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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22화 (222/424)

222화

제42장 떡상(2)

“환자분 같은 경우 확률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임산부에게 뇌동맥류 클립 결찰술을 하는 경우가 드물어서요.”

준후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률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무슨 확률이요?”

미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남편도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환자분과 태아를 건강하게 회복시키고 싶은 의료진들의 마음은 100퍼센트입니다. 그 마음만큼은 믿어주세요.”

준후의 표정이 진지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뻔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말과 표정이 조화를 이루면서.

미래는 준후에게 진심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준후는 며칠 전에도 미래에게 정성을 다했다.

그저 두통을 호소했을 뿐인데.

준후는 꼼꼼하게 미래를 진찰하고 뇌 MRI 촬영까지 권했다.

그 결과 발견한 것이 뇌동맥류였다.

준후의 열정과 성의.

그리고 정성이 없었다면 미래는 아직도 머리에 시한폭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네. 선생님만 믿을게요.”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동의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남편분도 가까이 오시죠.”

준후가 동의서를 펼쳐놓고 수술 내용을 설명했다.

수술시간은 6시간 내외.

머리를 열고 뇌동맥류에 클립을 결찰하는 과정.

수술 후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 등등.

준후의 설명은 친절했다.

의술을 모르는 미래조차 수술의 전반적인 절차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환자분, 자연분만을 원한다고 하셨죠?”

“네. 맞아요.”

“좋은 소식이 있는데 뇌동맥류 수술을 하셨더라도 자연분만은 가능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미래는 잠깐 머뭇거렸다가 볼펜을 쥐고 동의서에 서명했다.

두렵긴 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자신을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아직 많이 긴장되시죠?”

“네. 시간이 갈수록 더 떨려요. 심장이 쿵쿵쿵 뛰고 있어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안마를 해드리고 싶네요. 심신을 안정시키는 안마를 알고 있거든요.”

준후의 시선이 미래와 남편을 번갈아 이동했다.

두 사람에게 동시에 허락을 구한 것이다.

외간남자가 미래와 접촉하는 것을 남편은 싫어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준후의 배려는 그만큼 섬세했다.

완숙한 경력의 교수와 비교될 정도였다.

“저는 괜찮은데…….”

“저도 괜찮습니다.”

미래와 남편의 허락을 받은 후 준후가 안마를 시작했다.

미래의 손바닥을 야무지게 주무르다가 검지로 미래의 손바닥 혈자리를 쿡쿡 찔러댔다.

머리에도 비슷한 작업을 했다.

뭐지?

마음이 이렇게 가라앉을 수 있나?

병실이 아니라 휴가지에 온 것 같아.

안마를 허락할 때만 해도 미래는 별 기대가 없었다.

안마라고 해봤자 이 급박한 상황에 무슨 효과가 있겠냐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안마가 끝난 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쿵- 쿵- 쿵-

요동치던 심장박동이 가라앉았다.

수술에 관련된 긴장과 불안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졌다.

실로 놀라운 효과였다.

“선생님. 이게 대체…….”

“제가 원래 한 약손 하거든요. 지금은 좀 편안하시죠?”

“네. 완전이요. 마술 같아요.”

미래의 놀란 반응에 준후가 빙긋 웃었다.

“실례지만 혹시 아이 이름은 정하셨나요?”

“지호예요. 알 지 자에 좋을 호 자요. 중성적인 이름이고 아이 아빠가 대학 강사로 활동 중이라서…….”

“예쁜 이름이네요. 환자분과 지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준후가 동의서를 챙겨 병실을 떠났다.

“저 선생님은 뭔가 특별한 것 같네. 진짜 우리를 위해주는 느낌인데?”

남편이 준후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당신도 느꼈어?”

“그럼. 나도 맹장 수술할 때 입원해봤는데. 저렇게 친절하고 환자에 진심인 의사는 못 봤어.”

“우리 복인가 봐. 수술도 무사히 끝나겠지?”

미래의 질문에 남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의 볼록한 배에 손을 올렸다.

“지호가 쿵쿵 찬다. 지호도 그렇게 생각하나 봐.”

* * *

터벅. 터벅.

준후는 신경외과 병동을 떠나 4층 수술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준후 곁에는 시호가 있었다.

이번 수술의 퍼스트 어시스트가 시호였다.

시호가 어시스트라는 점이 꺼림칙하긴 했다.

신경이 쓰이고 불안하기도 했다.

시호가 사이코패스이자 쾌락 살인마라고 준후는 확신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적어도 이번 수술에서는 시호가 날뛰지 않을 거라 준후는 예상했다.

네가 아무리 사악해도.

설마 교수 앞에서 환자에게 장난을 치진 못하겠지.

허튼짓을 했다간 바로 들통 날 테니까.

그것이 준후의 속내였다.

“곽 교수님도 어지간히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걷던 중 시호가 운을 뗐다.

“모야모야병에 이어서 뇌동맥류 수술에도 널 어시스트로 쓰시네?”

“제가 부러운가요? 아니면 선배 자리를 위협하는 것 같아서 긴장됩니까?”

“헛다리 짚었어. 그런 감정은 느낀 적도 없고 느끼고 싶어도 느낄 수가 없거든.”

시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았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므로 준후는 시호의 속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시호가 무서운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감정과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으니…….

“준후 넌 스스로가 정의롭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겠지만, 뭐 실제로 그게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네 결말은 정해져 있어.”

“제 결말이 뭔데요?”

“의료 권력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버림받는 거.”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악담입니까?”

준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선배의 결말을 알아요.”

“그래? 내 결말을 안다고?”

“환자에게 장난치다가 저한테 걸려서 쇠고랑을 차게 될 겁니다. 콩밥하고 미리 친해지는 게 좋을 거예요.”

준후는 시호의 저주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준후의 속성은 선(善)이었지만 물렁물렁한 선이 아닌 단호하고 칼 같은 선이었다.

악인을 향해서는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악(惡)마저 품으려고 했던 선(善)한 사람들의 끔찍한 최후를 무림에서 너무 많이 목격한 탓이었다.

준후는 그들과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역시 넌 재밌는 녀석이야. 날 흥분하게 만들어.”

“변태 같은 소리는 그만하시죠.”

잡담이 끝날 때쯤 수술실에 도착했다.

지이이잉-

수술실 문이 열렸다.

준후는 곧바로 좌측 소독실로 이동했다.

싱크대에서 수술 전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시작했다. 손과 팔뚝에 포비돈 용액을 뭍이고 솔로 박박 문질렀다.

스크럽을 하는 내내.

준후는 환자와 환자의 아이 지호를 떠올렸다.

한 번의 수술에 두 명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부담감도 평소보다 두 배였다.

하지만 준후는 중압감을 긍정적으로 승화시켰다.

이번 수술이 자신의 의술을 한 단계 레벨 업 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무림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

적이 막강하면 막강할수록.

목숨이 걸린 위태로운 상황이면 위태로운 상황일수록.

준후는 그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해왔다.

벼랑 끝에 몰렸을 때야말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전력 이상을 발휘하기 마련이었다.

심정지가 발생할 상황.

뇌동맥류가 파열되는 상황.

태아에게 문제가 생기는 상황 등등.

여러 가지 응급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왔어.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때 그때 필요한 무공도 이미 준비해뒀고.

스크럽을 마친 준후의 표정이 비장했다.

얼마 전 식물인간이었던 민태웅 환자를 잃은 탓일까.

준후는 다시 환자를 허망하게 잃고 싶지 않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무기력감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전쟁터 나가냐? 표정이 왜 그래?”

시호가 준후의 얼굴을 살피며 농담조로 물었다.

“수술방, 전쟁터 맞잖아요. 그 안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데.”

“너랑 나는 안 죽어.”

“선배가 왜 의사가 됐는지 알 것도 같네요. 안전하게 남의 죽음을 지켜보고 싶은 거죠?”

준후는 시호를 뼈를 때리는 한마디를 하고 자리를 옮겼다.

3번 수술방 앞이었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준후는 수술모, 수술 가운, 장갑, 마스크, 루뻬(광학 안경) 등을 착용했다.

지이이잉.

준비를 마치고 3번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에어샤워 연기를 통과하자 수술방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조금 멀리 떨어진 정면에 수술대에 놓여 있었다.

그 위에 배가 볼록한 환자가 누워 있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무영등 불빛이 수술대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수술대 바로 위에는 미세 현미경이 달려 있었다.

수술방 공기는 평소와 다름없이 서늘했다.

혹시나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각종 균과 감염증은 고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니까.

숨을 들이켜자 날카로운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와 연결된 환자 감시 장치가 규칙적으로 기계음을 흘려댔다.

인턴과 소독 간호사는 물품실과 수술대를 분주하게 오고 가며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후는 곧바로 수술대로 향했다.

환자의 바이탈이 정상인 것을 확인하고 환자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아직 마취가 되지 않은 상태라 환자는 의식이 깨어 있었다.

“선생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저 임신 중인데 전신 마취 같은 거 해도 아이에게 문제가 없나요?”

보호자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신안정을 위한 추궁과혈을 해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수술이 코앞이었건만 환자는 무척 의젓해 보였다.

“네. 문제없습니다. 전신 마취로 태아에게 기형이 나타나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전신 마취를 할 이유가 없죠.”

“…….”

“전신 마취하에 진행하는 제왕절개수술도 있고요.”

“듣고 보니 괜한 걱정을 했네요. 선생님들도 다 생각이 있으셨을 텐데.”

“환자분 입장에서는 충분히 궁금해할 만한 일이죠.”

준후는 환자를 좀 더 안심시키기 위해 잡담을 나누었다.

잠시 후 마취의가 도착하면서 전신 마취가 이루어졌다.

의식을 잃은 환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좋은 꿈 꾸고 깨어나세요.

뒤는 제가 다 책임질 테니.

환자분도 지호도 분명 무사할 겁니다.

준후는 다른 스태프들에게 합류해 수술 준비를 도왔다.

수술 준비는 10분 만에 끝났다.

집도의 민석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도 준후는 헛되이 쓰지 않았다.

수술 과정을 시뮬레이션하고.

비장의 무기로 숨겨둔 무공들도 점검했다.

기왕이면 비장의 무기는 쓸 일이 없는 게 좋겠지만 말이다.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 지났다.

지이이잉-

수술실 문이 열리며 두 명의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쪽은 집도의 민석이었고.

체구가 가녀린 쪽은 산부인과 교수 성은이었다.

아무래도 산부인과 환자다 보니.

혹시나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동행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나란히 수술대 옆에 섰다.

수술 준비가 잘 됐는지 주변을 살폈다.

눈빛이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

“뭐, 이만하면 충분해. 저번 브리핑에 소개하긴 했지만 다시 한번 정식으로 소개하지. 이쪽은 산부인과 교수 정성은이야.”

“만나서 반가워요. 말은 편하게 할게요.”

“네. 교수님.”

“네. 교수님.”

준후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각 잡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근데 준후가 누구니? 환자 MRI 촬영하자고 했던.”

성은이 스태프들을 두리번거리며 질문했다.

“접니다.”

준후가 살짝 손을 들자 성은의 시선이 준후에게 머물렀다.

“네가 그 유명한 준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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