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제38장 첫 데이트(4)
혜미의 설명에 따르면 준후에게는 담낭 용종이 있다고 했다.
우선 담낭이란 쓸개라고도 불리며 간 아래에 위치하며, 담즙을 분비하여 지방을 녹이는 역할을 한다.
용종이란 쉽게 말하면 작은 혹으로, 나중에 암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용종이 두 개 정도 있고, 크기는 한 7mm 정도 돼.”
“악성은 아닐 텐데…… 그래도 꺼림칙하다?”
“악성을 의심하려면 용종 크기가 최소 10mm 이상은 되어야 하니까. 너도 알겠지만 담낭 용종 같은 경우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많아.”
“…….”
“준후 너 같은 케이스도 자주 봤고. 너무 걱정 마.”
혜미가 준후를 안심시켰다.
일단 오늘 일은 잊고 내년에 다시 초음파 결과를 보자고 했다.
용종의 크기가 커지면 그때 제거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일단 용종에 대한 건 아영이한테 비밀로 해줄래?”
“왜? 어차피 알게 될 건데?”
“검사 결과 듣기 전부터 걱정시킬 필요는 없잖아?”
“뭐, 네가 그렇다면야…….”
혜미에게 약속을 받아내면서 초음파 검사는 끝났다.
준후는 티슈로 복부에 묻은 젤을 닦아낸 후 가운을 여미고 바깥으로 나왔다.
“검사는 어땠어?”
“별 이상 없다는데?”
준후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검사를 혜미가 하더라. 오랜만에 수다 좀 떨어 봐.”
“정말? 잘됐다!”
아영이 기뻐하며 총총걸음으로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
준후는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단전에 올렸다.
담낭에 존재하는 용종을 준후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물론 악성이 될 확률은 낮더라도 그 가능성이 제로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싹부터 잘라버리는 게 옳았다.
우우우웅-
단전에서 솟구친 내공이 단번에 담낭까지 도달했다.
파(波, 물결 파)자 결을 사용해 담낭에 내공을 퍼뜨리자 담낭벽에 위치한 2개의 용종이 느껴졌다.
난 내공을 형상화해서 뇌종양을 절제할 수 있어. 그렇다면 똑같은 방법을 용종에 적용 못 할 것도 없지.
그랬다.
준후는 내공으로 셀프 담낭 용종 제거술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의학 지식이 빠삭하고 내공에 관해서 도가 튼 준후였다.
내공 셀프 담낭 절제술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했다.
준후는 용종의 위치를 확인하고 내공을 작은 바늘 모양으로 빚기 시작했다.
풍부한 내공에 준후의 집중력이 더해지자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비수가 생성되었다.
일종의 내공 메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풍참(旋風斬).
바늘처럼 형상화한 내공이 빙그르르 원을 그렸다.
서걱!
단번에 도려져 나간 용종.
담낭벽과 혈관을 훼손하지 않는 깔끔한 절제술이었다.
툭!
잘려나간 용종이 담낭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준후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울컥!
용종이 제거된 자리에서 희미하게 피가 흘렀지만 준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 미세 출혈은 장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흡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준후는 일사천리로 두 번째 용종까지 말끔하게 도려냈다.
문제는 잘라낸 용종을 어떻게 제거하느냐인데…….
준후에게는 다 방법이 있었다.
준후는 다시 내공을 운용해 용종 덩어리를 단전으로 내려보냈다.
곧장 와류심법을 운용했다.
와류심법이란 단전에 있는 내공을 원의 형태로 빠르게 회전시키는 심법이었다.
철썩! 철썩!
이에 격류가 일어난 듯.
단전에 거센 압력이 휘몰아쳤다.
와류심법은 독을 해독하거나 고독(일종의 기생충 같은 벌레, 내공과 생명진기를 먹고 자람.)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심법이었다.
과연 와류심법은 효과가 탁월했다.
단전 내의 압력이 거세지자 용종은 버티지 못했다.
과자 부스러기처럼 잘게 쪼개지기 시작했다가 급기야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입자 단위로 파쇄된 것이다.
용종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 준후는 감았던 눈을 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셀프 담낭 용종 제거 수술은 고작 5분 만에 끝났다.
복강경으로 수술을 했다면 준비 시간과 마무리 시간을 합쳐서 40분은 걸렸을 텐데 말이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고 의사는 자기 몸을 수술 못하다고 하지만.
그 말은 적어도 준후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준후는 스스로도 수술이 가능했다.
‘오늘부로 내 몸 주치의는 내가 되겠어.’
용종 제거술에 성공한 후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흉부외과면 흉부외과.
소화기 외과면 소화기 외과.
성형외과면 성형외과 등등.
해당 장기나 신체에 지식만 있다면 얼마든지 셀프 수술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취는 진통 점혈로 대신하고.
메스는 내공 메스로 대신하고.
절제물은 단전으로 보내 제거하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준후는 소작(열기로 지지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삼매진화의 이치를 활용해서.
내공을 화속성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갑작스럽게 사고나 외상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냐. 그때는 의식이 없어서 셀프 수술을 할 수 없을 텐데?
누군가는 그런 질문을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준후는 애초에 사건·사고에 휘말릴 일이 없었다.
준후의 피지컬과 내공이 준후에게 외상을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즉, 준후는 자기 몸은 걱정할 필요 없이 환자에게만 충실하면 그만인 셈이었다.
생각이 그쯤 미치자.
준후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지금 현대의 의학 지식을 가지고 무림에 돌아간다면 수많은 무림 동도를 살릴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현대의 삶을 다 살고 나서 혹시 무림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괜히 그런 미련이 남았다.
드르르륵-
초음파실 문이 열리고 아영이 나오면서 잡념은 떠나갔다.
“검사 잘 받았어?”
“응. 이상 없다고 하더라.”
“혜미가 다른 말은 없었고?”
“무슨 다른 말?”
아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속한 대로 준후의 담낭 용종은 언급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이젠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준후의 담낭 용종은 있었지만…… 없어졌으니까 말이다.
* * *
잡다한 검사를 마치고 준후는 아영과 위내시경실 앞 소파에 앉았다.
위내시경실 앞은 다른 곳과 달리 수많은 검진자가 대기 중이었다.
병목 현상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요즘 위내시경은 대부분 수면 마취로 진행했다.
검진자가 마취에서 깨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니 그만큼 검진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준후, 너도 수면 마취지?”
“아니. 나는 비수면으로 받으려고.”
“왜 사서 고생을 해? 후기 보니까 비수면하면 엄청 힘들다고 하던데.”
“걱정 마. 난 끄떡없으니까.”
준후는 빙긋 웃으며 아영을 안심시켰다.
무림에서 수많은 부상과 상처를 달고 살았던 준후였다. 위내시경이 주는 거북함 따위는 새 발의 피였다.
“그럼 오히려 내 걱정을 해야 하나?”
“왜? 이상한 소리라도 할까 봐?”
“응. 마취에서 깰 때 노래도 부르고 난리도 아니래. 준후 너 먼저 끝났다고 내 옆에 오면 안 된다?”
“알았어.”
불안해하는 아영을 보며 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내시경 수면에 관한 마취 썰이라면 준후도 귀동냥으로 많이 들었다.
코믹한 사연들이 아주 많았으니까.
“두 분, 잠깐 입 벌리실게요.”
간호사가 다가와 입을 벌린 준후와 아영의 목에 마취제를 뿌렸다.
칙!
칙!
5분 후 진행된 위내시경 검사는 준후가 먼저 받았다.
비수면이었던 만큼 검사는 몇 분 만에 끝났다.
내시경이 목으로 넘어갈 때 이물감이 잠깐 있었을 뿐, 준후는 검사를 무난하게 마쳤다.
준후가 침상을 벗어나서 회복 중인 다른 검진자들을 살피는데.
때마침 아영이 누운 침상이 빈자리로 향했다.
아영도 내시경이 끝난 것이다.
준후는 아영의 곁을 지켰다.
“으음…….”
아영이 옹알이를 하듯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불쑥 뱉어낸 말이 걸작이었다.
“준후야. 사랑해. 사랑해. 내가 더 잘할게.”
아영의 사랑스러운 헛소리(?)에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직 오후 데이트 일정이 남았지만 이 순간이 오늘 데이트의 백미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런 고백을 또 언제 들어보겠는가.
아영을 바라보는 준후의 눈빛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준후는 아영을 지켜보고 있다가 정수기 쪽으로 가 가볍게 물을 한잔했다.
위내시경 검사가 끝났으니 물은 마셔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 아영의 곁으로 돌아오던 도중.
준후는 우연히 아영 옆에 누운 한 검진자를 보게 됐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검진자는 50대 남성이었다.
준후는 남성을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오르락내리락했다가 멈추고 또 오르락내리락하는 흉곽.
비규칙적이고 헐떡거리는 호흡.
저 호흡은 영락없는 심정지 호흡(Agonal respiration)이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서 준후는 남성이 누운 침상으로 접근했다.
경동맥을 촉지하자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솟고 팔뚝에 닭살이 돋았다.
“저기요. 선생님. 이 검진자 A.C.A(Acute Cardiac Arrest, 급성 심정지)입니다. 앰부백하고 제세동기 좀 준비해 주세요!”
준후는 다급하게 근처를 지나가던 간호사를 호출했다.
그리고 침상 옆에 있는 안전바를 내린 후 환자의 가슴에 손바닥을 얹었다.
퍽! 퍽! 퍽!
생각이란 것을 할 필요도 없었다.
준후는 곧바로 흉부 압박을 실시했다.
준후가 가슴을 압박할 때마다 환자의 몸이 파도처럼 들썩거렸다.
그런 준후를 확인하고 간호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준후를 향한 간호사의 표정이 곱지 않았다.
“지금 다른 분한테 뭐하시는 거예요?”
“말씀드렸잖아요. 급성 심정지라고.”
“내시경 잘 받고 회복 중인 분이라고요. 갑자기 심장마비가 올 리가 없어요. 뭘 안다고 이런 위험한 짓을 하세요?”
“여기 병원 신경외과 레지던트 1년 차 서준후라고 합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이런 행동은 안 돼요!”
앙칼진 목소리의 간호사가 두 팔을 내밀었다.
준후의 흉부 압박을 저지하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으으으…… 아파!”
환자가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준후의 진단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 것이다.
“환자 멀쩡한 거 안 보여요? 진짜 우리 병원 선생님 맞아요? 이상한 소리 말고 제발 가만히 있으세요.”
간호사가 언성을 높이자 침상으로 다른 간호사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환자가 의식을 차린 듯 보여 흉부 압박은 멈췄지만 준후는 여전히 환자를 예의주시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응급실을 경험한 사람이면 알 것이다.
심정지 단계에서 종종 환자가 의식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금방 심정지에 빠진다는 것을.
준후는 속으로 딱 20초만 센 후 다시 환자를 진찰했다.
흉곽은 어느새 움직임을 멈췄다.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경동맥 역시 뛰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확인해 봐요. 환자가 정말 정상인지?”
“하라면 못할 줄 알아요?”
간호사는 준후가 했던 행동을 따라 하더니 돌처럼 굳어버렸다.
환자가 심정지인 것을 이제야 눈치챈 것이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우리 병원 레지던트 맞으니까 지금부터 내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따르세요. 환자 살리고 싶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