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37화 (237/424)

237화

제45장 4번 방의 기적(2)

보호자 용 수술 대기실.

말은 거창하지만 수술을 기다리는 보호자들이 수술실 근처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털썩!

서연은 의자에 앉아 가만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자신과 남편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수술실 출입구를 초조하게 힐끔거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쫓아.

서연도 수술실 출입구를 응시했다.

막 수술실에 들어간 재은이가 나올 일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덜컹!

수술실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의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사들이 서연의 맞은편에 앉은 보호자에게 다가갔다.

“저희가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환자분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의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성태, 이제 고등학생이에요. 꽃다운 나이에 저 세상이라니……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환자분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위독했습니다. 간 문맥이 워낙 심하게 손상되어서요.”

“…….”

“급하게 손을 써봤지만…… 출혈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흐으으윽- 선생님. 선생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서럽게 울었다.

절규하듯 울었고.

세상이 떠나갈 것처럼 울었다.

그녀의 슬픔이 복도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윽고 의사들 한 명이 그녀를 데리고 대기실을 벗어났다.

위로를 위해 장소를 옮긴 듯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서연이었다.

수술 전에는 막연하게 재은이가 건강히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말이다.

막상 재은이 수술방에 들어가니.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재은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자신도 얼마든지.

방금 본 보호자처럼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부터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 괜찮아?”

“나 갑자기 너무 무서워. 우리 서연이 잘못되는 거 아니겠지?”

“어려운 수술이지만 선생님들이 잘 해주시겠지. 믿어보자.”

“대학병원이라고 사건·사고가 안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 방금 그 사람도 그랬고.”

남편의 위로에도 서연은 흥분한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한 번 불길한 상상을 하니 그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당신은 재은이 걱정도 안 돼?”

“내가 아빠인데 재은이 걱정을 왜 안 하겠어?”

남편이 서연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을 계속했다.

“불안한 건 알겠지만 같이 견뎌보자. 응? 이러다가 당신이 먼저 혼절하겠어.”

“…….”

“재은이가 수술 끝나고 나오면 반갑게 맞아주자고.”

“그래도 진정이 안 돼.”

“그럼 이걸 쥐고 있어 봐.”

“이건…….”

남편이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마술 동전이었다.

준후가 재은이에게.

재은이가 남편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수술방에 동전을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난 못 봤지만 주치의 선생님이 마술 같은 거 보여줬다면서? 이번에도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어.”

“고마워. 여보.”

남편의 따뜻한 말을 듣고.

동전을 손에 쥐고 있다 보니 두려움이 차차 가라앉았다.

“준후 선생님은 우리 세 가족을 위해 생활비까지 마련해 주신 분이야. 그분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재은이를 반드시 지켜주시겠지. 지금은 그것만 믿자.”

남편의 말에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후 선생님.

우리 재은이 잘 부탁드려요.

저는 재은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요.

그 아이는 제 모든 것이에요.

* * *

4번 수술방을 바라보고 있던 준후가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귀가 간지러우면 누군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라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득 궁금했다.

‘슬슬 가볼까?’

준후는 소독실로 이동했다.

세면대 앞에서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실시했다.

소독액이 묻은 솔로 팔꿈치와 팔, 손목과 손을 박박 문질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준후 곁으로 다가왔다.

3년 차이자 숙적인 시호였다.

“선배도 수술 있어요?”

“어. 7번 방에서 뇌종양 수술. 준후 넌 4번 방에서 수술하더라?”

“4번 방이라서 환자가 죽을 것 같다. 설마 그런 헛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죠?”

준후는 먼저 시호를 공격했다.

시호가 종종 수술 전에 준후의 멘탈을 긁어놓았기 때문이다.

“하하하. 딱 들켰네. 이거 민망한걸?”

“때가 어느 때인데 그런 미신을 믿나요? 그것도 외과 의사가. 한심하다고 생각 안 하세요?”

“미신이라…… 정말 미신일까?”

시호가 준후를 똑바로 쳐다보며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4번 방에서 정말 문제가 벌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 그것도 천하의 서준후조차 손도 못 쓸 대형 사고가 터진다면?”

“반사.”

“응? 뭐라고?”

“무지개 반사.”

준후가 4차원 화법으로 반격하자 시호가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눈동자가 부엉이만 해졌다.

“아니, 그러니까 사고가 터지면 어떻게 할…….”

“응. 안 들려. 전부 다 반사야.”

준후는 시호의 저주를 진지하게 상대할 가치를 못 느꼈다.

그래서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먼저 소독을 마치고 수술방 쪽으로 향하면서.

준후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쾅!

열 받은 시호가 소독용 솔을 세면대에 내팽개치고 있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살얼음이 낀 사이다 한 캔을 한 번에 들이마신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 악담할 게 없어서.

수술방이 4번이라는 걸로 꼬투리를 잡아?

하여간 인간이 못 돼먹어 가지고.

수술방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준후는 수술모, 수술장갑, 수술가운, 수술 마스크 등을 차례대로 착용했다.

지이이잉.

4번 수술방 문이 열렸다.

소독 연기로 에어 샤워를 마치고 준후는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수술 준비는 잘 돼?”

“네. 문제없습니다. 맡겨주세요.”

“잠깐 환자만 보고 도와줄게.”

인턴과 짧게 잡담을 나누고 준후는 수술대로 이동했다.

환자 감시 장치를 확인하니 재은이의 혈압과 맥박이 다소 높았다.

혈압은 160mmHg/120mmHg.

맥박은 분당 150회였다.

전신 마취가 아직 안 된 상태라 긴장한 모습이었다.

6살짜리 아이가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수술방에 혼자 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싶었다.

“재은아. 많이 무섭지?”

“네. 근데 누구세요?”

“재은이 담당 선생님이지. 이렇게 꽁꽁 싸매니까 모르겠지?”

“준후 선생님! 저 무서워요.”

“암, 선생님도 다 알아. 그래도 우리 재은이 참 멋있네. 다른 아이 같았으면 진작 울었을걸?”

“저도 울고 싶어요.”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아야지.”

울면 뇌혈관에 허혈이 찾아오는 재은이였기에.

준후는 특별히 무공을 사용하기로 했다.

“재은아. 선생님, 눈 똑바로 쳐다보렴.”

“왜요?”

“그럼 긴장을 안 할 수 있거든.”

재은과 아이 컨택을 하면서.

준후는 곧바로 정안(正眼)의 상위 무공인 환상안을 펼쳤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준후의 눈동자에 집중되었다.

준후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파란 호수 빛을 띠었다.

이윽고 준후가 눈동자에서 발산한 내공이 재은이의 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헤헤. 맛있어요. 치킨.”

재은이가 몽롱한 눈빛으로 헤실헤실 웃었다.

방금까지 긴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단꿈에 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환상안.

이는 정안을 익히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무공인데.

피술자의 정신연령이 낮아야 효과가 좋았다.

“어라? 선배.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수술 준비 중이던 인턴이 준후에게 다가와 물었다.

“나야말로 뭐가?”

“수술 준비하느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요. 환자 혈압하고 맥박이 높아서 노티 드리려고 했거든요.”

“…….”

“근데 혈압하고 맥박이 갑자기 정상 수치가 돼서요. 뭐, 투약하셨어요?”

인턴이 환자 감시 장치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자의 혈압과 맥박이 너무 빨리 정상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투약한 건 없어.”

“그럼 어떻게…….”

“글쎄, 나도 모르겠네. 수술 준비나 마저 끝내자.”

준후는 오리발을 내밀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최근 자주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정안과 환상안 역시 사기 스킬 중 하나였다.

환자와 보호자의 멘탈을 관리하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다른 무공들과 달리 주변 사람에게 의심받을 염려도 전혀 없었고 말이다.

준후는 인턴을 도와 수술 준비를 마쳤다.

10분쯤 지났을까.

마취의가 도착해 재은이의 마취를 끝내기 무섭게.

지이이잉.

집도의 민석과 1년 차 펠로우이자 퍼스트 어시스트인 철우가 수술방으로 들어왔다.

스태프들은 각자의 위치를 잡고 비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번 수술의 중요성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팠다.

6세 모야모야병 소아에게 직접혈관문합술을 펼친 전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굳이 이만한 위험을 짊어져야 하나?

간접문합술도 충분히 효과적인데?

솔직히 준후는 민석의 판단이 의문이고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준후에겐 민석의 결정을 뒤집을 방법도, 힘도 없었다.

레지던트 1년 차의 한계였다.

다만 지금 준후가 할 수 있는 건.

수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혹시라도 벌어질지 모르는 응급 상황을 무공과 내공으로 완벽하게 대응하는 것이었다.

재은아. 걱정 마.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선생님이 꼭 네가 무사하고 건강하게 퇴원하도록 애쓸 테니까.

한숨 푹 자고 있으렴.

그럼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야.

재은이를 바라보던 준후가 고개를 들었다.

2층 참관용 수술방으로 과장과 뇌종양 파트 조 교수 동훈과 한국 뇌혈관 협회 의사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뚜두둑.

뚜두둑.

준후는 목을 가볍게 좌우로 꺾었다.

손님 맞을 준비는 이미 끝났다.

* * *

투명한 통유리가 전면에 설치된 참관용 수술방.

“과장님은 이번 수술 어떻게 보십니까?”

동훈이 과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제아무리 곽 교수라도 고전할 거야. 아이들 뇌혈관은 다루기 까다롭거든. 잠깐만 방심해도 터져 버린다고.”

“그럼 말리시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내가? 왜?”

과장의 강력한 반문에 오히려 동훈이 당황했다.

지금 그 이유를 정말 몰라서 묻는다는 말인가.

“환자를 위해서라면 안전한 수술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허허.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안전한 수술에 누가 관심을 쏟겠나?”

“…….”

“간접혈관문합술을 했으면 협회 사람들이 참관이나 하러 왔을 것 같아?”

과장의 대답에 동훈은 침묵을 지켰다.

과장은 환자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냉혈한이었다. 과장에게 환자란 그저 자신의 돋보이게 만들 장기 말 중 하나였다.

즉 동훈과는 상극이었다.

이런 얄팍한 인간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현실이 동훈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자네, 그런 마인드면 곽 교수한테 뒤처질걸? 저번처럼 이슈가 되는 수술을 해보라고. 피아니스트 각성 수술했던 것처럼 말이야.”

“케이스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쯧쯧쯧.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지. 자네는 사람은 좋은데 너무 물러.”

과장이 꼰대 발언을 하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마침 스태프들이 각자 위치에 서서 수술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준후 녀석, 어려운 수술에는 꼭 끼는군. 1년 차 주제에 말이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친구입니다. 곽 교수도 이제 그걸 알아본 거죠.”

“지금 내가 보는 눈이 없다고 돌려 까는 건가?”

과장이 귀신같이 동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여간 눈치는 빨라 가지고…….

어쨌거나 동훈은 서둘러 변명을 준비했다.

과장의 심기를 건드려서 손해 보는 쪽은 동훈이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과장님은 준후를 어시스트로 써본 적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나는 최소 3년 차는 되어야 어시스트를 맡기니까.”

“준후랑 같이 수술을 해보시면 바로 체감하실 겁니다. 준후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그래? 이번 기회에 한번 꼼꼼하게 살펴볼까?”

과장이 손으로 안경을 만지작거리고는 팔짱을 꼈다.

잠시 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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