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제37장 무모(1)
서준이 환자의 머리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빨간 포비돈 용액이 환자의 앞머리 부분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커져 나갔다.
준후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의 연차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레지던트 1년 차는 치료의 제약이 너무 많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의학 공부를 하고.
무공과 내공을 갖췄으며.
재현을 스승으로 모신 준후의 입장에서 이번 경막 하 출혈 수술은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민경도 그렇고.
지금 곁에 서 있는 혜진도 그렇고.
준후를 향한 걱정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준후가 강하게 나가지 않았다면 환자는 지금 수술방이 아니라 구급차 안에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서서히 뇌가 죽어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후는 하루빨리 전문의가 되고 싶었고, 펠로우가 되고 싶었고, 교수도 되고 싶었다.
그때야말로 만개한 실력을 펼칠 수 있을 테니까.
펄럭!
소독이 끝난 환자의 머리 위로 살포시 수술포가 올라갔다.
“10번 주세요.”
“네. 선생님.”
혜진에게 건네받은 메스를 준후는 손에 쥐었다. 메스가 오늘따라 유독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청풍검법 제2초식, 풍천월랑(風天月朗).
가로로 눕힌 메스로 환자의 두피를 가로로 절개했다.
무림에서 마두의 가슴팍을 가르던 초식이 수술에 응용되고 있었다.
번쩍!
허공에서 빛나는 메스의 궤적.
환자의 정수리에서 5cm 아래쪽으로 떨어진 부위에 절개창이 생겨났다.
절개창은 수직이었다.
자로 재지는 않았지만 절개창의 길이가 정확히 4센티미터가 될 거라고 준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유서준, 멍 때리지 말고 리트랙트.”
“아. 네. 선배.”
준후의 메스에 감탄하고 있던 서준이 절개창을 상하로 벌렸다.
벌어진 절개창 너머로 회색빛 골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후는 절개창에 흐르는 피를 거즈로 닦아낸 후 골막까지 단번에 절개해냈다.
메스를 사용하는 것만큼은 세상 어떤 외과의보다 자신 있는 준후였다.
아마 스승 재현도 메스에 관련된 처치라면 준후보다 못할 것이다.
준후의 근본은 검객이었기에.
“와, 난리도 아니네요. 이걸 어떻게 수습하죠?”
준후 곁에 있던 혜진이 기겁하며 물었다.
골막까지 절개하자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두개골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환자의 두개골은 함몰 골절에 분쇄골절을 앓고 있었다.
전두골(이마뼈) 중심부가 무너진 지붕처럼 푹 꺼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푹 꺼진 부위의 3분의 2는 과자처럼 잘게 쪼개지고 부서져 있었다.
“이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요? 그냥 썩션하면 되지 않나요?”
“안 돼.”
“왜요?”
서준이 동그란 눈으로 질문했다.
“골편은 따로 모아둬야 해. 나중에 세척해서 두개골 성형술 할 때 사용해야 하거든.”
“그럼 이 부서진 뼈를 일일이 다 손으로 제거해야 하나요?”
“그래야지.”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따로 보관한 골편을 철사랑 접착제, 급속판을 사용해서 환자의 두개골을 복원해 줄 거야.”
“그럴 시간이 있을까요? 이 정도 외상을 입었으면 뇌출혈도 심할 거잖아요.”
“…….”
“골편이 30개는 되어 보이는데…… 이걸 일일이 손으로 제거하고 있다가는 뇌압이 미쳐 돌아갈 것 같아요.”
서준이 나름 또렷하게 제 의견을 밝혔다.
틀린 의견도 아니었다.
만약 준후가 ‘평범한’ 외과의였다면 준후도 썩션으로 뼈를 제거하고 차후에 인공 뼈로 두개골을 복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비범한’ 외과의였다.
혈종은 수술 전에 내공으로 잘게 다져 놓았다.
뇌압 걱정은 기우였다.
무엇보다 준후는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을 가지고 있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썩션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래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으니까.”
혜진이 서준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준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선의 길이 있는데 왜 차선의 길을 택한단 말인가.
“에디슨 투스(tooth, 이가 있는) 포셉 두 개만 주세요.”
준후가 혜진을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준후는 포셉으로 골편을 쥐고 곡반으로 옮길 작정이었다.
“정말 일일이 제거하시게요? 20분은 까먹으실 것 같은데.”
“20분이요? 농담이죠? 2분이면 됩니다.”
“근데 포셉은 왜 두 개나 달라고 하세요?”
“양손으로 제거할 거니까요.”
혜진에게 건네받은 두 개의 포셉을 준후는 각각 양손에 쥐었다.
쉭. 쉭. 쉭. 쉭.
그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준후의 번개 같은 손동작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준후의 손이 환자의 두개골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텅. 텅. 텅. 텅.
은빛 곡반에 두개골편이 떨어져 내렸다.
두개골편을 일일이 제거하면서 준후는 운룡풍호(雲龍風虎)의 이치를 담았다.
청운검법의 제12초식 운룡풍호.
이는 지극히 공격적인 쾌검이었다.
찌르기를 숨 쉴 틈 없이 활용하는 검격이었다.
초식을 극성으로 익히면 당하는 상대 입장에서는 검이 무려 4개로 보이는 착시를 경험하기도 했다.
운룡풍호의 이치를 담아.
그것도 양손으로 골편을 제거하다 보니 골편은 게 눈 감추듯이 사라져갔다.
준후는 약속한 대로 2분 만에 골편을 모두 제거하는 묘기를 선보였다.
“…….”
“…….”
처치가 끝나자 긴 정적이 흘렀다.
스태프들은 어느새 멀끔해진 두개골을 내려다보다가 준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저 선배 팔이 8개로 보였는데 착각이겠죠?”
“저…… 저도 그렇게 보였는데요?”
서준과 혜진의 간증에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래 안 걸린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썩션하는 것보다 빨리 끝나 버리다니…….”
“일단 골편 오염 안 되게 냉장 보관해 주세요. 나중에 두개골 성형술 할 때 써야 하니까.”
준후가 골편이 수북하게 쌓인 곡반을 포셉으로 가리켰다.
“…….”
“선생님?”
“아. 네. 알겠습니다.”
얼이 빠져 있던 혜진이 골편을 거즈로 덮은 후 물품실 쪽으로 이동했다.
“선배. 방금 그 손놀림 뭐였어요? 무슨 마법을 쓰는 것 같았어요.”
“혹시 무협 소설 아니?”
“잘은 모르지만 대충은요.”
“그럼 마법 대신 검법이라고 하자.”
준후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 * *
혜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준후는 포셉을 내려놓고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정형외과 수련 당시 익힌 양수 호박 기술이 두고두고 효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양수 호박 기술.
양손으로 서로 가위바위보를 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무공.
이 무공을 익힐 때.
주변에서 비웃음도 많이 샀지만 다 익히고 나자 그 효과는 무시무시했다.
외과의가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메리트가 아닌가.
지금처럼 단순한 처치를 할 때는.
처치 속도를 두 배로 단축할 수 있었다.
정교한 처치를 할 때는 정교함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었다.
정안도 이미 습득했겠다.
슬슬 다음 익힐 무공으로 넘어가 볼까.
무림에서 검법에 매진했던 탓에 머리로만 알고 익히지 못한 무공들이 많았는데.
준후는 그중 몇 가지를 후보군에 올려놓았다.
“선생님. 골편 잘 보관하고 왔어요. 두개골 성형술은 수술 끝나고 바로 하실 건가요?”
혜진이 준후 곁에 서서 물었다.
준후는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니요. 수술 끝나고 환자 상태를 봐서 해야죠.”
“못한다는 말씀은 안 하시네요? 두개골 성형술도 3년 차부터 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하려면 할 수 있으니까요.”
“처음 서 선생님이 집도한다고 했을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어떻게요?”
“엄청 든든하네요. 교수님이랑 수술을 하는 것 같아요.”
혜진이 감탄조로 말했다.
당연하죠.
교수님 수술을 똑같이 따라 하고 있으니까.
준후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오늘 준후의 집도는 곽동주 교수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흡수한 형태였다.
뇌혈관 질환 전공인 곽 교수는 공격적이면서 빠른 수술을 선호했다.
마치 곤륜파의 패도적인 도풍(刀風)을 떠올리게 할 만큼.
곽 교수의 수술이 인상 깊어서.
준후는 곽 교수의 수술 몇 가지를 초식화해서 암기했고 그 스타일을 지금 유감없이 발휘 중이었다.
즉, 오늘 수술의 집도의가 곽 교수라고 해도 무방했던 것이다.
이렇게 교수들의 장점을 흡수하다 보면.
머지않은 시일 내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수술 스타일도 꽃 피울 수 있을 거라고 준후는 생각했다.
“여기요.”
혜진이 썩션기를 내밀었고 준후가 받았다.
“저도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든든합니다. 어쩜 그렇게 제 마음을 읽고 수술 도구를 척척 건네세요?”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꽤 잘났답니다.”
“그런 것 같네요.”
준후의 활약으로 수술방 분위기는 어느새 화기애애해졌다.
이제는 그 누구도 준후의 집도를 의심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았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준후는 썩션기로 불투명한 경막 위를 싹 훑었다.
골편은 제거했지만 뼈 부스러기 일부가 경막 위에 흩어져 있었다.
완벽한 수술을 위해서는.
뼈 부스러기까지 제거해 줘야 했다.
“서준아. 이리게이션.”
“네. 선배.”
서준이 경막을 식염수 세척하면서 경막 표면이 맨들맨들 해졌다.
준후는 10번 메스를 들고.
경막을 조심스럽게 절개해나갔다.
경막 아래는 미세 뇌혈관이 지나가고 있었기에 이전보다 섬세한 힘 조절이 필요했다.
스르르륵.
경막에 수평의 절개창을 내자 경막이 귤껍질처럼 벗겨졌다.
“고정형 리트랙터로 리트랙트. 상하 견인 폭은 5센티미터.”
서준이 준후의 지시를 따랐다.
경막의 절개창이 상하로 벌어지면서 경막 내부의 모습이 한눈에 드러났다.
아치의 곡선을 이루고 있는 정맥동.
나뭇가지처럼 뻗어가는 붉은 미세혈관과 신경다발.
강물처럼 유유하게 흐르는 뇌척수액 등등.
“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혈종이 잘게 쪼개져 있는데요.”
“그러게요. 이럴 리가 없는데?”
혈종을 확인한 서준과 혜진이 놀란 눈을 깜빡거렸다.
구슬처럼 단단하게 뭉쳐 있어야 할 혈종이 피자 조각처럼 8등분이 된 채로 경막 아래 공간을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출혈된 피는 굳는 성질이 있었으니까.
알아서 조각나는 일은 없으니까.
“선배.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아니. 나도 처음인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준후는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겠네요. 일단 뇌압부터 측정하실 거죠?”
“당연하죠.”
“카테터 드릴게요.”
턱!
혜진에게 건네받은 두개내압측정 카테터를 준후는 손에 쥐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3뇌실을 향해 카테터를 찔렀다.
푸우우욱!
손끝에서 뇌실을 관통한 촉감을 느꼈을 때.
준후는 카테터의 전진을 멈췄다.
삐이이.
삐이이.
잠시 후 카테터와 연결된 두개내압 모니터에 뇌압 수치가 떠올랐다.
[7mmHg.]
0-15mmHg가 정상 뇌압인데 환자는 이미 정상 뇌압이었다.
준후가 내공으로 혈종의 부피를 미리 줄인 덕분이었다.
집도 전.
준후가 수술은 벌써 ‘70퍼센트 이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호언장담한 이유이기도 했다.
“와, 말도 안 돼요. 두개골 함몰 골절이 일어난 만큼 충격이 심했는데 정상 뇌압이라니…….”
“혈종이 쪼개져서 그런가? 혈종이 뭉쳐 있었으면 30mmHg은 그냥 넘었을 것 같은데.”
거듭 감탄하고 놀라는 혜진과 서준.
두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던 준후는 그저 입이 간지러울 따름이었다.
내공과 무공.
준후에게는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