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192화 (192/424)

192화

제36장 할 수 있어(2)

신원대 병원 응급실.

병원 측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창근 순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간호사에게 사정을 듣고 있는 중이었는데, 다행히 인질극은 별 탈 없이 종료되었다고 한다.

“피의자는 어디 있죠?”

“저쪽에요.”

간호사가 검지로 한 침상을 가리켰다. 30대 초반의 피의자는 양쪽 팔이 침상에 묶여 있었다.

안정제를 맞아서 그런지 순한 양처럼 보였다.

“영훈 씨. 수갑 채워서 환자 경찰차에 데려가세요. 감시 잘하고요.”

“네. 선배님.”

창근의 지시에 영훈이 환자 쪽으로 이동했다.

환자의 팔을 묶고 있던 억제대를 푼 후 다시 수갑을 채워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피의자가 순순히, 그리고 알아서 인질을 놓아주던가요? 보통 그런 경우는 드문데.”

“그게…… 저도 좀 황당하더라고요.”

“어떤 점에서죠?”

“환자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흉기로 들고 있던 가위를 떨어뜨리더라고요.”

“갑자기요?”

“네. 황당하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손에 쥐가 온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뜬금없이 가위를 떨어뜨릴 이유가 없잖아요?”

간호사의 설명에 창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또 맥 빠지는 결론이었지만 그것 말고는 이번 기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운수 좋은 날임이 분명했다.

참극으로 끝났을지 모를 인질극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무사히 끝나 버렸으니까 말이다.

“피의자가 가위를 떨어뜨린 다음에는 어떻게 됐나요?”

“저희 병원 의사 선생님이 인질범한테 달려가서 제압을 했어요. 저기, 저 선생님이에요.”

간호사의 검지가 모델처럼 잘 생긴 의사를 가리켰다.

잘 생긴 의사는 다른 의사를 치료하고 있었다.

치료받는 의사가 인질로 잡혔던 의사로 보였다. 턱 아래 상처가 있었다.

“용감한 분이네요. 그 상황에서 피의자한테 달려들 생각을 하고.”

“원래 유명하죠. 지하철에서 웬 돌아이가 칼 들고 설쳤던 사건 기억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 그 돌아이도 제압하고 환자를 치료한 것도 저 선생님이에요.”

“설명 감사합니다. 저분과도 대화를 나눠봐야겠군요.”

창근은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의사 쪽을 향했다.

한편 그 시각, 경찰차.

영훈은 조수석 뒤쪽에서 피의자를 감시하고 있었다.

피의자가 얌전하기는 했지만.

수갑을 채운 상태였지만.

단둘이 있다 보니 괜히 긴장되고 불안했다. 서에 발령받은 지 한 달이 채 안 지났고 인질극 같은 강력범죄에 출동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무슨 생각이 맞았다는 겁니까?”

“초능력을 연구하는 비밀 집단이 날 감시하고 있었어.”

피의자에 말에 영훈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피의자의 말은 정상인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연구원 중 한 명이 초능력으로 날 제압했어. 봐봐. 여기 증거가 있다고.”

피의자가 눈짓으로 본인의 손목을 가리켰다.

무슨 개소리인가 싶으면서도 영훈은 피의자의 손목을 살폈다.

피의자에 손목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아마 난동을 부리거나.

그 전에 다쳤던 상처일 것이다.

초능력으로 멍을 만들다니…….

그런 건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이봐, 정신 차려. 당신, 범죄자야. 사람을 인질로 잡고 그 사람을 죽일 뻔했다고. 어디서 뻔뻔하게 헛소리를 하고 있어?”

영훈은 피의자를 따끔하게 꾸짖었다.

* * *

“많이 놀랐지?”

준후는 응급실 침상에 걸터앉은 경수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환자에게 인질로 잡히고.

큰 상처는 아니지만 턱에 자상을 입기도 했다.

경수가 겪고 있을 심리적인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

경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여전히 얼이 빠진 얼굴.

평소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던 경수에게서 볼 수 없던 표정이라 준후는 애가 탔다.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자.”

준후는 침상 옆에 놓였던 드레싱 카트를 활용했다.

포셉으로 포비돈 용액이 묻은 솜을 집어 경수의 상처에 문질렀다.

주사기로 리도카인(국소 마취제)도 주입했다.

“아무래도 네다섯 바늘은 꿰매야겠다. 선생님. nylon 3-0이랑 봉합 세트 챙겨주세요.”

“네. 선생님.”

준후 곁에 있던 간호사가 지시를 받고 물품실에 갔다가 복귀했다.

가져온 물품들을 드레싱 카트 위에 펼쳐놓았다.

수술용 장갑을 착용하고 준후는 니들홀더와 포셉을 양손에 쥐었다. 피부 봉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종료되었다.

자상이 깊지 않았고.

자상이 위험한 부위에 발생한 것도 아니었고.

꿰맬 부위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 봉합은 양수 호박 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무공으로 무장한 준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찰칵!

가위질에 경쾌하게 잘리는 마지막 봉합사.

봉합이 끝나자 경수 턱에 있던 자상은 야무지게 붙었다.

매듭의 간격은 일정했다.

자로 댄 것처럼 수직을 유지했다.

봉합을 끝낸 후 준후는 그 위를 거즈로 덮었다.

“와. 봉합을 무슨 밥 먹듯이 뚝딱 해치우시네요?”

준후의 처치를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 정도면 쉬운 편이죠.”

“근데 실이 너무 긴 거 아닌가요? 좀 더 짧게 잘라야 할 것 같은데.”

간호사가 외과 매듭을 짓고 난 후 남은 실을 지적했다.

“보통은 매듭 위에서 0.5mm 정도 남기잖아요.”

“네. 그래서 여쭤보는 거예요.”

“그런데 nylon 봉합사는 실을 길게 남겨야 해요. 매듭이 잘 풀리는 단점이 있거든요.”

“아…… 그건 몰랐네요. 역시 준후 선생님이세요.”

“뭐, 이 정도 가지고.”

준후는 쑥스럽게 웃었다.

준후는 이미 인턴 때부터 각종 수술 도구의 용도와 장단점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무림 출신이라서 그럴까.

외과의의 병장기(?)라고 생각되어 수술 도구에 관심이 많았다.

“선생님. 잠깐 대화 괜찮으시겠습니까?”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경찰이 서 있었다.

사정청취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럼 스테이션 쪽으로 가시죠. 경수야, 여기서 잠깐 쉬고 있어. 이따가 나랑 같이 병동으로 올라가자.”

경수 앞에서 사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 준후는 경찰과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경찰과의 대화에서 준후는 경찰이 묻는 말에만 대충 대답했다.

딱히 할 말이 없었고.

해서는 안 될 말도 있었다.

특히 후자에 관련된 말은 무공에 관련된 것이었다.

흥분한 환자가 경수를 해치기 직전 상황.

준후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볼펜을 손에 쥐었다.

-지금 그대로. 움직이지 마.

준후는 우선 경수에게 전음부터 날렸다.

경수가 혹시라도 반항하다가 무공에 휘말릴까 걱정했던 것이다.

주머니에서 손을 뺌과 동시에.

준후는 환자의 손목을 향해 볼펜을 던졌다.

서씨세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단 하나뿐인 비도술.

벽력비(霹靂匕)를 사용한 것이다.

준후의 손속이 워낙 빨라 날아가는 볼펜의 속도를 일반인이 눈으로 좆을 수 없는 속도였으므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도 준후의 비도술을 눈치채지 못했다.

쎄에에엑!

퍽!

“아아아악!”

벽력비의 이치를 담은 볼펜이 정확하게 환자의 손목을 타격했다.

쨍그랑!

환자가 가위를 놓친 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준후는 보법을 밟으며 총알처럼 환자에게 튀어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가위를 걷어차고 환자의 팔을 등 뒤로 꺾어 제압했다.

영문을 모르고 서 있던 가드들이 가세하면서 상황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준후는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아찔했다.

만약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지지부진한 대치 상황 속에서.

환자는 결국 경수를 해치지 않았을까.

무공과 내공은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데만 유용한 것이 아니었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동료들을 지키는 데도 탁월한 성능을 자랑했던 것이다.

“저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경찰이 준후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생각이 너무 깊었던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친 친구가 걱정돼서 그만.”

“하긴 친구분도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한동안 안정이 필요할 거예요.”

“그렇겠죠.”

“어쨌거나 피의자에게 뛰어든 행동은 무모했습니다. 용감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선생님이 다쳤을 수도 있어요.”

“…….”

“앞으로는 본인 몸도 챙기세요.”

“조언 감사합니다. 하실 말씀이 끝났으면 가 봐도 될까요?”

“네. 고생하셨습니다.”

경찰과 대화를 마친 준후는 경수가 걸터앉아 있던 침상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웬걸?

경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주변 스태프들에게 물어보니.

혼자 걸어서 응급실을 빠져나갔다고 했다.

가뜩이나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거늘.

대체 어디를 간 건지.

경수를 향한 걱정부터 앞서는 준후였다.

경수에게 콜폰을 걸었으나 경수의 콜폰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일단 당직실에 복귀하기로 했다.

그런데 준후가 응급실 출입구로 향하는 도중.

저 멀리서 한 의사가 가운을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방형돈]

준후는 무림인 특유의 발달된 시력으로 의사가 착용한 명찰을 읽어냈다.

인질극 소식을 듣고 뒤늦게 응급실을 찾은 모양이었다.

“하아…… 하아…….”

“선생님, 상황 종료됐습니다.”

“네? 끝났다고요?”

형돈이 준후 앞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토해냈다. 형돈의 얼굴은 땀으로 번질거리고 있었다.

준후는 형돈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인질극의 종료 과정.

경찰의 등장과 환자의 호송 등등.

형돈은 이야기를 다 듣고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혹시 선생님이 환자분의 주치의였나요?”

“네. 외래 진료를 안 올 때부터 불안 불안했는데 결국 이 지경이 됐네요.”

“진료를 안 본 지 얼마나 됐죠?”

“한 6개월 됐습니다. 반년 가까이 약을 끊었으면…… 상황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겠죠.”

형돈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환자의 주치의가 눈앞에 있어서 일까.

준후는 환자와 조현병에 특히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조현병도 뇌에 관련된 질환이었고 오늘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 언젠가 어디서 반드시 또 일어날 사건이었다.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다면.

준후가 직접 내공과 무공을 이용해 조현병 치료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고 말이다.

“약을 먹으면 환자가 좋아지잖아요. 그런데 왜 환자가 약을 안 먹으려고 하는 겁니까?”

“부작용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진정 작용이 강한 탓이겠죠. 약을 먹으면 나른하고 졸리거든요.”

“…….”

“그런 상태로 직업을 가지고 직업에 집중하기란 힘드니까요.”

“생각보다 쉬운 문제가 아니네요. 약을 먹으면 생업에 종사하기 힘들고 약을 안 먹으면 증상이 심해지니.”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경구 약물 대신 장기 지속형 주사제가 나오긴 했는데. 치료 비용도 그렇고 보험 기준도 까다롭고 부작용도 완전히 잡힌 게 아니라서요. 아직은 약물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형돈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외과의인 자신과는 다른 방향으로 고뇌하고 고생하는 형돈에게 준후는 동질감을 느꼈다.

어느 전공을 선택하든지.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힘든 법이었다.

“사정은 대충 알겠습니다만…… 그 환자분은 강제 입원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준후는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형돈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단지 강제 입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 뿐이었다.

“저도 시도는 해봤습니다만…… 잘 안 됐어요.”

“어째서…….”

“보호자 두 명이 동의를 해야 하는데 어머님이 반대하시더군요. 제 생각으로는 아드님의 눈치를 본 것 같아요.”

형돈의 설명이 이어졌다.

환자가 보호자를 반 협박해서 강제 입원을 막는 경우가 있고.

또는 보호자가 강제 입원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서 꺼리는 경우가 있다고.

인질극을 일으킨 환자의 경우 전자 같다고 했다.

“그렇게 강제 입원하면 치료 효과가 반감됩니다. 환자가 의료진과 보호자들을 원망하게 되거든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곤란하시겠네요.”

“네. 가장 좋은 건 자발적인 입원인데…… 아까 환자 보셨죠?”

“…….”

“조현병 환자는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질 못해요. 환자라는 자각이 없으니 치료도 안 되는 거고요.”

형돈의 이야기를 듣고.

준후는 조현병 환자의 치료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서는.

외과수술이 조현병 치료보다 훨씬 단순해 보이기도 했다.

“뭐 그렇게 구구절절 변명이 많습니까? 하마터면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저런 놈들은 법으로 정해서 다 폐쇄 병동에 처박아야 해요.”

낯설면서도 분노가 담긴 목소리가 대화에 껴들었다.

준후와 형돈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