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03화 (203/424)

203화

제38장 첫 데이트(3)

“네. 수고하셨습니다.”

접수 직원에게 락커 룸 열쇠를 받아 아영은 접수대를 벗어났다.

검사실 출입구에 있는 탈의실로 이동했다.

탈의실 신발장 옆에 커다란 거울이 딸린 세면대가 있었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십여 개의 락커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먼저 와 있던 검진자들은 다섯 명 정도 되었다.

아영은 23번 락커 앞에 서서 탈의실을 넓게 둘러보았다.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 그럴까, 옷을 갈아입을 때는 괜히 주변이 신경 쓰였다.

혹 몰래 카메라라도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생각보다 범죄는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법이니까.

관찰을 마치고 아영은 금방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슬리퍼도 신었다.

거울 앞에 서서 가운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준후에게 예쁜 모습만 보여줘도 모자랄 시긴데 펑퍼짐한 가운 입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다니…….

탈의실을 나가려던 찰나.

아영은 거울에 비친 등 뒤의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

여성은 검진 가운을 어떻게 여미어야 하는지 몰라서 애를 먹고 있었다.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영이 여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야 고맙죠.”

“검진 가운이 좀 특이해서요. 처음이면 좀 낯설 거예요.”

검진 가운은 보통 가운의 왼쪽 면과 오른쪽 면에 끈이 각각 두 개가 있었다.

끈을 어떻게 묶어야 하나?

X자로 교체를 해야 하나?

다른 사람한테 속살이 안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검진 가운을 처음 접한 사람이면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아영은 여성의 가운 끈을 야무지게 매기 시작했다.

“아직 학생 같은데 벌써 검진받아요?”

“미리미리 받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죠.”

“하긴 가는 데는 순서 없지.”

여성이 수다스럽게 말을 이었다.

“뉴스 보니까 23살에 희귀 난소암에 걸려서 사망한 학생도 있던데. 사람 일은 진짜 모르는 거예요.”

“…….”

“결국 다 죽을 건데 왜 이렇게 욕심을 부리며 사는지도 모르겠고.”

여성의 말에 아영은 쓰게 웃었다.

아영의 남동생도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소아 심부전증 때문에.

첫 데이트 장소를 검진센터로 잡았던 것도 그 영향이 컸을 것이다.

준후가 건강하게.

자신과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아영이 스스로 생각하는 코어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언젠가 자신을 갑자기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다 됐어요.”

“고마워요, 학생. 참 친절도 해라.”

“별것도 아닌데요. 그럼 저는 이만.”

여성과 인사를 마친 후.

아영은 다시 검진센터 로비로 나왔다.

가운을 입은 채 먼저 소파에 앉아 있던 준후 곁에 자리를 잡았다.

“첫 데이트 장소가 검진 센터라서 힘 빠지지?”

“솔직히 그렇게 재미있는 건 아닌데…….”

준후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영이 너랑 있을 수 있으면 어디라도 오케이야.”

“뭐야. 제법 멘트 좀 친다? 준후, 너 원래 이렇게 능글맞은 성격이었어?”

“친구일 때랑 연인일 때랑 화법이 같으면 되겠어?”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해. 알았지?”

아영은 웃으며 준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뭔가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 기분이었다. 준후와 교제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7년여 동안,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항상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준후가 자신의 남자가 됐다는 사실이.

“근데 아영이 너 어디 몸 안 좋은 데 있어?”

“조금 신경 쓰이는 데가 있긴 해.”

“어디가?”

“가슴이 쓰리고 아프고 목에 이물감도 있고.”

“검사를 받아봐야겠지만…… 역류성 식도염일 것 같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영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류성 식도염은 사람들이 흔히 앓는 질환이었다.

스트레스, 불규칙하고 안 좋은 식습관, 부족한 수면 시간 등등으로 발생한다.

일종의 사회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핵심 증상은 쓰라림이 동반되는 흉통.

흉통이 주 증상이라서.

흉부외과 전공인 아영이 역류성 식도염 환자의 진료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증상을 듣고 검사를 해보고 소화기 내과로 보내긴 하지만.

“아영아.”

“응. 왜?”

“역류성 식도염이면 당분간 빵 압수다. 식도염에 빵 안 좋은 거 알지?”

“하루에 한두 개면 괜찮지 않을까? 통밀빵으로 먹어도 되고.”

“안 돼. 걸리면 혼내 줄 거야.”

“히잉. 빵 없으면 사는 낙이 없는데…….”

아영이 실망감에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그러던 중 아영의 눈에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은 배가 남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남성은 아까부터 아영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인가?

아니면 그냥 쳐다보는 건데 내가 예민하게 구는 건가?

아영은 남성에게서 금방 관심을 껐다.

“22번, 23번 고객님 검사실로 입장하실 게요.”

“네.”

아영과 준후는 동시에 대답하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 * *

검사실도 센터 로비처럼 인테리어가 세련되었다. 벽면은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원목 스타일이었으며.

화분, 그림 같은 소품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각 검사실 앞에 놓인 소파 역시 편안하고 고급스러웠다.

“서준후 님, 이아영 님 맞으시죠?”

검진 센터 직원이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네. 맞습니다.”

“일단 소변 검사부터 받으실게요.”

직원이 소변 컵을 내밀고 소변 채취하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아영은 소변 생각이 없다고 했기에 준후만 먼저 화장실에서 소변 검사를 마치고 왔다.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어떤 점에서?”

“검진 센터 오니까 내가 환자가 된 것 같아서.”

준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오늘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 더해서 환자 체험도 간접적으로 해보는 자리가 될 것 같았다.

“인간은 누구나 잠재적이면서 필연적인 환자지.”

“거창한 설명이지만 틀린 데는 없네.”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검사는 속전속결이었다.

혈액 검사.

흉부 엑스레이.

체질량 검사 등등.

검사 중에서도 준후가 특히 활약(?)했던 검사는 청력 검사와 시력 검사였다.

“귀가 엄청 밝으시네요? 만점 받으셨는데요?”

청력 검사를 진행했던 직원은 준후에게 감탄했다.

준후가 거의 모든 주파수의 음역을 완벽하고 빠르게 들었다고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무림을 경험했던 준후의 청각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림을 기준으로 하면 전성기에는 반경 30장(90미터) 가까운 범위에서 나는 크고 작은 소리를 분류할 수 있었다.

시력 검사에서도 준후는 당당하게 2.0을 차지했다.

만약 검사표에 2.0 이상의 기호와 숫자들이 있었으면 준후의 시력 수치는 훨씬 더 높게 나왔을 것이다.

잇따른 검사를 마치고.

준후는 아영과 함께 초음파실 앞에서 대기했다.

다음 검사는 복부 초음파였다.

준후와 달리 아영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체질량 검사를 했더니 체중이 2킬로그램 더 찌고 체지방도 늘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시력이었다.

양쪽 눈의 난시가 있고 특히 왼쪽 눈의 시력은 0.5 아래라고 했다.

안경 착용이 필요한 시력이었다.

“오늘 오후 데이트할 때 안경 맞춰야겠다.”

“안경 쓰기 싫은데…….”

“왜? 안경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안경보다는 차라리 라섹 수술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아영은 라섹 수술을 고민했다.

-의사들은 라식과 라섹 수술을 받지 않는다. 아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수술이라서 그렇다. 의사들을 봐라. 거의 다 안경을 쓰고 있지 않으냐.

항간에는 그런 소문이 떠돌고 있었지만 이는 반만 진실이었다.

눈 수술을 하면 빛이 번져 보이는 빛 번짐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특히 정교한 수술을 하는 외과의에게 빛 번짐 현상은 크나큰 단점이었다.

하지만 안과 수술의 발전으로.

요즘은 수술을 하더라도 빛 번짐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환자의 눈 상태에 따라서, 눈 수술을 받더라도 일상이나 정교한 작업에 큰 해가 가지 않을 확률도 늘어났다.

“그래도 안경을 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귀찮긴 하겠지만 눈도 보호되고 혹시 빛 번짐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의외로 똑 부러진 대답을 하네? 뭐든 괜찮다고 할 줄 알았어.”

“그거야. 케이스에 따라 다르지.”

“22번 고객님. 초음파실로 들어오실 게요.”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 하자.”

준후는 먼저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초음파실은 뭔가 악의 소굴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방은 음침했고 조명은 희미했다.

준후는 초음파 기기 옆에 있는 침상에 누웠다.

“뭐야? 준후 너였어?”

잠시 후 검사실로 들어온 의사가 준후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준후도 의사를 확인하고 눈을 치켜떴다.

의사의 이름은 조혜미.

의대 동기이자 영상의학과 레지던트 1년 차였던 것이다.

준후는 혜미와 꽤 친한 편이었다.

조별 발표로 여러 번 엮였으며 식사도 자주했다.

“야, 오랜만이다?”

“그러게. 검진 센터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근데 검진받기에는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건강은 미리미리 챙겨야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니겠어?”

“자기 몸은 끔찍하게 아끼시네.”

“다음 차례는 아영이야.”

“아영이도 왔구나. 너희 둘 사귄다면서? 벌써 병원에 소문이 쫙 퍼졌던데.”

“둔탱이인 네 귀에 들어갈 정도면 정말 소문이 많이 퍼지긴 한 모양이다.”

“약 올리지 마. 그러다가 진짜 혼나는 수가 있어.”

혜미가 손에 쥔 초음파 스틱을 허공에 붕붕 돌렸다.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초음파 검사는 익숙해졌어? 믿고 맡겨도 되는 거지?”

“상복부 초음파야 이골이 났지. 영상의학의가 초음파를 못하면 어디 다 써먹겠어?”

“그럼 믿고 맡기겠습니다.”

“가운부터 풀어봐.”

준후는 가운을 졸라매고 있던 끈을 풀었다.

가운이 풀리면서 준후의 탄탄한 복근이 드러났다.

이에 혜미가 젤을 바른 스틱으로 준후의 배를 넓게 문질렀다.

미끈하고 차가운 젤의 감촉이 낯선 준후였다.

이윽고 혜미가 본격적인 복부 초음파를 시작했다.

“숨 크게 들이마시고…… 숨 참고. 숨 크게 들이마시고…… 숨 참고. 옳지 잘하네.”

준후가 지시를 잘 따르자 혜미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숨을 참으면 복부의 장기가 늑골 아래로 내려와 검사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상복부 초음파로는 간, 담낭, 췌장, 신장 등에 발생한 질병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젤이 묻은 초음파 스틱이 준후의 복부를 누비기를 한참.

준후는 혜미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징후를 읽었다.

혜미가 우측 상복부를 집중적으로 살피는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다.

“간 쪽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으음…… 간은 아니고 담낭에 문제가 있어.”

“담낭에?”

준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예전부터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의학 지식을 익힌 데다가 운기조식을 하며 본인의 몸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낭에 문제가 있다니…….

예상치 못한 변수에 불길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뭔데? 무슨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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