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184화 (184/424)

184화

제34장 완성(4)

뇌압이 올라갔나?

아니면 흔하지만 두려운 폐렴?

최악의 경우 심폐 소생술?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준후는 신경외과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중환자실의 풍경은 어김없이 음울했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환자 감시 장치의 전선, 수액 줄이 몸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호흡조차 감당하지 못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

음식 섭취를 비위관(콧줄)에 의존하는 환자도 많았다.

건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모르거나 잊고 산다.

의식이 있고.

걸을 수 있고.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숨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이고 축복인지.

“선생님 오셨어요?”

“네. 바로 환자 보겠습니다.”

스테이션에서 근무 중이던 연지가 준후를 알아보고 준후에게 따라붙었다.

준후는 연지와 함께 피아니스트 명한의 침상으로 이동했다.

놀랍게도 명한이 의식을 차렸다.

침상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준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는 길에 불길한 상상만 했던 탓일까.

순간 준후는 맥이 탁 빠졌다.

“선생님. 이게 어찌 된 일이죠?”

“보시는 대로 환자가 의식을 차렸어요.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전화를 끊으셨잖아요.”

“아, 제가 성급했네요.”

준후는 머쓱하게 웃었다.

중환자실 콜은 대부분 응급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응급 상황인 줄 알고 통화를 끊었다.

“환자분이 젊으셔서 그런지 회복이 빠르더라고요.”

“바이탈 하고 특이사항 있으면 노티해 주세요.”

“어제부터 오늘까지 바이탈은 다 정상이에요. 뇌압도 정상이고 중심정맥압도 정상이고.”

“…….”

“환자가 자가 호흡을 해서 인공호흡기는 선생님 오기 전에 뺐고요.”

“그렇군요. 외관상으로도 꽤 좋아 보이네요.”

준후는 한 시름을 덜며 말했다.

수술이 환자 회복의 반쪽이라면 나머지 반쪽은 수술 후 회복이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도.

각종 후유증이나 감염증으로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명한은 상태가 무척 양호했다.

“명한 씨. 여기가 어디죠?”

“어디긴 어딥니까? 보고도 몰라요? 당연히 병원이지.”

명한의 말투가 평소와 달리 공격적이었다. 준후를 향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하듯 손가락을 움직여보실래요?”

“귀찮은데 꼭 해야 합니까?”

“네. 하셔야 해요.”

명한이 마지못해 양 손가락을 움직였다. 허공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매끄러웠다.

조금 이른 판단이지만.

피아니스트로 복귀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를 번갈아 올려보세요.”

“왼쪽은 좀 힘겹게 올라가네요. 수술 제대로 한 것 맞습니까?”

“저희도 모든 신경을 완전히 살리고 싶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그건 사전에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설명만 하면 책임을 안 져도 됩니까?”

명한의 반응은 여전히 거칠었다.

대화는 제대로 되는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이에 연지가 불안한 표정으로 준후를 응시했다.

“선생님. 이 환자분 원래 이렇게 삐딱한가요? 뭔가 심통이 잔뜩 난 것 같은데.”

“아니요. 원래는 얌전한 분이에요.”

“그럼 혹시 수술에 문제가 있었나요?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갑자기 변하다니.”

연지가 준후에게 속삭이듯 말하던 그때였다.

“지금 날 앞에 두고 몰래 내 욕해요? 짜증 나네. 진짜!”

명한이 신경질을 부리며 연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후우우웅.

그런데 명한의 주먹이 연지의 팔뚝을 가격하기 직전, 준후가 나섰다.

준후는 팔을 뻗어 명한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마치 포수가 야구공을 받듯.

사파의 거두 염혼귀의 혈랑권법도 직접 받아 낸 준후였다.

명한의 주먹이라면 설령 천만 개가 날아와도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깜짝이야. 십 년 감수했네. 감사해요, 선생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거 안 놔? 나 뒤집어지는 꼴 보고 싶어?”

“이 환자 교수님한테 노티하셔야 할 것 같아요. 환자 상태가 많이 심각해 보여요.”

“아니요.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준후가 고개를 저었다.

명한의 폭력적인 언사와 행동에도 준후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연지의 우려와 달리.

수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의외로 명한에게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선생님이 신규라서 이런 환자를 못 경험해 보신 겁니다. 환자분은 섬망 상태예요.”

“섬망이요?”

“네.”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에 나섰다.

섬망이란 일시적인 정신 착란 상태였다.

섬망에 걸리면 환자는 난폭한 언사와 행동을 하게 된다.

섬망은 수술의 흔한 후유증 중 하나로 입원 환자의 10-15퍼센트가 섬망을 경험하곤 했다.

보통은 60세 이상 노인 환자에게 주로 발생하나 뇌수술을 받은 경우 젊은 환자에게도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일시적인 현상이라 관찰을 하다 보면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있고 심하면 약물 치료를 해야죠.”

“일단 억제대라도 사용해야겠어요. 이러다가 수액 줄도 뽑아버릴 것 같아요.”

연지의 불안한 시선이 명한에게 머물렀다.

명한은 준후에게 붙잡힌 주먹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남은 한 팔로는 분한 듯 침상을 두드려댔다.

쿵! 쿵! 쿵!

“억제대까지는 필요 없고요. 드레싱 세트만 가져다주세요. 온 김에 소독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정말 그걸로 될까요?”

“네. 충분합니다.”

연지가 떠난 후에야 준후는 본격적인 작업에 나섰다.

우선 제압하고 있었던 명한의 팔에 혈을 점했다.

파바바밧.

내공이 담긴 손가락으로 팔 상완부에 위치한 곡지혈과 어깨에 위치한 견우혈을 찔렀다.

툭!

힘없이 침상으로 떨어지는 명한의 팔.

명한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준후를 바라보았다.

준후는 개의치 않고 명한의 다른 팔도 점혈했다.

명한이 난리를 치지 못하도록 미리 제압한 것이다.

“뭐…… 뭐야? 왜 팔이 안 움직여?”

준후는 대꾸 대신 명한의 머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나라면 굳이 약을 쓸 필요도 없지.

섬망은 대뇌 기저핵과 중뇌의 기능적 연결이 끊어져서 발생해.

그러니까 그 둘을 이어주면 아무 문제 없어.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손바닥으로 몰렸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내공이 명한의 두피와 두개골을 통과했다.

물결치듯 두개골 내부로 진입한 내공은 대뇌 기저핵과 중뇌 사이에서 커다란 원을 그렸다.

내공의 흐름에 발맞춰.

대뇌 기저핵과 중뇌의 혈액, 뇌척수액이 활발하게 순환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잠시 둔해졌던 신경 간의 연결이 복구되리라.

내공 섬망 치료를 하면서 준후는 명한을 유심히 살폈다.

화가 잔뜩 났던 명한의 표정이 서서히 온순해졌다.

기능 부조화를 겪던 대뇌 기저핵과 중뇌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의학 지식과 내공의 성공적인 조화.

이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준후만 가능한 일이었다.

“선생님. 제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죠?”

명한이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준후가 알고 있던 평소의 명한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준후는 그제야 명한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 * *

드르륵. 드르륵.

드레싱 카트를 끌고 스테이션으로 돌아가던 중.

연지는 명한이 누운 침상을 힐끔거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막말을 하고 심지어 자신에게 주먹질을 했던 명한은 어느새 얌전한 양이 되었다.

준후와 잠깐 단둘이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준후는 갑자기 멀쩡해진 환자와 좀 더 대화를 나누더니 드레싱(소독)을 하고 중환자실을 떠났다.

“선생님. 섬망이라는 게 원래 빨리 낫는 질환인가요?

스테이션으로 복귀해 소모품을 정리하면서 연지는 근처에 있던 선배 간호사 헤미에게 물었다.

“뭐? 섬망? 누가 섬망인데?”

혜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피아니스트 환자요.”

“발등에 불 떨어졌네. 그 환자 VIP라서 각별하게 신경 써야 하거든. 특히 섬망이면 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게 아닌데.”

“…….”

“계속 말 걸어줘야 하고. 조도도 관리해야 줘야 해. 안 그러면 착란이 심해지거든.”

“지금은 멀쩡한데요?”

“그럴 리가 없어. 약물을 투여해도 사나흘은 집중 관리가 필요해.”

혜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멀쩡해요. 그래서 선생님께 여쭤본 거예요. 섬망이 원래 그렇게 빨리 낫는 거냐고.”

“내가 확인해 볼게.”

잠시 후 혜미가 명한의 침상을 다녀온 후 스테이션에 복귀했다.

혜미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정말 멀쩡하네? 애초에 섬망이 아니었던 거 아니니?”

“환자가 저한테 막 욕을 하던데요? 주먹질도 했는데 그건 준후 선생님이 막아줬어요.”

“그럼 섬망 맞는데. 어쩜 그렇게 빨리 해결됐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연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혜미의 말을 듣고 보니 환자의 회복이 더더욱 마법 같았다.

약물을 투여해도 사나흘의 집중 관리가 필요한데 어떻게 환자는 단 몇 분 만에 상태가 호전됐을까.

중환자실의 미스터리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근데 섬망 환자 준후 선생님이 봤니?”

“네.”

“준후 선생님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어. 다른 선생님들하고 달리 환자들 킵(환자 곁에서 붙어서 환자를 집중 감시하는 일)도 자주 하고.”

“…….”

“준후 선생님이 치료하는 환자는 이상하게 회복이 빠르더라고.”

“엄청 신기하네요.”

“그치? 그래서 우리끼리는 준후 선생님을 약손이고 불러. 손만 대면 환자가 좋아지니까.”

“그랬구나. 저는 그냥 선생님이 잘생기기만 한 줄 알았어요.”

“잘 생기기도 한 거지.”

혜미가 웃으며 연지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혹시 준후 선생님 여자친구 있나요?”

“요 맹랑한 게. 근무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걸 물어?”

“그래도 궁금한 걸요. 열 번 찍으면 한 번은 넘어가지 않겠어요?”

“소용없어. 준후 선생님은 이미 넘어간 나무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이미 임자가 있다는 뜻이지.”

혜미의 대답에 연지는 크게 실망했다.

사귀는 사람만 없었으면.

자신이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나서볼 수 있었을 텐데.

흑흑흑.

나만 없어.

멋지고 다정하고 남자친구.

* * *

중환자실을 빠져나온 준후는 복도 끝에 위치한 직원 휴게실을 찾았다.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쿠션감 없는 푸석푸석한 소파에 앉았다.

휴게실에 있는 사람은 준후 뿐이었다. 덕분에 모처럼 고요를 만끽할 수 있었다.

딸칵!

캔 커피 뚜껑을 따서 준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명한의 섬망을 성공적으로 치료했음에도 준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오히려 섬망을 치료하고 난 후에.

피어난 의문이 있었다.

섬망은 잘만 치료했는데.

뇌사 환자와 식물인간 환자는 왜 내공으로 치료할 수 없을까.

준후의 의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공에는 장기 및 혈관, 신경의 회복을 돕는 치유력이 존재했다.

무림에서 고수들이 큰 부상을 입고도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회복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내공은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성호가 좋은 일례였다.

성호가 뇌사에 빠졌을 당시.

준후는 성호의 뇌를 살리기 위해 내공을 몽땅 때려 부었다.

그러고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무리한 내공 운용으로 혼절하고 말았다.

뇌가 비가역성을 띠기 때문에.

한 번 망가지면 다시 회복을 할 수 없는 성질을 띠기 때문에.

뇌사 및 식물인간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내공 역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의 힘이었다.

실제로 준후는 내공을 바늘 형태로 형상화해서 뇌종양을 제거하는 내공 뇌종양 절제술을 펼칠 수도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기겁할 만한 기적을 말이다.

그렇다면 죽은 뇌를 치료할 만큼 내공이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내공에 무언가 다른 치료법을 곁들여야 하는 걸까.

고민하던 준후는 오른손목에 차고 있던 건강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성호의 유품이자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의가 되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맹세의 산물을.

형, 끝까지 지켜봐 줘.

난 뇌사와 식물인간의 치료 방법을 찾아낼 거야.

반드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