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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33화 (233/424)

233화

제44장 후원(3)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오늘 술이 잘 안 받나 봐요.”

“괜찮습니다. 실수하실 수도 있죠.”

창환이 술잔을 깨뜨리자 종업원이 해당 테이블로 다가왔다.

쓱싹쓱싹, 빗질로 유리 파편들을 치웠다.

테이블에 일시적으로 쏠렸던 곱창집 손님들의 시선들도 하나둘 거둬졌다.

하지만 준후의 시선만큼은 테이블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준후는 테이블이 아니라 창환을 세심하게 관찰 중이었다.

“왜? 저 사람들, 신경 쓰여?”

아영이 준후의 시선을 읽고 물었다.

“아까부터 대화 소리가 좀 시끄럽긴 하더라.”

“대화 말고 다른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안경 쓴 사람, 응급실 보내야겠어.”

“병원?”

준후의 말에 아영이 화들짝 놀랐다. 안경 쓴 창환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자세히 관찰은 못 했지만 창환은 건강해 보였다.

응급실에 가야 할 만큼 위태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난 잘 모르겠어. 저 사람, 어디가 안 좋아 보이는데?”

“뇌에 문제가 있어. 아영이 넌 잠깐 봐서 이상한 걸 눈치 못 챘을 거야.”

“준후 네 판단이 맞겠지. 다른 걸 떠나서 넌 의사계의 코난이고 김전일이잖아?”

아영이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

“이쯤에서 환자가 나타날 때가 됐지.”

“…….”

준후는 딱히 반박을 못 했다.

당직 근무를 설 때도.

심지어 쉬는 날에도.

아영의 말처럼 준후 앞에 주기적으로 환자가 발생했던 것이다.

마치 의술의 신이 준후에게 심통을 부리듯.

“아영아 미안한데. 환자 좀 보고 올게. 길어도 15분이면 끝날 거야.”

“알았어.”

아영의 허락을 받고 준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장한 표정으로 맞은편 테이블을 찾았다.

* * *

“저 실례합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젊은 학생이 무슨 일이에요?”

동건이 다가온 학생을 바라보며 물었다.

학생은 연예인처럼 잘 생기고 키가 훤칠했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이미지가 동건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를 닮았다.

그래서 살짝 호감이 갔다.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친구분에 관해서요.”

“뭐, 이상한 물건 사달라거나 스티커 붙여달라는 건 아니죠?”

“저, 두 분 맞은편에서 애인과 데이트 중입니다.”

“농담이에요. 농담. 서 있지 말고 앉아요.”

친화력과 사교성이 좋은 동건은 학생을 빈 의자에 앉혔다.

학생과 통성명을 나눴다.

학생의 이름은 서준후.

외모가 앳되어서 대학생인 줄 알았건만 이십대 후반의 대학병원 레지던트라고 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친구분 지금 당장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내셔야 해요.”

“에잉? 그게 무슨 잠꼬대예요? 술만 잘 마시고 있는데.”

동건의 이마에 자글자글 지렁이 주름이 잡혔다.

콧잔등은 구겨지고.

미간은 좁아졌다.

“얘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실수하긴 했지만 병원 갈 정도는 아니에요.”

“어…… 어…… 그렇지.”

창환이 어눌한 말투로 대답했다.

창환은 일찍 술에 취해서 혀가 꼬인 것처럼 보였다.

“술자리라서 친구분이 취한 것처럼 보이시겠죠. 하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준후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혼자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진 분위기였다.

이 친구, 정말 의사 맞나?

이러다가 갑자기 도를 아냐고 물어보는 거 아니야?

동건은 준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건강한 창환을 자꾸 응급 환자 취급했기 때문이다.

“이 봐요. 술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 그만 자리로 돌아가요.”

“못 갑니다. 간다면 두 분이 가야죠. 응급실로.”

“거 참. 살다 보니 별 답답한 친구를 다 보겠네.”

“지금부터 세 가지 테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친구분이 성공하면 제가 두 분 술값 계산하고 군 말없이 떠나겠습니다.”

“…….”

“단 통과를 못 하면 바로 응급실로 가세요.”

“테스트? 얼토당토않는 시험을 하는 건 아니겠죠?”

“건강하다면 유치원생도 통과할 수 있는 테스트입니다.”

“그럼 해봐요.”

준후의 당당한 대답에 동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준후의 의도가 불순해 보였고 정말 약속을 지킬지도 의문이었지만 일단 제안에 승낙했다.

“일단 이~ 해보세요.”

“참나. 테스트라서 해서 뭔가 했네. 이딴 걸 테스트라고. 창환아, 우리 오늘 곱창값 굳었다.”

“그…… 그래.”

준후의 지시에 창환이 이 소리를 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웬걸?

말도 안 되는 일이 펼쳐졌다.

창환이 제대로 웃지를 못했던 것이다.

왼쪽 입꼬리는 올라간 반면.

오른쪽 입꼬리는 축 처져 있었다.

어색한 미소가 물결 모양(∽)을 띠고 있었다.

동건은 그제야 심상치 않은 기색을 알아차렸다.

준후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자, 두 번째 테스트입니다. 눈을 감고 양팔을 앞으로 뻗으세요.”

“창환아. 이번엔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해봐.”

“아…… 알았어.”

창환이 두 눈을 감고 정면으로 두 팔을 쭉 뻗었다.

“하…… 돌겠네. 진짜.”

동건은 탄식부터 내뱉었다.

창환은 이번에도 준후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왼팔은 제대로 들어 올렸건만 오른팔은 도무지 올라갈 기미가 없었다.

준후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행동들을 단 하나도 소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창환이 만취 수준으로 음주한 것도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 예사롭지 않았다.

“자. 마지막 테스트입니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 그림이다. 따라해 보세요.”

“야. 이번엔 잘해보자. 너 젊었을 때 아나운서 시험도 준비했잖아.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내…… 내가 기린 그림, 내가 기림. 으…… 내가 그린 기림. 내가 그림.”

발음하기 어려운 문장이라 몇 번 더듬거리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창환의 발음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예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창환의 발음을 듣고 있으면.

오히려 고구마가 걸린 것처럼 동건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친구분이 테스트를 하나도 통과 못 했네요. 약속 지키시죠. 술자리 접고 병원으로 가세요.”

준후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근데 방금 그 이상한 테스트는 왜 했어요?”

“우습게 보셨겠지만 Cincinnati Prehospital Stroke Scale(CPSS) 테스트입니다. 쉽게 말하면…….”

준후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뇌졸중 환자를 식별하는 테스트죠.”

“그럼 설마 창환이가…….”

“네. 뇌졸중입니다. 구급차보다 택시가 빠를 테니 택시 타고 가까운 삼정 서울 병원으로 가세요.”

* * *

부우우웅~

멀어지는 택시의 뒤꽁무니를 준후는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손에 들린 명함으로 시선을 옮겼다.

[성신 빌딩 대표: 서창환.]

명함을 확인한 순간.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명함인가.

응급 뇌졸중 환자 창환은 건물주였다.

“고…… 맙습니다. 꼬옥…… 여…… 연락…… 주세요. 사례…… 하겠습니다.”

택시에 탑승하기 직전, 창환은 준후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명함을 건넸다.

그래도 잘 해결해서 다행이네.

발견이 빨랐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준후는 곱창집으로 복귀했다.

사실 준후는 뇌졸중 테스트를 하기 전부터 창환의 뇌졸중을 의심했다.

참고로 뇌졸중(stroke)이란 뇌경색 또는 뇌출혈로 생기는 뇌혈관 질환을 모두 일컫는 진단명이었다.

창환의 입가가 미묘하게 비틀린 것.

소주잔을 들다 떨어트린 것 등등.

유심히 관찰한 결과.

뇌졸중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럿 찾아낸 준후였다.

굳이 테스트를 진행했던 건 환자와 환자의 친구에게 뇌졸중을 납득시키고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준후가 아영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아니야. 진짜 딱 15분 정도 걸리던데?”

“15분이면 곱창 4인분은 순삭이구나.”

준후는 텅 빈 불판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아영은 곱창 킬러, 아니, 곱창 살수였다. 곱창을 처리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 어떤 곱창도 아영 앞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듯했다.

“더 주문할까?”

“응. 1인분만 더 시키고 볶음밥 해먹자.”

준후는 벨을 누르고 추가 주문을 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

“뇌졸중 테스트해 보니까 하나도 통과를 못 하더라고. 그래서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보냈어.”

“와! 뇌졸중이었던 거야?”

“그렇지.”

“준후 너 안 만났으면 그 사람 큰일 났겠다. 뇌졸중이 아니라 취해서 말도 못 하고 손을 떤다고 생각했을 거 아니야.”

아영의 지적은 예리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뇌졸중 증상이 나타났다면 환자도 스스로를 의심해 봤을 것이다.

내가 갑자기 왜 이러지? 하고.

그런데 환자는 하필이면 술자리 도중 뇌졸중 증상을 일으켰다.

뇌졸중 증상을 음주 증상으로 착각하기 딱 좋았다.

“우리 준후 눈썰미 대박이네. 기특해.”

“유어 웰컴.”

“근데 준후야.”

아영이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갑작스레 변한 분위기에 준후는 살짝 긴장했다.

“응. 왜?”

“우리 다음번에는 경치 좋은 펜션 같은 데서 데이트할까?”

“펜션 가보고 싶었구나.”

“아니, 다른 이유야. 전부터 느꼈던 건데…… 준후 넌 데이트할 때도 바짝 긴장해 있어.”

“…….”

“주변을 쉴 새 없이 살펴보고 사람을 관찰하고 그러더라. 그런 모습이 어쩐지 불안하고 힘들어 보여서.”

“…….”

“방금까지만 해도 그랬잖아. 물론 좋은 일을 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을 캐치하고.”

아영의 관찰은 정확했다.

준후의 평소 행동을 관통하고 있었다.

무림 출신이라서 그럴까.

준후는 평소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암습이 펼쳐지고.

언제 어디서 암기가 날아들지 몰라서였다.

즉, 준후의 뛰어난 관찰력.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불안이 숨어 있었다.

물론 현대에 자객이나 살수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오랜 버릇은 고치기 힘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아영이는 오직 나만을 바라봐주고 있었구나.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아영의 사랑이 준후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아영에게 더 잘해주고 싶었다.

“내 생각에는 사람이 없는 곳이면 준후 네가 덜 긴장할 것 같은데. 준후 네 생각은 어때?”

“아영이 네 말이 다 맞아. 난 네가 시키는 대로만 할게.”

“칫. 항상 말은 잘해요.”

아영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추가 주문한 막창 1인분과 볶음밥까지 박살 내고 준후는 아영과 곱창집을 떠났다.

칙! 칙! 칙!

곱창 냄새를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해 옷에 방향제도 뿌렸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강남역 거리를 15분쯤 걷던 중.

두 사람의 걸음이 한 건물 앞에 멈췄다.

건물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위치했는데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10층 건물이었다.

이곳이 오늘의 두 번째 전쟁터.

실시간 콜라보 영상을 촬영할 나이스 댄싱 TV의 스튜디오가 있는 곳이었다.

“가자.”

“응.”

준후는 아영과 건물 1층 로비로 진입했다.

스튜디오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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