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제33장 포물선(3)
참관용 수술방은 보통 비어 있기 마련이었다.
수술 참관을 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서전인데 서전은 자기 일정이 바빠서 타인의 수술을 볼 겨를이 없었다.
본인 수술과 외래 진료.
논문 작성 및 연구 등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모처럼 한 중년이 참관용 수술방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박재현이었다.
재현은 총 20개의 좌석 중 가장 앞,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수술방의 전체적인 광경을 볼 수 있는 대형 모니터.
그리고 수술 부위를 직접 볼 수 있는 대형 모니터를 번갈아 응시하고 있었다.
재현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축구 경기를 분석하는 축구 감독 같았다.
“아직까지는 순조롭군.”
중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혼잣말을 하며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훈의 각성 수술 팀은 호흡이 잘 맞았다.
딱히 의견을 주고받거나.
지시를 내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순조롭게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두피 절개부터 뇌막 절제까지의 과정이 매끄러웠다.
축구, 농구, 야구 등등.
인기 있는 구기 종목과 마찬가지로 수술도 스태프들끼리의 조화도 중요한데.
그 조화를 동훈의 팀은 이미 갖추고 있었다.
변수만 없다면 수술은 무난하게 종료될 것 같았다.
변수만 없다면…….
* * *
“아이고. 박 과장 이게 얼마 만이야?”
참관용 수술방에 들어온 표성덕이 호들갑을 떨며 재현의 곁에 앉았다.
표성덕은 신원대 신경외과 과장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
유별나게 큰 코와 부처님처럼 크고 넓은 귓불.
성덕은 외견상 상냥하고 따스해 보였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탐욕의 화신, 그 자체였다.
준후 또는 동훈과 친분이 없었다면 참관을 올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표 과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작년 신경외과 세미나에서 보고 1년 만이네. 반갑네, 반가워.”
성덕이 악수를 청했고 재현은 성덕과 악수를 나눴다.
“안 그래도 귀하신 몸이 뭘 또 우리 병원 수술 참관까지 하고 그래?”
“흥미 있는 수술이라서요.”
“하긴 환자가 보통 VIP여야지. 자그마치 우리나라 톱 피아니스트라고.”
성덕이 자랑하듯 말했다.
재현이 수술 그 자체에 관심을 둔 반면.
성덕은 환자의 영향력에 관심을 두었다.
성덕은 원래 이런 인간이었다.
모든 일에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손익을 따지는 인간 말이다.
지금 수술 중인 동훈의 수술 팀은 분명 성덕에게 큰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수술에 실패하면 가만 안 둘 거라고.
옹졸한 상사 밑에서 일하는 준후와 동훈에게 재현은 문득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네가 보기에 이번 수술, 어떨 것 같나?”
“각성 수술은 워낙 변수가 많아서 함부로 말씀드리기 꺼려지는군요.”
“에이, 점잔 빼지 말고 말해 봐. 자네 정도 되는 서전이 아무 생각 없이 수술을 보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닌가?”
“제 사견이 과장님께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박 교수의 의견이면 선입견이 아니라 정론이겠지.”
성덕이 고집스럽게 캐물었다.
대답이 없으면 물러서지 않을 기미였다.
재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한 70퍼센트 정도 봅니다.”
“오. 그만하면 충분해. 든든하구먼.”
“수술 성공 확률이 아니라 수술 실패 확률이요.”
“엥? 진심인가?”
활짝 펼쳐졌던 성덕의 미소가 와락 구겨졌다.
“네. 어제 동훈 교수에게 들었습니다. 환자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나도 들었어. 하지만 그게 그렇게 대수인가? 정신과 약물로 진정시키면 되잖아.”
“약물을 쓰면 각성 수술 성공률이 떨어집니다. 환자의 반응이 둔해지고 간혹 신경 자극과 반대되는 말을 하기도 해서 말이죠.”
“…….”
“저였다면 아마 이 환자에게 각성 수술을 펼치지 않았을 겁니다.”
재현이 소신을 밝혔다.
완벽한 수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우선 완벽한 조건부터 갖춰야 했다.
그런데 이번 수술은 근본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환자의 멘탈이 너무 약했던 것이다.
예민하고 섬세한.
심지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피아니스트.
그가 과연 각성 수술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재현은 회의적이었다.
“허허. 이런 대답은 듣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끝까지 지켜보시죠. 제가 항상 옳은 건 아닙니다.”
잡담이 끝나고 찾아온 침묵.
재현은 팔짱을 낀 채 모니터에 집중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부디 동훈의 수술 팀이 증명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 *
각성 유도제가 투입된 후.
스태프들은 미세 현미경으로 명한의 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만만치 않네.
종양이 워낙 크다 보니까 두정엽, 전두엽, 측두엽에 다 걸쳐 있어.
4cm x 4cm 크기의 뇌수막종을 응시하며 준후는 혀를 찼다.
MRI 영상으로 본 종양과 두 눈으로 본 종양은 그 존재감이 완전히 달랐다.
세계의 명승지를 사진으로 본 것과 실물로 보는 것만큼의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종양에게 압도당했던 준후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수술대를 벗어나 사전에 브레인 매핑을 해둔 MRI와 CT 영상을 모니터에 띄웠다.
신경 자극기도 세팅했다.
신경 자극기는 금속으로 된 봉이었는데 라디오 안테나를 꼭 닮았다.
“으음…….”
이윽고 신음과 함께 명한이 눈을 깜빡거렸다.
각성 수술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교수님,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려무나.”
준후는 사전에 설치한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고 피아노 연주곡을 재생했다.
웅장한 피아노 연주곡은 수술방의 자잘한 소음을 단번에 집어삼켰다.
수술방에 피아노 연주라…….
처음 경험해 보는 조합이라 준후도 어색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여기가 어디죠?”
“수…… 수술방인가요?”
동훈의 물음에 명한이 주변을 살피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기분은 좀 어떠세요?”
“썩 좋지는 않네요.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요. 머리도 지끈거리고요.”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막 마취에서 깨어난 부작용이니까요.”
“아, 네. 근데 피아노 연주가 들리는 것 같은데. 환청인가요?”
“아니요.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환자분 안정을 위해 틀어놓았거든요.”
“선곡은 누가 하셨죠?”
“저입니다.”
수술대로 돌아온 준후가 대답했다.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음악 공부 말고 제 공부도 하셨나 보네요.”
지금 흘러나오는 연주곡은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였다.
명한이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밝힌 곡이었다.
자신을 향한 준후의 꼼꼼한 배려 덕분일까.
가장 좋아하는 곡과 함께이기 때문일까.
명한은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수술방이 주는 낯선 감각과 긴장감을 이겨낼 수 있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시죠.”
“지금 제 머리가 열려 있는 것 맞죠?”
“네. 가끔 머리 뚜껑이 열렸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딱 그 상황입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준후는 스승 재현이 했던 농담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러자 피식 웃는 명한.
과연 재현의 농담은 타율이 좋았다. 앞으로도 자주 써먹게 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네요. 이제 저는 뭘 하면 되죠?”
“지금처럼 느긋하게 마음을 먹으시고 연주를 하면 됩니다.”
“연주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준후는 물품 선반에 올려두었던 멸균한 전자 건반을 꺼내 명한의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블루투스가 되는 상품이고.
또 미리 충전을 해두었기에 바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이것이 각성 수술을 위해 준비한 준후의 두 번째 필살기였다.
딸칵.
준후가 스위치를 켜자 건반 상단 전원부에 불이 들어왔다.
“와. 준비 많이 하셨네요. 이런 건 생각 못 했는데.”
“저희도 생각 못 했습니다. 다 준후가 환자분을 생각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고심한 덕분이죠.”
잠자코 있던 동훈이 준후를 치켜세웠다.
찬열도 흐뭇한 표정으로 준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과 시선에 준후는 그저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딱히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준후는 그저 주치의로서 본분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다행이야.
생각보다 상황이 술술 풀리는데?
공황 발작 증상도 안 보이고 수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명한이 멘탈만 유지한다면 의외로 무난히 끝날 수도 있겠어.
준후는 약간의 희망에 부풀었다.
그만큼 현재 상황은 좋았다.
잠깐 여유가 있었기에 준후는 참관용 수술방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수술을 지켜보고 있을 재현을 향한 감사의 인사였다.
준후가 했던 활약의 바탕은 며칠 전 재현의 수술을 참관하면서 얻은 것이었기에 예의를 표한 것이다.
“수술 시작 전에 연주 한 곡만 해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
명한의 부탁에 동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명한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강렬하고 힘찬 연주곡은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었다.
곡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곡이었다.
과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명한의 연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겨울의 척박하고 단단한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들의 생명력이 연주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명한의 연주로 수술방은 잠시나마 연주홀이 되었다.
수술방의 계절은 봄이 되었다.
명한의 손놀림은 화려하면서도 절도가 있었고 절도가 있으면서 부드러웠다.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준후 역시 명한의 연주에 홀리듯이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
그것은 명한에게는 정말 피아노뿐이라는 것.
만약 이번 수술이 실패한다면 명한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준비되셨습니까?”
“네.”
동훈의 질문에 명한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럼 간단한 연주를 계속해 주세요. 저희도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위치로.”
“네. 교수님.”
“네. 교수님.”
동훈의 오더에 스태프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본격적인 실전 브레인 매핑이 시작된 것이다.
준후는 수술대에서 조금 떨어진 모니터와 키보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준후의 역할은 매핑이었다.
동훈과 찬영이 환자의 뇌를 신경 자극기로 자극해서 해당 영역의 기능을 알아내면.
그 기능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
“자. 지금은 어떤 느낌이 드시죠?”
동훈이 환자의 뇌종양 최상단 부분을 신경 자극기로 자극하며 물었다.
“으…… 왼쪽 다리가 찌릿한데요?”
“뇌종양 최상단 왼쪽 하지 운동신경.”
“확인했습니다.”
준후는 마우스로 해당 구역을 드래그한 후 동훈이 말한 내용을 받아 적었다.
뇌종양의 최상단은 피아노 연주와는 상관이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므로 매핑이 끝나면 절제될 것이다.
수술 후 명한이 걷는 데 약간의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어쩔 수가 없었다.
모든 신경을 완전히 보존하는 뇌종양 절제술이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명한처럼 뇌종양의 크기가 크고.
뇌종양이 다양한 영역을 침범할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자, 지금은 어떠시죠?”
“오른쪽 손목이 잘 안 움직입니다.”
“원래 절제하기로 한 부위인데 위험할 뻔했구나.”
“네. 교수님. 확실히 피아니스트라서 그런지 팔과 손에 관련된 감각 신경이 넓은 것 같습니다.”
동훈이 찬영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고 찬영도 동훈만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각성 수술의 존재 의의였다.
자라온 환경이나 그동안 학습한 것에 따라 사람의 신경 분포는 미묘하게 달랐다.
그런데 각성 수술은 그 미묘함 부분을 잡아낼 수 있었다.
만약 일반적인 신경 분포를 따라 종양을 절제했다면.
명한은 수술 후 오른쪽 손목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으리라.
“준후야, 뇌종양 LUQ(left upper quadrant, 좌측 상부)는 배제한다.”
“네. 교수님.”
이어지는 매핑은 순조로웠다.
총 30분가량 진행되는 과정 중에서 초반 10분까지는.
그동안 준후는 매핑을 하면서 명한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불길하게도 명한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명한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건만 환자 감시 장치를 확인하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80대를 유지하던 맥박이 130까지 치솟았다.
120mmHg/80mmHg를 유지하던 혈압은 150mmHg/100mmHg까지 올랐다.
출혈이 발생했을 리는 없으니.
이는 명한이 심하게 긴장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했다.
즉 명한의 멘탈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밝았던 연주곡이 차차 음울해지고 있던 것도 준후의 불안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신경 자극술을 시작하니까 불안해진 모양이야.
뇌가 통증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해도 신경 자극을 받으면 해당 신경과 연결된 부위에서 통증이 발생하니까.
수술방 분위기도 낯설고 두려울 테고.
명한 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0분만 더 버텨줘요. 20분을 버티면 20년도 더 연주할 수 있어요.
동훈의 지시를 받아 매핑을 하고.
준후는 다시 명한을 예의주시했다.
동훈과 찬영이 의견을 교환하느라 바쁜 와중, 순간 명한이 돌발 행동을 했다.
갑자기 연주를 멈추고.
연주를 멈춘 손을 머리 쪽으로 갖다 대려고 했던 것이다.
손이나 손톱이 뇌에 닿는다면.
뇌에 감염은 물론이고 찰과상도 생길 수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
이런…… 미친!
화들짝 놀란 준후는 보법까지 밟아가며 수술대로 달려갔다.
금나수의 수법을 사용해.
머리에 막 닿으려던 명한의 손목을 낚아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준후의 벼락같은 호통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