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제33장 포물선(4)
“이…… 이거 놓으세요. 빨리요.”
“수술 부위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모르시는 거 아니잖아요?”
“그래도 너무 무섭고 불안하단 말이에요. 죄송한데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거 같아요.”
명한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준후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수술 시작 전만 해도 명한은 사기충천이었다.
삭막한 수술방에서 자신이 직접 연주한 최애곡을 들을 수 있었고 허벅지에는 전자 건반이 놓여 있었다.
예상보다 친숙한 환경에 명한은 용기를 냈다.
스태프들을 도와 각성 수술을 극복해보자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지가 맥없이 꺾여나갔다.
좋은 점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나쁜 점은 크게 느껴졌다.
우선 수술방의 서늘한 공기가 불쾌했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도 싫었다.
머리가 열려 뇌가 드러난 상태라는 사실도 꺼림칙했고.
찌릿찌릿한 신경 자극은 공포를 자아냈다.
스태프들의 사소한 실수 하나로 몸 한 군데를 아예 못 써버릴 것 같았다.
피해망상이라는 건 알았지만.
스태프들끼리 의학 용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 선생님. 숨, 숨 막혀요. 가슴도 아프고요.”
명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제야 준후가 명한을 붙들고 있던 손목을 놔주었다.
“공황발작이 오는 것 같습니까?”
“네. 수술을 계속하면 쓰러질 것 같아요. 잠깐 쉬게 해주세요.”
“교수님. 명한 씨 상태가 너무 안 좋습니다. 잠깐 쉬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꾸나.”
명한이 휴식을 요청하면서 수술은 일시 중단되었다.
스태프들이 뭐라 뭐라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명한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명한은 그저 두렵고 초조했다.
두려움과 초조함에서 파생된 신체적 증상에 포로로 끌려다닐 뿐이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쭈뼛쭈뼛 솟아오르고.
살갗에는 닭살이 돋았다.
나도 이겨내고 싶은데.
앞으로도 건강하게 계속 피아니스트 활동을 계속하고 싶은데.
빌어먹을!
젠장!
왜 나는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명한은 나약하고 예민한 자신을 스스로 꾸짖었다.
명한이라고 좋아서 지금처럼 스태프들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걸 어쩌랴.
피아노 앞이 아니라면 명한은 평균만도 못하는 모지리에 멍청이였다.
“명한 씨. 진정하고 천천히 심호흡해 보실래요?”
준후가 명한과 눈을 맞추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호흡 같은 거…… 소용없어요.”
“절 믿고 따라 해보세요. 할 수 있어요. 앞으로 딱 20분만 버티면 됩니다.”
“20분이 2년 같을 거예요. 저, 그냥 재워주세요. 일반 수술받을래요.”
명한은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거절 의사를 드러냈다.
* * *
하…… 이대로 끝나는 건가?
준후는 낭패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명한은 완전히 자제력을 잃었다.
아예 두 눈을 감은 채 파르르 몸만 떨고 있었다.
이대로 각성 수술을 속행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번 수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스승의 수술을 참관하고.
수술방에 음악을 틀고.
전자 건반까지 준비했건만 전부 물거품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명한이 다시 머리에 손을 갖다 댈 위험이 있었으므로 준후는 명한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대신 동훈과 찬영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교수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환자가 완강히 수술을 거부하는데요?”
“그래도 계속해야지.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저 지경인데 수술을 견딜 수 있을까요?”
찬영이 환자를 가리키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진정제를 투여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란다.”
“진정제를 투여하면 환자 반응이 둔해지면서 매핑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물론 완벽할 수는 없겠지. 최선의 선택이 불가능하니 차선의 선택을 하는 것뿐이야.”
동훈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환자의 갑작스러운 발작에 동훈도 퍽 실망한 눈치였다.
발작만 없었다면 수술은 성공했을 테니까.
“준후야. 매핑은 몇 퍼센트 정도 됐니?”
동훈의 시선이 준후를 향했다.
“30퍼센트 정도 끝났습니다.”
“온전하게 30퍼센트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보호자에게 정신과 서류는 받았지?”
“네. 받았습니다. 환자는 평소 알프라졸람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주사제로 IV(정맥 라인) 1mg만 투여하자.”
“…….”
“뭐해? 어서 물품실로 안 가고?”
동훈의 재촉에도 준후의 발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준후는 뭔가 무릎을 꿇는 느낌이 싫었다.
이렇게 온전한 각성 수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억울했으니까.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있었으니까.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무너져 가는 하늘에 솟아날 구멍은 없는 걸까.
고민하던 준후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니?”
“박재현 교수님이 참관을 왔는데 박 교수님의 의견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준후의 목소리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집도의 앞에서 스승 이야기를 꺼내는 게 실례이기 때문이다.
이번 수술의 책임자이자 지휘자는 누가 뭐래도 동훈이었다.
준후의 의견에 동훈이 고개를 들어 맞은편 2층에 위치한 참관용 수술실에 머물렀다.
한참 동안 길고 무거운 침묵이 수술방을 휘어 감았다.
“최소한…… 이야기는 들어보는 게 좋겠구나.”
* * *
시작할 때부터 불안하더니만…….
재현은 참관용 모니터를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환자가 공황발작을 일으키며 수술이 중단되었다. 이는 안타까운 불상사이면서 동시에 예정된 불행이기도 했다.
애초에 이 환자는 각성 수술을 실시해선 안 됐다.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이들은 영혼이 특히 섬세했다.
대부분 각성 수술을 감당하기 벅차했다.
하물며 공황장애까지 있다면 그 난이도는 수직상승하기 마련이었다(물론 공황장애 소식은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허허. 귀한 손님을 모셔놓고 무슨 추태를…….”
성덕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수술방과 연결된 전화기가 놓여 있는 데스크로 이동했다.
그 의미를 재현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성덕은 필시 스태프들을 갈굴 생각일 것이다.
띠리리링~
때마침 참관용 수술방 쪽으로 전화가 먼저 걸려 왔다.
“너희들 지금 장난해? 수술을 이따위로 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응?”
-…….
“그래서?
-…….
“알았어. 일단 전화 끊지 말고 기다려 봐.”
성덕이 전화기를 손에 든 채 재현을 바라보았다. 성덕의 입가에 어느새 비굴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박 과장?”
“네. 말씀하시죠.”
“박 과장의 지혜를 좀 빌려야겠어. 신 교수가 진정제 투여하고 각성 수술을 속행하겠다는데…… 박 교수 생각은 어때?”
재현은 즉답을 하지 않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풀 죽어 있는 스태프들의 모습을 살폈다.
그중에서도 제자인 준후의 모습이 가시처럼 눈에 박혔다.
준후가 이번 수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재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쉬는 날 제원대를 찾아 자신의 수술을 참관했고.
이를 벤치마킹해서 오늘 수술에서 멋진 활약을 했다.
수술방에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고 전자 건반까지 준비했다.
명한이 그나마 각성 수술을 견뎠던 것도 다 준후의 번뜩이는 재치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준후의 가슴에 자신이 직접 못을 박아야 했다.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재현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봐요. 어차피 책임은 우리가 질 테니까.”
“…….”
“박 과장?”
“제 판단이 꼭 옳은 건 아닙니다. 이건 반드시 알고 계셔야 해요.”
“암. 그렇고말고.”
“저라면 각성 수술을 중단하고 일반 뇌종양 수술로 전환할 겁니다.”
재현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 * *
수술방 입구에 비치된 전화기로 참관용 수술방과 대화를 마친 찬영이 수술대로 복귀했다.
찬영은 과연 어떤 소식을 가져왔을까.
재현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준후는 일찍부터 귀를 쫑긋 세웠다.
“교수님. 박재현 교수님의 전갈과 과장님의 전갈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래. 말해 봐.”
“우선 박재현 교수님은 각성 수술을 중단하는 편이 좋겠다고 권고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대답하는 동훈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준후도 덩달아 거부감을 느꼈다.
평소 포기를 모르는 스승님이 수술 중단을 추천했을 줄이야.
뭔가 스승님답지 않은 판단 같았다.
“이유는 뭐라고 하던가?”
“진정제를 투여한 각성 수술도 불완전하고 일반 종양 절제술도 불완전하다면 말입니다.”
“…….”
“환자에게 피해가 덜 가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전자의 경우 환자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염병. 피아노를 못 치게 되는 건 트라우마가 아닌가 보지?”
쿵!
동훈이 발을 구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서 과장님 전갈은?”
“그게…… 무조건 박 교수님의 견해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각성 수술에 성공 못 할 거면 최대한 안전한 쪽으로 가라고…….”
“이놈도, 저놈도 다 나를 쥐락펴락하려고 안달이 났구만. 내가 쥐X으로 보이나 보지?”
“교수님. 진정하시는 게…….”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찬영이 네가 나라며 진정하겠니?”
동훈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수술방 분위기는 한 번 더 개판이 되었다.
사공이 많아지면서 수술이 산으로 가고 있음을 준후는 느꼈다.
이대로라면 진정제를 사용한 각성 수술도.
일반 뇌종양 수술도 다 실패할 것 같았다.
초반에 좋았던 흐름과 팀 케미는 박살 난 지 오래였다.
정말 이렇게 처참하게 끝내야 해?
각성 수술을?
명한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을?
준후는 사실 동훈의 판단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스승의 판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둘 다 최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선의 길이라면 당연히 명한이 제정신으로 각성 수술을 버텨 주는 것이었다.
준후의 시선이 다시 명한에게 향했다.
명한은 여전히 불안한 눈동자로 주변을 훑고 있었다.
여린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눈치였다.
그만큼 정신이 나가 있다고 해야 할까.
젠장!
이판사판이다.
이젠 해보는 수밖에 없잖아?
준후는 명한과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정안(正眼)을 준비했다.
내공에 정념(正念)을 담아 상대방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동술을.
내공을 끌어올리며 준후는 바른 생각을 일으켰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지금 이 상황이 두렵겠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당신에겐 그럴 만한 힘이 있어요.
내공과 정념이 버무려져 준후의 두 눈동자에 맺혔다.
이에 준후의 눈동자가 한순간 푸른빛을 띠었다.
성공인가 싶었지만 실패였다.
명한은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실패의 원인이 연습 부족인지.
요령 부족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유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수술은 이미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알프라졸람 가져와. 각성 수술 속행한다.”
“교수님, 재고해 주십시오. 과장님이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과장님 명령을 어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럼 과장님 보고 직접 내려와서 수술하라고 하던가.”
“하지만…….”
“내 말을 안 듣겠다, 이거지. 좋아, 그럼 내 발로 가지고 오겠어.”
동훈이 쿵쿵거리며 직접 물품실로 향했다.
“준후야. 네가 교수님 좀 말려 봐라. 응? 내 말은 도통 안 들으시네.”
찬영이 SOS를 보냈지만 준후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현대에서 이만큼 답답하고 짜증 나고 화가 가득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는데…….
참을 인을 열 번이나 새겨도 준후의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준후는 수술방 천장을 잠깐 올려다보았다가 또다시 명한을 응시했다.
X발. 진짜 정신 좀 차리자!
응?
각성 수술받고 싶다며.
피아니스트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며.
그래서 공황장애도 숨겼던 거잖아.
그랬으면 기왕 좀 더 용기를 내주면 안 돼?
계속 무섭다고 벌벌 떨고 있을 거야?
그럼 애초에 각성 수술을 받겠다고 하지를 말던가.
당신 때문에 스태프들 박살 난 거 안 보여?
이 꼴을 보고도 당신은 일말의 죄책감이나 죄스러운 마음은 안 드는 거야?
부탁이니까 정신 차려.
당신을 구원할 사람도 당신이고.
우리를 구원할 사람도 당신이야.
제발 그걸 좀 깨달으라고.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에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다시금 버무려졌다.
그런데 뭐랄까.
기분이 이상했다.
준후가 좀 전에 펼친 정안은 생각과 내공이 물과 기름처럼 갈라져 있었는데.
이번 정안은 생각과 감정과 내공이 하나로 섞인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준후는 그 기운을 눈동자에 담아 명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명한의 눈동자에 준후의 눈동자가 비쳤다.
준후의 눈동자는 좀 전과 달리 하늘색이 아닌 짙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명한의 눈동자도 준후와 똑같은 색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다시 갈색으로 돌아온 명한의 눈동자.
이후 명한이 180도 달라졌다.
몸의 떨림이 사라지고.
눈빛에는 용맹함이 깃들었다.
“선생님. 각성 수술 속행해 주세요. 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이쯤 되자 놀란 건 오히려 준후였다.
막무가내로 펼친 정안이 오히려 성공을 거둔 것 같아서.
이게 대체 무슨 농간이지?
“하여간 다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서준후, 빨리 비켜. 환자 진정제 투입하게.”
어느새 물품실에서 복귀한 동훈이 준후 곁에 섰다.
한 손에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진정제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저 스스로 이겨낼 수 있어요. 그동안 못난 모습만 보여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진심이십니까?”
명한의 속사포 같은 말에 동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 공황에 빠졌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네. 이제 정신 차려야죠. 피아니스트로 계속 활동하고 싶어서 각성 수술을 고집하고 공황장애도 숨겼는데…….”
“…….”
“언제까지 벌벌 떨 수는 없죠. 저 때문에 여러분들이 너무 고생이시네요. 부끄럽습니다.”
“…….”
“이젠 제가 저를 돕고 여러분들을 돕겠습니다.”
놀랍게도 명한은 준후가 속으로 생각했던 감정과 말을 그대로 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