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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39화 (239/424)

239화

제45장 4번 방의 기적(4)

만화공을 사용 중인 준후는 천하무적이었다.

주어진 임무가 벅찼음에도 척척박사처럼 해결했다.

포셉으로 혈관 홀딩.

수술 도구 전달.

수술 부위 관리.

미세 현미경 다이얼 관리.

만화공의 가장 큰 위력이라면 식을 줄 모르는 집중력과 각기 다른 업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멀티 태스킹 능력이었다.

무림에서 적일도와 최후의 결전을 벌일 당시.

패배에 몰린 준후를 승리로 이끌었던 무공도 만화공이었다.

즉, 준후에게 만화공이란…….

승리의 무공이었다.

준후가 만화공을 펼쳤다는 건 그만큼 현상황이 중요하고 위급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오른손은 포셉으로 혈관을 쥐고.

눈은 미세 현미경을 바라보던 도중.

준후의 미간이 좁아지고 눈살은 찌푸려졌다.

현미경 렌즈가 희뿌옇게 번져나갈 징조를 보였다.

이번만 해도 벌써 5번째였는데.

그 주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었다.

드르르륵.

준후가 자동 배율 다이얼을 돌리면서 시야는 다시 맑아졌다.

설마, 아니겠지?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재현 스승님 논문에서도 그런 케이스는 한 번도 못 봤어.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노력했지만 불길함은 산불처럼 빠르게 번져나갔다.

준후는 느낌이 안 좋았다.

그래서일까.

수술방이 4번이라는 사실조차 꺼림칙하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멘탈을 잡기 위해 준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시큰한 통증에 걱정과 불안이 밀려났다.

“샐라인(saline, 식염수) 스프레이(분무)하겠습니다.”

준후는 식염수가 담긴 분무기를 왼손에 쥐고 문합 중인 혈관에 뿌렸다.

칙! 칙! 칙!

혈관이 건조하면 잘 찢어지므로 이를 예방하는 처치였다.

식염수에 젖은 혈관이 번들번들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수술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한편.

준후는 수련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민석의 혈관문합술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초식화해서 저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민석은 9-0 nylon 봉합사를 사용 중이었다.

9-0 봉합사는 머리카락보다 2배 가까이 얇은 봉합사였다.

탄력성이 워낙 좋아서.

외과 의사들이 매듭을 지을 때 곤혹스러운 봉합사이기도 했다.

혈관에 봉합침을 침투시키는 각도와 방향.

손목의 스냅.

혈관에 전달되는 봉합사의 장력.

(봉합사를 너무 팽팽하게 조이면 혈관이 좁아지고, 너무 헐렁하게 조이면 매듭이 풀어진다. 신발 끈을 매는 것과 비슷한 이치.)

빈틈없이 견고한 매듭.

매듭 간의 일정한 간격 등등.

민석의 미세혈관문합술을 초식화하면서 준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교수는 교수였다.

제아무리 무림 출신의 준후라도.

당장 민석만큼 봉합술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었다.

메스라면 민석보다 잘 쓸 자신이 있었지만 봉합술에 관해서는 성취가 부족했다.

최근 준후가 필사적으로 호월십이수를 익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부족한 봉합술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방금은 위험했어!

힘 조절을 잘못하신 것 같은데?

준후는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봉합침을 혈관에 꿰던 도중.

민석이 혈관을 찢어버릴 뻔했던 것이다.

소아의 뇌혈관은 워낙 얇고 가늘었기에 단 한 순간의 방심으로도 수술은 실패로 끝날 위험이 컸다.

“교수님. 잠시 쉬시는 건 어떠실까요?”

4번째 문합이 끝난 후, 준후가 제안했다.

“휴우~ 그게 좋겠구나. 이제 슬슬 피곤해.”

민석이 한숨 쉬며 수술 도구를 내려놓았다. 민석의 팔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취의 선생님. 환자 바이탈은 어때요?”

철우가 수술대에 조금 떨어진 커튼 뒤를 응시하며 물었다.

“바이탈은 아직까지 문제없습니다. 산소포화도도 양호하고요. 10분 전에 혈압만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갔어요.”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노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환자 뇌압도 이상 없습니다. 5mmHg 유지 중이고 뇌전도에서 특이 파동 관찰된 적 없습니다.”

준후도 노티를 했다.

뇌압과 뇌전도는 마취의의 노티 범위 바깥이었다.

“와! 그 와중에 환자 뇌 상태도 모니터링했냐?”

철우가 감탄하며 물었다.

“당연히 제가 해야죠. 두 분은 워낙 중요한 수술을 하고 계시니까.”

“완전 일당백이네. 일당백. 너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래. 준후야 아주 잘 해주고 있다. 딱 지금처럼만 해.”

민석도 칭찬 릴레이를 거들었다.

준후가 혼자서 여러 업무를 감당해 준 덕분에 민석은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엄청난 축복이었다.

고난이도 수술은 집중력이 무너지는 순간 끝이기에.

“교수님. 수술의 진행 사항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칭찬이 멋쩍어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으음……. 한 70퍼센트 정도라고 보면 된단다. 단단문합술1)이라서 시간은 꽤 걸리긴 하겠지만.”

“대단하십니다. 수술도 어렵고 참관 온 분들도 있어서 부담스러우실 텐데.”

“외과의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교수님. 수술 계속 진행할까요?”

“아니. 조금만 더 쉬자꾸나.”

철우의 제안에 민석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지친 민석을 지켜보며 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소아의 뇌혈관을.

머리카락보다 2배 더 얇은 봉합사로 꿰매고 있으니 심신이 얼마나 소모되겠는가.

마음 같아서야 추궁과혈 마사지로 민석의 피로를 싹 풀어주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수술방은 감염과 오염 때문에 신체 접촉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꼼수라도 써 봐야지.

준후는 포셉을 이용해 거즈통에서 꺼낸 거즈를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고 건너편 수술대로 이동했다.

“준후, 너 뭐 하니?”

민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준후를 응시했다.

“땀 좀 닦아드리려고 합니다.”

“응? 땀은 별로 안 나는데?”

“그래도 수술하시다 보면 땀방울이 맺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핑계를 대면서.

준후는 민석의 왼쪽 관자놀이를 거즈로 닦아주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끼!

팟! 팟! 팟!

땀을 닦아주면서 준후는 검지로 민석의 관자놀이 인근에 태양혈, 곡빈혈, 현로혈, 현리혈 등을 꾹꾹 눌렀다.

지압하면서 내공을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 감히 내 머리를 누르는 거니?”

민석이 준후의 지압을 오해했다.

준후의 행동을 무례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럴 리가요. 땀을 닦아드리면서 지압과 같이해드리고 있습니다.”

“…….”

“오른쪽도 마저 해드리면 제가 왜 이러지는 아실 겁니다.”

준후는 꿋꿋하게 민석의 오른쪽 관자놀이에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팟! 팟! 팟!

수술방에서 제대로 된 추궁과혈 마사지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약식으로나마 점혈 지압을 펼친 것이다.

이번 수술의 성공과 실패가 민석에게 달려 있지 않은가.

그러니 재은을 살리고 싶으면.

준후는 마땅히 민석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지금은 어떠세요?”

땀 닦기와 지혈을 마친 준후가 민석에게 물었다.

민석이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머리가 개운한데? 뭐가 어떻게 된 거니?”

* * *

지압의 효과는 놀랍고 즉각적이었다.

돌멩이라도 들어가 있는 것처럼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죽어 있던 집중력이 살아나면서 몸까지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마치 컨디션이 수술 2시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예전에 지압을 배웠습니다.”

“조금 배운 것치고는 효력이 좋은걸? 어쨌든 고맙다. 덕분에 더 쉴 필요가 없어졌어.”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다니 뿌듯하네요.”

준후가 거즈를 곡반에 버리고 자리로 복귀했고.

민석은 복귀하는 준후의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세상에 이런 1년 차가 또 있을까.

혼자 3인분의 어시스트를 하면서 지압으로 집도의의 컨디션까지 챙겨주는 1년 차가.

그런 의미에서 준후를 어시스트로 뽑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자, 수술 곧바로 시작하자고. 9-0 nylon.”

소독 간호사가 봉합침이 달린 봉합사를 건넸다.

끼기기긱!

딸칵!

민석은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혈관문합술을 속행했다.

컨디션이 올라왔으므로 봉합은 일사천리로, 또 파죽지세로 진행되었다.

봉합침으로 천측두 동맥과 중대뇌동맥 혈관을 차례대로 꿰뚫고.

봉합사를 적당히 잡아당겨.

최적의 장력을 만들어내고.

화려한 손놀림으로 매듭을 짓고.

툭!

매듭이 완성되면 철우가 11번 블레이드로 남은 실을 끊어냈다.

준후의 활약에 가려졌을 뿐.

철우는 퍼스트 어시스트로서 본인의 몫을 200퍼센트 하고 있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준후의 어시스트 또한 여전히 기가 막혔다.

혈관을 안정적으로 잡아주었으며.

무엇보다 고장 난 미세 현미경의 시야가 뿌옇게 변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시야를 수정해 주었다.

집도의와 두 명의 어시스트가 가히 삼위일체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수술이 실패하는 건 불가능했다.

협회 사람들이 참관하러 온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군.

수술에 성공하면 학회지에 이번 수술 논문에 게재되는 것도 당연지사야.

신 교수를 제치고 부교수에 더 가까워진단 말이지.

수술이 피날레로 향할수록.

민석의 가슴은 흥분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남으로 딱 세 바늘!

세 바늘만 더 꿰매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민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봉합침을 새롭게 혈관에 밀어 넣으려던 바로 그때!

시야가 짙은 암흑에 빠져 버렸다.

“헛!”

민석은 놀란 숨을 삼키며 봉합침을 거두었다.

하마터면 이미 꿰맨 자리에 봉합침을 댈 뻔했다.

“서준후! 현미경 관리 똑바로 안 해! 방금 큰일 날 뻔했잖아.”

“야, 잘하다가 막판에 왜 그래.”

민석과 철우가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준후를 응시했다.

수술이 망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기에 목소리가 거칠었다.

“그게…….”

준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마스크가 펄럭거릴 정도였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잘못이지? 혈관 문합 중이던 나와 철우의 잘못인가?”

민석이 따져 물었다.

“잘못은 미세 현미경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미경이 고장 난 것 같습니다.”

“뭐? 고장?”

“네. 완전히 먹통입니다. 자동 배율 다이얼을 돌려도 수습이 안 돼서요.”

준후가 전한 소식을 민석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난다니.

민석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고.

같은 경험을 했다는 외과의의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

민석은 미세 현미경에 다시 눈을 가까이했다.

보이는 건 여전히 어둠뿐이었다.

드르르륵.

자동 배율 다이얼을 다시 돌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슬슬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

팔뚝에 오소소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교수님. 정말 현미경이 고장 난 것 같습니다. 아무 버튼도 작동이 안 하는데요?”

철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민석을 응시했다.

하지만 답이 없기는 민석도 마찬가지였다.

민석은 외과 의사였다.

미세 현미경을 수리·정비·개발하는 의공학자가 아니었다.

“일단 전원이라도 껐다 켜 봐.”

“네. 교수님.”

준후가 미세 현미경의 전원을 껐다가 켰다.

야속하게도 미세 현미경은 고장 난 상태 그대로였다.

“젠장! 미세 현미경 없이 무슨 수로 수술을 하라는 거야! 배율을…… 배율을 따라갈 수가 없잖아!”

민석은 절규하듯 외쳤다.

그리고 미세 현미경 없이 맨눈으로 환자의 뇌를 내려다보았다.

봉합 중이던 뇌혈관이 무엇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미세 현미경의 25배율을 사람의 시력으로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

“…….”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나면서 수술방 분위기는 삽시간에 냉각되었다.

공기는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딱 세 바늘만 더 꿰매면 됐는데. 딱 세 바늘만…….”

민석이 절망하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마치 미세 현미경의 시야처럼.

수술의 미래와 환자의 미래도 칠흑같이 어두웠다.

1)단단문합술(end-to-end anastomosis, 한 혈관의 끝과 다른 혈관의 끝을 문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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