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제42장 떡상(4)
허…… 믿기지가 않는군.
민석은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준후와 엮인 후로부터 준후에게 놀랄 일만 생기고 있었다.
닭 날개 혈관 그래프트술을 단번에 성공하지를 않나.
두통 환자에게 MRI 촬영을 하더니 아픈 곳을 알아내질 않나.
심지어 이번에는 수술에서 양손으로 개두술을 펼치는 신기까지 보여주었다.
준후에게 무언가를 맡길 때마다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서 교수.
의외로 여우 같은 구석이 있었군.
어쩐지 준후를 뇌종양 각성 수술 어시스트로 쓰더니.
준후의 이런 면모를 일찍부터 파악했던 건가?
준후에게 탄복하는 것과 동시에.
민석은 서동훈 교수를 한층 경계하게 됐다.
내년에 있을 부 교수 선출에 자신과 알력 다툼을 벌일 라이벌을.
“교수님. 제 개두술에 모자란 부분이 있을까요?”
준후가 조심스레 민석에게 물었다.
“모자란 부분이 딱 하나 있구나.”
“그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인간미가 없어.”
다른 스태프들이 ‘이게 무슨 소리지?’하는 표정을 지을 때.
준후가 혼자서 눈으로 웃었다.
민석의 농담을 곧바로 캐치한 것이다. 준후는 실력뿐만 아니라 눈치도 제법이었다.
이 정도면 다음 주에 있을 모야모야병 수술에 세컨드 어시스트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개두술, 예상보다 훨씬 잘해줬다. 수술 시간도 단축됐고 네 말대로 내가 체력적인 부담도 덜게 됐구나.”
“별말씀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믿을 만한 활약을 보여줬으니까.”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준후와 시호는 다시 위치를 바꾸고. 다시 수술을 시작해 보자꾸나. 진짜는 지금부터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네. 교수님.”
“네. 교수님.”
“초음파 분쇄기.”
민석은 소독 간호사가 건네 초음파 분쇄기를 손에 쥐었다.
위이이잉.
분쇄기가 굉음을 내며 회전했다.
초음파 분쇄기로 민석은 뇌막을 절개하기 시작했다.
뇌 가장 바깥에 위치한 경막.
중간에 위치한 지주막.
뇌와 밀착해 있는 연막을 차례대로 절개했다.
민석의 섬세한 손끝에서 뇌막이 뚫리고 수술 시야는 뇌를 향해 더 깊어졌다.
뇌막을 절개하는 과정은 쉬워 보였지만 결코 만만한 처치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도중에 뇌혈관이나 뇌신경을 건드릴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뇌혈관 수술에 잔뼈 굵은 민석 아닌가.
뇌막 절개술에 위기 따위는 존재할 수 없었다.
민석을 돕는 스태프들의 어시스트 또한 탁월했다.
뇌막을 절개하는 동안 시호는 민석의 수술 시야를 확보해 주면서 피할 수 없는 미세 출혈을 잘 잡아주었다.
출혈 거즈와 썩션기를 사용해서.
준후 역시 맡은 소임을 다했다.
칙! 칙! 칙!
뇌막과 혈관이 건조해져.
추가로 출혈이 발생하지 않도록 Warm saline(따뜻한 생리식염수)이 담긴 분무기를 자주 분무해 주었다.
시호에게 필요한 수술 도구를 척척 건네기도 했다.
퍼스트 어시스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수술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대로만 진행되면.
이번 수술은 오히려 실패하기가 어렵겠어. 임산부 수술이라고 괜히 긴장했나?
민석의 입가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에디스 포셉.”
건네받은 포셉으로 민석은 뇌를 감싸고 있는, 우유의 막처럼 얇고 불투명한 연막을 벗겨냈다.
그제야 비로소 뇌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컨트롤 타워 뇌.
1.4킬로그램의 우주라고 불리는 뇌.
이 작은 크기로 몸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모하는 괴물 같은 뇌.
뇌는 볼 때마다, 아니, 볼수록 신기한 장기였다.
동시에 민석에게는 피비린내가 나는 전쟁터이기도 했다.
“현미경 배율 조정하겠습니다.”
준후가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하고 배율을 조정했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클리커 움직이는 소리가 경쾌했다.
배율을 확대하면서 뇌의 풍경이 달라졌다.
단순히 호두처럼 보였던 뇌의 구조가 세밀하게 눈에 들어왔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이랑.
쑥 꺼진 고랑.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는 신경과 수많은 미세혈관 등등.
다만 수술해야 할 뇌동맥류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뇌동맥류가 뇌의 주름 안쪽에 있어서 뇌를 견인해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배율은 15배로 맞췄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만하면 딱 좋아.”
준후가 맞춘 배율을 확인하고 민석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ICP(두개내압감시장치) 삽입해서 뇌압부터 확인하자꾸나. 이번에는 시호가 고생해 봐라.”
“네. 교수님.”
“환자 상태는 어때?”
민석은 자신의 왼쪽에 서 있는 성은에게 물었다.
문득 성은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산부인과의는 현시점을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바이탈은 아직까지 안정적이야. 심전도 이상 없고. 산소포화도도 정상범위고.”
“…….”
“임신 중독증이라 혈압이 확 뛸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지 마. 임산부는 언제 어떻게 상태가 악화될지 모르니까.”
“그거야 네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난 뇌동맥류 수술에만 집중하겠어.”
“너무 무책임한 소리 아니야?”
성은이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다 널 너무 믿어서 하는 소리 아니겠어?”
“하여간 배짱도 좋아.”
“교수님 환자 뇌압 10mmHg로 측정됐습니다.”
시호의 보고에 민석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 뇌압이 0mmHg-15mmHg였으므로 환자의 뇌압은 정상이었다.
이 또한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민석은 오늘 수술을 무사히 성공시키고 과장 앞에서 떵떵거리는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벌써부터 흐뭇해졌다.
“준후야 뇌 견인을 해봐. 견인 부위는 중측두이랑이다. 신경 안 다치게 조심해서.”
“네. 교수님.”
준후가 양손에 리트랙터(견인기)를 들었다.
뇌동맥류가 숨어 있는 중측두이랑을 좌우로 벌려 나갔다.
틈이 벌어지면서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됐어. 거기까지, 리트랙터 고정하고.”
“네.”
“확실히 수술하길 잘했어. 이게 터졌으면 절대 감당 못 했을 거야.”
미세 현미경으로 뇌동맥류를 확인하고 민석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뇌동맥류의 크기가 20mm X 20mm였다.
25mm X 25mm 이상인 뇌동맥류를 거대 뇌동맥류라고 하는데 환자의 뇌동맥류는 거대 뇌동맥류에 근접해 있었다.
딸낭이라고 해서 풍선처럼 부푼 형태를 하고 있었다.
즉, 혈관 파열의 위험도가 높았던 것이다.
“도플러 초음파.”
민석은 쇠막대 모양의 초음파 기기를 벌어진 뇌 사이로 밀어 넣었다.
뇌동맥류에 모(母) 동맥인 후교통동맥의 폐색 여부를 살폈다.
초음파 모니터에 나타난 영상을 판독한 결과.
다행히 모 동맥은 정상적이었다.
뇌동맥류에 클립만 결찰해 주면 수술은 무사히 끝날 듯했다.
“hemostat(혈관겸자).”
딸칵!
민석은 혈관 겸자로 모 동맥의 혈류를 차단했다.
임산부의 뇌동맥류 클립 결찰술.
그 대단원의 막이 종장을 향하고 있었다.
* * *
너무 순조롭잖아.
이래서야 걱정한 게 억울할 지경인데?
수술이 막바지에 이르기 전까지 준후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다양한 응급 상황을 머릿속에 그렸고 이에 따른 응급처치 및 사용할 무공까지 싹 다 정리해놓았다.
환자가 임산부였고.
태아의 기형을 막으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렸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망상이 되어버렸다.
수술이 워낙 순풍에 돛을 단 듯 진행됐던 것이다.
그래서 수술이 김빠진 콜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느슨했던 마음을 일깨우며.
준후는 집도의 민석을 응시했다.
민석은 뇌동맥류에 결찰할 클립을 고르고 있었다.
뇌동맥류 결찰술이란 의료용 클립으로 뇌동맥류를 묶어 해당 혈관에 더 이상 피가 흘러들지 않게 하는 수술이었다.
피가 통하지 않게 되면 뇌동맥류가 파열될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슬슬 실력 발휘를 해볼까.
준후는 고개를 가볍게 풀고 혼자만의 시험을 시작했다.
뇌동맥류 수술의 하이라이트는 뇌동맥류에 적합한 클립을 선택하는 데 있었다.
클립을 잘 골라야 뇌동맥류에 유입되는 혈관을 제대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공부한 스승 재현의 비급을 바탕으로.
준후는 클립을 직접 골라보았다.
뇌동맥류의 크기와 형태.
현재 드레싱 카트 위에 놓여져 있는 클립들을 번갈아 살피며 준후는 클립 하나를 골랐다.
과연 자신의 선택과 집도의 민석은 선택은 어떻게 다를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양 선생. 이걸로 하죠.”
민석이 검지로 한 클립을 가리켰다.
[Sugita clip, straight type 6.]
놀랍게도 준후가 선택한 클립과 민석이 선택한 클립이 똑같았다.
준후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좋았어. 이거지!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직이 아닌데도 당직실에서 스승의 뇌혈관 논문 비급을 정독한 보람이 있었다.
Sugita clip, straight type 6은 클립 헤드가 잘 벌어져 혈류 차단을 잘하는 클립이었다.
스승 재현이 15mm X 15mm 크기 이상의 뇌동맥류에 애용하는 클립이기도 했다.
“너 뭐 하냐?”
준후의 돌발행동에 시호가 준후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왜 좋아하고 난리인데?”
“갑자기 좋은 일이 떠올라서요.”
“그게 뭔데?”
“지금 이야기하긴 좀 그러네요.”
“싱겁기는.”
시호는 금방 준후에게 관심을 거두었다.
그 사이 민석은 소독 간호사가 건넨 클립을 포셉으로 쥐고 이모저모 살폈다.
의료용 클립 중 드물게 불량품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결찰 시작한다.”
민석이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하고 클립을 벌어진 뇌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 과정을 준후는 초식화하여 암기해두었다.
클립을 결찰하는 데도 스킬이 필요했다.
클립의 블레이드가 어긋날 경우.
클립이 오히려 뇌동맥류를 파열시키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딸칵!
떨림 없는 손놀림으로 민석은 뇌동맥류의 목(neck) 부분을 꽉 움켜쥐었다.
역시 교수다운 섬세함이었다.
“준후야. 혈류 테스트해 보자.”
“네. 교수님.”
준후는 발광물질이 담긴 1cc 주사기를 뇌동맥류에 찔렀다.
발광물질을 주입했다.
“소등하겠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소등을 한 후 준후가 자리로 복귀했다.
그리고 미세 현미경에 눈을 대자 뇌동맥류에 주입한 발광물질이 혈관을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클립이 혈관을 제대로 폐쇄하지 못한 것이다.
이상하네.
분명 클립은 제대로 고른 것 같았는데.
딸낭이 있어서 그런가.
비록 첫 번째 선택은 실패했지만 준후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본래 뇌동맥류 클립 결찰술은 최적의 클립을 찾기 위해 몇 번씩 시행착오를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 재현마저도 말이다.
“클립 하나로는 모자라는 모양인데? 그럼 이번에는 두 개를 써보는 수밖에…….”
민석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 사이 준후는 다시 불을 켜고 자리로 돌아왔다.
[Yasargil clip, L-shaped 8, 2EA]
이번에도 준후가 고른 클립은 민석의 클립과 똑같았다.
비록 단 두 번의 케이스지만.
준후의 클립 판단력이 민석과 비슷한 수준에 올랐던 것이다.
기존의 클립을 제거한 후.
민석이 두 개의 클립으로 뇌동맥류의 목 위아래를 단단히 결찰해 주었다.
에이, 설마 이번에는 문제없겠지.
다시 소등하러가면서.
준후는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불길함을 떨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