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11화 (211/424)

211화

제40장 의혹(1)

“휴. 알아버렸구나. 좀 더 늦게 알길 바랐는데.”

경수가 준후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어느새 경수의 입가에 착잡하고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너한테 그 환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서 말 못 했다. 분명 상실감이 클 테니까.”

“…….”

“그럴 일은 없겠지만…… 영영 못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고.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말을 해.”

“알았다.”

경수의 담담한 설명이 이어졌다.

오늘 새벽 1시경.

병실 라운딩을 돌던 간호사가 식물인간 환자의 급성 심정지와 급성호흡부전을 발견했다고 한다.

응급으로 CPR을 실시했지만 환자는 회복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는 병원에서 발에 차이도록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케이스였다.

과거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케이스였다.

하지만 준후는 환자의 주치의였다.

환자의 사망을 사소하고 흔해 빠진 것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민태웅 환자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준후의 유일한 환자였으니까.

이별을 준비하지 못했던 탓에 준후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허전함과 상실감이 뼈에 사무쳤다.

창가 자리에서 햇볕을 받고 있던 환자의 모습을 준후는 문득 떠올렸다.

준후는 환자가 언젠가 깨어날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환자는 다시 피어나기 전에 지고 말았다.

애통하고 애석한 일이었다.

의대 동기이자 한 살 형이었던 성호가 뇌사로 세상을 떠난 이후로 이런 무기력한 이별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건만.

세상은 그런 준후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다.”

경수가 침통한 준후를 쳐다보며 말했다.

“식물인간 환자가 급사하는 건 자주 벌어지는 일이야. 식물인간 환자는 스스로 호흡이 가능하잖아?”

“…….”

“그래서 평소에 환자 감시 장치도 달지 않아. CPR이 늦어진 것도 그 때문이지. 그러니까 이번 사건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비극이었어.”

경수의 말은 차가웠지만 위로가 분명했다.

경수가 예전과 달리 자신을 챙겨주고 있다는 걸 준후는 알았다.

“그뿐만이 아니야.”

“또 할 말이 있어? 준비를 단단히 했나 보지?”

“그래. 준비 단단히 했다. 넌 어떤 면에서는 누구보다 강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누구보다 약하니까.”

경수가 말을 계속했다.

“네가 쉬는 날에 환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죄책감 가지지 마. 네가 당직이었다고 해서 변할 것도 없었으니까.”

“…….”

“그리고 환자한테 연명 의료 중단 결정 떨어졌던 거 알지? 애초부터 회복이 어려웠던 환자라고.”

“고맙다. 꽤 위로가 됐어. 진심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어제 당직은 누구였어? 당직 근무자도 꽤 충격받았을 것 같은데.”

“시호 선배.”

시호의 이름을 들은 순간,

잠잠하게 가라앉고 있던 준후의 마음에 다시 격렬한 파도가 휘몰아쳤다.

당직 근무자가 시호라고?

불길하고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호의 근무 중에 환자가 죽었다면 그걸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준후는 알았다. 시호에게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의 오프 날에 환자가 사망했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다.

어쩌면 시호는 준후가 없는 어제를 학수고대했을지도 몰랐다.

우연처럼 보이는, 고의적 살인을 연출하기 위해서.

생각이 뻗어 나가면서.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시호 선배는 어디 있어?”

“오전부터 오후까지 수술 있어. 얼굴은 나중에 봐야 할 거다. 갑자기 선배는 왜?”

“아니. 그냥 시호 선배도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시호 선배도 괴로워하더라. 자기 당직 중에 환자가 죽었다고.”

경수의 말을 준후는 믿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눈에 훤히 보였다.

시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오늘 새벽에 난리도 아니었겠네?”

“당연하지. 환자랑 보호자 다 깨고 우리도 깨서 CPR을 도왔으니까. 결과가 안 좋아서 아쉽다만…….”

경수와 대화를 마친 후.

준후는 민태웅 환자의 간호 기록지를 살폈다.

[새벽 1시 라운딩을 돌던 중 C.A(급성 심정지)발생. 당직 근무자와 간호사가 응급 심폐소생술을 시행함.]

[CPR 3사이클 후 A.E.D(자동제세동기) 사용. 에피네프린 1amp IV per 3minute Inj.]

[CPR을 30분간 진행하고 차도가 없어 당직의가 expire(사망선고) 선언. 심폐소생술 종료함.]

새벽에 발생했던 다급한 상황이 건조하게 글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준후는 그 생생함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급히 몰려온 스태프.

번갈아 이뤄지는 심폐소생술.

정맥으로 투여되는 수액과 주사 약물.

당황하고 두려운 표정을 지었을 보호자.

흉부 압박을 할 때마다 들썩거리는 환자의 몸 등등.

간호 기록지를 읽으며 새벽의 일을 직접 체험한 준후는 환자의 퇴원 기록지를 살폈다.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는 알림 문구가 여전히 깜빡거리고 있었다.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순간.

환자는 영영 준후의 곁을 떠나게 되리라.

준후는 잠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가 다시 떼었다.

아직 환자를 보낼 수 없었다.

확인해 보고 싶은, 아니, 확인해야 하는 것이 몇 가지 존재했다.

“경수야. 진짜 미안한데 딱 40분만 당직실 좀 봐주라. 어디 가 볼 때가 있어서.”

* * *

당직실을 떠난 준후는 곧바로 본관 지하 3층을 찾았다.

지하 3층은 다른 층과 달리 복도가 텅텅 비어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 스태프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3층에 존재하는 부서가 CCTV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CCTV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내를 돕는 창은 열려 있었다.

준후는 창가 앞에 섰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가드가 창가로 얼굴을 내밀었다.

준후에게 용무를 물었다.

“CCTV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열람 가능하죠?”

“선생님이 직접 오셨네요. 병동에 도난 사고라도 발생했나 보죠?”

“비슷한 느낌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준후는 CCTV실 안으로 들어갔다. CCTV실은 이름 그대로 폐쇄회로 화면을 촬영 중인 모니터로 가득했다.

병원 안팎을 철저하게 감시 중이었다.

근무자도 무려 3명이나 되었다.

“어디를 확인하고 싶으세요?”

“신경외과 병동입니다. 시간은 어젯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요.”

“잠시만요.”

준후를 안내했던 가드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영상을 기다리는 동안.

준후는 시호를 향한 의심을 키워갔다.

어제 당직이 시호였다는 점.

공교롭게도 그날 준후가 휴무였다는 점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계획 살인이 이뤄졌다는 불안을 지우기 힘들었다.

물론 이는 준후의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었다.

환자가 자연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연명 의료 중단 결정까지 내려진 민태웅 환자였다.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확인을 해보면 알겠지.

둘 중 어떤 게 진실인지.

초조하고 긴 기다림 끝에 가드가 영상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CCTV가 총 4군데 있네요? 병동 스테이션 쪽에 하나, 숙직실 앞에 하나, 복도 시작되는 부분에 하나, 복도 끝에 하나.”

“…….”

“뭐부터 보여드려요?”

“복도 시작하는 부분부터 보여주세요.”

“여기 영상 하단에 있는 바가 보이시죠? 요 부분이 움직임이 있었던 부분이니까 이 부분만 확인시켜드릴게요.”

“네. 그러세요.”

가드가 첫 번째 영상을 재생해 주었다.

영상은 병동 복도의 시작 부분부터 3분의 1지점까지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준후는 눈에 내공을 불어넣은 채 영상에 집중했다. 영상에 단서가 남아 있다면 먼지 한 톨도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첫 번째 영상은 별로 영양가가 없었다.

한 시간 단위로 간호사가 병실을 라운딩 도는 모습만 녹화되어 있었다.

다음은 숙직실 앞에 달린 CCTV 영상이었다.

이번 영상에서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단서가 포착되었다.

밤 12시 40분쯤이었다.

시호가 갑자기 영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숙직실 앞에 위치한 직원용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환자에게 심정지와 호흡곤란이 발생한 시간이 새벽 1시가 아니던가.

당직실을 벗어난 시간이 무척 공교로웠다.

사건과 고작 20분 차이였으니까.

혹시 시호는 화장실에서 무슨 준비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섬뜩한 예감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이후 시호는 12시 43분쯤에 화장실을 떠나 다시 자취를 감췄다.

그대로 당직실에 복귀했는지 민태웅 환자가 있는 병실로 몰래 침입했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준후가 영상을 모두 살피는 데는 총 10분 정도가 걸렸다.

아쉽게도 의미가 있었던 건 두 번째 영상뿐이었다.

시호를 단독으로 촬영했으니까.

나머지 영상은 간호사와 숙직실에 있던 스태프들이 다급하게 병동 복도를 뛰어가는 모습만 잡혔다.

“어휴. 새벽에 큰일이 있었네요. 이 환자분 어떻게 됐습니까?”

동영상을 같이 보던 가드가 준후에게 물었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런…… 제가 괜한 걸 물었군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근데 CCTV 영상은 이게 다인가요?”

“네. 무슨 문제라도…….”

“이래서는 곤란하네요.”

준후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CCTV는 가장 핵심적인 구간을 놓치고 있었다.

바로 병동 복도 중앙이었다.

민태웅 환자의 병실은 병동 복도 중앙에 있었는데 그 부분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만약 복도 중앙을 비추는 CCTV가 있었다면 병실에 누가 침입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시호가 병실에 들어갔다는 근거.

그것만 발견해도 사건은 절반쯤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말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각지대네요.”

“환자들 사생활 침해 문제도 있고 CCTV 하나하나가 다 돈이니까요. 구입부터 유지·보수까지 다요.”

“…….”

“그러니까 병원 입장에서도 드문드문 CCTV를 설치할 수밖에요.”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선생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세요.”

준후는 아주 희미한 단서만 손에 쥐고 CCTV실을 나왔다.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소득이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호에게 수상한 행동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됐으니.

다음 목적지로 향하면서.

준후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만약 시호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고 계획 살인을 저질렀다면.

살인 동기는 무엇일까.

또 살인 방법은 무엇일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질문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진실은 짙은 안개 너머에 꽁꽁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쉽지는 않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수밖에…….

파바바밧.

준후는 보법을 밟아가며 별관 지상 1층으로 나왔다.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달렸다.

따사로운 초가을 햇살을 받으며 도착한 곳은 장례식장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