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제43장 괴력(3)
드르르륵.
준후가 당직실로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민경과 경수의 시선이 준후에게 쏟아졌다.
“오늘도 한 건 했다던데? 뇌동맥류 클립을 구부렸다지?”
“그 이야기 듣고 까무러칠 뻔했어. 준후, 너 차력사로 전직하는 줄 알고.”
경수는 담담하게 민경은 다소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뇌동맥류 클립 결찰술 당시.
준후의 활약상이 두 사람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혹시나 해서 해봤는데 되던데요?”
준후는 멋쩍게 웃으며 민경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지공인 용조수로 클립을 구부릴 때부터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긴 했다.
의료용 클립을 순수하게 완력으로 구부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의 헬스 트레이너.
타고난 괴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준후의 활약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수밖에…….
앞으로 클립 구부린 이야기만 백 번은 듣겠네. 벌써부터 귀가 따가운 것 같아.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지겨웠지만 준후는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환자와 태아가 무사하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앞으로 준후 눈치 좀 보고 살아야겠어.”
“갑자기 왜요?”
“그 무시무시한 힘으로 내 팔다리나 허리를 꺾을지도 모르잖아? 의료용 클립처럼.”
민경의 농담에 준후는 피식 웃었다.
“에이, 제가 무슨 공포 영화에 나오는 괴물이나 살인마도 아니고. 너무 오바하신다.”
“세상에 저런 일이 제보해 줄까? TV 한번 나가 볼래?”
경수도 농담에 가세했다.
응급실 인질극 이후, 준후에게 마음을 열고 농담을 부쩍 자주 건네는 경수였다.
“준후 넌 특집으로 최소한 두 편은 뽑을 것 같은데?”
“두 편이나?”
“잠을 안 자는 사나이로 한 편. 스테인리스 스틸을 맨손으로 구기는 사나이로 한 편.”
“그러네. 그러고 보니까 준후는 잠도 없었지? 하여간 별종이라니까.”
민경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중.
준후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의료용 클립을 구부린 일을 뉴튜브 소재로 응용하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아이돌의 춤을 따라 하는 댄스 챌린지 영상.
조용히 공부하는 영상.
준후의 영상은 크게 이 두 가지가 반복되었는데 그 틀을 이번에 깨보고 싶었다.
세상은 바야흐로 대관종의 시대였고.
준후에겐 관종이 되기에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선배. 지금 뉴튜브 촬영할 건데 도와줄 수 있어요? 경수, 너도.”
“얼굴만 모자이크해 준다면야 상관없어.”
“나는 모자이크도 필요 없어.”
모자이크를 요청한 사람은 경수, 필요 없다는 쪽은 민경이었다.
준후는 두 사람에게 간단한 상황을 숙지시켰다.
책상에 놓인 휴대폰 거치대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지구상에서 오직 저만 할 수 있는 유일한 특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
“그 특기가 뭐냐면…… 바로 이것입니다.”
준후는 가운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꺼냈다.
자판기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기에 동전은 늘 가지고 다녔다.
“동전으로 뭘 할까 궁금하시죠? 우선 이 동전이 진짜라는 것부터 확인시켜드릴게요.”
준후는 휴대폰을 향해 동전을 내밀었다.
동전의 앞뒷면을 구독자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었다.
쨍그랑!
동전을 바닥에 던져 쇳소리도 확인시켜주었다.
“무슨 특기를 보여주려고 이렇게 시간을 끄나 싶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제가 순순하게 힘으로 동전을 구부려볼게요.”
준후의 입가에 씽긋 미소가 걸렸다.
그랬다.
준후는 본인의 손아귀 힘을 콘텐츠로 삼았던 것이다.
주변 사람 몇 명이 준후의 손아귀 힘을 언급하면 단순한 가십거리가 되지만.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 떠들면 그것은 밈 또는 유행이 될 수 있었다.
준후는 그 점을 노렸다.
“일단 실험을 위해 동료들을 모시겠습니다. 두 분 나와서 인사해 주세요.”
“신경외과의 서경수입니다.”
“이민경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카메라 앵글 바깥에 있던 두 사람이 카메라 앵글 안쪽으로 들어왔다.
각자 준후 양옆에 자리를 잡았다.
“두 분이 먼저 동전을 구겨보시겠어요?”
준후는 두 사람에게 차례대로 동전을 건넸다.
민경과 경수가 차례대로 악을 써가며 동전을 구부려보았지만 구부러질 리 없었다.
“자. 이번에는 제가 구부려볼게요. 가공하지 않은 정상적인 동전이라는 건 아까 확인하셨죠?”
준후는 오른손으로 경수에게 동전을 받았다.
그리고 왼손바닥을 활짝 펼친 상태로 선생님에게 질문이 있다는 듯 팔을 들어 올렸다.
양손으로 동전을 구부리다가.
한 손에 미리 쥐고 있던 구부러진 동전을 기존 동전과 바꿔친다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준후는 오른손 엄지와 중지로만 동전을 잡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손가락에 담았다.
그로 인해 준후의 손가락은 동전 아니 동전 이상의 강도를 지니게 되었다.
용조수(龍爪手).
철근처럼 단단한 손가락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지공.
와드득!
마치 종이를 접듯이 손쉽게.
준후는 동전을 반으로 접었다.
용조수의 무시무시한 완력에 동전은 일(一)자로 반듯하게 접히고 말았다.
“뭐야? 진짜 구겨 버렸네? 네 눈이 잘못된 건가?”
“이렇게 간단하게 동전을 구부린다고? 그것도 한 손에, 손가락 힘만으로?”
민경과 경수가 동시에 감탄을 터뜨렸다.
기겁하는 두 사람의 표정을 확인하고 준후는 피식 웃었다.
준후는 가지고 있는 능력의 100분의 1도 사용하지 않았다.
내공으로 남몰래 뇌혈관 조영술을 펼쳤고 수술 불가능한 부위에 있는 뇌종양을 내공으로 절제하기도 했다.
만약 그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두 사람은 기절하지 않을까.
“오늘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안녕.”
동영상 촬영을 종료한 직후.
준후는 곧바로 뉴튜브 쇼츠 영상도 촬영했다.
이름하여 최배달 챌린지.
손가락으로 동전을 구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짧은 영상이었다.
준후는 일사천리로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 날 저녁, 뉴튜브 서버가 들썩거리고 뜨거워졌다. SNS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대난리와 대소동이 벌어졌다.
준후의 영상은 순식간에 수만 명의 관심을 먹어치웠다.
* * *
다음 날 새벽 4시.
당직 근무였던 준후는 당직실에서 호월십이수를 연마하고 있었다.
쎄에에엑!
준후가 허공에 내지른 손바닥에서 가공할 파공성이 쏟아졌다.
이어지는 제3초식 쌍월천룡.
준후의 오른손이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렸고 왼손이 오른손의 뒤를 쫓았다.
양손이 세로로 겹쳐지는 순간.
파아아앗!
양손이 동시에 정면으로 용맹하게 뻗어 나갔다.
쌍월천룡.
이 초식은 왼손바닥으로는 상대방의 안면을 타격하고.
오른손바닥으로는 상대방의 가슴을 타격하는 고난이도 초식이었다.
“휴우.”
초식을 마친 준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으로 의사 가운의 옷깃을 잡아 펄럭거렸다. 땀이 식으면서 살갗이 시원해졌다.
3개월 전부터 익히고 있는 호월십이수는 현재 4성이었다.
성취가 절반도 이르지 못했다.
호월십이수의 덕을 보려면 최소한 5성은 되어야 할 것이다.
5성을 이루게 되면.
손바닥, 손가락, 손목, 팔꿈치, 어깨 등등.
팔의 모든 부위가 활성화되고 유연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장점은 곧바로 손을 사용하는 처치에 적용될 것이다.
특히 준후가 목표로 삼은 미세 혈관 봉합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세 혈관 봉합술은 뇌혈관 수술의 꽃이었다.
수련을 마친 준후는 책상에 앉았다.
자신의 뉴튜브 채널에 접속해서 저녁에 올린 영상을 확인했다.
[심봉사도 눈을 번쩍 뜰 신경외과의의 신비한 특기. 의사예요? 차력사예요?]
준후는 본인이 직접 지은 영상 제목을 확인하고 키득거렸다.
아무래도 벌써 뉴튜버가 다 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자극적인 제목도 술술 지어내고 말이다.
영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업로드한 지 채 6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조회수가 벌써 50만을 돌파했다.
SNS로 추가 홍보를 하고 오늘의 핫 영상으로 간택을 받은 덕분이었다.
최배달 챌린지 쇼츠 영상도 100만을 돌파했으니 이쯤 하면 준후의 관종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좋아. 좋아.
구독자도 70만에서 75만으로 한 번에 뛰었네. 이번 달 뉴튜브 수익도 기대할 만하겠어.
준후는 싱글벙글 웃었다.
다만 준후의 기쁨은 자신이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는 종류의 기쁨이 아니었다.
늘어날 뉴튜브 수익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었다.
돈과 명예는 준후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준후의 근본적인 기쁨이었다.
무림에서 수많은 동료를 잃고 현대에서는 성호를 잃으면서 행복의 기준이 바뀐 것이다.
드르륵.
드르륵.
준후는 마우스 휠을 내리며 영상의 댓글들을 확인했다.
-와. 대박이네요. 어떻게 손가락 힘만으로 동전을 구부리지? 손가락이 철근이세요?
-진상 환자한테 이 영상 보여주면 바로 아가리 묵념할 듯. ㅋㅋㅋㅋ
-동전 말고 다른 것도 구부려 주세요!!!!
호의적인 댓글이 있는 반면.
준후를 의심하는 댓글도 꽤 많이 달려 있었다.
-가짜 플라스틱 동전 사용한 거 아님? 손가락으로 동전을 어케 구부림?
-이거 백 퍼 영상 짜깁기한 겁니다. 이런 영상 꽤 많아요. 속지 마세요.
준후가 원 테이크로 영상을 찍고.
동전이 일반 동전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동전을 바꿔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 손으로만 동전을 구부렸음에도.
준후를 의심하는 댓글이 50퍼센트가 넘었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만했다.
준후의 능력은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했으니까.
하지만 준후는 딱히 억울하지 않았다.
조작이다 VS 사실이다.
영상을 본 사람들의 의견이 격렬하게 갈리는 것조차 준후에게는 이득이었다.
그게 다 관심이고 조회수로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준후는 그저 뒷짐을 지고 서서 꿀만 쪽쪽 빨면 그만이었다.
와. 달다 달아.
앞으로는 무공으로 어그로 끄는 영상도 자주 찍어야겠는걸?
반응이 너무 핫하잖아.
새로운 뉴튜브 콘텐츠의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음미하던 준후는 문득 한 댓글을 확인하게 되었다.
뉴튜브 영상 중 좋아요가 꽤 많이 찍힌 댓글이었다.
새로 고침 키를 누르자.
100개였던 좋아요가 300개까지 늘어났다.
-주작 감별사 김진국입니다. 화제의 동영상, 동전 구부리기 영상이 주작인지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해당 영상을 확인하고 싶은 분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영상에는 해당 채널로 이동할 수 있는 하이퍼링크가 걸려 있었다.
호기심을 느낀 준후는 곧바로 김진국의 뉴튜브로 채널로 이동했다.
몇 가지 영상을 보니 김진국은 꽤 신뢰를 받고 있는 주작감별사였다.
음식을 먹다가 뱉은 먹방러.
뒷광고를 한 유튜버 등등.
김진국은 다양한 주작러를 팩트로 후드려 패서 활동을 정지시킨 이력이 있었다.
그런 김진국은 과연 준후의 영상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궁금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딸칵.
준후는 3시간 전에 올라온 주작 감별사의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의 제목은 이랬다.
[아니, 손가락으로 동전을 구부린다고요?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