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240화 (240/424)

240화

제45장 4번 방의 기적(5)

참관용 수술실이 소란스럽게 술렁거렸다.

성공을 코앞에 두었던 소아 모야모야병에 대한 직접혈관문합술이 오히려 실패를 코앞에 두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것이다.

왜?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났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하늘이 원망스럽군요.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곽 교수, 상심이 크겠어요. 지금까지 정말 잘해줬는데.”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난 케이스는 외과 의사가 되고 처음 보는 케이스군요.”

참관 온 의사들이 안타까운 소식에 술렁거렸다.

덕분에 과장의 마음도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감정의 패턴은 다른 의사들과 달랐다.

과장은 화가 났다.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했다.

한국 뇌혈관 협회 고위 회원들을 모시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런데 그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체면이 서지 않았다.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났다는.

통제 불가능한 사고가 터졌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이이잉.

때마침 자리를 비웠던 동훈이 수술용 참관실로 돌아왔다.

과장의 옆자리에 앉았다.

“과장님. 지금 미세 현미경 사용 가능한 수술방이 없다고 합니다.”

“단 하나도?”

“네. 최소한 2-3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갈수록 태산이군.”

과장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수술을 본 궤도에 올릴 최후의 방법마저 실패했다.

수술은 정말 망할 일만 남았나?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고 싶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수리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술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동훈이 물었다.

“자네는 뇌종양 전공이라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뇌에 피가 안 통할 거야. 동맥 몇 부분을 혈관 겸자로 막아놨으니까.”

“그럼 겸자를 잠깐 풀어주면 되지 않습니까?”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겸자를 푸는 순간 혈관이 팍! 무슨 느낌인지 알지?”

과장은 말과 행동을 과장해서 설명했다.

“뇌출혈이 발생하면 뇌에 대미지가 가는 건 기본이고. 봉합이 끝나지 않은 뇌혈관이 상할 수도 있어.”

“수리 기사가 올 때까지 버티는 일도 만만치 않군요.”

“그래. 나랑 뒤에서 참관 중인 협회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과장은 양손 중지로 관자놀이 부근을 쿡쿡 찔렀다.

수술이 엎어지고 신경성 두통이 찾아왔다. 현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그래도 제3의 방법이 없을까요? 환자를 구할 수 있는?”

“제3의 방법? 그딴 게 있겠나?”

과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난 순간 이번 수술은 끝난 거야.”

* * *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난 후.

수술방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스태프들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미세 현미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준후도 마찬가지였다.

오염을 막기 위해 비닐로 씌워진 미세 현미경을 빤히 응시했다.

미세 현미경은 눈이었다.

눈 없이 수술을 속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술방도 옮길 수 없으니 스태프들은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돼.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포기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을 거야.

질끈!

메마른 입술을 깨물어가며 준후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환자는 언제 죽는가.

의사가 환자를 포기했을 때 죽는다.]

준후는 언젠가 읽었던 에세이를 되뇌었다. 준후는 아직 재은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재은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전 세계의 인구가 60억이라고 해도 재은이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부모가 빠질 상실감은 말해서 무엇하며.

스태프들의 노고.

후원금을 마려해 준 사람들의 정성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교수님. 의료기기 업체에 전화해 봐도 되겠습니까?”

“…….”

“교수님?”

“내 오더가 너무 늦었구나. 그래. 빨리해 보거라.

충격에 빠진 민석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준후는 수술방 출입구에 근처에 있는 외선 전화기 앞에 섰다.

전화기 옆에 코팅되어 붙어 있는 의료기기 업체에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업체 이름은 리디안 바이오였다.

업체 내선을 한참 탄 후에야 준후는 관계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상황부터 설명했다.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났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정비 팀장 서운이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디 보자. 신원대 병원 4번 방 미세 현미경이면…… 한 달 전에 정기 점검도 마쳤어요.

“저희가 바쁜 분 붙들고 장난치겠어요? 현미경이 정말 고장 났다고요. 심지어 수술 중이에요. 수리가 1초라도 급합니다.”

-하…… 돌겠네. 일단 제가 시키는 대로 해보시겠어요?

“알겠습니다. 펠로우 선생님 부탁드려요.”

“알았어. 나한테 맡겨.”

스피커폰으로 대화 중인 준후 대신 철우가 팀장의 지시를 따랐다.

딸칵!

미세 현미경의 전원을 껐다가 켜보고.

세팅을 초기화해 보고.

몇 가지 버튼을 눌러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미세 현미경이 비추는 것은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틀렸어. 아무것도 안 돼.”

철우가 전한 절망적인 소식에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다 안 된다고 하네요. 팀장님. 그럼 최대한 빨리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지금 출발해도 최소 1시간은 걸릴 겁니다.

“무리한 부탁인 건 알지만 최대한 빠르게 와주세요. 지금 뇌혈관 수술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도착하는 즉시 다시 연락드릴게요.

통화를 끊고서 준후는 생각에 잠겼다.

팀장이 도착하는 데 1시간.

수리를 하는 데도 최소 30분은 잡아야 할 것이다.

1시간 30분 동안.

봉합 중인 뇌혈관이, 재은이가 버틸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도.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슬슬 뇌의 허혈도 시작되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이쯤 되면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재은이를 살리려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준후는 비장한 표정으로 물품실로 이동했다.

착용하지 않았던 루뻬(광학안경)를 수술모 위에 얹고 수술대로 돌아왔다.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니?”

민석이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의욕 넘치던 이전과 달리 민석은 심하게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눈빛이 총기를 잃은 채 죽어 있었다.

“이번 수술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준후의 충격 선언에 수술방은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혔다.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났는데!

수술방의 눈이 망가졌는데!

감히 레지던트 1년 차가 주제도 모르고 고난이도 뇌혈관 문합술을 마무리하겠다니…….

기가 차는 게 당연했다.

“서준후. 너 돌았어?”

철우가 본인의 관자놀이에 검지를 대고 빙빙 원을 그렸다.

“미세 현미경이 고장 났는데 네가 무슨 수로 수술을 완성해? 네 눈이 무슨 슈퍼맨의 눈이라도 돼?”

“네. 됩니다.”

“뭐? 다시 말해 봐.”

“제 눈이 슈퍼맨 눈이랑 다를 바 없다고요.”

준후는 오른손 검지로 자신의 양쪽 눈을 번갈아 가리켰다.

“제 시력이 10.0입니다.”

“야이, 돌 아이 새끼야. 시력이 10인 사람이 어디 있어? 시력 검사가 2.0밖에 안 되는데.”

철우의 말투가 거칠었다.

하지만 준후는 철우를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이 철우였다고 해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남다른 비밀을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무림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눈동자에 내공을 불어넣으면 시야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었다.

총알을 눈으로 쫓을 수 있고.

아주 작은 물체도 산만한 크기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내공을 몽땅 쏟아붓는다면 25배율을 자랑하는 미세 현미경 없이도 뇌혈관을 볼 수 있었다.

단 그럴 경우.

주변의 의심을 살 수도 있었고, 그래서 적당히 힘(시력)을 숨기기로 했다.

“제 시력이 10.0이고 루뻬 배율이 25배율입니다. 10X2.5를 하면 25배율이 되니까 수술을 할 수 있는 시야가 만들어지는 셈이죠.”

준후는 야심 찬 수술 계획을 설명했다.

재은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준후가 남은 수술을 마무리하는 것뿐이었다.

“아니, 등신아. 그러니까 네 시력이 10.0인 걸 어떻게 증명하냐고. 교수님 준후가 맛탱이가 간 것 같은데요?”

“서준후.”

잠자코 있던 민석이 대화에 껴들었다.

“네. 교수님.”

“이 긴박한 상황에서 헛소리를 꺼내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물론입니다.”

“일단 네 시력을 증명해 보고 싶구나.”

“교수님.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조용.”

민석이 손을 들어 철우의 말을 중단시켰다.

“네 시력을 증명할 방법이 있니?”

“있습니다.”

준후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1.0 시력이란 5미터 거리에서 1.5mm 크기의 물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했다.

그렇다면 말이다.

50미터 거리에서 1.5mm 크기의 물체를 인식한다면 10.0의 시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와! 돌겠네. 진짜. 선생님, 저만 이상한 거 아니죠?”

준후의 이야기를 듣던 철우가 소독 간호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저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1.5mm크기면 비타민 C 알약 정도 되는 크기잖아요.”

“…….”

“그걸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확인 가능하다는 게 황당하네요. 굳이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있는지…….”

“그쵸? 제가 이상한 거 아니죠?”

“진짜 이상한 게 뭔지 보여드릴게요. 깜짝 놀랄 준비하세요.”

준후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태국의 원주민 모겐족은 9.0의 시야를 가졌다고 알려졌어요. 광활한 들판에서 생활하면서 독수리와 맞먹는 시야를 가졌다고 하죠.”

“…….”

“제가 그런 시력을 보유하고 있으면 안 됩니까?”

“씨X. 그러면 네가 외과 의사 말고 모겐족 원주민이었어야지.”

“더 이상 입씨름은 의미가 없겠네요. 시력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준후는 본격적인 시력 측정 테스트를 준비했다.

수술방의 길이가 50미터가 되지 않았으므로 일단 수술방을 나와야 했다.

그리고 수술 복장을 해체한 후 수술방 복도로 나왔다.

테스트를 위해 철우만 준후를 따라 나왔다.

준후는 정비팀에 연락해서 50미터 줄자 전달을 부탁했고.

철우에겐 1.5mm 크기의 숫자를 적어달라고 했다.

10분 뒤 줄자가 전달되었다.

준후는 복도 끝에 서 있었고.

줄자로 측정한 끝 거리에는 철우가 서 있었다.

철우의 손에는 숫자가 적힌 포스트잇 종이가 들려 있었다.

이 자식.

만화책이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중요한 순간에 허무맹랑한 소리를…….

철우는 먼 거리의 준후를 응시하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준후의 얼굴을 식별하기는커녕.

준후의 형태를 알아보기조차 힘든 거리였다.

그런데 이 거리에서 포스트잇 쪼가리에 적힌 숫자를 파악한다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소리였다.

휴대폰으로 준후가 말한 모겐족을 검색해 보니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원주민이긴 했다.

하지만 시력이 실제 9.0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대충 그럴 것 같다는 느낌 정도였다.

하지만 철우는 다른 한편으로는 준후에게 기대를 품기도 했다.

과장과 한국 뇌혈관 협회 회원.

교수를 비롯한 스태프들 앞에서 허풍을 떨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게 쇼라면…….

준후는 즉시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외과 의사로 등극할 수 있었다.

‘자세한 건 확인해 보면 알겠지.’

철우는 준후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포스트잇을 들 테니 숫자를 맞춰보라고 했다.

결과를 들어야 하므로.

통화는 끊지 않았다.

턱!

철우가 허공에 내민 포스트잇에는 숫자 7이 적혀 있었다.

“자칭 모겐족 준후 씨. 뭐가 적혔는지 맞춰보세요.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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