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38화 (238/424)

238화

제45장 4번 방의 기적(3)

수술은 순조로웠다.

두피 절개, 두개골 절개가 차례대로 이어졌다.

특이할 만한 점이라면 두개골 절개.

즉 개두술을 이번에도 준후가 맡았다는 것이었다.

준후는 뇌동맥류 수술에서 본인의 개두술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정확도는 유지하면서 시간은 3배가량 단축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그래서 민석은 준후를 믿고 개두술을 맡겼다.

개두술은 말 그대로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수술 아니던가.

고난이도 뇌혈관 문합술을 위해서 체력과 집중력을 최대한 아껴놓을 필요가 있었다.

준후가 손에 쥔 다이아몬드 드릴로 두개골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오늘도 야무지게 양손을 썼다.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양손을 사용함에도 준후의 양손과 양팔은 기계처럼 반듯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드릴이 회전하면서 두개골에 구멍이 뚫렸다.

뚫린 구멍 바깥으로 빙수처럼 곱게 갈린 골편이 빠져나와 쌓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면서.

수술방에 비릿한 피비린내.

달큰한 조직 타는 냄새 등이 진동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는 보채는 아이처럼 울어댔고.

수술방의 서늘한 공기가 살갗을 휘어 감았다.

쉬운 수술이 아닌 데다가.

협회 회원들이 참관까지 나온 까닭에 스태프들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한편 그 시각, 참관용 수술실.

“호오~ 곽 교수님도 이를 갈았나 본데요?”

한국 뇌혈관 협회 회원.

빅5 병원 중 하나인 제원대 병원의 신경외과 부교수가 운을 뗐다.

부교수의 이름은 장서원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과장이 되물었다.

“수술에 펠로우를 2명이나 쓰고 있지 않습니까? 보통 이렇게까지 스태프를 과하게 쓰는 경우는 없는데 말입니다.”

“세컨드 어시스트인 준후 이야기군요. 저 친구는 레지던트 1년 차입니다만…….”

“네? 정말이십니까? 저 친구가 1년 차라고요?”

서원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개두술은 보통 레지던트 2년 차.

그것도 수련 하반기쯤에나 개두술을 배우곤 했다.

그런데 준후라는 레지던트는 벌써 개두술을 능숙하게 펼치고 있었다.

서원이 펠로우로 착각할 만큼.

준후의 잠재력과 성장력이 경이로웠다.

“안 그래도 제가 눈여겨보고 있는 친구입니다. 워낙 재능 있는 친구라서요.”

과장이 히죽 웃었다.

서원이 준후를 칭찬했음에도 본인이 우쭐해 했다.

잘난 수하를 뒀다는 건 자신도 잘났다는 간접적인 증명이 되기 때문이었다.

“준후에게 주목하는 것도 이번 수술의 묘미가 될 수 있겠죠. 그나저나…….”

“…….”

“박재현 과장은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과장이 화제를 돌렸다.

“박 과장이야…… 뭐, 환자 보고 연구하느라 정신없죠. 요새는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를 치료해 보겠다고 하던데.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죠.”

“쯧쯧쯧. 그 천재적인 솜씨를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다니.”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아직 젊어서 그런가 봐요.”

“사실 과장 자리는 장 교수님처럼 관록 있는 분이 맡는 게 더 좋은데 말입니다.”

과장이 서원을 띄워주자 서원이 껄껄 웃었다.

입에 발린 말이 제대로 먹혀들었던 것이다.

수술만 성공하면 협회지에 오늘 수술을 대문짝만 하게 박을 수 있겠군.

크크크.

과장은 팔짱을 낀 채 참관용 모니터를 응시했다.

판은 충분히 깔아주었다.

판돈을 챙기는 건 스태프들의 몫이었다.

오늘은 유독 왜 이러지?

날 찾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귀가 간지러운 것을 참으며.

준후는 후크(hook, 갈고리)로 절개한 두개골을 들어냈다.

우유 지방층처럼 하얗고 불투명한 경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했다. 준후야. 오늘도 개두술이 깔끔하구나.”

“별말씀을요.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민석의 칭찬을 받고 퍼스트에서 세컨드 자리로 복귀한 준후는 펠로우 철우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재은이의 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준후는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하고 뇌를 세심하게 살폈다.

아…….

침음성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MRI로 확인한 뇌혈관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뇌혈관은 또 달랐다.

충격이 몇 배로 불어났다.

재은이의 뇌혈관은 담배 연기가 뻗어 나가듯이 사방으로 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뇌혈관이 무척 좁고 가늘다는 점이었다.

혈관이 좁으니 피가 통하지 않고 피가 통하지 않으니 실신이나 혼절을 경험할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수술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흉부외과의 CABG(관상동맥우회수술)처럼, 좁아진 뇌혈관에 굵은 뇌혈관을 연결시켜주는 것.

그것이 이번 수술의 하이라이트인 직접혈관문합술이었다.

새로 연결된 혈관이 비좁은 혈관에 혈류를 전달하면 말이다.

좁아진 혈관에 피가 충분히 돌고 동시에 혈관이 충분히 확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그 과정이 험난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뇌혈관.

그것도 소아의 뇌혈관은 심장혈관처럼 크고 두껍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혈관이 파열할 테고, 이는 재은이에게 영구장애를 남기거나 최악의 경우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었다.

‘하…… 진짜 거슬려 죽겠네.’

준후는 문득 미간을 찌푸리며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또 시야가 울렁거렸던 것이다.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 봐.”

“현미경에 잔 고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부터 아지랑이가 일어나는 것처럼 시야가 번집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난 또 내 눈이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지. 철우, 너는 어떠냐?”

“저도 시야가 번졌습니다. 지금까지 3번 정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으음…….”

민석의 시선이 미세 현미경에 머물렀다.

“곤란해. 지금까지야 괜찮았지만 뇌혈관을 문합할 때 시야가 번진다면 치명적일 수 있어.”

“의공학 기사를 부를까요?”

“그게 가장 깔끔하긴 하겠지만 오는데 최소 2시간은 걸릴걸? 그동안 수술은?”

“수술방을 옮기는 건 어떻습니까?”

철우가 새로운, 회심의 제안을 내놓았다.

“미세 현미경이 있는 수술방은 앞으로 3시간 동안 없습니다. 제가 미리 확인했어요.”

“끄으으응.”

준후의 칼 같은 대답에 철우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

답답한 상황에서 준후가 나섰다.

“과장님. 혹시 제가 수동으로 배율을 조절해도 되겠습니까?”

“수동으로?”

“네.”

준후는 검지로 미세 현미경 몸통에 있는 다이얼을 가리켰다.

해당 다이얼은 원형이었다.

전자레인지 타이머처럼 생겼는데 이를 돌리면 가장 최근 배율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시스트만으로도 벅찰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있겠니?”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맡을 수 있는 건 저뿐입니다.”

“어째서지?”

“교수님과 철우 선생님은 혈관 문합에만 집중하셔야 합니다. 다이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죠.”

“…….”

“또 소독 간호사님은 미세 현미경에 익숙하지 않고요.”

“…….”

“남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저뿐이니까요.”

“후우.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는구나. 다소 가혹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절대 실수를 해선 안 돼. 혈관 문합 중에 수술 시야가 바뀌면 설령 나라도 감당하기 힘드니까.”

“물론입니다.”

준후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바로 만화공을 펼쳤다.

만화공.

전신의 감각을 배로 뻥튀기하는 서씨세가만의 고유 무공.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전에 머물던 내공이 전신으로 분출되었다.

내공으로 이뤄진 투명한 막이 준후를 감쌌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서로 다른 감각이 동시에 또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끝이 아니었다.

의식이 네 개로 나뉜 것처럼.

해야 하는 업무가 또렷하게 자리를 잡았다.

감각의 증폭.

의식의 분할(멀티 태스킹)

만화공을 펼친 준후는 실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다.

* * *

직접혈관문합술의 막이 올랐다.

준후는 미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했다.

오른손에는 드바키 포셉 3번을 쥐고 왼손은 미세 현미경 다이얼 근처에 두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철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서준후. 드바키 3번 포셉을 쓴다고? 제정신이야?”

“네. 지금 상황에 가장 쓰기 좋은 포셉이라서요.”

“까불지 말고 에디슨 포셉이나 써. 네 수준에 안 맞으니까.”

철우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드바키 포셉은 미세혈관을 잡을 때 사용하는 포셉이었다.

섬세한 조작이 가능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다루기 힘든 포셉이기도 했다.

문제는 준후가 드바키 포셉을 선택한 것도 모자라 3번까지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3번 드바키 포셉.

이것은 튀김용 젓가락처럼 몸통이 길었다.

포셉의 몸통이 짧으면 짧을수록.

수술 시야와 손이 가까워지고.

수술 시야를 가린다는 단점이 존재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3번 드바키 포셉이 등장했다.

다만 3번 드바키 포셉은 사용이 까다로웠다.

긴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는 게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였다.

비유하자면 이랬다.

지금 준후는 ‘뒈진다 돈까스’에 캡사이신을 듬뿍 넣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매운맛에 매운맛을 더하듯.

어려운 수술 도구를 더 어렵게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철우 입장에서는 준후가 답답하면서도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가 오냐오냐하니까 머리까지 기어오르네?

주제 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준후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

“하지만 교수님. 이건 선을 넘지 않았습니까?”

“실수했을 때 지적해도 늦지 않아. 의외로 잘 쓸 수도 있잖니?”

“……알겠습니다.”

“모스키토(혈관겸자).”

딸칵!

민석이 소독 간호사에게 받은 혈관 겸자로 천측두 동맥의 하단부를 결찰했다.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시간 싸움!

뇌혈관을 오래 묶어두면.

혈류가 막히면서 허혈성 증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

철우는 민석이 천측두 동맥을 떼어내는 작업을 도왔다.

떼어낸 천측두동맥을 모야모야병이 발생한 중대뇌동맥 쪽으로 연결하는 수술이 이번 수술의 백미였다.

하…… 이 새끼, 웃기는 새끼네?

3번 드바키 포셉을 이렇게 잘 써?

민석을 도와 천측두동맥을 떼어내던 중.

철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준후가 다루기 힘든 3번 드바키 포셉으로 동맥을 너무 잘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준후의 팔은 떨림이 없었다.

당연히 포셉이 떨리는 일도 없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준후 덕분에 혈관이 잔잔한 호수 같았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혈관이 건조하여 파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생리식염수를 칙칙 뿌려주고.

필요한 수술 도구를 척척 건네고.

미세 현미경 시야가 뿌옇게 변할 징조가 보이면 곧바로 드르륵 다이얼을 돌렸다.

포셉으로 혈관 홀딩.

수술 도구 전달.

수술 부위 관리.

미세 현미경 다이얼 관리.

즉 준후는 하나만 하기도 벅찬 일을 무려 혼자서 해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후의 팔이 4개인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까 전 심신 소모가 큰 개두술을 펼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준후의 활약은 더더욱 굉장했다.

이게 레지던트 1년 차라고?

이쯤 되면 저 세상 레지던트 아니야?

준후와 함께 할수록 경악할 일만 생기는 철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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