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제39장 충격(1)
수면 내시경 후 심정지가 발생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재욱은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물론 이런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마취제가 과다투여 됐다거나, 환자가 심장에 관련된 기저질환이 있다거나.
이렇게 내시경 중 심정지가 발상하는 사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해당 환자의 경우.
일단 첫 번째 케이스를 쉽게 걸러낼 수 있었다.
체중 대비 마취제의 투여가 적절했다.
즉, 마취가 잘 안 된다고 마취제가 추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환자에게 심장질환이 있다고 봐야 하는데…….
일단 환자의 심전도 검사상에서는 정상 소견을 보였다.
“심장 초음파를 권유를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네 생각은 어때?”
“심장질환은 별로 연관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럼 뭐가 문제인데?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재욱은 준후의 의견을 넘겨짚었다. 그러고 보니 제3의 길이 존재하긴 했다.
과로, 피로 누적, 스트레스.
이러한 요인들이 한데 엉키면 건강한 사람에게도 심정지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닐 거예요.”
“평소 너답지 않게 대답이 소극적이다? 천하의 서준후도 막막한가 보지?”
“아니요. 따로 의심하는 원인이 있어서요. 환자가 오면 확인해 봐야죠.”
“그래? 나올 만한 건 다 나오지 않았나?”
재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준후가 말한 다른 원인이 무엇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수부외과 성규식 교수의 친동생인 성규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재욱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재욱의 곁에 준후가 있었으므로 세 사람 사이의 구도가 삼각형을 이루었다.
규태는 덩치가 곰처럼 커다랬다.
턱이 네모 모양으로 각졌으며 피부색은 붉은 편이었다.
재욱은 딱 느낌이 왔다.
이 사람, 분명 성격이 공격적이고 괄괄할 거라고.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봐요. 여기 검진 센터는 검사를 왜 그렇게 합니까?”
“…….”
“내가 검사를 받으러 왔지 죽으러 왔습니까? 이게 대체 무슨 경우예요?”
규태가 공격적으로 쏘아붙였다.
체구가 워낙 좋은 데다가 본원 교수의 친동생이다 보니 재욱은 괜히 주눅이 들었다.
일단 고개부터 숙이고 봤다.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네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죠. 내가 다시는 여기에 안 올 거니까.”
규태가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형이 일하는 병원이고, 빅5병원이라서 철석같이 믿었는데. 참 나, 이게 뭐하는 생쇼인지.”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가슴이 뻐근한 것 말고는 별문제 없어요.”
“혹시 심장질환을 앓고 계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근데 선생님.”
“네. 말씀하세요.”
“그건 안 물어봐도 아실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분명 검진 설문지에 지병이 없다고 적어 놨는데 말입니다.”
규태가 까칠한 목소리로 따졌다.
본래 성격이 이런 건지 아니면 심장마비라는 일 때문에 예민해진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규태가 결코 만만한 환자가 아니라는 것.
규태를 설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
일 처리를 잘못하면 규태가 성규식 교수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낼 테고.
그 이야기가 응급의학과 교수님에게 들어가면서 자신이 괴로워지리라는 것.
재욱은 벌써부터 양쪽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자료가 아직 저희 쪽으로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전산으로 빨리빨리 처리하지 않아요?”
“검진 센터 자료. 특히 손으로 작성한 수기 자료는 전산화가 늦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재욱은 차분하게 문진을 시작했다.
문진의 주된 방향은 환자의 가족력과 기저질환이었다.
심정지를 일으켰을 만한 요인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허탕이었다.
가족 중에 심질환 환자는 없었다.
규태는 건강해서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 질환도 앓고 있지 않았다.
평소 병원도 잘 찾지 않았으며 건강 검진도 이번에 처음 받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방금 결과가 나온 검사들도 다 정상이었기에.
재욱은 속으로 낭패다 싶었다.
심정지가 발생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환자에게 한 소리를 들을 게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의사가 돼서 그런 것도 몰라요? 무려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이 사람 안 되겠구만?
“혹시 근래에 과로를 하신 건 아닙니까?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셨다거나.”
“전혀요. 홍삼도 챙겨 먹고 팔팔한 데요?”
규태의 대답에 재욱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빠져나갈 구멍이 완전히 다 막혀 버렸다. 환자에게 심정지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저한테 왜 심장마비가 온 거죠?”
규태가 최후의 결정타를 날렸고 재욱은 우물쭈물했다. 할 말이 없었으므로 말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껏 잠자코 있던 준후가 입을 열었다.
“환자분 아나필릭시스 쇼크라고 아시나요? 알레르기 쇼크의 일종인데 벌에 쏘이거나 하면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는 질환이요.”
“들어는 봤어요. 근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규태가 가당치도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검사실에 벌이 들어와서 나를 쏘고 도망쳤다는 겁니까? 지금 그걸 이유라고 대는 거예요?”
“준후야, 뭐하냐. 나 도와주려는 거 아니었어?”
재욱은 환자가 못 듣도록 속삭였다.
설마 아까 의심 간다고 했던 게 아나필락시스였던 말인가.
하지만 환자를 아나필락시스와 엮는 건 지극히 어리석어 보였다.
알레르기를 일으킬 항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자 역시 그 점을 간파하고 도끼눈을 뜨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애초에 의사도 아닌 그쪽이 왜 여기 있습니까?”
“여기 의사 맞습니다. 신경외과 근무 중이고요.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환자분이 심정지인 걸 확인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습니다.”
“그래요? 흠흠. 어쨌거나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준후가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잡으며 말을 계속했다.
마치 아까부터 이런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여간 준후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녀석이었다. 레지던트 1년 차 주제에 벌써부터 능구렁이 같다고 해야 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너만 믿는다.’
재욱은 속으로 준후를 열렬히 응원했다.
* * *
“환자분은 아나필락시스 때문에 심정지가 발생했습니다.”
“무슨 수학 문제, 정답 말하듯이 말씀하네요?”
“그만큼 해답이 명쾌하니까요.”
“참 나, 똑같은 말, 반복하게 만드는데.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내가 벌에 쏘였습니까? 아니면 꽃가루 알레르기라도 있습니까?”
“알레르기의 원인은 무궁무진합니다. 환자분이 모르고 계실 뿐이에요.”
준후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환자가 깐깐하긴 했지만 설득을 못 할 이유가 없었다.
CPR을 하던 도중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답과 풀이과정을 깨달은 시점부터 준후는 이미 환자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는 이런 특이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
“복숭아를 먹어도 되고 운동도 해도 되는데. 복숭아를 먹고 난 직후에 운동을 하면 아나필락시스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요?”
“거짓말 같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실제로 그렇게 고통받고 있고요.”
“그러니까 아나필락시스로 제 병인을 퉁 치시겠다?”
“눈으로 보여드리면 믿겠죠?”
“제발 좀 보여주세요. 그럼 나도 한 번에 납득할 테니까.”
“선배. 프로포폴 1ml만 S.C(Subcutaneous inj, 피하주사)로 재주세요.”
“그럼 환자분이 프로포폴 때문에 아나필락시스가 왔다고?”
재욱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다만 목소리는 준후만 들을 수 있게 작았다.
“네. 확실해요. 저만 믿으세요.”
“프로포폴 아나필락시스라니, 난 그런 거 들어본 적도 없어.”
“저도 처음 봐요.”
“농담이지? 경험한 적도 없는 질환을 눈치로 때려잡겠다고?”
“못할 것도 없죠. 근거만 확실하게 있다면.”
“만약 틀리면 너나 나나 골로 가는 거야. 저분, 수부외과 교수님 친동생분이라니까.”
“상관없습니다. 설령 대통령이라고 해도 진료받으러 왔으면 환자일 뿐이에요.”
준후는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과의를 꿈꾼 순간부터.
준후는 단 한 번도 환자를 사회적인 지위 따위로 등급을 매긴 적이 없었다.
누가 됐든 환자라면 최선을 다한다.
그게 준후의 사고방식이었다.
“깡다구 한번 좋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 보자.”
잠시 자리를 비웠던 재욱이 1CC 주사기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준후는 재욱에게 프로포폴이 담긴 주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환자에게 다가가 환자의 손등을 알콜솜으로 소독했다.
“장난치는 거면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우리 형이 여기 교수예요.”
“그래서 어쩌라는 거죠?”
“……네?”
준후가 세게 나오자 당황한 건 오히려 규태였다.
규태는 눈을 깜빡거리며 넋 나간 표정으로 준후를 응시했다.
“교수님의 동생이라고 제가 이 자리에 동석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건…….”
“…….”
“제가 심폐소생술을 펼친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책임감 때문입니다.”
“…….”
“참고로 환자분이 교수님 동생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환자분 얼굴에 교수님 동생이라는 사실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준후는 규태의 거만한 태도를 은근하게 꼬집었다.
그러자 규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살짝 따끔합니다.”
준후는 주사기 바늘로 규태의 손등을 얕게 찔렀다.
프로포폴을 0.5CC가량 투여했다.
“지루하시겠지만 침상으로 이동해서 10분 정도 대기해 주세요.”
“그렇게 하죠.”
규태가 선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준후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는데 결과가 정상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휴. 이제 좀 살 것 같네. 무슨 환자가 의사를 잡아먹을 것처럼 구냐?”
규태가 떠나자 재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요. 윗사람이면 피곤할 스타일이에요.”
“근데 말이다. 환자가 프로포폴 아나필락시스라고 단정 지을 근거가 있었어?”
“네. 있었죠.”
“그게 뭔데?”
“흉부 압박할 때 환자 가슴이 빨갛게 부어올랐더라고요. 두드러기도 일어났고요.”
준후는 흉부 압박을 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관찰력의 대가답게.
준후는 흉부 압박을 하면서도 환자의 몸을 샅샅이 관찰했다.
그 결과 환자의 흉부와 양쪽 팔뚝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흉부 압박하는 와중에 그런 게 보이니? 혹시 착각한 거 아니야?”
재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가슴이 빨갛게 부은 건 흉부 압박 때문이었고 두드러기는 사실 닭살 같은 거 아니야?”
“제가 그걸 착각하겠어요? 절 너무 못 믿으시는 거 아니에요?”
“믿기야 믿는데…… 프로포폴 아나필락시스는 들어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오는 길에 논문 검색해 보니까 딱 1건 있더라고요. 심정지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그 1건이 제발 우리를 살렸으면 좋겠다.”
잡담을 나누던 두 사람이 사이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규태가 있는 침상으로 향했다.
재욱은 아직 긴장한 듯했지만 준후는 여유가 넘쳤다.
준후가 경험하고 종합한 모든 정보가 명백하게 프로포폴 아나필락시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환자는 프로포폴 아나필락시스일 게 분명했다.
두려움에 떨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준후는 침상에 걸터앉은 규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손등 좀 보여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