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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20화 (220/424)

220화

제41장 선택의 기로(5)

터벅. 터벅.

준후는 산부인과 병동 복도를 걷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는데 병동의 규모가 신경외과 병동보다 작았다.

입원한 환자의 숫자도 많지 않았다.

최근 출산율이 낮아진 탓이구나.

준후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출산율로 이어졌다.

언젠가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9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러려니 했건만…….

병원에서 그 차가운 현실을 확인하니 입맛이 썼다.

더욱 안타까운 건 산부인과의 사정이 앞으로도 좋아질 희망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아이를 낳지 않을 테고.

산부인과의 역할은 점점 축소될 것이다.

“어, 준후 네가 왜 왔어?”

맞은편에서 마주친 의대 동기 서래가 말을 걸었다.

“왜 오긴 컨설팅(협진) 왔지.”

“컨설팅은 4년 차 치프가 하는 거 아니야? 신경외과는 시스템이 다른가?”

“그런 건 아니고. 치프가 수술방에 들어가서 협진을 못 하게 됐어. 일단 내가 환자를 보고 치프한테 노티하기로 했다.”

“하긴 네가 진료를 봐도 될 것 같긴 해. 혹시 몰라서 컨설팅 넣은 거라.”

서래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이 없다면서 합류했다.

준후는 서래와 가까운 6인실을 찾았다.

임산부 환자는 출입구에 가까운 왼쪽 자리에 누워 있었다.

환자의 이름은 강미래.

30세로 임신 3분기 27주째였다.

임신중독증, 그러니까 임신과 관련된 고혈압성 질환으로 닷새 전에 입원했다.

환자는 볼록하게 솟은 배를 쓰다듬으며 보호자용 침실에 앉은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시간에 병원에 있는 걸 보면.

남편은 출산 휴가를 사용한 듯했다.

“안녕하세요. 신경외과에서 왔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환자와 남편이 준후를 반겨주었다.

“이틀 전부터 두통이 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두통약을 드셔도 호전이 없다고요?”

“네. 오른쪽 관자놀이가 콕콕 쑤셔요.”

환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검지로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가장 아픈 시기는 언젠가요? 오전, 오후, 밤?”

“딱히 시간을 가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워낙 들쑥날쑥해서요.”

“약을 먹으면 두통이 얼마나 줄어들죠?”

“한 절반 정도 줄어드는 것 같아요.”

“혹시 단단한 물건에 머리를 부딪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전혀.”

준후는 꼼꼼하게 문진을 이어나갔다.

예전에도 비슷한 두통을 겪은 적이 있는지, 두통에 가족력은 있는지, 담배는 피우는지 등등.

환자에게 하는 질문은 광범위하고 많을수록 좋았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가 단서가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쯔쯔가무시가 있었다.

털 진드기 유충에게 감염되어 발열 및 오한이 발생하는 쯔쯔가무시의 경우.

환자의 동선을 물어봐서.

성묘 및 벌초를 다녀왔다면 의심해볼 수 있는 질환이었다.

이번 케이스는 애매하네.

딱히 걸리는 게 없어.

문답을 오래 하고도 건져낸 것이 없어 준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두통은 범위가 너무 넓은 증상이었다. 딱 하나의 원인을 꼬집기 힘들었다.

“선생님. 저 왜 계속 머리가 아픈 거죠?”

환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준후를 쳐다보았다.

남편도 궁금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이제 준후가 대답할 차례였다.

“체온이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염성 질환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임신성 두통, 아니면 신경성 두통이 확률이 커 보입니다.

“심각한 건 아니죠?”

“일단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야, 평범한 두통에 무슨 검사야.”

준후의 진찰을 지켜보고 있던 서래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준후의 판단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목소리가 앙칼졌다.

“적당히 진료하고 끝내.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고.”

“환자가 임신했어. 최대한 방어적으로 진찰하는 게 맞아. 그리고 임산부에게 줄 수 있는 두통약은 A.A.P(아세트아미노펜)밖에 없다고. 너희 과에서 지금까지 P.O(경구 투여, 입으로 넘김)처방 내렸던.”

준후의 설명에도 서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작은 목소리로 반박에 나섰다.

“그래. 네 말대로 검사한다고 치자. 그럼 무슨 검사할 건데? 환자는 임산부야. 엑스레이도 안 되고 CT도 안 되고 조영제 MRI도 안 된다고.”

“선생님. 701호실 이호연 환자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산통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드르르륵-

병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물었다.

“네. 알겠습니다. 준후, 너 알아서 처신 잘해.”

경고성 멘트를 던지고 서래가 사라졌다.

서래가 과민 반응하는 이유를 준후는 충분히 이해했다.

가벼운 두통으로 머리에 관련된 검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환자가 임산부라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방사선 검사 및 조영제 검사를 펼쳤다간 태아가 기형으로 출산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준후는 평범한 신경외과의사가 아니었다.

무림을 경험한 후 기적의 검사(?)를 창조해낸 스페셜 리스트였다.

그리고 그 검사는 임산부에게도 유용했다.

“선생님. 검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제 두통이 심각한가요?”

준후와 서래가 말다툼하는 분위기를 느꼈는지 환자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그건 확인을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잠깐 환자분, 머리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

“혹 같은 게 있을지도 몰라서요.”

준후는 대충 핑계를 대고 환자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단전의 내공을 손바닥까지 끌어올리고.

손바닥에서 다시 환자의 머리로 내공을 쏘아냈다.

준후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내공 뇌혈관 조영술이었다.

조영제 대신 내공을 사용하므로 내공 뇌혈관 조영술은 임산부에게도 안전했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어나듯.

내공이 물결치며 두개골을 통과하고 뇌막을 통과하고 호두처럼 생긴 뇌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은 내공이 풍부했으며 검사 경험도 많아서 준후는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환자의 뇌혈관을 모조리 훑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펼치는 뇌혈관 조영술의 속도와 편리함, 정확성을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내공이 품고 더듬은 뇌혈관과 뇌의 구조를 확인하면서 준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환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 * *

띠리리리-

3번 수술방에 전화가 울렸다.

뇌 단락술을 집도를 하던 치프 찬영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었다.

“태진아, 전화 좀 받고 와.”

“네. 치프.”

인턴 태진이 수술방 출입구 옆에 달려 있는 전화를 받고서 돌아왔다.

“치프. 준후 선배 콜인데요. 치프가 꼭 받으셔야 한다고 해서…….”

“준후가? 나 수술 중인 거 뻔히 알면서. 에이.”

귀찮음을 느끼며 찬영은 수술방 출입구로 향했다. 아직 끊어지지 않은 수화기를 손에 들었다.

“바쁜데 무슨 일이냐?”

찬영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죄송합니다. 치프. 꼭 노티를 해야 할 상황이라서. 치프 대신 컨설팅 같던 임산부 환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냥 두통 아니었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MRI를 찍어봐야겠어요.

“두통 환자한테 MRI? 선 넘은 거 아니냐?”

찬영은 고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준후의 판단이 지나치게 극단적이었던 탓이었다.

과잉진료도 이런 과잉진료가 없었다.

-A.A.P를 복용 중인데도 효과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임신중독증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

-간호 기록지 봤는데 혈압 관리 잘 되고 있습니다. 입원한 이후로 계속 정상 수치였어요.

“신경성(스트레스, 피로 수면 부족) 두통일 가능성은?”

-환자분, 잠도 잘 자고 딱히 불편한 것도 없다고 합니다. 원인을 알아보려면 검사를 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찬영이 제기한 질문에 준후는 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더 따지고 들 것이 없었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두통의 원인을 찾기 위해 검사하는 게 맞았지만.

어쩐지 쓸데없이 일을 크게 벌이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찬영이었다.

두통이란 건 보통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기 마련이었다.

“검사는 무슨 검사할 건데?”

-조영제 없는 MRI 검사입니다. 지금 선택지는 그거 하나뿐이죠.

“괜찮을지 모르겠다. 조영제를 안 쓰면 검사 정확도가 떨어질 텐데.”

-아쉽지만 도리가 없습니다.

“환자를 설득할 자신은 있고?”

-네. 자신 있습니다.

“말은 잘해요. 근데 그것도 알아둬야 해. 검사를 했다가 아무 이상 없으면 환자한테 욕바가지로 얻어먹을 거야. 돈 받으려고 비싼 검사 유도했다고.

-만약 그러면 제가 책임져야죠.

“단순히 너만의 책임이 아니야. 산부인과가 우리 신경외과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찬영은 여전히 준후의 진단에 부정적이었다.

환자를 위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 마음을 과연 환자가 이해해줄까.

이는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저희 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가 잘 설득하겠습니다. 믿어주세요.

“에라. 모르겠다. 너 좋을 대로 해 봐. 뭐 어떻게든 되겠지.”

- 감사합니다. 치프.

통화를 끊고 찬영은 수술대로 돌아왔다. 수술 장갑을 갈아 끼고 수술을 계속했다.

30분 뒤 다시 받을 전화는 과연 무슨 소식을 담고 있을까.

벌써부터 긴장이 됐다.

* * *

산부인과 병동 복도.

준후는 양손을 허리에 얹은 서래와 대화 중이었다.

“리얼? 진짜? 너희 치프도 MRI를 허락했다고?”

서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준후를 쏘아붙였다.

“그럼 내가 치프 이름을 팔아서 거짓말을 했겠니? 컨설팅 건인데 나중에 속였다가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오버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때?”

“결론이 났는데 생각을 다시 해서 뭐해. 이건 신경외과의 영역이니까 받아들여.”

“환자와 보호자는 순순히 검사받으신대?”

“설득은 끝났어. 네가 오더만 내면 돼.”

준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환자의 두통이 별것 아닐 것일 수도 있지만 심각한 것일 수도 있다.

확인을 위해 검사가 필요하다고 준후는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했다.

진심을 담았던 덕분일까.

환자와 보호자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휴우. 하여간 서준후 트러블 메이커인 건 알아줘야 해.”

“내가 트러블 메이커인 건 맞는데 트러블을 또 기가 막히게 해결하기도 하지.”

“잘났어. 정말. 검사 결과 나오면 알려줄게.”

“그래. 고생하고.”

준후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신경외과 병동으로 복귀했다.

MRI 검사를 하지 않았지만.

준후는 이미 검사 결과를 알고 있었다.

환자는 측두부에 위치한 후교통동맥에 뇌동맥류를 가지고 있었다.

뇌동맥류.

이 질환은 각종 원인으로 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었다.

혈관이 언제 터질지 몰라 머릿속의 시한폭탄이라 불리기도 했다.

환자의 경우 뇌동맥류가 아직 터지지 않았으므로.

비파열성 뇌동맥류였다.

뇌동맥류의 부피는 11mm 정도 되었으며 딸낭이라고 부르는, 꽈리처럼 부푼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내공으로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틀림이 없었다.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산부인과 교수님하고 우리 과 교수님이 어떤 판단을 할지 모르겠네.

준후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환자가 임산부임을 감안하면 출산 후에 뇌동맥류 수술을 하는 게 옳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준후는 출산 전에 수술을 하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뇌동맥류의 위치와 크기와 형태.

더불어 두통약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증상이 있는 비파열성 뇌동맥류라서 그랬다.

실제로 임산부라서 해서 전신 마취 하에 수술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임산부에게도 고난이도 심장 판막 수술.

또는 고난이도 뇌졸중 수술이 이뤄지곤 했다.

물론 임산부에게 하는 수술은 일반 환자에게 실시하는 수술보다 훨씬 까다로웠고 어려웠다.

환자와 태아까지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환자의 미래를 걱정하며 준후는 신경외과 당직실에 도착했다.

당연히 일에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열심히 오더를 입력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산부인과 환자로 가득 찼다.

띠리리링~

당직실 책상에 놓여 있던 전화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준후는 전화를 받았다.

“네. 신경외과입니다.”

-준후야. 대박이다! 환자 측두부에 뇌동맥류가 있어. 조영제를 안 썼는데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던데?

서래가 호들갑을 떨며 속사포로 검사 결과를 알렸다.

이미 다 알고 있던 사실이라 준후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수술 여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교수님께 노티는 했어? 뭐라고 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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