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제43장 괴력(4)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서준후님의 손목은 안전합니다. 동영상은 주작이 아니라는 거죠.]
영상 속의 김진국이 준후의 동영상을 띄우고 차분하게 분석을 시작했다.
준후의 동영상이 거짓이 아닌 이유.
첫 번째는 동전이 진짜 동전이라는 것이었다.
준후를 의심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동전이 가짜라고 주장했다.
모형 동전을 정교하게 만들어 진짜 동전인 척 구부렸다고 아득바득 우겼다.
[동전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형 동전이라면 금속이 아니라 플라스틱 같은 걸 사용해서 만들었을 텐데 그러면 맑은 쇳소리가 안 나거든요.]
김진국은 소리에 주목했다.
준후가 동전이 진짜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동전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동전을 망치로 쳤을 때 난 소리에 주목했다.
준후의 의도를 처음부터 꿰뚫어 보고 있었다.
주작 감별사다운 꼼꼼함이었다.
[동전은 가짜를 쓰고 소리만 입힌 게 아니냐는 제보가 있던데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진국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제작한 모형 동전으로 준후를 따라 했다.
모형 동전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망치로도 쳐봤다.
[모형 동전을 바닥에 던지면 가벼워서 바닥에 착 붙어 버려요. 망치질을 하면 표면에 흠집이 생기고요.]
[가짜 동전에 소리만 입혔다면 여러분들도 처음부터 사기라는 걸 알아차렸을 겁니다.]
준후의 동영상이 거짓이 아닌 이유.
그 두 번째는 영상에 잔상이 없고 곁에 있는 동료들의 눈빛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펜치로 동전을 조금씩 구부리고 그 동전을 손에 쥔다. 그 장면을 이어 붙여서 동전을 구긴 것처럼 보이는 연출을 한다고 말이죠.]
김진국의 설명에 준후를 혀를 내둘렀다.
분할한 촬영을 이어 붙여서 하나의 영상을 만든다는 꿈에도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그런 사기꾼을 잡아내는 김국진도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실 분할한 동영상을 이어붙이는 사기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김진국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분할한 영상을 이어 붙였을 때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움.
그리고 희미하게 나는 잔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김진국은 말했다.
준후 곁에 있는 민경과 경수의 태도도 언급했다.
[여기 곁에 있는 의사 두 분을 보세요. 서준후 씨가 주작하고 있으면 아마 서준후 씨의 손을 보지도 않을 겁니다.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요.]
[…….]
[그런데 이 두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준후 씨의 손을 주시하고 있어요. 이분들도 서준후 씨가 동전을 구부릴 줄 몰랐다는 증거죠.]
[…….]
[정말 서준후씨가 펜치로 동전을 구부렸어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김진국은 민경과 경수의 눈빛까지 분석하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김진국을 무림에 데려간다면 준후는 김진국에게 무공 교관이라도 맡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초식 분석 하나는 끝내주게 잘할 것 같아서.
영상이 끝난 후.
준후는 김진국 영상의 댓글까지 살폈다.
김진국에게 감탄하는 사람이 8할.
김진국이 준후를 옹호한다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2할이었다.
어쨌거나 준후는 KJK마크를 획득했다.
KJK(김진국)마크.
김진국이 주작하지 않는 영상에게만 수여한다는 공신력(?)있는 마크였다.
이것도 김진국 효과인가?
미쳤네.
잠깐 사이에 동영상 조회수가 100만을 찍었잖아?
이러다가 하루 만에 200만도 찍겠는걸?
준후는 모처럼 터진 대박 영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무공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었다.
뉴튜브 흥행에 꼭 필요한 어그로(?)를 끄는 데도 뛰어난 효과가 있었다.
만약 앞으로 무공 관련 컨텐츠를 꾸준히 업로드한다면 그 파급력은 어떨까.
그야말로 조회수를 빨아 당기는 치트키가 될 것이다.
* * *
그 날 아침.
오전 컨퍼런스와 회진이 끝나고 각자 스케줄에 따라 교수들과 레지던트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준후야,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네. 교수님.”
준후는 민석을 따라 복도 끝 창가로 이동했다.
교수가 레지던트를 따로 호출하는 일은 많지 않았기에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임산부 환자, 상태는 어떠니? 밤새 특이사항은 없었고?”
“네. 없었습니다. 바이탈은 정상이었고 심전도나 산소 포화도 역시 문제없었습니다.”
“뇌압은?”
“0mmHg였습니다.”
당직을 서는 동안, 준후는 매 시간마다 간호 기록지를 확인했다.
임산부 환자뿐만 아니라.
다른 중환자의 상태에 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잘 됐구나. 혹시 수두증이 발생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거든. 뇌수술을 한 임산부는 수두증을 앓을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제가 미리 내공으로 좁았던 뇌실을 넓혀놨거든요.’라고 준후는 속으로 덧붙였다.
“교수님. 저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만…….”
“말해 보거라.”
“모야모야병 수술을 사흘 뒤로 미루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본래라면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재은의 수술은 내일이었다.
그런데 민석은 날짜를 사흘 뒤, 그러니까 다음 주 월요일로 연기했다.
“수술법을 살짝 손보는 중이란다. 아무래도 소아에게 직접혈관문합술을 하다 보니 장애물이 많단 말이지.”
“간접혈관문합술. 아니면 직접과 간접혈관문합술을 같이 펼치는 하이브리드 수술은 정말 생각이 없으신가요?”
준후의 목소리에 짙은 우려가 묻어났다.
막힌 뇌혈관을 뚫어주기 위해 다른 우회 혈관을 연결했다간 불상사가 터질 수 있었다.
소아의 뇌혈관은 워낙 얇고 연약했으니까.
혈관의 봉합 난이도만 놓고 보면.
심장의 관상동맥에 우회로를 연결하는 것보다 뇌혈관에 우회로를 연결하는 것이 몇 배는 더 고난이도였다.
“안 돼. 이미 결정했어.”
민석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 수술을 성공시켜야 학회에 돋보이는 논문을 제출할 수 있단다. 내년에 있을 부 교수 임용에도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고.”
“…….”
“내 명예와 승진이 달린 일이야. 포기는 불가능해.”
비장한 표정의 민석을 응시하며 준후가 느낀 감정은 연민이었다.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불쌍해 보였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일?
물론 좋죠.
하지만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건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말을 준후는 간신히 삼켰다.
민석이 동료였다면 허심탄회하게 진심을 건넸겠지만 민석은 교수였다.
진심을 말했다간 민석에게 무례하다는 말을 듣거나 분노를 살 수 있었다.
“사흘 뒤에 수술할 수 있도록 환자 관리 잘하거라.”
“네. 교수님.”
민석과 헤어진 후, 준후는 당직실로 돌아갔다.
회진 때 추가된 오더를 입력하고.
간호사 콜을 받아 병실을 들락날락거리고.
입 퇴원 기록지를 작성하고.
응급실도 두어 번 다녀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온 점심시간, 준후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렇게 시간을 아껴서 소아과 병동으로 이동했다.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재은을 보기 위해서였다.
드르르륵.
6인실에 입장하자 고소한 치킨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환자 중 누군가가 점심으로 치킨을 먹은 듯했다.
“안녕하세요. 보호자 분. 재은아, 안녕.”
준후는 재은이 있는 병상으로 이동해 인사를 건넸다.
재은이는 어딘지 모르게 뾰로통한 표정으로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준후의 인사에도 아는 척이 없었다.
반면 보호자는 준후를 알아보고 반색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점심 식사는 하셨어요?”
“네. 먹고 왔습니다. 보호자분도 식사하셨죠?”
“당연히 먹었죠. 선생님 앞에서 말하긴 그렇지만 입원식은 솔직히 입맛에 안 맞네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신답니다. 군대 급식보다 맛이 없다고. 아무래도 당뇨나 고혈압이 있는 환자분들도 식사하고 탈이 없어야 하니까요.”
준후의 시선이 재은에게 고정되었다.
“재은이는 오늘따라 유독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밥이 맛없어요.”
“건강하게 퇴원해서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 그렇지?”
“…….”
“재은아! 왜 선생님한테까지 심술이니? 선생님한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엄마가 말 했어? 안 했어?”
보호자가 재은을 꾸짖길래 준후가 황급히 말렸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모야모야병을 앓고 병원에 입원한 것만 해도 힘들고 서러울 텐데.
“사회 복지팀은 찾아가 보셨나요?”
준후가 영악하게 화제를 돌렸다.
“아. 네 선생님 말씀 듣고 찾아가 봤는데 희귀 질환자 지원 사업이란 게 있다고 해서 신청했어요.”
“…….”
“그런데 꼭 통과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신청자가 많아서.”
보호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준후의 가슴도 불에 타는 듯 아려왔다.
사회는 분명 예전보다 풍요롭고 넉넉해졌다.
하지만 가난의 그림자는 여전히 세상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빛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림자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두 분의 사연을 뉴튜브 실시간 방송에 소개하고 후원금을 마련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정말요? 저야 대환영이죠.”
“그럼 당장 내일 진행하겠습니다.”
준후는 보호자에게 계획을 꼼꼼히 설명했다.
동전 구부리기 영상으로 뉴튜브의 관심을 빨아 먹는 지금이야말로 사람들에게 후원받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시청자들의 후원금.
준후의 개인적인 후원금이 더해진다면 재은 가족도 한동안은 경제적인 여유를 얻으리라.
“남편분은 어떠신가요? 요새 통 얼굴을 못 뵈었는데.”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꼼수 같은 거 안 쓰고 자기가 땀 흘려서 돈을 벌겠다나 뭐라나.”
“…….”
“이제 좀 정신을 차린 것 같아요. 가장답게 듬직하기도 하고.”
“저까지 마음이 놓이네요.”
보호자의 말에 준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가짜 도사에게 홀려 치료비를 탕진할 뻔한 보호자의 남편 아니던가.
어디서 뻘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기우였다.
아무래도 그 날 사용한 정안이 남편에게 긍정적인 각성을 이끌어낸 듯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보호자와의 대화가 훈훈하게 이어지던 그때.
훌쩍. 훌쩍.
갑자기 코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후가 재은을 바라보니 재은의 눈시울이 빨갰다.
얼굴은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처럼 보였다.
순간 준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머리카락이 뾰족 솟아오르고 팔뚝에 닭살이 돋아났다.
모야모야병 환자는 우는 것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됐다.
울음으로 인해서.
과호흡과 저이산화탄소혈증 뇌허혈 발작과 뇌혈관 수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사흘 뒤에 있을 수술에 악영향을 끼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최악의 경우, 수술 날짜를 당겨야 할 수도 있었다.
“재은아. 왜 울어? 아까 엄마가 혼내서 서러웠니?”
“흐흐흐흑.”
준후가 다정하게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재은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가녀린 어깨가 파르르 떨려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재은의 울음이 깊어지는 것을 준후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