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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31화 (231/424)

231화

제44장 후원(1)

다음 날 오전.

오전 컨퍼런스와 회진이 끝난 뒤 준후는 과장실로 이동했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후는 방에 들어갔다.

과장은 책상 앞에 놓인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신문을 읽고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신문을 읽는 것은 과장의 습관이었다.

“뭐야? 준후니?”

과장이 보던 신문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눈꼬리가 쳐지는 게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따로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던 걸까?

“네.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래. 앉거라.”

준후는 과장실을 훑으며 소파에 앉았다.

다른 과의 과장실은 가본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그래도 신경외과 과장실이 다른 과장실보다 최소한 10배는 화려할 다는데 준후는 손목을 걸 수 있었다.

진열장에 전시된 각종 상패.

벽에는 걸린 유명 미술가의 명화.

자기애 가득한, 신문에 나온 본인 기사 스크랩.

벽 구석에 놓인 명품 골프채 등등.

과장은 평판과 출세욕에 목을 맨 속물이었다.

“오늘 오프인 걸로 아는데. 아직 외출 안 했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안 나갔습니다.”

“할 말은 뭐고?”

“모야모야병으로 입원 중인 재은이의 후원금을 모집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병동 모습이 비칠 수도 있어서 뉴튜브 촬영을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후원금? 뉴튜브?”

과장이 가당치도 않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준후를 무시하는 코웃음도 섞었다.

“애초에 모야모야병이면 산정 특례라서 치료비도 끽해야 300-400만 원 밖에 안 들 텐데. 굳이 후원금을 모집해?”

“보호자와 대화를 나눴는데 가정 형편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전세 사기도 당했고요.”

“쯧쯧쯧. 아직도 전세 사기 같은 걸 당하는 사람이 있나?”

과장의 화법은 지나치게 무례했다.

사기를 친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사기를 당한 사람이 잘못이라는 거지 같은 사고방식도 담겨 있었다.

두고 봐.

언젠가 내 손으로 널 땅바닥까지 끌어내 줄 테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오만할 수 있는지 보자.

준후는 가슴 깊숙한 곳에 과장을 향한 분노를 간직했다.

오늘 이 순간을 준후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촬영은 괜찮을까요?”

“으음…… 뭐, 말릴 생각은 없다만 뉴튜브에서 실시간 방송을 한다고 후원금이 모이기나 하겠니?”

“…….”

“준후 네가 뭐라고?”

과장이 다시 한번 준후의 자존심을 깔아뭉갰다.

네까짓 게 후원금을 모아봐야 얼마나 모으겠냐고 면박 준 것이다.

“과장님.”

“왜?”

“저 80만 뉴튜버입니다.”

“뭐라고? 8천도 아니고 8만도 아니고 80만?”

과장이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준후의 구독자 수는 과장의 예상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었다.

과장은 그동안 뉴튜브를 한다고 설치는 인턴·레지던트를 수없이 지켜봐 왔다.

대부분은 쫄딱 망했다.

구독자는 잘해봐야 2~3천 명.

영상을 20개 정도 올리고 채널을 접기 일쑤였다.

그런데 준후의 뉴튜브 구독자가 80만이라고?

그 정도면 대형 채널이었다.

“와. 말도 안 돼. 진짜네?”

과장은 바로 준후의 채널명을 듣고 검색해 보았다.

과연 준후의 말대로 채널 구독자는 80만이었다.

평균 조회수도 30만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최근에 올린 동전 구부리는 영상의 조회수는 200만 회에 육박했다.

한편 준후는 경악하는 과장을 지켜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속물도 이런 속물이 없었다.

80만 뉴튜버라니까 바로 꼬리 내리는 모습 보소?

“준후야, 이렇게 대단한 채널을 보유하고 있었으면 진작 말해주지 그랬니?”

“취미로 운영하는 채널이라 딱히 말씀 안 드렸습니다.”

“80만 뉴튜버라면 후원금도 충분히 넉넉하게 들어오겠어. 요즘 슈퍼 채팅이 활성화돼서 말이야.”

슈퍼 채팅은 어프리카 TV에 해풍선과 비슷했다.

일종의 유료 채팅이었다.

“네. 그래서 실시간 방송으로 후원금을 모집할 계획입니다. 구독자들의 후원금과 제 개인 후원금을 합치면 환자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대답을 하면서도 과장은 준후를 보지 않았다.

탐욕에 가득 찬 눈빛으로 휴대폰 액정에 떠오른 준후의 채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근데 준후야. 나도 부탁 하나만 하자꾸나.”

“부탁이라고 하시면…….”

과장의 싸한 제안에 준후는 경계하며 대답했다.

“후원금 모집할 때 나도 같이 출연하면 안 되겠니? 명색이 과장인데 말이야. 얼굴을 비치고 몇 마디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과장의 제안은 속이 빤히 비치는, 얍삽한 제안이었다.

과장은 후원금 방송에 참여해서 인자한 이미지를 만들 작정이 분명했다.

어디 그뿐인가.

방송 출연 후 잘 아는 기자에게 부탁을 할 것이다.

후원금 모집한 일을 기사로 내달라고.

본인 기사 좀 잘 써달라고.

즉, 준후의 후원금 모집 이벤트에 숟가락을 얻겠다는 것이다.

후원금 모집 이벤트를 본인의 이미지 메이킹에 써먹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레지던트라면 과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며 허락했겠지만.

준후에겐 어림도 없었다.

과장의 시꺼먼 속내가 훤히 보이는데 이용당할 수는 없었다.

“과장님. 죄송하지만 과장님 출연은 후원금 모집에 독이 될 겁니다.”

“독? 말이 심한 거 아니니?”

과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과장님이 출연하시면 후원금이 적어질 걱정이 큽니다. 제가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집하는 게 아니라 과장님의 지시를 받아서 후원금을 모집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잠깐 출연하는 건데도?”

“네. 요즘 구독자들은 그런 부분에 민감하거든요.”

과장의 숟가락을 단호히 쳐내며 준후가 말을 이었다.

“대신 과장님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촬영을 허락해 주셨다는 언급은 꼭 하겠습니다.”

“흐음…… 그래. 뭐, 그 정도로 만족해야겠구나.”

과장이 실망한 투로 대답했다.

촬영 허락을 받은 준후는 미련 없이 과장실을 떠났다.

난 당신보다 계급이 낮을 뿐이야.

잔꾀와 심리술이라면 이미 당신 머리 꼭대기에 있다고.

난 권모술수가 판치는 무림맹에서도 살아남았어.

레지던트 1년 차라서 아직 발휘할 수가 없었던 발휘한 적 없었던 준후의 또 다른 비장의 무기.

그것은 정치질이었다.

* * *

그 날 정오.

준후는 병원 지하 1층 식당에서 아영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영도 마침 쉬는 날이라 준후의 뉴튜브 실시간 방송의 카메라맨을 자처했다.

“미안해. 아영아.”

식사 도중 준후가 힘겹게 운을 뗐다.

“응? 뭐가?”

“모처럼 오프 날짜 맞췄는데 제대로 데이트도 못 해서.”

“그런 소리 마. 형편 어려운 환자와 보호자를 돕고, 준후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으면 꿩 먹고 알 먹기지.”

“그래도…….”

준후는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영이 자신 때문에 희생하는 것 같아서.

“정 죄책감이 들면 저녁에 맛있는 거 사줘.”

“뭐 먹고 싶은데? 말만 해.”

“나 곱창 먹고 싶어.”

“곱창쯤이야. 아영이 너 내장에 곱이 낄 정도로 사줄게.”

“그건 나 죽이겠다는 소리 아니야?”

준후의 농담에 아영이 꺄르르 웃었다. 밝게 웃어주는 아영이 준후는 고맙고 소중했다.

가족 말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준후에게 아영은 이제 그런 사람이었다.

30분에 걸친 식사가 끝났다.

준후는 은행에 들러 은행 업무를 본 후 재은이의 병실을 찾았다.

보호자와 재은이에게 실시간 후원 방송에 대해 재차 설명했다.

뉴튜브와 SNS는 즐겨 했지만.

실시간 방송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준후야. 심호흡 한번 해.”

준후와 몇 발자국 떨어져 있던 아영이 한마디 했다.

아영의 손에는 준후의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갑자기 심호흡? 왜?”

“긴장될 것 같아서. 실시간 방송은 처음이잖아.”

“난 긴장 같은 거 모르는데?”

준후는 피식 웃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무서워하고 또 긴장하던 때가 준후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벌써 오래전 일이었다.

무림맹에서 개최했던 비무 대회에 참가하고 또 우승을 거머쥔 그때, 준후는 무대 공포증을 완벽하게 극복해냈다.

“그럼 심호흡은 내가 해야겠네? 사실 내가 더 조마조마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준후는 아영에게 다가가 아영을 다독였다.

동시에 아영의 손바닥과 머리에 추궁과혈을 실시했다.

팟! 팟! 팟! 팟!

소상혈과 부맥혈 등을 자극하자 아영이 한결 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준후 마사지는 효과가 끝내줘. 나 준비됐어.”

“오케이. 재은이는 어때? 보호자분은 어떠세요?”

“전 괜찮아요.”

“저도요!”

재은과 보호자도 방송 준비가 끝났다.

준후가 고갯짓을 하자 아영이 라이브 방송을 켰다.

80만 뉴튜버의 실시간 화력을 확인해 볼까나?

준후는 의욕으로 가득 찼다.

* * *

와, 미쳤네?

방송 켜자마자 1,000명이 들어왔어.

채팅도 어마어마하고.

송출 화면을 보면서 아영은 입을 떡 벌렸다.

준후가 잘나가는 뉴튜버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잘나가는 뉴튜버라도 실시간 방송에서는 죽 쑤는 경우가 많았다.

채널 충성도가 낮아서였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 영상과 달리.

실시간 방송은 구독자가 방송 시간까지 챙겨야만 시청이 가능했다.

즉 실시간 시청원인이 많다는 건 충성 구독자가 많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영의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했다.

준후가 실시간 방송 공지를 미리 SNS에 올렸다는 것.

직장인들도 방송을 볼 수 있게 일부러 점심시간에 방송을 틀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오늘 방송의 모든 A to Z가 준후의 손아귀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준후 쌤. 실제로 보니까 더 잘 생겼어요! 너무 멋져요!

-라이브로 춤 한 번만 춰주시면 안 돼요?

-실시한 방송은 처음인데 신기하네요. 앞으로도 자주해 주세요.

…….

소나기처럼, 아니, 폭포처럼 채팅에 아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채팅은 대충 훑으며 준후를 영상에 담는 데 집중했다.

“안녕하세요. 실시간 방송으로 구독자분들을 찾아뵙는 건 처음이네요.”

준후가 휴대폰과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했다.

그러면서 준후 손에 들린 아영의 휴대폰으로 채팅을 훑었다.

“반갑다는 말을 해주시는 분이 가장 많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

“서인철 님께서 오늘 촬영은 병원에서 하냐고 물어보셨는데요. 네. 오늘은 병원에서 촬영 중입니다.”

준후는 한 구독자의 채팅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아영의 입장에서는 감탄만 나오는 능력이었다.

채팅이 와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를 콕 찍고 기억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준후는 그 어려운 일을 껌 씹듯이 해냈다.

“안 하던 라이브 방송을 왜 하는지 궁금하실 분이 많을 겁니다. 그 전에 제가 주치의를 맡고 있는 환자분과 보호자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재은아. 여기 보고 인사해.”

“안녕하세요.”

재은이 귀여운 콧소리를 내며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채팅창이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보호자분도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재은이 엄마예요.”

“재은이는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들어 보신이 많을 겁니다.”

“…….”

“모야모야병은 쉽게 말해서 뇌혈관이 점점 좁아지고 막히는 희귀질환입니다. 재은이는 며칠 뒤에 수술이 예정되었고요.”

“…….”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은이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요. 여러분의 후원금이 필요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

“그게 오늘 방송을 켠 목적입니다. 여러분께 후원금을 받고 싶어서요.”

준후의 솔직한 발언에 아영은 경악했다.

준후가 대놓고 후원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라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건만.

웬걸?

그때부터 슈퍼 채팅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사이언스 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이런 컨텐츠 좋아요. 돈쭐 내드리겠습니다!]

[토끼토끼 님이 2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재은이 너무 귀여워요. 수술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어요.]

[성민철 님이 1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kafie23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저도 딸아이가 있어서 남 일 같지 않네요. 보호자분 힘내세요.]

…….

준후의 부탁이 속물 같아 보일 수도 있었으나 슈퍼 채팅은 끊어질 줄 몰랐다.

실시간 방송 시청자도 어느새 3,000명에 육박했다.

이상하네?

이런 단순한 방식이 먹힌다고?

전부 준후가 의도한 건가?

아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영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영은 몰랐지만.

요즘 뉴튜브의 트렌드는 솔직함이었다.

뒷광고 또는 예쁘게 포장한 말을 요즘 시청자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분의 후원, 전부 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숙제 영상이에요. 저도 먹고살아야 하는 거 아시죠?

요즘은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 뉴튜버를 시청자들은 더 좋아했다.

그리고 준후는 이 점을 미리 간파하고 있었다.

와. 대체 슈퍼 채팅은 언제 끝나는 거지?

오늘 안에는 끝나려나?

아영이 슈퍼 채팅 금액을 언뜻 계산해 보니 시작 5분 만에 무려 50만 원이 벌렸다.

무려 분당 10만 원이 모금된 것이다.

그 와중에 더 놀라운 사실.

준후가 3,000명의 시청자의 채팅과 슈퍼 채팅에 능숙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준후의 동체 시력과 암기력은 실로 초능력자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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