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제38장 첫 데이트(5)
간호사 서유진은 준후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다.
준후의 눈빛과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았다.
처음에 유진은 준후가 이상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내시경을 잘 마친 검진자에게 심정지가 왔다며 흉부 압박을 시도했으니까. 심지어 본인이 신원대 의사라고 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준후를 내쫓기 위해 가드를 불러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의식이 정상인 줄 알았던 환자가 심정지 사인을 보냈다. 경동맥은 박동을 멈추었고 숨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형사고가 터져 버린 것이다.
만약 준후가 환자의 심정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유진은 스스로에게 묻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환자는 사망했을 테고, 검진센터 직원들은 책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봐요.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요?! 앰부백하고 제세동기 챙겨오라고요!”
준후의 호통이 쩌렁쩌렁했다.
그제야 하염없이 뻗어 나가던 상념이 끊어졌다.
“네! 선생님!”
퍽! 퍽! 퍽!
흉부 압박을 시도하는 준후를 등 뒤로 하고 유진은 냅다 스테이션으로 뛰었다.
“선배, 저 사람 뭐예요?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후배 간호사 소현이 준후 쪽을 힐끔거리며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 전의 유진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환자한테 심정지가 왔어. CPR 상황이야.”
“네? 정말요?”
“그럼 농담이겠니? 저 사람이 의사라고 해서 일단 맡겨보는 중이야. 넌 검진센터 로비 쪽으로 가서 제세동기 챙겨 와. 최대한 빨리!”
“…….”
“민선 씨한테는 응급실에 연락하라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유진은 일단 앰부백(공기 주머니)만 챙겨 침상으로 복귀했다.
난데없는 CPR이 시작되면서 회복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마취에서 깬 환자들의 불안한 눈빛과 조무사들의 불안한 눈빛이 준후에게 향했다.
유진 역시 준후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었다.
비록 초면이지만, 환자를 알아본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제세동기는 후배가 가지러 갔어요. 그동안 저는 앰부백 짤게요.”
유진은 환자의 머리맡으로 이동했다.
한 손으로 환자의 턱을 들어 기도를 확보하고 앰부백으로 환자와 코와 입을 완전히 덮었다.
후우우욱-
후우우욱-
공기 주머니를 짜면서 숨이 환자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잇달아 숨을 불어넣고서.
유진은 흉부 압박 중인 준후를 지켜보았다.
준후는 여전히 침착해 보였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흉부 압박을 대략 2분 정도 한 것 같은데 지친 기색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체력이 보통내기가 아닌 듯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인가……? 너무 차분하고 CPR도 잘하는데?’
준후의 깍지 낀 손은 환자의 흉골 위에 정확히 위치했으며 어깨와 팔이 역삼각형을 이루었다.
환자의 심장을 압박하는 강도 또한 적절하고 꾸준했다.
“선생님. 앰부백 마스크가 떠 있어요. 제대로 꽉 밀착시키세요.”
“제대로 했는데요?”
“공기주머니에 김이 안 서립니다. 호흡이 어디로 빠져나갔다는 의미예요.”
준후의 지적을 듣고 유진은 아뿔사 싶었다.
공기주머니 우하단 부분이 살짝 떠 있었던 것이다.
숨은 저 틈으로 샌 것이 분명했다.
와…….
흉부 압박하면서도 내 처치까지 보고 있었구나. 그만큼 여유 있고 눈썰미가 좋은 건가?
유진은 준후에게 감탄하는 한편.
공기주머니를 환자의 얼굴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앰부백을 짰다.
하지만 곧이어 두 번째 지적이 날아들었으니.
“앰부백은 5초에 한 번만 짜세요. 안 그러면 Hyperventilation(과호흡 증후군, 과다 환기)이 됩니다. 응급 상황이 오랜만이라 긴장하셨나 보죠?”
“아. 네. 몇 년 동안 행정 업무 쪽만 맡았더니……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릴게요.”
“환자는 무조건 회복될 테니 걱정 마세요. 저는 제 눈앞에서 환자 잘못되는 꼴은 못 보니까.”
준후의 목소리에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그제서야 유진은 깨달았다.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준후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이유를.
준후는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하게 CPR을 실시했으며.
간호사인 자신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CPR 동료로 삼았다.
그러니까 준후만 따르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듬직함을 계속 보여줬던 것이다.
“선생님. 흉부 압박 교대 안 해도 되겠어요? 힘들지 않아요?”
“혼자서도 충분해요.”
“그럼 선생님 뜻을 따를게요.”
CPR이 3분대로 넘어가고 있음에도 준후는 여전히 흉부 압박을 고수했다.
흉부 압박은 1분당 30회가 정석이므로 준후는 벌써 90번의 흉부 압박을 홀로 소화한 셈이다.
놀라운 점은 그러고도 힘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CPR이 뭔가 특이하네. 환자의 살결이 물결처럼 퍼져 나가고 있어.
제세동기를 사용할 때처럼, 파르르.
준후가 내가기공을 사용해.
즉, 내공으로 환자의 심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제세동기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진이 알 길은 없었다.
“이제 됐습니다.”
준후가 갑자기 CPR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뭐…… 뭐가요? 설마…….”
“오해하지 마세요. 심장 리듬이 돌아왔다는 뜻이니까.”
준후는 빙긋 웃으며 환자가 회복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회복 자세란 호흡과 심박은 돌아왔으나 의식이 없는 환자를 편안하게 눕히는 자세였다.
간단히 말하면 환자의 몸을 옆으로 돌리는 자세인데.
혀가 말려서 기도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는 게 목적이었다.
“뒤처리까지 완벽하시네요. 선생님은.”
준후의 행동을 지켜보던 유진이 감탄했다.
“이제 제가 의사라는 걸 믿습니까?”
“이쯤 되면 초등학생이라도 믿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초등학생처럼도 안 구시더니.”
“죄송해요. 그땐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괜찮습니다.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했어요. 저도 다급해서 반응이 과했던 부분이 있고.”
“감사해요. 선생님. 선생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네요.”
유진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환자가 심정지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도, CPR을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도 준후였다.
준후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환자는 100퍼센트 죽었으리라.
긴장을 푼 채 준후와 대화를 하는데.
준후가 갑자기 회북실 출입구를 응시했다.
그 의미는 금방 밝혀졌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뒷북으로 제세동기를 챙겨 온 후배 소현과 응급실 선생님이 가운을 휘날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하아…… 하아…… 선배, 뭐예요?”
소현이 침상에 다가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상황 끝. 환자 회복됐어.”
“정말요? 벌써?”
“서 선생님 흉부 압박이 끝내주더라고.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 고생했으니까 숨 좀 골라.”
“네.”
유진은 소현을 다독이며 준후와 응급의학의의 대화를 엿들었다.
“뭐야? 서준후, 또 너였어?”
“오랜만이네요. 재욱 선배.”
“검진받으러 와서 환자를 만들면 어떻게 하냐? 그놈의 환타 기질은 여전하구나. 여전해. 신경외과 스태프들이 불쌍하다.”
“저는 안 불쌍하고요? 전 오프인데도 응급 환자를 봤다고요.”
“다 네 업보지.”
일상적인 대화가 끝나고 준후가 응급의학의에게 상황을 노티했다.
응급의학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환자의 머리맡으로 이동했다.
“이 환자분 응급실로 보낼게요.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네. 고생하세요.”
“선생님. 죄송한데 저도 잠깐 부탁 좀 드릴게요.”
준후가 유진에게 다가와 사소한 부탁을 했다. 유진을 들어주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르르륵-
응급의학의가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을 끌고 회복실을 떠났다.
준후도 그 뒤를 따랐다.
급박했던 소란이 끝나면서 회복실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선배.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숨을 다 고른 소현이 유진에게 물었다.
“뭔데?”
“아까 그 검진자 왜 심정지가 온 거예요? 수면 내시경 받고 심정지 온 사람은 처음 봤어요.”
“나도 몰라. 그걸 알면 내가 의사를 하지.”
유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회복실 출입구를 응시했다.
그 정답은 분명 방금 떠난 두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 * *
응급의학과 스테이션.
어느새 평상복을 갈아입은 준후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검진의 마지막이 위내시경이었다. 그래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수납을 한 후 곧바로 응급실을 찾았다.
심정지 환자에게 직접 처치를 한 만큼 끝까지 환자를 책임지고 싶은 책임감 때문이었다.
아영에 대해서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내시경 회복실을 떠나기 전 유진에게 부탁을 해두었다.
아영이 깨어나면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에게 전화를 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말이다.
준후는 곁에 앉아 있는, 오더를 입력하는 재욱을 빤히 쳐다보았다.
준후가 인턴으로 응급의학과에서 수련하던 당시.
재욱은 응급의학과 치프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펠로우(전임의) 과정을 밟는 응급실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나저나 선배가 직접 검진센터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 아래에 레지던트들도 많은데.”
“환자가 보통 환자가 아니거든.”
“VIP라도 되나요?”
“비슷한 느낌이지. 수부외과 성규식 교수님의 친동생이거든. 환자한테 무슨 일 있었으면 검진센터 박살 났을걸?”
오더를 다 입력한 재욱이 준후를 응시했다.
“환자가 심정지인 건 어떻게 안 거야? 보통은 마취 끝나고 회복 중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운이 좋았죠.”
준후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은 겸손하게 했지만, 환자의 심정지를 알아차린 건 절대 운이 아니었다.
무림에서 갈고닦은 눈썰미 덕분이었다.
준후는 주변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주변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버릇이 있었다.
무림은 정글보다 위험한 곳이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암기를 던지고, 음식에 독을 타고, 몰래 숨어 있던 살수가 급습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버릇 덕분인지 준후는 환자의 심정지를 금방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네. 환자도 그렇고 검진센터도 그렇고. 네가 여러 명 구했다.”
“아까는 환타라고 핀잔을 주시더니…… 갑자기 칭찬하시는 거예요?”
“원래 병 주고 약 주는 게 의사 아니겠냐?”
재욱이 껄껄껄 웃었다.
환자가 무사해서 그런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현재 환자는 의식을 회복한 채 각종 검사를 받는 중이었다.
“검사 결과는 어때요?”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봐 볼까? 심전도 이상 없고, 피 검사, 소변 검사 이상 없고.”
“…….”
“흉부 촬영도 이상 없네? 최소한 립 프락쳐(갈비뼈 골절)는 있을 줄 알았는데.”
“제 흉부 압박이 어디 보통 흉부 압박이어야죠.”
준후는 모처럼 넉살을 떨었다.
친한 재욱의 앞이라서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준후의 흉부 압박은 세계 제일이었다.
흉부 압박을 하면 보통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지기 마련이었다.
심장을 압박해서 정지한 심장에 고여 있던 피를 전신으로 돌게 하려면 그만큼 강하게 환자의 가슴을 압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후는 힘을 적당히 썼다.
대신 내공을 썼다.
피부와 갈비뼈를 통과한 내공이 환자의 심장을 짓누르게 만들면 갈비뼈가 부러질 이유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후는 환자의 심장을 짓누르고 남은 내공에 폭(爆, 터질 폭) 자결을 운용했다.
응축시킨 내공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 이는 제세동기를 사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그러니까 준후의 흉부 압박은 환자의 갈비뼈를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제세동기의 역할까지 겸했다.
실로 사기였던 것이다.
“잘났다. 잘났어. 근데 말이다…… 숙제는 아직 남았어.”
재욱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심정지가 뜬금없이 왜 발생했는지를 모르겠네…… 환자가 검사실에서 돌아오면 뭐라고 설명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