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제41장 선택의 기로(3)
닭 날개의 동맥을 채취하면서 준후는 스스로를 증명했다.
이번 모야모야병 수술에 참여할 능력이 된다는 것을.
준후의 성공에 철우는 연신 감탄을 드러냈고 민석은 별다른 칭찬을 하지는 않았다.
원래 무뚝뚝한 성격인 듯했다.
타인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준후는 고난이도 그래프트 시술을 해내서 기뻤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시술을 단번에 해냈으니까.
깔끔하게 성공해 냈으니까.
준후는 자신의 실력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무림에서도 그랬고.
현대에서도 그랬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선택지가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철우야. 슬슬 브리핑 시작하자.”
“네. 교수님.”
“준후 넌 책상 좀 깨끗하게 치워 봐.”
“네. 알겠습니다.”
테이블 정리가 끝난 후 본격적인 수술 브리핑의 막이 올랐다.
환자는 방금 준후가 소아외과 병동에서 인사를 나눴던 재은이었다.
철우는 재은이의 입원 과정, 기저질환 여부, 가족력 등등을 빠르게 요약해서 전했다.
곧이어 빔 프로젝트의 빛이 스크린 위에 떠올랐다.
스크린에 입원 전 촬영한 재은이의 뇌 MRI 사진이 떴다.
‘심각하긴…… 심각하네.’
영상을 살피다가 준후는 미간을 좁혔다.
협착된 혈관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었다.
일반 모야모야병 환자의 2배 가까이 되었다.
건강한 사람의 뇌혈관이 나뭇가지처럼 왕성하게 뻗어 나가는 모습인 반면.
재은이의 뇌혈관은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처럼 한 지점에 쏠려 있었다.
톡!
준후는 자신의 귀밑을 검지로 찔렀다.
점혈을 통한 신경 자극법이었다.
손가락 끝에서 뻗어 나가던 내공이 해마에 도달했다.
내공이 닿자 장기 기억 중추인 해마가 미친 듯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폭탄이 터진 느낌.
다양한 의료지식이 파편으로 변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파편들을 준후는 재빨리 살폈다.
안타깝게도 재은이 같은 케이스는 스승 재현의 비급에도 없는 케이스였다.
이번 수술은 만만치 않겠다는 직감이 준후를 사로잡았다.
“재은이는 모야모야병 환자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혈관이 좁아지는 양상이 중대뇌동맥과 전대뇌동맥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입니다.”
“…….”
“1단계부터 6단계까지 있는 모야모야병 스테이지에서 재은이는 5단계에 속합니다. 수술 방법은…….”
“잠깐만.”
민석이 손을 들어 철우의 설명을 막았다.
“준후야. 모야모야병 수술법을 알고 있니?”
민석의 시선이 준후에게 머물렀다. 아직 시험해 볼 게 더 남았다는 눈치였다.
“뇌혈관이 자랄 수 있게 인체 조식을 심어주는 간접 혈관 문합술과 혈관을 직접 개통해 주는 직접 혈관 문합이 있습니다.”
“…….”
“주로 전자는 소아, 후자는 성인에게 펼칩니다. 최근에는 직접 혈관 문합술과 간접 혈관 문합술을 함께 이용하는 하이브리드 수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준후는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였다.
수술 피지컬은 이미 최상위였으므로 평소에 의학 지식을 쌓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오죽하면 스승의 비급을 통째로 외워뒀을까.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구나. 따로 공부를 했나 보지?”
“네. 적어도 의사라는 직업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니까요.”
“그래. 잘하고 있어.”
민석이 눈짓을 보내자 철우가 다시 브리핑에 나섰다.
구체적인 수술법을 언급했다.
재은이에게 펼칠 수술은 직접혈관문합술이었다.
그러니까 막힌 정상 뇌혈관에 정상인 뇌혈관을 직접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굳이 직접문합술을 해야 하나?
이건 너무 무리수 같은데.
쉬운 길을 두고 일부러 어려운 길로 가는 느낌이야.
준후의 입장에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판단이었다.
소아에게는 직접혈관문합술을 펼치지 않는 게 정론이었다.
소아의 혈관은 성인만큼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길이도 짧고 두께도 얇았다.
혈관을 문합하는 과정에서 혈관이 터질 위험이 너무 많았다.
“선생님. 직접혈관문합술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준후는 손을 들고 철우에게 질문했다.
“수술이 성공했을 때의 기댓값이 간접혈관문합술보다 직접혈관문합술이 더 좋으니까.”
“기댓값은 높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높아지는 거 아닙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럼 하이브리드 수술이 아니라 직접혈관문합술만 하겠다는 뜻인가요?”
“그래. 근데 말이다. 근데 그만 좀 꼬치꼬치 묻지? 준후 넌 수술을 돕는 역할이지 좋은 수술이 뭔지 판단할 위치가 아니야. 잠자코 듣기만 해.”
철우는 펠로우라는 지위로 준후의 질문을 묵살했다.
불쾌하긴 했지만 준후는 참았다.
군대만큼이나 위계질서가 철저한 곳이 병원이었다.
누구의 말이 옳냐를 떠나서.
상병의 의견에 이등병이 토를 달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건가?
빨리 펠로우가 되고 교수가 되어야지.
답답해서 속 터지겠어.
속마음을 숨긴 채 준후는 브리핑에 집중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준후는 수술을 걱정하게 되었다.
재은이의 막힌 뇌혈관은 5개였는데 이를 전부 직접문합술로 연결해야 했다.
혈관 하나만 터져도.
대형 참사가 벌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10분이 더 지났다.
민석은 준후에게 재은이를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수술 전까지 재은이의 컨디션을 완벽하게 끌어올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준후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민석과 철우가 떠나면서 준후만 당직실에 남았다.
준후는 스크린에 떠오른 MRI 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곧장 스승 재현에게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지이이잉.
의외로 휴대폰이 금방 진동했다.
뒷정리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스승이 전화를 걸었다.
“네. 스승님. 저 준후입니다.”
-그래. 방금 막 보내준 문자도 보고 사진도 확인했다.
“바쁘실 텐데 괜히 스승님께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안 그래도 잠깐 쉬는 중이었으니까.
“스승님이 보시기에는 이번 수술이 어떠신가요?”
준후는 재현에게 자문을 청했다.
왜 재은이에게 직접혈관문합술을 고집하는가.
정말 그게 최선인가.
준후는 그런 의심과 의혹을 떨쳐 내기 힘들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신경외과의인 재현이라면 자신의 질문에 충분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쪽 교수님이 무리하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저도 그런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나라면 환자에게 하이브리드 수술을 했을 거란다. 직접혈관문합술은 두 군데만 하고 나머지는 간접혈관문합술을 펼쳤겠지.
재현의 설명에 준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처럼 디테일한 수술 계획은 못 짰지만 하이브리드 수술이 최선이라는 데는 의견이 같았다.
“그럼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고집하는 걸까요?”
-분명 논문 때문이겠지. 올가을에 추계 신경외과 학회가 있거든.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호응이 좋으면 라이징 스타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난 이 정도의 고난이도 수술을 할 수 있다. 난 이렇게 잘났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뽐내고 싶은 거군요.”
준후의 입가에 쓴 웃음이 걸렸다.
수술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오로지 환자를 위한 수술.
다른 하나는 의사 자신의 평판과 명성을 위한 수술.
민석에게 이번 수술은 후자인 듯했다.
사람이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6살배기 재은이의 미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자기밖에 모르는 민석의 결정에 준후는 치를 떨었다.
민석은 의레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교수였다.
-정확히 꿰뚫어 봤구나. 이런 수술을 욕심 또는 욕망의 수술이라고도 하지.
“…….”
-어째 이용당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지?
“네. 인간에 대한 염증과 회의까지 드네요.”
준후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스승 앞이라서 꺼낼 수 있는 소리였다.
-지금의 감정을 잘 기억해두렴.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면서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겠다, 라고 각오를 굳히는 것도 좋겠구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덕분에 기운이 나네요.”
-괜찮아. 누구든 흔들리고 깨지면서 성장하는 법이니까. 중요한 건 네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란다.
“네. 스승님.”
통화가 종료되었다.
준후는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컨퍼런스 룸을 떠났다.
모야모야병 수술까지 일주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 * *
그 날 저녁, 지하 1층 카페.
철우는 민석과 커피를 마시며 잡담 중이었다.
“준후 녀석, 예상을 뛰어넘는 물건이더구나. 설마 1년 차가 혈관 그래프트를 한 번에 성공할 줄이야.”
“운이 좋았던 게 아닐까요?”
“그래프트가 어디 운으로 성공시킬 시술이니?”
“실전이 아니라 닭 날개로 그래프트를 하지 않았습니까? 실패해도 문제없다는 생각에 과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철우는 준후의 성공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아까 준후와 함께 할 때.
철우는 매우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맛봐야 했다.
그중 하나는 자괴감이었다.
철우가 한 달 동안 피 터지게 연습해서 익힌 혈관 그래프트 시술을 준후는 한 번에 성공했다.
현타가 안 오려야 안 올 수가 없었다.
철우는 준후에게 시기심도 느꼈다.
한편으로 준후가 언젠가 자신을 밟고 지나갈 수 있다는 불길함도 느꼈다.
“녀석, 벌써부터 준후를 견제하는 거니?”
민석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에이, 교수님 견제라니요. 교수님이 준후의 너무 좋은 쪽만 보시니까 균형 잡힌 의견을 드린 것뿐인 걸요.”
철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교수님도 준후가 혈관 박리하는 거 보셨잖아요? 세상에 혈관을 테이프 떼어내듯이 떼어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고. 약간 그런 느낌이었잖습니까?”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지. 준후는 어떤 친구니?”
“대충 건너 듣기로는 평판이 좋습니다. 환자나 보호자한테 싹싹하고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이라고 합니다.”
“의국에서는?”
“의국에서도 다들 좋아한다고 합니다. 일을 워낙 잘해서. 교수님도 준후에게 관심이 가십니까?”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지. 오늘 활약한 걸 보면.”
자신에게 와야 할 교수의 관심이 준후에게 향했다는 사실에 철우는 다시 한번 질투를 느꼈다.
더욱 기분이 나쁜 사실.
그것은 경쟁상대가 레지던트 3-4 차도 아니고 새파란 1년 차라는 점이었다.
“슬슬 일어나자꾸나.”
“네. 교수님.”
민석은 연구동으로 이동했고 철우는 신경외과 병동으로 복귀했다.
컨퍼런스 룸을 찾아 닭 날개 그래프트 시술을 준비했다.
준후가 선보였던 신비한 박리법에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1년 차가 하는 걸 내가 못하겠어?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세팅을 마친 철우는 일사천리로 작업에 나섰다.
닭 날개의 피부와 근육을 절개하고 파란 동맥을 노출시켰다.
본 게임은 지금부터였다.
철우는 왼손으로는 동맥과 붙은 살점을 위로 들어 올렸고.
오른손에 쥔 포셉으로는 혈관을 단단히 붙들었다.
‘한 번에 휙 하면 되겠지?’
철우는 과감하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손을 우측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
벌어진 입술 사이로 탄식이 흘렀다. 혈관이 중간에 끊어져 버렸던 것이다.
살아 있는 닭을 해체한 것이 아니었기에 피가 튀지는 않았다.
대신 끊어진 혈관 사이로 푸른빛을 띤 톱밥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혈액에 산소가 빠져나가면서 딱딱하게 굳은 선지 같은 것이었다.
철우는 아직 반쯤 남아 있는 동맥에 준후의 수법을 다시 응용해 보았다.
퍽!
이번에도 허망하게 혈관이 터졌다. 혈관을 쥔 포셉에 힘이 너무 들어갔을까.
박리를 하기도 전에 혈관이 터져 버렸다.
그 후로 20분 동안.
해동한 닭 날개가 전부 사라질 때까지 철우는 연습을 계속했다.
-실전이 아니라 닭 날개로 그래프트를 하지 않았습니까? 실패해도 문제없다는 생각에 과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습을 끝낸 후 철우는 자신이 민석에게 했던 말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준후의 방식을 따라 했건만.
단 한 번도 박리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혈관은 터지느라 바빴다.
이런 씨X!
쨍그랑!
열등감에 사로잡힌 철우가 손에 들고 있던 포셉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열불 나게도 준후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