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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12화 (212/424)

212화

제40장 의혹(2)

신원대 병원 장례식장은 3층 건물이었다.

어두운 회백색을 띤 건물 색깔이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층 출입구 근처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인의 가족들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은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속을 태우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준후는 생각했다.

그냥 이별을 해도 고통스러울 판에 영원한 이별이라니…….

장례식장이 가까워지면서 준후의 발걸음은 느리고 무거워졌다.

차트로만 느꼈던 민태웅 환자의 사망이 이제야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출입구를 지나 장례식장 로비에 들어섰다.

평일 오전이라서 그럴까.

로비에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직원이 두 명이고 조문객이 서너 명쯤 되었다.

준후의 시선이 전광판에 머물렀다. 익숙한 이름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장례식장에서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쓰렸다.

마치 적일도의 도(刀)에 가슴을 베였을 때처럼.

준후는 중앙 계단을 통해 터덜터덜 2층으로 올라갔다.

203호 빈소에 도착해서 조의금을 내고 명부에 이름도 적었다.

신발을 벗어서 신발장에 둔 후 빈소로 향했다.

상복을 입은 보호자와 친지들이 빈소 옆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보호자의 눈이 팅팅 부어 있었다.

보호자가 준후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

준후도 고개를 숙였다.

향로로 다가가 준후는 향부터 피웠다.

하얀 연기가 위태롭게 나풀거렸다. 인간의 삶도 지금 피우는 향의 연기처럼 덧없고 아슬아슬한 것이라고 준후는 문득 생각했다.

준후는 환자를 향해 큰절을 두 번하고 반 절을 했다.

보호자를 향해서도 큰절을 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사람 목숨이라는 게 참 덧없네요. 남편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는데.”

보호자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저나 남편이 지금까지 버텼다고 생각해요. 치료비까지 사비로 보태주셨고.”

“…….”

“병실에 자주 찾아와서 말도 걸어주시고.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선생님.”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많이 힘들고 혼란스러우시죠?”

준후는 보호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물었다.

무림에서 준후는 아버지를 비롯해 무림맹의 수많은 동료가 다치고 죽는 것을 목격해 왔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과 슬픔, 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오죽하면 그때의 아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것이 외과의겠는가.

“네. 지인들 조문 갈 때는 몰랐는데…… 직접 상주가 되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요. 누군가가 제 머리와 마음을 휘젓고 있는 기분이에요.”

“잘 극복하실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렇겠죠?”

보호자의 시선이 활짝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향했다. 준후도 영정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진 속 민태웅 환자는 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준후가 병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소였다.

앞으로도 볼 수 없는 미소였다.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만…… 괜찮으실까요?”

“네. 말씀하세요.”

“환자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병실에서 기척 같은 건 못 느끼셨나요?”

“기척이요?”

뜻밖의 질문에 보호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소리가 될 수도 있고. 뭐, 사소한 소리라도 좋습니다.”

“글쎄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곯아떨어졌던 터라…… 저도 간호사님이 깨워서 일어났거든요. 근데 그건 왜 물으세요?”

“제가 실없는 소리를 했네요.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준후는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질문의 의도는 명백했다.

이번 사건이 살인 사건이라면.

그리고 범인이 시호라면.

시호는 반드시 병실에 침입했을 것이다.

준후는 그 증거를 찾고 싶어서 질문을 했다.

안타깝게도 건진 것은 없었지만.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저희가 쓰던 병실은 조용하던 편이었잖아요.”

“그렇죠. 코 고는 분도 없었고 주변에는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이셨죠.”

“누가 들어왔으면 제가 알아차리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준후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는 충분히 나눴기에 떠나도 괜찮았지만, 준후는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호자에게 하나 더 제안하고 싶은 게 있었다.

하지만 그 제안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심각한 고민이었다.

-환자분을 부검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준후가 하고 싶은 제안은 부검이었다.

부검을 한다면 환자가 자연사를 했는지 살해를 당한 건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시호가 약물로 환자를 사망케 이르게 했다면.

오로지 부검을 통해서만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싶었다.

우선 시호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

부검을 밀어붙였다가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면 부검을 제안한 준후를 보호자는 크게 원망할 게 분명했다.

보호자는 간신히 정리 중인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입을 테고.

그렇다고 부검 없이 사건을 넘기자니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범인일 수도 있는 시호를 그냥 놓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준후가 머뭇거리자 보호자가 먼저 물었다.

부검 제안을 하느냐.

부검 제안을 하지 않느냐.

짧은 순간에 준후의 머릿속은 두 가지 결정을 수십 번 오갔다.

가까스로 결심을 마친 후.

준후는 보호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자신의 두 손으로 보호자의 두 손을 포개 쥐었다.

“보호자분.”

“네. 선생님.”

“저는 보호자분이 이 시련을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힘내십시오.”

“감사해요. 선생님.”

보호자와 작별인사를 하고 준후는 빈소를 떠났다.

1층 로비로 내려왔다.

결국 부검 제안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보호자의 마음을 들쑤시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고 먼 훗날 준후는 알게 되었다. 이날의 선택이 두고두고 잘한 일이었음을.

세상에는 운명 같은 착각도 존재한다는 것을.

* * *

그 날 오후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준후는 알지 못했다.

소중한 환자를 잃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와 감정이 메마른 것과 별개로.

준후는 수술 어시스트와 오더 입력 등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멘탈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습관의 무서움이자 위력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었다.

창가에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준후는 당직실에서 차트를 입력 중이었다.

점심을 걸렀는데도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속이 쓰리지도 않았다.

위장보다 마음이 더 허전했던 탓이었으리라.

결국 더 이상의 단서는 없었지.

이대로 끝내야 하는가 보네.

준후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시호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추가 조사를 했었다.

민태웅 환자와 같이 병실을 쓰던 환자와 보호자에게 준후는 질문을 던졌다.

사건 당시 무슨 기척을 듣지 못했냐고.

다들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당직실과 스테이션에 있는 의료용 폐기물을 뒤진 적도 있었다. 시호가 약물을 썼다면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기에.

애석하게도 남은 흔적은 없었다.

흔적이 정말 없는 건지.

이미 감촉같이 치워진 건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준후는 한참 동안 민태웅 환자의 차트만 바라보았다.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여전히 깜빡거리고 있었다.

환자를 보낼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일까.

키보드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마치 키보드에 반탄력이 있어 준후의 손을 밀어내는 듯했다.

드르르륵-

때마침 열리는 당직실의 문.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시호였다.

시호를 확인한 순간 복잡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분노, 의심, 불쾌 등등.

시호와 연관된 감정 중에 좋은 감정은 한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선배 얼굴 보기 힘드네요.”

“오전 오후에 수술이 연달아 잡혔으니까. 사망진단서 아직 못 뗐구나.”

시호가 다가와서 준후의 모니터를 확인하고 말했다.

마침 단둘이 있겠다.

제대로 찔러 봐?

밑져야 본전인데?

함정수사를 마음먹고 준후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휴대폰을 보지 않고도 능숙하게 녹음기 앱을 작동시켰다.

“선배, 왜 그랬어요?”

“뭘?”

“민태웅 환자 죽인 사람, 선배잖아요.”

준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호와 마주 보고 섰다. 지금부터는 연기가 중요했다.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환자를 죽였다고?”

“네. 다른 사람 눈은 속여도 제 눈은 못 속입니다. 눈엣가시인 제가 쉬는 날에 바로 작업 들어간 거잖아요.”

“서준후. 말이 너무 심하다?”

“새벽에 선배가 한 행동을 제가 읊어볼까요?”

준후는 자신의 할 말만 이어갔다.

어제 자정 12시 40분경.

시호는 직원 전용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에서 미리 빼돌린 치명적인 약물을 주사기에 재어놓았다.

그리고 도둑고양이처럼 민태웅 환자가 있는 병실을 찾는다.

CCTV의 사각지대를 알고 있었기에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병실에 들어선 시호는 준비한 주사기로 환자에게 약물을 주입한다.

시호는 할 일을 마치고 당직실로 복귀하고.

잠시 후 민태웅 환자에게 급성 심정지와 호흡부전이 찾아온다.

환자감시장치가 달려 있지 않으므로 환자는 고요 속에 죽어간다.

새벽 1시.

라운딩을 도는 간호사가 민태웅 환자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채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환자는 이미 죽음이 가까웠다.

CPR을 해도 소용이 없다.

환자에게 expire(사망선고)를 하면서 완전범죄의 막이 내린다.

“어때요? 아주 자연스러운 살인 방법 아닌가요? 연명 의료 중단 판정도 내려진 환자이니 급사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죠.”

“…….”

“아주 교묘하고 치열한 계획범죄 아닙니까?”

“너 추리 소설이나 쓰지. 왜 의사를 했냐?

준후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시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준후는 여기서 멈출 계획이 없었다.

시호가 범인이라는 가정하에.

시호를 잘 조종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사이코패스 범죄자에게는 두 가지 심리가 있다.

하나는 남몰래 일을 처리하고 싶은 것.

다른 하나는 그런데도 누군가가 자신이 한 일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준후는 후자의 심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자백하는 뉘앙스의 말 한마디만 있어도 좋았다.

그러면 보호자를 설득해 부검을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기회는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 아닌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준후의 본능이 강력한 신호를 보내왔다.

“현실이 소설을 초월한 지는 오래예요. 그건 선배 본인이 제일 잘 알지 않나요?”

“그딴 건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아끼는 환자가 사망했다고 완전 맛이 갔구나. 너.”

“제가 아무리 맛이 가도 선배 발끝에도 못 미칠 걸요?”

“크크크크. 진짜 넌 날 여러 번 놀라게 해. 너 같은 인간은 처음이야.”

시호가 광기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웃음기를 단번에 싹 지워 버렸다.

“서준후. 제법 짱구를 굴렸다만 이번만큼은 헛다리를 짚었네. 난 환자를 죽이지 않았어.”

“발뺌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아니까요.”

준후가 한 번 더 추궁하자 시호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전혀 예상 못 했던 반응이었다.

시호는 덥석 준후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안 죽였다고. 씨X놈아.”

시호의 평점심이 처음으로 무너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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