 자극했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청운혈에 추궁과혈을 실시했다.

꿩 대신 닭이랄까.

정안이 아직 미완성이라 준후는 추궁과혈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하지만 추궁과혈도 명확한 한계가 있었으니…….

감염이 우려되는 수술방에서는 펼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정안보다 효과도 떨어지는 편이었고 말이다.

“신기하네요. 뭔가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아요.”

명한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제가 원래 병동 약손으로 유명하거든요.”

“근데…… 선생님.”

“네.”

“어제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공황장애를 숨겼으면 안 됐는데…….”

“저는 그 일을 잊었습니다. 그러니까 환자분도 마음 편하게 잊으세요.”

“그래도 그게 잘 안 됩니다. 죄책감이 들어서…….”

“환자분 마음이 지금 알레그로 같거든요? 안단테로 템포를 바꾸셔야 해요.”

“혹시 음악 공부하셨습니까?”

“얕게나마 했습니다. 환자분을 이해하고 싶어서.”

알레그로는 음악의 기호 중 템포 마커 중 하나였다.

속도를 올리라는 뜻이었다.

반면 안단테는 속도를 낮추라는 뜻이었다.

“마음을 안단테로 바꾸라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뭔가 확 와 닿네요.”

“다행입니다. 공부한 보람이 있어서.”

“병원을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선생님처럼 섬세한 분은 처음입니다.”

“당연히 섬세해야죠.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존귀한 존재니까요.”

준후가 소신을 밝혔다.

환자를 향한 공감이 옅어지고 무뎌질 때마다.

준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유일성을 되새기곤 했다.

그러면 눈앞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럼 슬슬 가실까요?”

준후는 침상 바퀴를 고정하고 있던 고정대를 발로 밀어 풀었다.

직접 침상을 끌고 병실을 나섰다.

윷은 이미 던져졌다.

결과는 모가 아니면 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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