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제42장 떡상(5)
과연 클립 2개를 사용한 보람이 있었다.
다시 투여한 발광물질이 뇌동맥류 안에서만 형광빛으로 반짝거렸다.
혈류 차단이 완벽했던 것이다.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뇌동맥류는 서서히 소실될 운명이었다.
특이 케이스가 아니면 별문제 없겠어.
다행이다.
오늘은 두 발 뻗고 자겠네.
준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 재현의 비급에 따르면.
지금까지 스승이 집도했던 모든 수술을 스승이 적어놓은 자료에 따르면.
뇌동맥류 클립 결찰술 이후에 나타나는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뇌동맥류를 결찰한 클립이 빠지는 것이었다.
이는 매우 드문 케이스로 숨어 있던 뇌동맥류가 자라면서 클립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이건 그 어떤 명의라고 해도.
예상할 수도 없고, 예방할 수도 없는 케이스였다.
다만 지금 수술인 환자의 경우.
재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때는 이미 출산을 마쳤을 테니 수술에 대한 위험이 줄어들 것이다.
뇌동맥류 수술 후의 부작용 두 번째.
그것은 수두증이었다.
수두증은 뇌 안에 뇌척수액이 순환하지 못하고 고이는 질환인데.
이는 준후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부작용이었다.
환자만 철저히 관리한다면 사전예방 및 처치가 가능했다.
“준후야, 리트랙터(견인기) 제거해.”
“네. 교수님.”
준후는 민석의 지시를 따랐다.
뇌를 견인하던 리트랙터의 고정을 풀고 리트랙터를 서서히 오므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잠깐!”
민석이 다급하게 준후를 제지했다.
“왜 그러십니까? 교수님?”
“아무래도 클립을 다시 써야겠구나.”
“혈류 차단은 완벽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시호도, 성은도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민석을 쳐다보았다.
민석의 낯빛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뇌를 닫으면 삼차신경이 클립 몸통 부분에 눌리고 말 거야. 하…… 재수가 없으려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수술, 잘 끝난 거 아니었어?”
성은이 의문을 제기했다.
“쉽게 설명해 줄게. 지금 뇌가 좌우로 벌어져 있지?”
“그렇지.”
“우리는 클립을 삽입하고 뇌를 닫을 거고.”
“그렇지.”
“그런데 이대로 뇌를 닫으면 클립의 몸통 부분이 삼차신경을 누르게 돼. 벌어져 있던 뇌가 맞닿게 되면서 말이야.”
민석이 낭패라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필이면 클립 몸통이 삼차신경이 지나가는 위치에 놓일 줄이야.”
민석의 탄식을 듣고 준후는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 댔다.
과연 민석의 말 그대로였다.
이대로 뇌를 닫으면 환자의 삼차신경이 압박받을 것이다.
이는 삼차신경통이라는 부작용을 만들 것이다.
삼차신경은 얼굴의 근육과 신경을 다루는 가장 큰 신경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환자는 수시로 얼굴이 불타는 듯한 고통을 맛봐야 했다.
완벽한 줄 알았던 클립 결찰술에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민석의 비보로 수술방 분위기는 급속도로 무거워졌다.
수술하는 내내.
똑 부러지는 활약을 펼쳤던 준후조차 나설 수 없었다.
이건 준후가 예상하지 못한, 대비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당혹감을 수습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교수님. 클립의 몸통이 삼차신경을 압박하지 않도록 위치를 잘 조정할 수는 없을까요?”
준후가 가까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게 가능하면 왜 안 하고 있겠니. 뇌동맥류를 결찰하고 나서 클립을 막 움직이면 뇌동맥류가 터질 수 있단다.”
“그럼 클립을 다른 걸로 바꿔보시는 건 어떨까요?”
“마땅한 조합이 안 보이는데…… 지금은 다른 수가 없어 보이는구나.”
민석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뇌동맥류의 혈류를 완전히 차단하면서 삼차신경 또한 압박하지 않는 클립을 찾기 위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모험은 계속 실패로 돌아갔다.
혈류를 차단하면 삼차신경에 압박이 있었고.
삼차신경이 멀쩡하면 혈류가 차단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환자의 뇌동맥류의 위치와 크기, 형태가 일반 뇌동맥류 환자와 다른 양상을 보여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뇌동맥류가 특이하니.
그에 딱 맞는 클립이 없었던 것이다.
적합한 클립을 찾지 못하면서 수술 시간은 예상 시간을 40분 초과했다.
수술에 실패할지도 못하는 초조함과 두려움이 수술방을 휘젓기 시작했다.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해. 환자 혈압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어. 항고혈압제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성은이 민석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나도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야!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민석의 언성이 높아졌다.
수술이 벽에 부딪히자 감정의 동요가 생겼던 것이다.
쩌저적.
준후는 팀워크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환자도, 태아도 버티지 못할 텐데.
준후의 시선이 초조하게 벽시계와 환자 감시 장치를 오갔다.
꼭 무림에서 사파에게 추적을 당하던 기분이었다.
“교수님, 혹시 클립 결찰술을 코일 색전술로 교체할 수는 없을까요?”
“안 돼. 절대로. 코일 색전술로 감당하기에는 뇌동맥류가 너무 커. 혈관이 복잡해서 카테터가 진입하기도 힘들고.”
준후의 제안을 지적한 민석이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어쩔 수 없지. 어렵고 위험한 길이라도 가는 수밖에…… 양극성 소작기(Bipolar Forcep Coagulation).”
민석의 지시에 소독 간호사가 양극성 소작기를 건넸다.
양극성 소작기는 포셉과 똑같이 생겼지만 양 끝에 바늘과 같은 침이 달려 있었다.
양 끝의 침 부분에 고열이 흘러 소작을 좀 더 정교하게 할 수 있었다.
“아직 남은 방법이 있었어?”
성은이 물었다.
“뇌동맥류에 열을 가해서 쪼그라들게 만들 거야. 뇌동맥류의 크기를 줄이면 괜찮은 클립을 찾을 수 있겠지.”
“그럼 왜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는데?”
“위험하니까. 잘못하면 뇌동맥류가 파열될 수도 있어. 웬만하면 뇌동맥류를 직접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젠 방법이 없어.”
민석의 눈빛이 결의에 차 있었다.
하지만 민석의 판단에 준후는 불안을 감추기 힘들었다.
소작기로 지져서 뇌동맥류의 크기를 줄이는 시술.
이는 스승 재현조차 40퍼센트의 확률로 성공하는 시술이었다.
환자가 일반인이면 모를까.
환자가 임신중독증을 앓고 있는 임산부라면 실패 후의 뒷수습을 하기도 까다로웠다.
혈압과 뇌압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테니까 말이다.
정말 도박을 걸어야 할까.
안전하게 수술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준후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준후에게는 다른 외과의들이 갖지 못한 무공과 내공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이 무기를 지금 상황에서 활용하고 싶었다.
안전하게 수술을 마치려면 역시 클립을 사용해야 할 텐데.
클립에 뭔가를 더해야 할 텐데.
클립을 빤히 쳐다보던 준후는 마침내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궁하면 통하는 것이었다.
“교수님. 클립 결찰술, 가능할 것 같습니다.”
* * *
“교수님. 클립 결찰술, 가능할 것 같습니다.”
준후의 호쾌한 목소리가 수술방에 울려 퍼졌다.
스태프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준후에게 쏠렸다.
“서준후,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민석이 분노에 찬 일갈을 터뜨렸다.
가뜩이나 클립 결찰술에 실패해서 예민한 민석이었다.
그것도 본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동맥류를 결찰할 클립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결찰술에 실패한 민석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감히 클립 결찰술이 가능하다는 망발을 해?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오냐오냐해 줬더니 아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오르는군.”
“제가 환자 앞에서, 또 두 교수님 앞에서 어찌 허튼소리를 하겠습니까? 정말 좋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화가 난 민석과 달리 준후의 눈빛과 목소리는 차분했다.
아주 생각 없이 나섰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교수인 자신조차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레지던트 1년 차인 준후가 과연 어떤 묘수를 찾아낼 수 있었을까.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클립 조합식을 찾아냈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네. 제 수준이 미천한데 교수님이 보지 못한 클립 조합술을 발견했겠습니까?”
“그럼 외출해서 클립을 사 올 생각이냐?”
민석이 화를 조금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뇌동맥류에 사용되는 클립의 종류는 수십 가지였고.
신원대 병원 신경외과에서 모든 클립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클립 결찰술을 속행한다면 새로운 클립을 구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대중적인 클립도 미리 구해두는 건데.’
민석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배는 이미 떠났다.
“그것도 아닙니다. 클립을 새로 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허…… 그러면 대체 뭘 하자는 거니?”
“Yasargil clip, L-shaped 8, 2EA가 뇌동맥류의 혈류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모양 때문에 삼차신경을 압박하기도 했고.”
“그러면 ‘L’자 형태인 클립의 가로 부분을 접어서 ‘I’자 형태로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이러면 삼차신경에 압박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뇌동맥류 클립을 반으로 접는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으음…… 이론상으로야 가능하지. 클립의 가로 면이 삼차신경을 압박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민석은 준후의 제안에 콧방귀를 끼며 말을 이었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뇌동맥류 클립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사람 힘으로는 절대 클립을 구부릴 수 없어.”
“준후야, 이번엔 선 넘었다. 오버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선생님. 그건 좀…….”
그동안 잠자코 있던 시호와 소독 간호사가 준후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것은 뇌동맥류 코일이 써지컬 스틸, 즉 의료용으로 특수 제작된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였기 때문이다.
특수 제작된 스테인리스 스틸을 손으로 구부린다?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허. 또 쓸데없는 소리를. 나대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준후, 너 때문에 가뜩이나 지연된 수술 시간이 또 늘어났잖아.”
“그래도 한 번 시켜는 봐야 하지 않겠어?”
“뭐? 너까지 왜 그래?”
민석은 준후를 두둔하는 성은을 노려보았다.
설마 이 상황에서 준후 편을 들 줄이야.
“시켜보고 못 하면 그때 혼내도 괜찮지 않아?”
“넌 사람이 써지컬 스틸을 힘으로 구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심으로?”
성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드레싱 카트 위에 놓여 있던 Yasargil clip, L-shaped 8, 2EA를 손에 쥐고 준후에게 다가가 건넸다.
준후의 손에 두 개의 클립이 쥐어졌다.
“시도는 해봐.”
“감사합니다. 교수님.”
준후가 첫 번째 클립을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 엄지로 ‘L’자인 클립을 ‘I’자 형태로 구부리기 시작했다.
무슨 얼치기 차력 쇼도 아니고.
무슨 삼류 개그 쇼도 아니고.
신성한 수술방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람.
허튼짓이 끝나면 준후를 따끔하게 혼내야겠다.
모야모야병 세컨드 어시스트도 취소해야겠다고 민석이 생각을 고쳐먹는 와중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준후의 완력에 클립이 구부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써지컬 스틸을 힘으로 구부린다고?
준후가 무슨 초능력자라도 된단 말인가?
황당한 상황에서.
당황한 스태프들의 눈이 커져 가는 가운데.
준후는 순식간에 ‘L’자 클립을 ‘I’자로 접어버렸다.
기적이 현실이 된 것이다.
민석은 입에서 터져 나오는 상스러운 소리를 참지 못했다.
“씨X, 무슨 이런 미친놈을 다 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