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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30화 (230/424)

230화

제43장 괴력(5)

재은이는 왜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을까.

준후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었다.

준후의 관점에서는 딱히 재은이가 울 이유가 없었다.

평소와 달리 저기압이었지만.

보호자에게 꾸지람을 들었지만.

이 두 가지가 서럽게 울 만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재은이가 우는 이유를 고민하던 찰나.

준후는 곧바로 질문을 바꾸었다.

어떻게 하면 재은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들 수 있을까로.

상황에 따라서는 원인을 찾는 것보다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유용했다.

강도가 집에 들이닥쳤다고 치자.

강도가 침입한 이유나 침입 경로를 생각하는 건 나중 일이었다.

일단 112에 신고하거나.

방문을 잠그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재은이의 울음이 깊어지지 않도록.

모야모야병의 차도가 악화되지 않도록 손을 쓰는 일이 우선이었다.

“재은아. 울음 뚝! 울면 더 아파지는 거 알잖아.”

“흐흐흐흑.”

흐느끼는 재은이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상황이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안 돼.

이러다간 뇌압이 올라가서 혼절할지도 모르겠어.

“선생님이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잘 봐.”

준후는 일부러 명랑한 목소리를 냈다. 가운 주머니에 있던 동전 중 하나를 꺼냈다.

재미라는 말에 재은이가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들어 준후를 응시했다.

“잘 봐. 선생님 손에 동전이 있어. 이 동전이 어떻게 되는지 잘 봐.”

“……네.”

“얍!”

준후는 어제 올린 동영상을 따라서 100원짜리 동전을 손쉽게 구부렸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도.

이 정도면 안 놀라고 배기겠어?

무려 100만 명의 선택을 받은 잡 기술이라고.

준후는 자신만만했지만 정작 재은이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재은이의 눈빛은 실망에 물들어 있었다.

놀란 건 재은이가 아니라 보호자였다.

“와! 선생님. 손힘이 대단하시네요. 맨손으로 동전을 구부리다니. 저희 남편은 손힘이 약해서 병뚜껑도 잘 못 따는데.”

재은이를 안정시켜야 해요.

보호자분이 신기해하실 때가 아니라고요!

준후가 속으로 절규하는 사이, 재은이는 다시 울 준비를 했다.

고개를 푹 숙였다.

양손으로 뻘건 눈가를 비벼댔다.

준후에게 주어진 시간이 초읽기로 다가왔다.

아이의 울음을 그치는 법은 크게 두 가지라고 준후는 생각했다.

하나는 지금까지 시도한 것처럼.

아이를 재미있게 또는 웃게 만드는 것(물론 실패했지만).

다른 하나는 위협하는 것이었다.

난이도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쉬웠다.

내공을 몸 밖으로 분출하여 형상화한다.

내공을 재은이에게 쏘아낸다.

압박감과 위압감을 느낀 재은이가 울음을 뚝 그친다.

이는 무림의 고수들이 길가에서 마주치는 건달이나 양아치와 시비가 붙었을 때.

가장 간편하게 상황을 종료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재은이에게 쓰는 건 옳지 않아 보였다.

당장은 효과적이더라도.

길게 보면 재은이가 앞으로 준후를 무서워할 확률이 높았으니까.

무공을 좀 더 긍정적으로 쓰자.

방법은 반드시 있을 거야.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결과, 준후는 꽤 괜찮은 방법을 찾아냈다.

궁즉통!

궁하면 통하는 법이었다.

“재은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선생님 쳐다볼래?”

“…….”

“부탁할게. 응?”

재은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마지막 잎새.

아니, 마지막 기회.

준후는 가운 주머니에서 또 하나의 동전을 꺼냈다.

쉴 때 자판기 커피를 즐겨 마시다 보니 동전은 늘 여유롭게 보유했다.

준후는 재은이가 손바닥을 펼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재은이의 손바닥에 동전을 올려놓았다.

“재은아. 동전이 허공에 둥둥 뜨는 마술 본 적 있니?”

도리도리, 고개 젓는 재은.

“동전이 떠오르면 신기하겠지?”

“……네.”

“자, 흥미진진한 동전 마술 시작합니다. 울면 못 보니까 놓치면 안 된다?”

준후는 익살맞게 말하고 동전 띄우기 마술을 준비했다.

“하나, 둘, 셋!”

카운트 다운이 끝나기 무섭게 동전이 두둥실 떠올랐다. 동전이 떠오른 높이만 무려 3센티미터쯤 되었다.

과연 마술은 효과가 직빵이었다.

가늘었던 재은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입이 떡 벌어지며 장대비 같았던 눈물을 그쳤다.

울음이 있던 자리를 신기함과 놀라움이 대신 차지했던 것이다.

“어때? 신기하지?”

“와! 선생님 마술도 할 줄 아셨어요? 대박! 동전을 어떻게 띄우셨대?”

아까부터 재은이보다 보호자가 더 신나 보이는 건 착각일까.

그런 생각에 준후는 피식 웃었다.

어쨌거나 재은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응급 상황은 평화롭게 종료되었다.

* * *

상황이 종료되면서 동전 띄우기 마술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다.

마술의 비법을 궁금해하는 재은이에게 준후는 이렇게 말했다.

“재은이가 동전을 띄울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면 동전이 언젠가 떠오를 거야.”

“정말요? 그거면 돼요?”

“암. 그렇고 말고.”

“이이이얍! 안 되는데요?”

재은이가 손바닥에 올려놓은 동전을 응시하며 귀여운 기합을 넣었다.

당연히 동전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까 동전이 떠올랐던 이유.

그 이유는 준후가 무공을 접목해서였다.

격공섭물의 이치 말이다.

마술 당시, 준후는 재은이의 손바닥보다 한참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올렸다.

손바닥에 흡(吸, 빨아들일 흡)자 결을 운용했다.

심오한 내공으로 동전을 자신의 손바닥 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마술이 아니라 마법을 부렸달까.

그러니 이를 재은이가 따라 한다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했다.

“동전 띄우기는 쉽지 않단다. 노력이 필요할 거야.”

준후는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재은아.”

“네. 선생님.”

“그 동전은 선물로 줄 테니까 재은이가 가져.”

“마술 동전, 이제 제 거예요?”

“그럼. 재은이 거지.”

“와! 신난다.”

재은이가 두 팔을 천장으로 번쩍 들어가며 기뻐했다.

재은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준후도 가슴이 훈훈해졌다.

역시 아이들은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이 더 어울렸다.

“힘들거나 어렵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동전을 보고 힘내렴. 동전이 떠오르는 것처럼, 재은이 네게도 기적 같은 일이 생길지 몰라.”

“네. 선생님!”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 재은이 안 울게 하려고 진짜 갖은 노력을 다하셨네요.”

보호자가 준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별말씀을. 재은이가 울면 안 된다는 건 아시죠?”

“그럼요. 라면처럼 뜨거운 음식을 불어먹거나, 악기를 불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운동을 과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죠.”

보호자가 속사포로 대답했다.

재은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모야모야병 환아는 행동에 제약이 많았는데 대부분 과호흡을 유도하는 행동들이었다.

과호흡에 따른 혈관 수축.

혈관 수축에 따른 뇌의 혈액순환 부족.

이 두 가지로 허혈성 뇌 발작을 일으킬 수 있어서였다.

특히 재은이처럼 모야모야병의 병세가 심각한 경우.

후유증은 더 심각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참 별일이네요. 재은이가 원래 잘 우는 아이가 아니거든요.”

“…….”

“그래서 우는 일은 걱정 안 했는데. 왜 갑자기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보호자는 입술을 깨물며 재은이를 응시했다.

좀 전까지 서럽게 울던 모습이 거짓말 같았다. 재은이는 마술 동전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재은아.”

“네. 엄마.”

“아까 왜 울어? 혹시 엄마가 혼내서 슬펐어?”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왜 울었니?”

“그냥 울고 싶었어요.”

재은이가 건성건성 대답했으므로.

보호자는 재은이가 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재은이가 왜 울었는지 저는 알 것 같네요.”

잠자코 있던 준후가 말했다.

“선생님이요? 어떻게요? 재은이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한 30분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준후가 자리를 비웠다.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면 정말 재은이가 운 이유를 아는 것 같았다.

엄마인 자신도 모르는걸.

준후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보호자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의심과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잠시 후 준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준후의 손에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봉투가 손에 들려 있었다.

“선생님. 그…… 그건…….”

“치킨이에요. 재은아 이거 봐라?”

준후가 봉투를 흔들자 재은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와! 치킨이다!”

“점심시간은 지났으니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

“네. 선생님. 히히.”

준후가 침상에 딸린 식사용 탁자를 들어 올렸다.

봉투에 담겼던 치킨을 재은이가 먹기 좋게 펼쳐주었다.

“근데 선생님. 치킨이랑 재은이가 운 게 무슨 상관이죠?”

“잠깐 이쪽으로.”

보호자는 준후를 따라 병실 출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재은이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거리였다.

“치킨을 왜 사 왔나 싶으시죠?”

“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뭔가 쌩뚱맞은 느낌이라서요.”

준후와 대화하면서도 보호자의 시선은 재은이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간단합니다. 재은이, 치킨 때문에 울었거든요.”

“고작 치킨 때문에 울었다고요?”

“아이들 심리는 미묘하니까요. 아까 병실에 들어왔을 때 희미하게 치킨 냄새가 나더라고요.”

“맞아요. 창가 쪽에 있는 환자분이 병원 식 대신 치킨을 드셨어요. 주치의 허락은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왜…….”

“가뜩이나 병원 밥도 맛없는데 옆에서 치킨을 먹으면 재은이도 치킨이 먹고 싶지 않겠어요?”

“먹고 싶긴 하겠죠.”

“치킨은 먹고 싶은데 보호자 분께 차마 말을 못 했던 겁니다. 그 와중에 혼나기도 했으니까 참았던 게 터졌던 거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보호자는 준후의 의견에 동의했다.

재은이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사소한 이유도 울음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을 못 갖고.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우는 게 아이들이었다.

재은이의 경우.

워낙 잘 참는 아이라서.

치킨을 사달라고 투정부리기보다는 꾹꾹 참다가 터진 케이스라고 보는 게 맞는 듯했다.

“선생님은 참 대단하세요. 동전 마술도 하고 아이들 심리도 꿰뚫어 보고. 대체 못 하는 게 뭐세요?”

“못하는 일, 의외로 많습니다. 가슴에 맺힌 한도 있고요.”

항상 밝은 모습만 보이던 준후의 입가에 처음으로 씁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준후에게도 뭔가 사연이 있는 듯했다.

준후가 다른 의사보다 다정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인 듯했다.

아픈 사람 마음은.

아픈 사람이 가장 잘 알기에.

“이야기가 잠시 샜네요. 재은이 과식하지 않게 봐주시고.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네. 선생님. 정말 고생하셨고 감사해요. 선생님이 주치의라서 저나 재은이나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답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준후가 떠난 후 보호자는 재은이의 곁으로 돌아갔다.

재은이는 치킨 삼매경이었다.

온 정신이 치킨에 팔려 있었다.

치킨 살을 야무지게 발라 먹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치킨무도 곧잘 집어 먹었다.

그런 재은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보호자는 배가 불렀다.

“재은아. 치킨이 그렇게 먹고 싶었어?”

“……네.”

“그럼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지. 엄마가 사줬을 텐데.”

“나 때문에 돈 많이 쓰잖아요. 그런 거 싫어요.”

재은이의 대답에 보호자는 울컥했다.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전신을 휘어 감았다.

“재은아,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보호자는 재은이를 부둥켜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재은이는 단순히 치킨을 견디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재은이가 견디고 있었던 것은…….

재은이가 짊어졌던 것은…….

다름 아닌 가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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