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17화 (217/424)

217화

제41장 선택의 기로(2)

은쟁반 위에 올려진 닭 날개를 보며 준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스트를 본다기에 인공 모형을 준비할 줄 알았건만.

닭 날개가 등장하니 실소가 터졌다.

닭 날개는 시간, 장소, 때와 전부 지금과 어울리지 않았다.

“의외다 싶지?”

준후의 감정을 눈치챈 철우가 한마디 했다.

“레지던트라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펠로우가 되면 동물로도 수술 연습 많이 한다. 닭 날개는 물론이요. 닭 태반, 실험용 쥐 수술도 하지.”

“재미있을 것 같네요. 빨리 펠로우가 되고 싶은 심정이에요.”

“뭐? 재미?”

“인공 모형으로만 연습하는 거 재미없거든요.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도 없고.”

준후의 당돌한 대답에 철우가 혀를 찼다.

조교수 민석은 팔짱을 낀 채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죠?”

“닭 날개의 상완동맥을 채취하면 돼. 일종의 혈관 그래프트 시술이지.”

혈관 그래프트란 혈관 이식에 필요한 혈관을 다른 혈관에서 얻는 시술 중 하나였다.

시술 중에서 꽤 고난이도에 속했다.

의사 외에 다른 의료인이 시술하는 것이 불법일 정도였다.

“잠깐 기다려.”

철우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나타났다.

짤그락- 짤그락-

블레이드(칼날), 스칼펠(칼대), 니들홀더, 포셉 등등.

수술 도구가 놓여 있는 쟁반을 닭 날개 옆에 내려놓았다.

테스트 한번 화끈하게 하시네.

능력이 없으면 꺼지라는 건가?

준후는 민석을 슬쩍 쳐다보고 가볍게 손을 풀었다.

레지던트가 혈관 그래프트 시술을 하려면 최소 3-4년 차는 되어야 했다.

하지만 민석은 1년 차인 준후에게 그래프트를 주문했다.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시술을 말이다.

그 속뜻은 간단했다.

어시스트에 들어가고 싶으면 네 솜씨를 증명해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 자리가 떨렸을 것이다.

교수와 펠로우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데다가.

닭 날개에서 혈관을 채취해야 했다.

실수를 한다면 그 결과가 바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위축되고 긴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순간을 즐겼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 줄 생각에 들떴다.

그리고 준후는 항상 위기일 때 강했다.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곤 했다.

오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준후, 네가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

모처럼 민석이 입을 뗐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과정이고 정확도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

“알겠습니다.”

문답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준후는 트레이에 놓인 블레이드 중 15번 블레이드를 골랐다.

보통 피부 및 피하 절개를 할 때 외과의들은 부위를 막론하고 10번을 애용했다.

칼날의 길이와 넓이, 날카로움이 가장 무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준후의 선택은 15번이었다.

“15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민석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15번은 주로 성형외과에서 사용하는 블레이드입니다. 칼날이 짧아서 수술 부위가 좁거나 섬세한 절개가 필요할 때 사용합니다.”

“…….”

“닭 날개에 그래프트를 하기엔 15번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평소에 15번 쓸 일이 없었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펠로우 철우가 염려했지만 준후는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무림에서는 검, 도를 가리지 않고 사용했으며. (물론 검을 제일 가장 잘 다뤘지만.)

얼마 전에는 달고나로 특훈도 했다.

어떤 블레이드를 사용하든지 준후는 거칠 것이 없었다.

내가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중요한 건 과정이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

웃기지 마.

난 반드시 성공할 거야. 환자도 아니고 닭 날개 앞에서까지 무기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딸칵.

각오를 다지며 준후는 칼대에 칼날을 꽂았다.

블레이드가 전등을 반사하며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

준후는 메스를 오른손에 쥐고 왼손으로는 닭 날개를 더듬거렸다.

인체구조는 잘 알았지만 닭체구조(?)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촉지를 통해 닭 날개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세로로 놓인,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닭 날개에 준후는 처음으로 메스를 댔다.

스으으윽-

닭의 스킨은 사람의 스킨보다 훨씬 얇고 연약했다.

그래서 섬세한 힘 조절이 일품인 풍천촉화의 묘리를 절개에 녹여냈다.

준후의 세심한 손놀림으로 2센티미터 길이의 절개창이 생겨났다.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아주 반듯한 절개창이었다.

절개창의 위치는 닭 날개의 좌측 상단부터 닭 날개 하단 부분까지였다.

‘호오, 이 녀석 봐라?’

민석은 준후의 절개를 확인하고 눈을 치켜떴다.

절개창의 길이가 채취해야 할 상완동맥의 길이와 일치했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힘 조절을 못 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칼날은 정확하게 닭의 피부층과 근막만 갈라놓았다.

절개창 사이로 닭의 분홍빛 살결이 선명하게 보였다.

철우에게 시선을 돌리니.

철우도 퍽 놀란 눈치였다.

아마 철우도 느낌이 왔을 것이다.

준후가 보통내기 1년 차가 아니라는 것을.

피부 절개 한 번으로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게 외과의였다.

메스를 사용할 때 보여줬던 손목 사용, 힘 조절, 손의 움직임 등등.

이런 기본기가 다른 어시스트에도 그대로 적용될 테니 말이다.

민석은 어느새 팔짱을 풀었다.

자신도 모르게 준후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테스트가 점점 흥미로워졌다.

절개를 끝낸 준후가 곧바로 양손에 포셉을 쥐었다. 절개창을 벌리면서 상완동맥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동맥은 보이지 않았다.

살과 근육층에 파묻혀 있었으니까.

사실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였다.

“선생님. 절개창 리트랙트(견인)해 주시겠습니까? 혼자서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라.”

철우가 양손에 쿠싱 리트랙터를 손에 쥐었다.

절개창을 좌우로 벌리자 수술 시야가 한결 넓어졌다.

준후는 포셉으로 절개창 내부를 툭툭 건드리다가 감을 잡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메스를 손에 쥐었다.

스으으윽-

닭 날개의 허연 근육층과 분홍빛 속살이 다시 한번 갈라졌다.

두 번째 절개창은 상완동맥에서 고작 3mm 떨어진 곳에 생겼다.

“동맥이 여기 있네요.”

준후가 왼손에 든 포셉으로 절개창의 속살을 들어 올렸다.

드디어 살 속에 파묻혀 있던 상완동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닭의 상완동맥은 푸른색을 띠었다. 동맥이라고는 하지만 죽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닭의 상완동맥은 탄력을 잃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녀석이군.

동맥을 찾다가 동맥을 터뜨려 먹을 줄 알았는데.

민석은 속으로 감탄했다.

준후를 돕고 있는 철우만 해도 여기까지 오는 데 꽤 애를 먹었었다.

실력이 없는 건 아니고.

처음에는 닭 날개의 구조를 잘 몰라서였다.

그런데 준후는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동맥의 위치를 능숙하게 찾아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실수도 하지 않았다.

실로 경이로운 솜씨였다.

그래서일까.

이대로라면 그래프트에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철우도 한 달은 걸렸던 그 과정을 말이다.

신 교수, 이 여우 같은 양반.

이래서 준후를 어시스트로 부려먹었구먼.

의학지식은 부족할지 몰라도 준후의 피지컬이라면 거의 펠로우급이야.

펠로우급을 데리고 수술을 하니 수술 성과가 좋을 수밖에…….

라이벌 신 교수의 영악함에 치를 떨다가 민석은 다시 준후에게 집중했다.

이 소설의 끝을 두 눈으로 확인할 차례였다.

* * *

둘 다 놀란 눈치네.

하긴 1년 차가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겠지. 그것도 처음 해보는 시술을.

민석과 철우의 반응을 확인하고 준후는 속으로 웃었다.

한편으로 두 사람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했다.

준후가 무공과 내공으로 무장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몰랐으니까.

“지금까지는 용케 잘했는데 혈관 박리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힘 조절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양손을 써야 하거든.”

철우가 경고하듯 말했다.

“그건 제 전문분야입니다.”

“전문분야?”

“양손 쓰는 데는 도가 텄거든요. 보여드리겠습니다.”

뚜두둑- 뚜두둑-

준후는 가볍게 고개를 꺾고 양손에 포셉을 쥐었다.

오른손에 쥔 포셉에는 tooth(이, 조직을 쉽게 잡기 위해 톱니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음)가 달려 있었고.

왼손에 쥔 포셉에는 이가 없었다.

‘슬슬 마무리를 지어볼까?’

준후는 오른손에 쥔 포셉으로 상완동맥에 들러붙은 속살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왼손에 쥔 포셉으로는 혈관을 쥐었다.

혈관과 다른 인체조직을 분리해서 떼어놓는 작업.

이 작업이 박리(detachment)라고 부르는데 박리야말로 그래프트 시술의 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야, 너 손이 바뀌었잖아. 이가 있는 포셉으로 혈관을 잡아야지. 포셉에 이가 없으면 혈관이 미끄러질 텐데?”

철우가 준후의 포셉 사용을 지적했다.

“이가 있는 포셉으로 혈관을 쥐면 혈관이 터질 수도 있잖아요.”

“이건 연습이라서 괜찮아.”

“저는 실전처럼 하고 싶습니다.”

준후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연습을 실전처럼 해야 실전도 연습처럼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준후의 철칙이었다.

실제로 준후는 닭 날개로 혈관을 그래프트술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에게 그래프트술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놓은 상태였다.

“그놈의 똥고집은. 난 모르겠다, 네 좋을 대로 해.”

“네. 선생님.”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박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약하고 탄력 없는 혈관이 언제든지 터질 것만 같았다.

준후의 작업 속도는 갈수록 지지부진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내가 가진, 나만이 가진 장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마음을 고쳐먹은 준후는 우선 혈관을 쥔 왼손에 금나수(擒拿手)의 수법을 응용했다.

혈관이 터지지 않을 압력을 잘 조절해서 혈관이 포셉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오른손으로는 혈관에 달라붙은 닭살을 위로 떼어냄과 동시에.

왼손을 똑바로 펴고 있던 팔을 기역 자로 꺾었다.

“너 지금 뭐 하냐? 박리해야 하는데 팔은 왜 꺾어?”

준후의 해괴망측한 행동에 철우가 의문을 제기했다.

거의 모든 외과 수술은 팔을 똑바로 편 채 실시한다.

팔꿈치를 접으면 수술 부위와 팔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처치가 더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글씨 쓰는 것이 좋은 예였다.

팔을 똑바로 펴고 글을 쓰는 것.

팔꿈치를 기역 자로 꺾은 채 글을 쓰는 것 중 어느 쪽이 편한지를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질질 시간 끄는 게 싫어서요. 혈관 박리, 한 번에 끝내겠습니다.”

“그 자세로?”

“네. 이 자세로요.”

준후는 담담하게 대답하고 혈관을 쥔 왼 포셉을 거침없이 왼편으로 휘둘렀다.

움직인 게 아니라 휘두른 것이 맞았는데 그 이유는 준후가 박리에 뇌력풍비의 이치를 담아서였다.

뇌력풍비는 서씨세가의 검법 초식 중 유일하게 존재하는 발도술이었다.

그러니까 준후는 혈관을 박리하는 데 발도술을 응용했던 것이다.

금나수의 수법으로 혈관을 충분히 고정했으니 시간을 질질 끌면서 혈관을 떼어낼 필요가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이 속도라면.

지금 필요한 것이 단 하나의 궤적이라면.

발도술만 한 검법이 없었다.

뇌력풍비를 펼치고 나니 준후가 왼손에 쥔 포셉에는 어느새 닭의 시퍼런 동맥이 들려 있었다.

계획대로 단번에 동맥을 깔끔하게 박리해 낸 것이다.

허공에 한줄기 궤적이 보인 듯도 해서일까.

준후의 일섬이 놀라워 철우는 바보처럼 입을 벌렸다. 뒤늦게 놀란 감정을 추스르고 한마디 했다.

“미친놈. 넌 무슨 혈관을 테이프 떼어내듯이 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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