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195화 (195/424)

195화

제36장 할 수 있어(5)

벤치에 앉아 있던 서희는 복도 끝에 있는 수술실을 빤히 쳐다보았다.

수술실 출입구를 기준으로 양옆에 벤치가 일렬로 늘어섰는데 전부 수술을 기다리는 보호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절망하고, 슬퍼하고, 기대하고.

서희 역시 그런 감정 기복을 겪는 보호자 중 한 명이었다.

방금 막 외동아들을 수술실에 들여보냈던 것이다.

“내 새끼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한탄 섞인 혼잣말이 서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

서희는 119 대원에게 연락을 받았다. 대원은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자동차에 치였다고 했다.

사고를 당한 건 분명 아들인데.

충돌은 자신이 당한 것만 같았다.

가슴이 내려앉고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도착한 응급실.

침상에 누운 아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가슴, 허리, 옆구리에 돌돌 말린 붕대에선 핏물이 새어 나왔다. 발목이 기괴하게 꺾여 있기도 했다.

“하진아! 하진아!”

애타게 불러도 아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쥐 죽은 듯 의식을 잃어버렸다.

아들 대신 차라리 자신이 다쳤으면 좋았으련만…….

서희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탁. 탁. 탁.

거친 발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남편이 잰걸음으로 이쪽을 향하는 중이었다.

“하진이는 어때?”

남편이 서희 앞에 서서 물었다.

줄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독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금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하……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오토바이를 타지 말고 그렇게 말렸는데. 기어코 사달라고 하더니만”

남편은 찡그린 얼굴로 오토바이부터 원망했다.

서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아들이 자동차를 타고 사고를 당했다면 이 지경까지 다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원흉이 오토바이 같았다.

“그래도 헬멧하고 보호대를 제대로 착용해서 목숨을 건졌대요. 안 그랬으면 벌써 뇌사였을 수도 있대요.”

“오토바이를 안 탔으면 훨씬 더 괜찮았겠지.”

“그건 그래요.”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호위반을 한 차량에 있었지만 서희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토바이 탓을 하는 게 훨씬 쉽고 빨랐다.

“수술은 잘 될 것 같대? 실력 있는 교수님이 수술하는 거 맞지?”

“그게…….”

“뭘 그렇게 뜸을 들여? 신원대학교 병원이면 빅5 병원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수술…… 레지던트가 한데요.”

“뭐? 레지던트?”

남편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하진이 상태 심각하다며. 근데 왜 레지던트가 수술을 해?”

“세미나 때문에 인원이 부족하대요. 그리고 원래 레지던트도 할 수 있는 수술이라고 했어요.”

“그래도 교수하고 레지던트하고 같나? 이런 X발, 레지던트한테 수술받을 거면 대학병원에 왜 와?”

남편이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진이 수술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면 그냥 다른 병원으로 보내자고.”

“소란 피우지 말아요.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그동안 하진이가 더 위험해진다고 했단 말이에요.”

“지금 소란 안 피우게 생겼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수한테 수술받는 게 백번 나아.”

“여보, 제발 진정해요. 당신 말대로 빅5 병원인데 여기 의사 선생님도 생각이 있겠죠.”

“에이. 짜증 나게.”

남편이 신경질을 부리며 서희 옆자리에 앉았다.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양손으로 본인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하진이만 잘못돼 봐. 내가 김앤김 변호사를 써서라도 소송 걸 테니까.”

유명 대학교 교수이자 인맥이 넓은 남편은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서희는 그런 일이 벌어지길 바라지 않았다.

소송을 안 한다는 것은 아들이 무사하다는 것이니까.

* * *

수술 스크럽(소독)과 복장 착용을 마친 준후는 4번 수술방으로 입장했다.

저 멀리에 위치한 수술대가 무대처럼 밝아 보였다.

살갗에 닿는 공기는 서늘했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독한 소독약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수술방의 폭풍전야 같은 풍경.

수술방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오감에 준후는 자신이 집도의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터벅. 터벅.

준후는 수술대 앞에 섰다.

안색이 창백한 젊은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오토바이를 타던 중 자동차와 충돌했다는 환자에게서 성호의 모습이 겹쳐졌던 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이 있든 당신을 살리겠습니다.

당신을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사람들은 내가 무모하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당신과 수많은 당신들을 구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피땀 흘려 노력해 왔는지를.

각오를 굳힌 준후는 환자의 바이탈부터 살폈다.

이송 도중 CPR을 받았던 것 치고 환자의 바이탈은 얌전한 편이었다.

혈압, 맥박, 호흡, 체온이 정상이었다.

심전도 그래프의 파동도 규칙적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내공으로 청각을 증폭하자 물품실 쪽에서 소음이 들렸다.

인턴과 소독 간호사가 바쁘게 수술 도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회는 바로 지금!

준후는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손바닥으로, 손바닥에서 두개골로 보냈다.

우우우웅.

내가 기공의 이치를 담은 내공이 물결치며 두개골을 통과했다.

출혈이 발생한 경막 하 혈관과 인근에 있던 혈종으로 퍼져나갔다.

월광참(月光斬).

바늘 모양으로 형상화한 내공이 열십자(+)와 대각선(X)을 그리며 혈종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서걱.

서걱.

검지 손톱만 했던 혈종이 잘게 잘게 쪼개졌다.

쪼개진 혈종을 확인하고 준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놀랍게도 이번 수술은 벌써 ‘70퍼센트 이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혈종이란 피가 굳어서 생긴 덩어리였다.

두개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혈종이 생기면.

혈종이 뇌를 밀어내면서 뇌압이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외과의는 환자의 머리를 열어 이 혈종을 제거하고 흡인하는 수술을 펼친다.

그런데 준후는 심검으로 혈종을 미리 토막 냈다.

혈종의 부피를 줄임으로써 수술 전에 뇌압을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준후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출혈이 발생한 중대뇌동맥 인근의 미세 혈관들을 내공으로 막아버렸다.

어떻게?

내공을 작은 구슬로 형상화시켜서.

이러면 추가적인 혈종이 발생하는 것도 예방할 수 있었다.

이는 오직 지구에서 준후만 가능한 치료였다.

무림을 경험한 준후만 가능한 치료였다.

환자 머리에 닿았던 수술 장갑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준후는 드레싱 카트에 놓여 있던 면도칼로 환자의 머리를 깔끔하게 밀었다.

마지막으로 만화공(萬化攻)을 펼쳤다.

내공이 전신을 순환하면서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본래 한 가지 감각에 집중하면 다른 감각이 무뎌지기 마련인데.

준후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동시에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만화공은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멀티태스킹을 극대화하게 만들어주는 무공이었다.

자, 그럼 나머지 30퍼센트를 마무리해 볼까.

뚜두둑.

뚜두둑.

준후는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꺾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번 수술의 성공률을 묻는다면 100퍼센트라고 대답하리라.

* * *

4번 수술방 물품실.

수술 도구를 준비하는 혜진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도의가 레지던트 1년 차인 준후였기 때문이다.

3년 차가 해야 할 수술을 1년 차가 하다니…….

소독 간호사와 PA를 병행하며 근무한 지 5년 차가 되는 혜진에게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걱정도 안 돼요?”

혜진이 곁에서 같이 작업하는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은 신경외과 인턴이었다.

“뭐가요?”

“서 선생님이 집도의잖아요. 수술에 실패하면 뒷감당은 누가 해요? 의국은 물론이요, 보호자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성공하면 되잖아요.”

“경막 하 출혈 수술이 무슨 소꿉장난도 아니고. 그렇게 쉬운 거면 저도 집도했어요.”

“준후 선배면 가능할 걸요?”

“믿음이 대단하시네요.”

“믿음으로 따지면 거의 광신도급이죠. 준후 선배는 보통내기가 아니거든요.”

서준이 수다스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준후는 의대에 다닐 때부터 날아다녔으며 신경외과 의국에서는 이미 교수들을 도와 퍼스트 어시스트를 서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어시스트 하는 거랑 집도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예요.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있다고요.”

“참 나,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이미 물은 엎질러졌는데. 책임을 지는 사람이 우리도 아니고.”

서준의 대답은 천하태평이었다.

서준은 이번 수술을 마치 남일 보듯이 보고 있었다.

어휴, 뺀질이.

수술방에 늦게 도착한 것도 모자라서 책임감도 없네.

혜진은 한 마디 쏘아붙이려다가 말았다.

집도의가 시원치 않은 마당에 어시스트끼리 싸워봐야 분위기만 험해질 것 같아서였다.

“선생님. 그럼 저랑 내기하실래요?”

“무슨 내기요?”

“이번 수술이 무사히 끝나는지, 아닌지를 두고요. 진 쪽이 간식 사기 어때요?”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혜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선생님이 너무 불안해하니까 하는 소리잖아요. 저는 무사히 끝난다는 쪽에 걸게요.”

“……그럼 저는 어쩔 수 없이 반대네요.”

“아싸! 아이스크림 공짜!”

서준의 철딱서니 없는 대답에 혜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집도의 상태만 나쁜 게 아니라 퍼스트의 상태도 영 꽝이었다.

그래서 더 이번 수술이 걱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혜진은 수술방이 4번인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뭔가 환자에게 닥칠 비극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가죠.”

혜진이 먼저 드레싱 카트를 끌고 물품실을 나왔다.

그 뒤를 서준이 따랐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수술대에는 이미 집도의인 준후가 서 있었다.

수술대 근처에 있던 마취실의 커튼이 닫힌 걸 보면 마취의도 도착한 모양이었다.

물품 세팅에 이어 전신마취까지 끝나면서 수술 준비는 끝났다.

집도의 자리에 1년 차 준후가 섰고.

준후의 곁을 혜진이 지켰다.

준후 맞은편에는 서준이 섰고.

서준 옆에도 소독 간호사 한 명이 붙어 있었다.

스태프의 면면이 초라하기 그지없다고 혜진은 생각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다고 혜진은 생각했다.

수술을 긍정적으로 볼 건덕지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선생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건 어때요?”

혜진이 준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요?”

“이번 수술이요. 선생님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 보여요.”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죠. 혹시 선생님도 환자를 전원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솔직히요.”

“저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외과의가 된 게 아닙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의과의가 됐어요.”

“그건 그렇지만…….”

“수영 선수가 물을 두려워해서 되겠습니까? 축구 선수가 공을 두려워해서 되겠습니까?”

“…….”

“마찬가지예요. 의사는 환자를 두려워해선 안 돼요. 그저 묵묵하게 최선의 치료를 할 뿐입니다.”

준후의 마음가짐은 분명히 본받을 만했다.

감동적인 구석도 있었다.

무엇보다 준후의 말에 진심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흔들림 없는 준후의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혜진은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어쩌면 수술이 성공할지 모른다고.

하늘이 우리를 어여쁘게 여길지 모른다고.

“기운 빠지는 소리는 그만하겠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선생님을 도울게요.”

“제가 듣고 싶었던 대답이에요.”

준후의 눈이 웃었다.

“지금부터 SDH(경막 하 혈종)에 대한 개두술과 혈종 제거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준후의 외침이 신호탄이 되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수술은 돌이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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