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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23화 (223/424)

223화

제42장 떡상(3)

성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찬찬히 준후를 살폈다.

마스크를 착용해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준후의 외모가 잘 생겼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준후가 계속 병원 홍보 광고에 나왔기 때문이다.

준후의 체구는 호리호리했지만 동시에 다부지기도 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눈매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빛을 동시에 띠고 있었다.

하지만 준후의 진면목은 외모에 있지 않았다.

의사로서 갖춘 세심한 진찰력과 판단에 있었다.

“환자의 두통.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왜 브레인 MRI 촬영하자고 했니?”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고도 두통이 며칠째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근거가 너무 빈약한데?”

성은이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대에 전혀 못 미치는 답변이었다.

준후가 방금 한 대답만 놓고 보면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었다.

“정말 그게 다니?”

“아니요. 때마침 예전에 읽은 논문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논문?”

“임산부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뇌졸중이라는 논문이었습니다. 특히 임산부가 임신 중독증을 앓고 있으면 이로 인해 혈역학적인 변화가 생겨 뇌졸중으로 인한 뇌출혈이 발생하고.”

“…….”

“환자의 사망률은 8퍼센트 정도 된다는 논문이었습니다.”

준후가 속사포로 말을 이었다.

“8퍼센트의 확률이라면 무시할 수 없죠. 자칫 환자가 과잉진료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MRI 촬영에 협조를 부탁드렸습니다.”

“…….”

“…….”

준후의 똑 부러진 대답에 수술방에는 적막이 흘렀다.

준후가 내린 MRI 오더에는 지극히 이성적인 프로세스가 작동했다.

주장과 이유와 근거가 명확했다.

레지던트 1년 차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관록이 느껴지는 진찰이었다.

“레지던트 업무도 벅찰 텐데. 평소에 논문도 읽나 봐?”

“네. 시간을 쪼개서 어떻게든 읽습니다. 환자에게 실수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서요.”

“준후 너, 성격이 특이하구나. 레지던트는 원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건데.”

“제 실수가 환자의 고통, 나아가서 환자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준후의 말속에는 뼈가 있었다.

환자에 대해서 무언가 트라우마를 가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성은은 알았다.

그 트라우마야말로 준후를 성장시키는 동력이라는 것을.

성은에게도 준후와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궁금한 건 다 해결했고. 주의사항부터 전달할게.”

성은은 스태프들을 찬찬히 훑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만니톨(이뇨제)은 쓰면 안 돼.”

“만니톨은 왜?”

집도의 민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환자의 상승된 뇌압을 낮추는 데 만니톨은 필수 약물 중 하나였다.

“만니톨이 태반으로 흘러가서 태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환자 뇌압이 올라가면 어떻게 하고?”

“다른 방법을 써야지. 산소를 과도하게 환기하는 것도 안 좋아. 태아에게 저산소증이나 질식을 일으킬 수 있어.”

“설마 신경 쓸 게 더 있는 건 아니겠지?”

“불행하게도 더 있어.”

성은은 신경외과 스태프들이 주의해야 할 요소를 몇 가지 추가했다.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다들 낯빛이 어두워졌다.

처치 및 수술에 하나둘 족쇄가 채워지고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성은이라고 좋아서 주의사항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었다.

임산부의 뇌수술은 그만큼 까다로웠다.

“생각보다 훨씬 어렵네요. 환자와 태아까지 신경 써야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준후 네가 핵심을 짚었네. 바로 그거야. 이번 수술은 한 번에 두 명을 수술하는 거랑 다름없다고 봐도 돼.”

준후의 독백에 성은이 맞장구를 쳤다.

아휴. 똘똘하기도 해라.

우리 산부인과에 준후 같은 레지던트 한 명만 있으면 소원이 없으련만.

“흠흠. 대략적인 브리핑은 끝난 것 같으니 수술 시작하지.”

민석이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임신중독증에 걸린 37주 임산부에 대한 뇌동맥류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민석의 주도로 수술의 막이 올랐다.

성은은 수술대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수술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임산부 환자에게 뇌수술을 하는 동시에 태아를 신경 써야 했다.

민석이 훌륭한 외과의긴 했지만 임산부 뇌수술은 처음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일까.

성은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했다.

만약 뇌동맥류가 파열된다면.

환자가 급격하게 악화되면.

피치 못하게 태아라도 살려야겠다고.

이 자리에서 즉시 제왕절개를 해야겠다고.

‘부디 내 걱정이 망상이 되기를.’

성은은 속으로 빌었다.

* * *

환자도 살리고 태아도 살린다.

무조건.

준후의 필사적인 각오가 안광으로 표출되었다.

환자를 향한 준후의 눈빛이 뜨거웠다. 마치 눈빛으로 환자를 치료할 것처럼.

스으으윽. 스으으윽.

옆으로 돌아누운 환자의 우측 측두부를 준후가 소독했다. (옆머리는 수술 전에 밀어두었다.)

수술 부위가 포피돈 용액으로 빨갛게 코팅이 되었다.

그 위에 수술포를 덮고.

준후는 유성펜을 손에 들었다.

환자의 측두부에 지름 6센티미터 정도 되는 원을 그렸다.

두피 절개창을 미리 표시하는 작업이었다.

지이이익!

원은 단번에 그려졌다.

조금의 비뚤어짐도 없었다.

“허…… 누가 보면 컴퍼스를 대고 그린 줄 알겠어.”

준후의 표시선을 확인하고 민석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닙니다. 이 정도 잔재주야…….”

“잔재주로만 볼 수는 없지. 이런 자잘한 손기술이 다 수술에 반영될 테니까.”

“…….”

“닭 날개로 혈관 그래프트를 할 때부터 범상치 않다는 건 알았지만…… 준후, 넌 사람을 여러모로 놀라게 하는구나.”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준후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본래 칭찬에 약한 준후였고 가진 것에 10분의 1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비행기를 태우자 민망했던 것이다.

“절개는 시호 네가 해볼래?”

“네. 교수님. 10번.”

시호가 준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딸칵!

준후는 스칼펠(칼대)에 10번 블레이드(칼날)를 끼워 시호에게 건넸다.

10번은 외과의가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블레이드였다.

특히 절개창을 낼 때 애용되었다.

서걱.

시호의 절개 솜씨는 퍽 뛰어났다.

곡선 절개의 난이도가 직선 절개에 비해 난이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손이 한 번도 엇나가지 않았다.

준후가 그린 유성펜의 흔적을 따라 환자의 측두부 두피를 깔끔하게 갈라냈다.

실력이 아깝긴 해.

사이코패스만 아니었으면 든든했을 텐데.

이것도 하늘의 농간인가.

시호가 악인이라는 사실이 준후는 너무 안타까웠다.

적어도 준후가 지금까지 지켜본 레지던트 중에서는 시호가 가장 뛰어났다.

가식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환자와 보호자, 주변 동료들을 따뜻하게 대했고.

서전으로 갖춰야 할 손재주도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시호에게 더 이상의 미련을 가져선 안 될 것이다.

준후는 무림에서 너무 많이 지켜봐 왔다.

능력 있는 악인을 갱생시키려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정파인들을 말이다.

세상에는 갱생이 불가능한 악인도 분명 존재했다.

바로 옆에 있는 시호처럼.

잡념을 떨쳐내며 준후는 포셉으로 거즈를 쥐었다.

동그란 절개창 주변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냈다.

“hook(갈고리).”

민석이 소독 간호사에게 훅을 건네받았다.

훅으로 두피를 훌러덩 벗겨내자 허연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수님. 개두술은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응? 개두술을?”

“교수님과 시호 선배의 체력 안배를 돕고 싶습니다.”

준후가 호기롭게 나섰다.

두개골을 드러내는 개두술은 오늘 수술 중, 체력 소모가 가장 심한 부분이었다.

개두술을 준후가 소화한다면.

집도의 민석과 시호가 본 수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으리라.

이번 수술의 성공을 위해.

준후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놨는데 개두술을 직접 펼치는 것 또한 그 계획 중 하나였다.

“뭐, 그래도 괜찮긴 한데. 감당할 수 있겠니? 개두술은 2년 차부터 배울 텐데?”

“응급 상황이 있어서 몇 번 해봤습니다.”

“시호, 네 생각은 어때?”

“일단 준후에게 맡겨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신통치 않으면 제가 맡겠습니다.”

“그럼 어디 해봐.”

“감사합니다. 교수님.”

민석의 허락을 얻어낸 후 준후와 시호의 위치가 바뀌었다.

준후가 민석을 마주 보는 퍼스트 어시스트의 자리를 차지했다.

“드릴 주세요.”

“받아.”

준후는 의료용 드릴을 손에 쥐었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시선이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스태프들의 불안이 깊어지기 전에 개두술은 끝날 테니까.

턱!

준후는 환자의 두개골에 드릴을 얹었다.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드릴의 손잡이에 달린 스위치를 당기자 위이이잉 하고 드릴이 회전했다.

준후는 속으로 15초를 셌다.

두개골은 완전히 파내되 뇌막은 건드리지 않는 최적의 시간대를 계산했다.

평소 다른 교수들의 개두술을 초식화 해놓은 덕분이었다.

다른 사람의 행동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자신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공식화하는 능력.

즉, 초식화 능력은 준후의 숨겨진 장기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준후는 훌륭한 서전들을 만나면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흥분이 됐다.

그들의 스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에 들떠서.

오른손으로 드릴 사용하는 한편.

준후는 왼손으로 썩션을 들었다.

쎄에에엑!

드릴 바깥으로 얼음 슬러시처럼 갈려 나오는 골편들을 빨아들였다.

인턴 때 익힌 양수 호박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준후는 파죽지세로 환자의 측두부에 네 개의 구멍을 뚫었다.

구멍은 정확하게 두개골만 뚫었다.

뇌막까지 꿰뚫어 혈관이나 신경에 손상을 주는 일이 없었다.

“burr·saw(두개골 절삭기)주세요. 2개요.”

준후가 시호에게 요청했다.

개두술이 종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절삭기로 기존에 뚫어놓은 구멍을 이어주는 것뿐이었다.

“뭐? 절삭기를 2개씩이나?”

“1개를 쓰면 한 손이 놀잖아요.”

“절삭기를 양손으로 쓰겠다고? 무리야. 힘 조절 잘못하면 절개선이 어긋나. 나중에 Cranioplasty(두개골 성형술)을 할 때 곤란해져.”

시호가 반대 의견을 냈다.

무모한 준후를 말려달라는 듯 집도의 민석을 쳐다보기도 했다.

“실수하기 전까지는 지켜보자꾸나.”

“하지만 교수님.”

“아까 시호 네가 한 말이다.”

민석이 준후의 편을 들자 시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준후에게 2개의 절삭기를 건넸다.

두개골 절삭기는 막대 사탕 같은 모양을 했는데 둥그런 헤드 부분에 날카로운 톱날이 달려 있었다.

준후는 시호에게 절삭기를 건네받았다.

위이이이잉.

스위치를 작동하자 절삭기 헤드가 굉음을 내며 회전했다.

양수 호박 기술을 대성했으므로.

준후는 양손으로 절삭기를 사용하는 데 부담이 없었다.

두려움도 없었고 긴장도 없었다.

준후의 왼손은 이미 오른손 그 자체였다.

만약 무림으로 돌아간다면 이도류로 전직해도 될 것 같았다.

일도양단.

준후는 양손으로 좌상단과 우상단에 있는 두개골 구멍을 세로로 내리그었다.

서예가가 붓을 놀리는 것처럼.

과감하고 재빠른 동작이었다.

이로 인해 정사각형의 세로선이 두 개 만들어졌다.

다음 동작이 빈틈없이 이어졌다.

귀수베기.

준후의 오른손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가로로 움직였다.

준후의 왼손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움직였다.

평행으로 교차하는 양손.

마치 이(二)자를 그리듯 움직이는 양손.

네 개의 절개창이 연결되면서 반듯한 직사각형이 만들어졌다.

준후는 갈고리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두개골을 드러냈다.

뇌막에 손상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개두술이었다.

심지어 준후는 평균 30분 이상 걸리는 개두술을 10분 만에 끝내 버렸다.

“…….”

“…….”

“…….”

준후가 보여준 놀라운 신위에 스태프들은 어안이 벙벙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분한 이는 오직 준후뿐이었다.

준후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까.

“준후 넌 대체…… 전생에 뭐였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수술 시작 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성은이 감탄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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