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제45장 4번 방의 기적(1)
1시간 동안의 호월십이수 수련을 마치고 준후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호월십이수.
무림에서 손꼽히는 5대 수법을 연마하는 일은 결코 헛수고가 될 수 없었다.
꾸준히 연마한 지 어언 2개월째.
준후는 호월십이수로 인한 이득을 벌써 충분히 보고 있었다.
손놀림이 예전과 비교해서.
비약적으로 정교해지고 빨라진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임산부 환자의 뇌동맥류 수술 당시, 개두술을 게 눈 감추듯이, 또 실수 없이 완료한 것이 좋은 예시였다.
확실히 효과가 좋단 말이야.
다양하고 고난이도인 동작을 소화하면서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과 신경이 활성화되었어.
혈관이 넓어지면서 혈류와 내공도 더 많이 순환하고.
준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양팔을 응시했다.
호월십이수 수련이 끝나면 꼭 팔 전체가 후끈거렸다.
팔과 손과 손가락의 기능을 100퍼센트 끌어올린 후유증이었다.
호월십이수를 대성한다면.
준후는 적어도 엉성한 손놀림으로 환자를 잃는 비극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딸칵!
가볍게 팔을 풀어주고.
준후는 자신의 뉴튜브 채널에 접속했다.
80만이던 구독자가 순식간에 100만을 돌파했다.
실로 드라마틱한 상승이었다.
나이스 댄싱 TV와의 콜라보 방송으로 인한 미칠 듯한 홍보 효과였다.
[외과 의사 vs 전문 댄서의 댄스 진검승부. 의외로 이긴 쪽은 외과 의사입니다?]
이틀 전, 나이스 댄싱 TV 쪽에서 올린 영상은 폭발적인 반응을 몰고 왔다.
다양한 커뮤니티로 퍼져나갔고.
온라인 유저들의 관심은 단번에 준후에게 집중되었다.
외과 의사가 전문 댄서보다 춤을 더 잘춘다고?
아니, 전문 댄서를 발라 버렸다고?
준후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특히 방송 중 보여준…….
무중력 댄스와 검무는 흔히 말하는 짤로 생성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로 인해 기존 영상들.
동전 구부리기 영상.
재은이를 위한 라이브 영상.
저칼로리 잼 폭로 영상 등등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준후는 며칠 만에 단순히 외과 의사가 아닌 1인 브랜드로 우뚝 솟아 올랐던 것이다.
이러다 본업이 뉴튜버로 바뀌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준후는 뉴튜브에 골드 채널 버튼을 신청했다.
드르르륵.
때마침 열리는 당직실 문.
경수가 크게 하품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
“컨디션은 좀 괜찮고? 오늘 중요한 모야모야병 수술 있잖아.”
“내 컨디션이야 항상 200퍼센트지.”
“괴물 같은 놈. 아무리 봐도 넌 ‘세상에 저런 일’이에 한 번 출연해야 돼.”
경수가 피식 웃으며 준후의 등 뒤에 섰다. 준후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주었다.
“뭐야? 아침부터 서비스가 좋다?”
“나,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거 몰라?”
준후가 평소 경수에게 자주 추궁과혈 마사지를 해준 덕분일까.
경수도 준후에게 마사지를 해주었다.
준후는 슬쩍 고개를 돌려 경수를 응시했다. 응급실 환자 난동 때 생긴 턱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하지만 아문 것은 턱의 상처뿐인 것만이 아닌 듯했다.
경수는 마음의 상처도 아문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을 열고 준후와 소통을 하고 있었으니까.
“야, 서준후.”
“왜?”
“너 수술 장비 고장 나서 식겁했던 적 있냐?”
“난 없는데? 넌 있었어?”
준후가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
수술 장비가 고장 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장비의 불량 및 오류는 수술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너 오프였던 날, 된통 당했지.”
“그걸 왜 이제 말해?”
“왜긴 왜야? 정신없어서 못했지.”
경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경수는 이틀 전 환자의 뇌수술 도중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나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배율 조절이 안 됐다는 것이다.
“와, 미쳤네. 허리 수술이면 몰라도 뇌수술에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났다니 끔찍한데?”
준후는 진저리를 쳤다.
뇌혈관과 뇌신경을 확인하려면.
최소 10배는 증폭된 시야가 필요했다.
루뻬(광학안경)로는 한계가 있었다.
루뻬의 최대 시야 배율은 3배밖에 되지 않았다.
“내 말이! 교수님도 얼굴이 퍼래지더라.”
“의공업 기사, 불러서 해결했어?”
“그 사람들 오는 데 시간 걸리잖아. 다행히 미세 현미경 있는 수술방이 있어서 그리로 환자 옮겼다.”
“천만다행이네.”
“교수님 말씀으로는 교수님도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난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라더라.”
“별일이네, 진짜. 너도 고생 많았다.”
경수의 에피소드가 준후는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래서 더 긴장이 되고 불안했다.
준후도 언젠가 비슷한 케이스를 겪을 확률이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래도 의공업 기사 부르긴 했지? 고장 난 미세 현미경은 고쳐야 하잖아.”
“고장 나고 한두 시간쯤 지나니까 오더라.”
“어디가 고장 난 거래?”
“나야 못 들었고 수술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었겠지. 하지만 그 선생님이라고 이해했을까. 기계 쪽인데?”
“하긴 그것도 그렇지.”
준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씨, 배 아퍼. 화장실 갔다 온다.”
“오냐. 쾌변해라.”
경수가 어깨 마사지를 멈추고 화장실을 떠났다. 그 사이 준후는 오른손 검지를 우뚝 세웠다.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내공을 심장 주변의 혈관으로 보낸 후 휘몰아치듯이 회전시켰다.
이윽고 회전력이 담긴 내공이 검지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딸칵!
마치 라이터라도 켠 것처럼.
준후의 검지에 빨간 불꽃이 솟아올랐다.
삼매진화(三昧眞火).
이는 내공을 화(火) 속성으로 바꾸는 수법이었다.
조화경 이상의 경지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최소한 보비(소작기) 정도는 무공으로 대체할 수 있겠네.
후우!
준후는 입김으로 손가락에서 일렁거리는 불꽃을 꺼버렸다.
* * *
그 날 오전 컨퍼런스 룸.
과장은 오늘도 미운 짓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모야모야병 수술을 집도하는 민석에게 잔뜩 부담을 주었던 것이다.
“곽 교수.”
“네. 과장님.”
“오늘 소아 모야모야병 환자에게 직접혈관문합술 펼치기로 했죠?”
“맞습니다.”
“이게 어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이벤트입니까? 그래서 내가 손님을 좀 초청했어요.”
“손님이라면…….”
당황한 민석이 말을 잇지 못했다.
“한국 뇌혈관 외과학회 회원들을 몇 명 초청했어요. 5명 정도가 와서 수술 참관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과장의 언급에 준후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속셈이 빤히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유능한 직원들이 내 밑에 있어. 그럼 나는 얼마나 더 유능하겠어? 짐작이 가?
이는 과장이 자신의 평판을 올릴 때 가장 잘 써먹는 수법이었다.
오죽하면 말이다.
피아니스트 명한의 각성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도.
집도의인 동훈 교수가 아닌 과장이 주목을 받았을까.
과장은 실로 역겨운 인간이었다.
“과장님. 참관은 거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완성된 수술이 아니라 완성해가는 도중에 있는 수술입니다. 아직 다른 사람들 앞에 선보이기에는 부족합니다.”
“어허, 곽 교수. 지금 나 보고 이미 돌린 청첩장을 빼앗으라는 소립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그리고 한 아이의 목숨이 걸린 수술인데 남한테 보여줄 자신도 없이 집도해서 되겠어요?”
“……과장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아, 그리고 서 선생.”
과장이 별안간 준후를 응시했다.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았기에 준후는 바짝 정신을 차렸다.
“네. 과장님.”
“자, 다들 우리 서 선생한테 박수! 오늘부로 서 선생이 100만 뉴튜버가 됐습니다. 큰 박수로 축하해 줍시다.”
갑작스러운 축하 제의에 얼떨떨한 준후였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짝! 짝! 짝!
박수 세례가 끝나자 과장이 흡족하게 웃었다.
“뉴튜브를 시작한 지 2년도 안 돼서 100만이라니. 서 선생 수완이 참 대단해?”
“별말씀을.”
“모야모야병 환자 후원금은 얼마나 걷혔지?”
“대략 3,500만 원 정도 됩니다.”
“크으으! 훌륭하군, 훌륭해. 이거 완전히 뉴스감이잖아. 하하하.”
과장이 말을 이었다.
“그 뭐야, 라이브 방송할 때 말이야, 나도 봤는데. 내 언급을 좀 길게 해주지 그랬어. 너무 짧아서 서운할 뻔했다고.”
“실시간 방송은 처음이라 긴장했나 봅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혹시라도 다음번엔 알지?”
“네. 기억해두겠습니다.”
준후는 토악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시호보다 과장이 더 악질처럼 느껴졌다.
한 명의 살인마보다.
한 명의 독재자가 끼치는 영향이 더 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컨퍼런스와 회진이 끝난 후.
준후는 곧바로 소아 병동을 찾았다. 오전 첫 수술이 재은이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재은이는 침상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어제저녁 삭두(수술 전 오염을 막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를 받아서 재은이의 옆머리는 쥐가 파먹은 것처럼 잘려나가 있었다.
고난이도 뇌수술을 감당하기에.
재은이는 너무 연약해 보였다.
전쟁터에 나가는 소년병처럼 안쓰러워 보였다.
힘들더라도 이겨내 주렴, 재은아.
네가 건강과 일상을 되찾도록,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안녕하세요. 보호자 분. 재은아, 안녕?”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셨어요?”
부부 보호자가 먼저 준후에게 인사를 했다.
재은이는 뒤늦게 준후를 발견하고 맥없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재은아, 기분은 좀 어떠니?”
“잘 모르겠어요. 힘이 없어요.”
“밥을 못 먹어서 그럴 거야. 수술 끝나고 건강해지면 선생님이 또 치킨 사줄게.”
“정말요? 약속해요.”
“그럼 약속하고 말고.”
준후는 고사리 같은 재은이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왼손에 쥐고 있는 건 뭐니?”
“선생님이 준 마술 동전이요. 이걸 쥐면 기분이 좋아요.”
“우리 재은이도 마술처럼 좋아질 거야. 선생님은 그렇게 믿어.”
“네.”
재은이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두 분은 잠깐 저 좀 보실까요?”
준후는 부부를 데리고 병실 바깥으로 나왔다.
복도에 서서 후원금 이야기를 꺼냈다. 후원금이 3,500만 원 모였음을 알렸다.
“그…… 그렇게나 많이요?”
“우와!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경악하는 반응에 준후는 뿌듯함을 느꼈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건 아픈 것이 아니었다.
아프면서 치료비와 생활비마저 부족한 것이었다.
“제가 500만 원을 더 보탤 거니까 4,000만 원 정도 되겠네요.”
“아니에요. 굳이 선생님 사비 쓰실 필요 없어요. 이미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지원해 주시는데.”
“돈이 많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받으세요.”
“…….”
“단 후원금을 지급하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준후의 설명이 이어졌다.
후원금은 매월 400만 원씩, 10회로 지급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남편분.”
“네. 선생님.”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가족을 위해 힘쓰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후원금을 탕진할까 봐 걱정돼서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네. 이해합니다. 그 엉터리 도사한테 사기도 당할 뻔했으니…….”
남편 보호자가 민망하다는 듯 볼을 긁적거렸다.
그렇게 후원금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준후는 재은이 누운 침상을 끌고 수술실로 이동했다.
동의서는 어제저녁에 받았고 설명도 충분히 해두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
“선생님. 재은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네. 믿고 맡겨주세요.”
수술실 앞에서 보호자와 헤어진 후 준후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들이 준후 대신 침상을 끌고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수술방이 공교롭게 4번 방이었다.
하지만 준후는 미신을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