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제34장 완성(5)
“먼저 와서 쉬고 있었네.”
휴게실 문이 열리며 나타난 사람은 치프 찬영이었다. 찬영은 캔 커피를 뽑은 후 준후 옆자리에 앉았다.
각성 수술을 함께한 후부터.
준후는 찬영과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이른바 전우애가 생긴 것이다.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함께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함께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후자의 효과는 좋았다.
“수술 어시스트 하고 오시는 길이죠?”
“어시스트는 아니고 신 교수님이 봐주는 앞에서 집도했다. 4년 차면 집도도 많이 하거든.”
“고생 많으셨어요. CPR도 한 것 같은데.”
“그게 네가 어떻게 알아?”
준후의 말에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땀 냄새가 살짝 나서요.”
“땀 냄새가 난다고? 난 모르겠는데?”
찬영이 자기 몸에 코를 대고 킁킁 머리며 대답했다.
찬영이라면 못 맡을 수도 있었다.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는 금방 익숙해지기에.
하지만 각종 무공 수련으로 오감이 발달한 준후는 냄새에 민감했다. 찬영에게서 피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땀 냄새로 CPR를 예상했어?”
“네. 뇌종양 수술은 땀을 흘릴 만큼 격한 행동을 하지는 않잖아요. 수술방 온도가 낮기도 하고.”
“내가 땀이 많은 거라면?”
“치프가 땀이 별로 없다는 건 진작 알고 있어요.”
“귀신이네. 귀신이야.”
찬영이 감탄조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기사는 봤니?”
“무슨 기사요?”
“각성 수술 기사. 과장님이 언론 플레이를 아주 진하게 했던 모양이더라.”
“확인해 볼게요.”
준후는 휴대폰으로 명한을 검색했다.
[국내 최고의 피아니스트 유명한. 각성 수술 무사히 성공해.]
[뇌종양 수술을 받고 재기를 꿈꾸는 피아니스트.]
[신원대 병원 신경외과 팀, 고난이도 각성 수술에 성공해.]
확인해 보니 각성 수술에 관련된 기사만 10개가 넘었다. 찬영의 말대로 과장의 입김이 들어간 게 분명해 보였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속담.
이 속담만큼 과장에게 어울리는 속담이 있을까.
과장은 의사면서도 환자의 회복보다 본인의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혹시라도 수술 실패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교수님은 물론이요, 너나 나나 이거였지.”
찬영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명한 씨 상태는 좀 어때?”
“방금 의식을 차렸어요. 섬망이 잠깐 있었는데 정상으로 돌아왔고요.”
“섬망이 금방 치료될 리가 없는데? 약 써도 보통 사나흘은 가지 않나?”
찬영이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수술이 워낙 성공적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환자가 젊기도 하고요.”
준후는 태연하게 둘러댔다.
내공으로 치료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환자분 일반 병실로 전실해도 되지 않을까요? 의식 있는 상태면 중환자실을 못 버틸 것 같아서요.”
“확실히 맨정신으로 버티긴 힘들겠지. 대변 문제도 걸릴 거고.”
“저도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가뜩이나 멘탈이 약한 사람이니까요.”
놀랍게도 신경외과 중환자실은 화장실이 없었다.
환자들 대부분이 혼수상태인 데다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니 화장실 설치가 안 된 것이다.
스태프들은 중환자실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했다.
“성인한테 맨정신으로 기저귀에 똥 싸라고 하면 누가 편히 싸겠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건 저도 못 참죠.”
“어쨌든 전실 건은 내가 교수님한테 말해서 진행할게. 넌 신경 끄고 있어.”
“감사합니다. 치프. 저는 먼저 올라가 볼게요.”
“오냐. 고생해라.”
준후는 찬영과 작별인사를 하고 휴게실을 떠났다.
* * *
병동에 도착한 준후는 병실부터 라운딩했다.
병동 라운딩은 인턴의 몫.
중환자실 라운딩은 레지던트 1년 차의 몫.
역할이 나뉘어졌지만 준후는 일반 병실도 자주 돌았다. 본인이 주치의인 환자와 보호자를 세심하게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라운딩을 돌면서.
준후는 수술을 앞둔 환자와 보호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수술이 끝난 환자에게는 회복이 잘되도록 후유증이나 특이 증상 여부를 꼼꼼하게 물었다.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농부가 그만큼 벼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농사가 성공한다는 뜻이었다.
같은 이치가 병원에서도 통했다.
환자는 의사의 발소리를 듣고 회복되는 것이었다.
드르르륵.
준후는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병실을 찾았다.
창가 쪽으로 이동하자 환자와 보호자가 보였다.
환자의 이름은 민태웅.
6개월 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전실한 식물인간 환자였다.
연명 치료 중단 결정이 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환자는 나름 잘 버티고 있었다.
창가 쪽 병실을 배정해서.
따스한 햇살을 맞을 수 있어서 환자가 잘 견디고 있다고 준후는 낭만적으로 생각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준후가 인사를 하자 보호자가 인사를 받았다.
환자 부인의 몰골이 초췌했다.
환자 병수발을 드는 것도 힘들 테고.
무엇보다 힘든 건 기약 없는 기다림 때문일 것이다.
“오늘 부모님은 안 오셨나 봐요?”
“네. 대신 저녁쯤에 시부모님이 오시기로 했어요.”
“양가 가족분들께서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남편이 하는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부인이 힘없이 웃으며 환자를 응시했다.
환자는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지 않았다.
뇌사 환자와 달리 식물인간 환자는 자가 호흡이 가능했다.
하지만 폐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어 환자는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러워 보였다.
흉곽이 힘겹게 오르내렸고 숨소리도 거칠었다.
비위관(콧줄)로 공급되는 영양분과 각종 수액으로 환자는 간신히 또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아 참. 선생님. 후원해 주시는 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저도 다 여유가 있어서 하는 거니까.”
준후가 손사래를 쳤다.
준후는 매달 몇십만 원을 민태웅 환자의 계좌에 입금하고 있었다.
뉴튜브 수익이 평균적으로 300만 원은 나왔기에 지원을 해도 돈에 쪼들릴 일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보호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얼마나 더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식물인간 환자라도 치료를 포기하지 말고 기적적인 회복을 꿈꿔봐야 한다.
준후는 이런 입장이었지만 반대 입장 또한 충분히 존중했다.
환자로 인해 환자의 가족들과 보호자들이 겪는 고통은 지옥과도 같았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준후는 힘겹게 운을 뗐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연명 치료를 계속 진행하실 겁니까? 환자분께서 식물인간이 된 지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
“그동안 보호자분은 환자분 곁을 충실하게 지키셨고요. 이 정도 정성이라면 환자분도 충분히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요?”
“안 돼요. 저는 남편 없으면 안 돼요.”
보호자는 단칼에 준후의 제안을 거절했다.
축 처졌던 목소리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제가 자살하려던 걸 막고 보듬어준 게 남편이에요. 저는 그런 남편을 포기할 수 없어요.”
“하지만…….”
“회복할 가능성이 100퍼센트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확률이 워낙 적은 데다가 보호자 분이 너무 고생하셔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방금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보호자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준후에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 같았다.
가족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족을 위해 본인이 계속 피를 흘릴 수도 없고.
보호자의 상황이 진퇴양난이었기에 이를 지켜보는 준후도 같이 괴로웠다.
준후는 환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환자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환자 목 좌측에 손바닥을 얹었다.
우우우웅.
단전에서 손바닥으로, 손바닥에서 다시 환자의 목으로 내공이 흘러들었다.
내공의 최종 목적지는 미주 신경이었다.
미주신경.
이는 12쌍의 뇌신경 중 10번째 뇌신경으로 심장, 폐, 위, 신장 등에 영향을 끼쳤다.
최근에 논문을 본 적이 있어.
프랑스 의학 팀이 3개월 동안 식물인간 환자의 미주신경을 자극했더니 환자가 기적적으로 회복했다고.
그럼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준후는 그런 희망을 안고 내공으로 미주신경을 자극했다.
5분가량 치료를 해도 별 차도는 없었지만 준후는 실망하지 않았다.
환자를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굳건한 뜻을 보호자는 보였다.
그렇다면 준후도 환자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내공 미주 신경 자극술을 하다 보면 정말 기적처럼 환자가 회복할지도 모를 일이었고.
잠시 후 보호자가 병실로 복귀했다.
준후는 환자의 목에서 손을 떼었고 보호자에게 목례한 후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당직실로 돌아가는 도중.
한 병실의 풍경이 준후의 눈길을 끌었다.
병실 출입구 쪽.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가 환자복 상의를 걷은 채 허리를 새우처럼 굽히고 있었다.
그 곁에는 동기 경수와 인턴 호진이 있었다.
주사기를 손에 든 호진의 손이 애처로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 * *
‘하…… 이 새끼 새 가슴이네.’
경수는 호진을 지켜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경수는 호진에게 요추천자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요추천자는 허리에 바늘을 꼽아 뇌척수액을 채취하는 술기로 어렵지만 꼭 배워둬야 하는 술기였다.
필요한 설명을 끝내고.
실전에 들어가려는데 호진의 상태가 영 메롱이었다.
잔뜩 겁을 먹어 주사기를 쓰지 못했던 것이다.
호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계속 밀당을 했다.
주사기로 천자를 할 듯 말 듯 경수의 애를 태웠다.
“너 신경과 간다며. 그럼 요추천자 맨날 해야 돼. 이런 식이면 레지던트 돼서 인턴한테 먹히고 선배한테는 찍힌다?”
환자가 대화를 엿 들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경수는 호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 네.”
“대답만 하지 말고 빨리 찔러. 천자 포인트도 알려줬잖아. 요추 3-4번 사이 척수강이라고.”
“잠깐 심호흡 좀 하겠습니다.”
“심호흡만 몇 번째냐. 여기가 병원인지 명상원인지 헷갈릴 정도다. 인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시간에 죄송할 짓을 하지 마.”
경수는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폐급도 아닌 녀석이 왜 이렇게 주눅 들었는지 경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드르르륵.
때마침 병실 문이 열리고 준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이에 가뜩이나 좁았던 경수의 미간은 더욱 좁아졌다.
오지라퍼인 준후가 무슨 행동을 할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선배, 오셨어요?”
한편 준후를 발견한 호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호진도 경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긴장한 호진 대신 준후가 요추천자를 직접 해주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 요추천자 배우고 있나 봐?”
“네. 처음이라서 긴장되네요.”
호진이 환자를 의식해 작게 말했다.
“너 괜히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술기 대신해 주면 버릇 나빠져. 호진이도 차근차근 배워야 할 거 아니야.”
“나도 알아.”
“응?”
“그냥 구경하러 왔다고.”
준후가 평소와 달리 뒷짐 진 채 말했다. 경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오지라퍼가 오지랖을 안 부린다니…….
태양이 서쪽에서 떴나 싶었다.
아니면 뭔가를 잘못 먹었거나.
“천자는 대신 안 해줄 건데. 둘이서 잠깐 이야기하는 건 괜찮지?”
“그건 상관없어.”
“호진아. 잠깐 병실 바깥으로 나와.”
“네. 선배.”
경수는 병실 바깥으로 나가는 준후와 호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준후, 이 녀석.
대체 무슨 속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