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제40장 의혹(5)
터벅. 터벅.
준후는 소아과 병동 복도를 가로 지르고 있었다. 걸으면서 주변을 살피니 당연하게도 어린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어린 환자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선천성 질환을 앓는 유치원생부터 머리가 큰 중·고생들까지.
환자들의 사연은 몰랐지만.
준후는 어린 환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병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아닌데.
아프기보단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배우고 즐겨야 할 나이인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ㅁ’자로 된 복도에서 준후는 우측 상단에 있는 병동 쪽으로 걸음을 계속했다.
소아 신경외과 병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아과 병동에 신경외과 섹션이 따로 있는 것이었다.
준후는 한 6인실 앞에 멈춰 섰다.
벽에 붙어 있는 환자의 이름 중 이재은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준후가 만나야 할 환자였다.
드르르륵-
병실로 들어가서 준후는 재은이와 재은의 어머니를 마주했다.
재은이는 6살의 여아였다.
소처럼 순박한 눈망울이 준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보호자는 어머니로 보였는데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는 데 빠져 있었다.
“재은아. 안녕?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냐세요.”
재은이가 뭉개진 발음으로 귀엽게 고개를 숙였다. 보호자도 뒤늦게 준후를 발견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반갑습니다. 입원 첫날이라 정신이 없으시죠?”
“입원은 처음인데 자잘하게 챙겨야 할 게 많네요. 슬리퍼에, 수건에, 세면도구에, 휴대폰 충전기까지…….”
“교대할 분이 있으시면 한 번 더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잠깐 재은이와 대화를 하죠.”
준후의 시선이 다시 재은이를 향했다.
재은이는 오늘 입원했고 주치의가 준후였다.
재은이가 앓고 있는 질환은 모야모야병.
질병 이름이 특이해서 의료계와 관련이 없어도 한 번쯤 들어봤을 질환이었다.
모야모야병은 뇌혈관 내벽이 두꺼워지면서 뇌혈관이 막히게 되는 뇌혈관 질환이었다.
일본 의사가 처음 발견했는데 검사 결과, 그 모습이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 같다고 해서 모야모야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재은아. 지금은 어디가 아파?”
“지금은 안 아파요.”
“그럼 예전에는 어떻게 아팠어?”
“머리가 아프고 말도 안 나오고 팔이 막 안 움직였어요.”
“저런. 많이 무섭고 놀랐겠다.”
성인도 두려워했을 증상을 6살 아이가 겪었다라…….
준후는 재은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애석하기도 했다.
“우리 재은이 의젓하네?”
“의젓이 뭐예요?”
“그게…… 쉽게 말하면 멋있다는 뜻이야.”
“선생님도 의젓해요.”
재은이가 단어를 바로 써먹는 걸 보고 준후는 아차 싶었다. 단어 설명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재은이의 상태를 좀 더 묻다가 준후는 보호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명은 들으셨겠지만 맵고 뜨거운 음식은 재은이에게 먹이면 안 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탈수도 피해야 하고요.”
“…….”
“뇌혈관이 더 좁아지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네. 선생님. 명심할게요.”
“제게 따로 할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나가서 하고 싶네요.”
“그러시죠. 재은아, 이따 보자.”
“네. 선생님.”
준후는 병실을 나와 복도에 섰고 뒤따라온 보호자가 준후를 마주했다.
보호자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얼굴엔 시름이 가득했고 손가락은 두껍고 습진이 있었으며 자잘한 생채기가 있었다.
“선생님. 재은이…… 치료비는 얼마 정도 나올까요?”
보호자가 한숨부터 쉬며 물었다.
“걱정하신 것만큼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모야모야병은 희귀 난치성 질환이라서요. 중증 등록을 하면 전체 치료비에 10퍼센트만 부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금액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굳이 말씀드린다면 300-400만 원 정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준후는 나름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보호자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생각보다 적긴 한데. 그래도 저희 집 형편이 워낙 안 좋아서…….”
보호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세 사기를 당해서 당장 내쫓길 판국이고, 남편 수입도…….”
“남편분께 무슨 문제가 있나요?”
“네. 철딱서니가 없는 사람이에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이상한 사업만 기웃거리고 있어요. 다 큰 애를 하나 더 키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랍니다.”
보호자의 안타까운 사연에 준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전세 사기였다.
대출받아 마련한, 희망이 가득해야 할 전셋집에서 쫓겨날 상황이라면 보호자의 좌절감은 말도 못 할 것이다.
거기에 아이는 모야모야병에 걸렸고 남편까지 철부지라면…….
낭떠러지에 내몰린 기분이 들 것이다.
“외래 진료 보시던 교수님 말씀으로는 수술을 한 번 더 받고 재활 치료도 받아야 한다고 하시던데.”
“네. 모야모야병 수술은 양측 뇌혈관을 각각 한 번씩 수술합니다. 이번에 수술받고 몇 개월 뒤에 또 수술을 받아야죠.”
“그때까지 재은이 돌보려면 저는 일도 못 할 텐데. 생활비는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이네요.”
보호자가 다시 한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양가 부모님이나 친지, 친구들에게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닌 듯했다.
“일단 사회 복지팀을 찾아가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쭤보세요.”
“사회 복지팀이요?”
“네. 본관 2층에 있습니다. 복지팀에서 뾰족한 해결책이 없으면 제가 개인적으로라도 도와드릴게요.”
“아휴. 개인적이라니 그럴 순 없어요.”
“왜요? 저 보기보다 돈 많습니다.”
준후는 일부러 익살맞게 대답했다.
사람은 병으로만 죽는 것이 아니었다. 병을 치료할 돈이 없어서 죽기도 했다.
그리고 준후는 후자를 막기 위해 뉴튜브를 시작했다.
재은이와 보호자를 돕는 일은 준후에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침 이번 기회에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타다다다닥-
멀리서 다가오는 발소리에 준후가 먼저 반응했다.
고개를 돌리니 한 남성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여보! 좋은 소식 있어!”
보호자가 말하던 문제의 남편이었다.
* * *
“선생님도 계셨군요. 재은이 아빠입니다. 이용재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용재가 준후와 짧게 통성명을 나누고 바로 보호자를 응시했다.
“여보. 진짜 좋은 소식 있어. 이제 치료비 같은 거 걱정 안 해도 돼. 나만 믿으라고.”
“당신을 믿으라고?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겠는데?”
“아이.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봐.”
흥분한 용재가 설명에 나섰고.
준후는 제3자의 입장에서 용재의 이야기를 들었다.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불안해서 저절로 팔짱이 끼게 되었다.
돌겠네. 진짜.
물 없이 고구마를 열 개쯤 먹으면 이렇게 답답하려나.
다 큰 어른이 재은이만도 못해서야.
용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준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기 바빴다.
용재의 말인즉슨.
단돈 200만 원이면 재은이를 완벽하게 치료해 주겠다는 용한 한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한의사의 이름은 무려 제천 도사.
이름부터 사이비 냄새가 풀풀 풍겼다.
도사의 말에 따르면 봉독(벌침)요법과 식이요법만으로 모야모야병을 치료하는 게 가능하단다.
암 환자도 수십 명 고쳤는데 모야모야병 정도는 우습단다.
“안 그래도 내가 오전에 강원도를 갔다 왔거든? 근데 이분은 진짜야. 완치됐다는 환자도 직접 봤어.”
“비즈니스 미팅 있었다면서 사실은 그 사이비 만나러 갔던 거야? 그럴 시간에 입원이나 도와주지.”
“글쎄. 사이비 아니라니까!”
용재가 언성을 높여가며 가짜 한의사를 두둔했다.
“세상에는 의학이나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말기 암 환자를 고쳤다잖아.”
“하…… 진짜 그 사람 말을 믿어?”
“못 믿을 이유가 없으니까. 음양오행설이다 뭐다, 설명을 어찌나 유창하는지. 완전 전문가였어.”
“원래 사기꾼은 말을 잘해. 왜인 줄 알아? 당신 같은 사람 등 처먹어야 되거든.”
“말이 좀 심하네? 당신만 재은이를 위하는 줄 알아?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사방팔방으로 알아보는 중이라고!”
부부간의 말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병동 복도를 지나가던 간호사와 다른 보호자들이 이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재은이 퇴원시켜주세요.”
급기야 용재는 준후에게 퇴원을 요구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결정이었다.
사이비 치료를 받는 동안, 재은이의 상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자칫 뇌혈관이 터진다면.
재은이는 영구 장애,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준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 딸도 내 마음대로 못합니까? 이거 월권 아니에요?”
“제가 퇴원을 받아 주면 살인 방조가 되는데요?”
“선생님도 선 넘으시네. 현대 의학이 모든 걸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에요.”
“사이비 의술로 병을 치료하겠다는 건 어리석은 거 아닙니까?”
용재의 한심한 논리를 준후가 반박했다.
돈이 없는 데다가 딸이 희귀 질환을 앓고 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는 심정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사이비들은 보호자들의 그런 절박한 심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 용한 도사님한테 전화 한번 걸어주세요. 제가 통화해 보겠습니다.”
“말 잘하셨네요. 좋습니다. 제발 좀 그렇게 해주세요. 아내도 도사님 용한 걸 알아야 하니까.”
용재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금방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도사님. 오늘 오전에 도사님 뵈러 갔던 사람입니다.”
-아. 네.
“제가 선생님 치료를 받겠다고 했더니 병원에서 뜯어말려서요. 도사님이 의사 선생님 좀 설득해 주세요.”
용재가 휴대폰을 내밀면서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바꾸었다.
준후가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신원대 병원 신경외과 레지던트 서준후라고 합니다.”
-허허, 반갑습니다. 선생님.
“저는 하나도 안 반가운데요?”
준후는 가시 돋친 목소리로 받아쳤다.
용재도 문제였지만 사이비 도사는 더 문제였다.
이자야말로 악의 근원이었다.
재은이를 대충 치료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 하늘의 뜻이라고.
천명은 어쩔 수 없다고 얼버무릴 게 뻔히 보였던 것이다.
무림에서도 이런 사이비 도사들이 꽤 많았다.
-선생님께서는 화가 많으시군요. 그런 화가 가득한 마음으로 어찌 환자를 정성껏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도사의 말에 용재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고 아내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준후의 경우 뜨거운 분노가 정수리까지 차올랐고 도사를 향한 혐오감에 구역질이 났다.
이 인간이 뚫린 입이라고 말 함부로 하네.
“듣자 하니 당신이 재은이를 치료한다고 했다면서?”
준후는 다짜고짜 반말을 했다.
사기꾼에게 예의는 필요 없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본디 자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인간을 치유하는 것도 당연히 자연의 몫이죠.
“…….”
-현대 의술이 대단히 발전했다고는 하나 대자연에 견줄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X랄 염병하네.”
-허…… 입이 지나치게 거칠군요.
“쓸데없는 소리 하긴 싫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오늘 그쪽이 서울로 올라와.”
-갑자기 서울이요?
“그래. 병원에 와서 직접 재은이 치료해 보라고. 재은이가 완치되면 내가 당신 계좌에 바로 천만 원 쏴 줄 테니까.”
-그건 좀…….
“왜 자신 없어?”
준후는 깐족거리며 도사를 놀렸다. 준후의 제안에 도사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준후 앞에서 어줍잖은 치료를 했다가는 본인의 사기가 만천하에 들통 날 테니까 말이다.
“선생님. 괜찮으시면 서울로 올라와 주세요. 여기 있는 의사 선생님하고 제 아내 코 좀 납작하게 해주세요.”
잠자코 있던 용재가 대화에 껴들었다.
용재는 어리석게도 아직까지 도사를 무한히 신뢰했다.
“도사 양반. 자신 있으면 서울로 올라오라니까.”
-아니 서울은 대자연의 기가 약해서…….
도사의 목소리가 차차 줄어들었다.
“그럼 내가 재은이랑 강원도로 갈게. 강원도에서 치료받고 서울에서 검사 하는 건 문제 없잖아? 그렇지.”
-…….
“어디 대자연의 기로 멋지게 치료해…….”
뚜우우- 뚜우우-
준후가 난폭하게 몰아붙이자 통화는 끊어져 버렸다.
이후 몇 번이나 통화를 시도했지만 도사는 끝내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