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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49화 (249/424)

249화

제47장 벌써 일 년(4)

쇼 닥터 사이에 있는 재현을 보면서 준후는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가장 먼저 충격적이었고.

그다음 당혹스러웠고.

일말의 배신감마저 들었다.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은 소비자의 지갑을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었다.

시서스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그리고 이를 재현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재현은 대체 왜 이런 저급한 방송에 출연했을까.

환자를 끔찍하게 위하는 사람이.

준후는 사실 확인을 위해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띠이이. 띠이이.

건조한 연결음만 이어졌다.

재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평소 스케줄을 생각하면 수술 중일 듯했다.

아무래도 진실은 나중에 들어야 할 모양이었다.

“형은 쉬는 중에도 바쁜가 보네?”

태용이 준후 옆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준후가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으니 업무 관련 전화 중이라고 짐작한 모습이었다.

“그런 편이지. 최악의 경우 병원에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엥? 쉬는 날인데?”

“신경외과는 그런 곳이야. 완전한 휴식은 없어.”

준후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심지어 교수나 과장이 되도 쉬는 날에 병원을 나오는 경우가 많지. 일손이 부족하면.”

“심했다. 최소한 쉬는 날은 보장해 줘야 하는 건데…….”

“그래서 인기가 없어. 워라밸 시대에 휴일 출근이라니…… 과연 누가 지원하겠냐는 거지.”

준후는 짧게 한탄을 마쳤다.

외과 지원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십수 년 안에 공룡처럼 멸종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원자재를 수입하듯.

외과의를 수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대안도 나오는 중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다가오는 비극.

볼 수도 있지만 일부러 보지 않는 비극.

이 비극을 어떻게 막을까.

무공을 익힌 준후조차 답이 없었다.

외과계의 병폐를 박살 내는 것보다 차라리 천마교를 혼자 몰살시키는 게 빠를 듯했다.

“근데 태용이 너 살 좀 찐 것 같다?”

“요새 계속 집구석에서 방송만 했더니 한 5키로는 찐 것 같아.”

“방송은 무슨 방송해? 종류 많잖아.”

“게임방송. 게임방송이 나한테 가장 잘 맞더라고.”

태용은 다 먹은 컵라면을 앉은뱅이 식탁에 올려놓았다.

“형 뉴튜브 대박 났잖아. 편집 방식이나 콘텐츠 짜는 거, 아니면 뭔가 나한테 도움이 될 만한 비법 있어?

태용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준후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놀랍게도 준후는 요령, 비법, 노하우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채널을 대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태용에게 해줄 조언도 없었다.

준후의 채널이 대박 난 이유.

거기에는 사실 ‘2빨’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1번째는 ‘외모 빨’이었다.

잘 생긴 외모를 이용한 실시간 공부 방송으로 준후는 첫 번째 유명세를 탔다.

물론 잘생겨지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적은 없었다.

채널이 대박 난 2번째 이유는 바로…… ‘무공 빨’이었다.

아이돌 춤을 순식간에 카피하는 댄스 챌린지나 동전 구부리기 등등.

최근 업로드한 영상들은 무공을 활용한 메인 콘텐츠였다.

상식을 초월한 활약을 선보이니 사람들은 관심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도 없고.

알려줘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태용과의 대화는 고작 5분 만에 끝났다.

태용도 깨달은 것이다.

안타깝지만 준후에게 배울 만한 점이 없다는 것을.

영상은 휴대폰으로 찍어서 편집 없이 올리지.

준후의 콘텐츠는 따라 할 수도 없지.

잘생겨지겠다고 뜬금없이 성형 수술을 할 수도 없지 등등.

태용에게 준후는 한 마디로 뒤쫓을 수 없는 명품 스포츠카였다.

“운이 가장 좋았어. 이런저런 상황이 다 맞아떨어졌으니까.”

“역시 성공에 가장 중요한 건 운과 재능인 건가?”

태용이 땅이 꺼져라 한숨 쉬었다.

“운과 재능이 가장 중요한 건 맞아. 하지만 성공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진 않아.”

“…….”

“일단 뭐라도 해야 해. 그래야 기회가 생겨.”

“고마워. 형. 바쁜데 와줘서.”

“뭐야? 벌써 보내려고? 기왕 온 김에 너 방송하는 것 좀 보고 가자.”

“재미없을 텐데?”

“그건 내가 보고 판단할게.”

* * *

털썩!

방송 세팅을 마치고 태용은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준후는 모니터에 달린 송출 캠 범위 바깥에,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방송을 관람하는 사람이 있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괜히 긴장이 됐다.

방송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도 들었다.

굳이 잘할 필요는 없잖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평소 하던 대로만 하자.

그거면 되겠지.

태용은 마음을 가다듬고 방송을 시작했다.

태용이 방송하는 플랫폼은 ‘트위티’로 게임방송에 최적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켠김에 엔딩까지, 지옥맛 점프 퀸.]

태용은 방송 제목부터 적었다.

‘켠김에 엔딩까지’는 게임 하나를 정해서 엔딩을 볼 때까지 하는 콘텐츠를 말했다.

그리고 ‘점프 퀸’이라는 게임은…….

그야말로 악마가 만든 게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게임 자체는 단순했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탑을 오르면 됐다.

조작법이 쉬워서 유치원생도 할 수 있었다.

좌우 방향키로 좌우 방향을 잡고.

스페이스 바로 점프만 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점프 퀸’이 악마의 게임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으니…….

점프를 잘못 뛰어서 발판을 벗어나면.

끝없는 추락을 맛봐야 했다.

탑 초반부까지 추락해야 했다.

즉 2-3시간을 고생해도 한 번만 실수하면 모든 게 리셋되는 사악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고생길이 훤했지만 태용은 감당하기로 했다.

인기 없는 스트리머가 주목받기에는 ‘점프 퀸’만한 콘텐츠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말표 님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깔라만시 님도 안녕하세요.”

태용은 입장하는 시청자들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10분 정도 잡담을 나누다 보니 시청자가 70명에 육박했다.

평소 2배 가까운 수치였다.

어쩐지 2-3분에 하나씩 올라오던 채팅 주기가 빨라졌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콘텐츠 빨’이 무섭긴 했다.

-시간만 질질 끌고 점프 퀸은 대체 언제하누? 님 쫄????

-여기가 내년까지 방종이 없다는 그 방송인가요??? ㅋㅋㅋㅋ

“안 그래도 지금 시작할 생각이거든요? 너무 빨리 끝나면 싱거울까 봐 잡담 중이었는데…… 뭐 이젠 어쩔 수 없죠. 안전벨트 꽉 매세요.”

태용은 ‘점프 퀸’을 실행하고 곧바로 플레이했다.

턱!

턱!

턱!

용감한 기사는 발판에서 맥없이 떨어져 추락하기 바빴다.

‘점프 퀸’은 총 5스테이지가 있었는데 태용은 1시간 동안 1스테이지도 공략하지 못했다.

슬슬 찾아오는 인내심의 한계!

짜증에 머리 뚜껑이 열리고.

답답함에 가슴이 바짝 조여 왔다.

“와. X발. 뭐 이딴 똥겜이 다 있어? 제정신이야? 이런 게임을 대체 왜 만드는 건데?”

쾅!

태용은 급기야 주먹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분을 못 이겨서였다.

‘점프 퀸’이 악랄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이 게임을 계속하다간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았다.

-ㅋㅋㅋㅋㅋ. 어디 날로 먹을 게 없어서 ‘점프 퀸’을 날로 먹으려고??? ㅋㅋㅋ

-역시 남의 고통은 나의 행복이야. 짜릿해, 신선해, 새로워.

-보통 하루 이틀이면 엔딩인데 님 실력이면 사흘은 걸릴 듯. ㅋㅋㅋㅋ

쏟아지는 채팅창에 태용은 억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큰소리를 하도 뻥뻥 쳐두었기에 이제 와서 백기를 들 수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게임을 하던 바로 그때.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준후가 한마디 했다.

“태용아. 게임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형이 몰라서 그러는데 이거 쉬운 게임 아니야. 키보드를 0.01초만 잘못 눌러도 점프가 이상해진다니까?”

태용이 하소연하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0.01초를 느끼면서 게임은 왜 그따위로밖에 못하시죠??? ㅋㅋㅋ

-미쳤다. 0.01초의 사나이. F1 레이싱 나가야 할 듯. ㅋㅋㅋㅋ

-바람돌이 소닉인 줄, 후덜덜.

채팅창에서 쏟아지는 비아냥과 빈정.

게임을 알지도 못하는 준후의 훈수로 태용의 멘탈은 산산조각 났다.

정신줄이 ‘툭’ 끊겨 버렸다.

“아 씨! 그럼 형이 직접 해보든가. 말로 하는 거면 나도 서울대 가고 하버드 갔지.”

“너 자괴감 느낄 텐데 괜찮겠어?”

“제발 좀 느끼게 해줘.”

-충격! 스트리머 시금치 오늘부터 ‘느끼고’ 싶어!

-혼자 방송하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 게스트 있었나요?

“네. 친척 형이 방송 봐주고 있었어요. 어쨌거나 형이 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잠깐 넘길게요.”

태용은 컴퓨터 책상 앞자리를 양보했다.

대신 거실에서 의자를 가져와 준후 옆자리를 차지했다.

시청자들은…….

그런 태용을 비겁하다고 매도했지만 태용은 개의치 않았다.

태용은 준후가 점프 퀸을 얕본 대가를 똑똑히 치르기를 바랐다.

-와! 친척형 존잘이네요. 아이돌 지망생인가? 등 뒤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데요?

-100만 뉴튜버 서준후 쌤 아닌가. 얼마 전에 동전 구부리기 영상 올렸던 그분?

-맞네! 그 사람 맞네! 대박!!!

시청자들이 준후를 알아보면서 채팅창이 뜨거워졌다.

스크롤이 분수처럼 올라갔다.

채팅을 일일이 다 읽어주기 힘들 지경이었다.

확실히 준후의 인기와 평판은 태용과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다.

하지만!

‘점프 퀸’ 앞에서는 100만 뉴튜버도 한낱 불쌍한 한 마리의 희생양이나 다름없었다.

‘후후후. 형도 고통 좀 받아보라고.’

태용은 남몰래 사악하게 웃고서 말을 이었다.

“형, 준비됐어?”

“조작하는 키도 3개밖에 안 되는데 준비할 게 있나?”

“오올~ 자신감 쩌는데. 시간 오래 걸릴 테니까 일단 1스테이지만 도전해 봐.”

“아니, 기왕 시작했으면 엔딩 봐야지.”

준후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물론 저 자신감은 조작하는 기사캐릭터처럼 곧 형편없이 곤두박질치겠지만.

준후의 ‘점프 퀸’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떵떵거리던 준후도 초반에는 별수 없었다. 3-4번 정도 잇달아 발판에서 미끄러져 초반 구역으로 낙하했다.

솔직히 살짝 깨소금 맛이었다.

“거봐. 내가 어렵다고 했지? 보는 거랑 하는 거는 완전히 다르다고.”

“괜찮아. 이제 감 잡았어.”

“그 감이 혹시 자괴감 아니야?”

방송의 재미를 위해 태용은 일부러 준후를 놀렸다.

물론 방송이 끝나면 나중에 다 사과할 작정이었다.

“자괴감 맞아. 근데 주인이 내가 아니고 너라는 게 문제지.”

“의사라서 그런지 말은 잘하네.”

“말도 잘하는 거란다.”

준후가 씨익 웃었다.

이어진 플레이는 놀라웠다.

아니. 기절초풍할 만한 것이었다.

감을 잡았다고 말한 이후부터 준후는 단 한 번도 발판에서 미끄러지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준후가 조작하는 기사 캐릭터는 쭉쭉쭉 탑의 정상으로 상승했다.

누가 보면 ‘점프퀸’이 아동용 게임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채팅창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준후 쌤, 피지컬 돌았네. 컨트롤이 완전 손에 익었나 봐. 실수가 없네. 덜덜덜…….

-미리 연습해 온 거 아님? 초심자가 어떻게 저렇게 잘함???

-미리 연습한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ㅋㅋㅋ 안 그래도 바쁜 대학병원 외과 의사가 점프 퀸 같은 걸 왜 연습해요? ㅋㅋㅋㅋ

-2회차 하면 세계 기록도 갈아치울 듯.

준후의 경이로운 플레이에 태용은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모니터를 향한 눈빛.

키보드를 조작하는 손길.

준후의 모든 것이 섬세하고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이것이 외과 의사의 압도적인 피지컬인가 싶었다.

대체 준후는 뭘 못하는 걸까.

태용은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뭐, 금방 다 깼네.”

아주 당연한 결과라는 듯, 준후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어깨를 으쓱거렸다.

평균 플레이 시간이 하루에서 이틀 정도 걸리는 점프퀸을 준후는 첫 시도에 클리어했다.

그것도 고작 5분 만에…….

모든 걸 짜고 쳤다고 해도 반박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준후 형…… 사람 맞지????

“아까 채팅창 보니까 세계 기록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세계 기록이 어떻게 되죠? 한번 깨보고 싶은데.”

준후의 무심한 한 마디에 태용은 현기증마저 느꼈다.

와…… 미친…….

게임 하는 와중에 채팅까지 다 봤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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